〈 117화 〉 117. 서쪽의 빛
* * *
[ 117. 서쪽의 빛 ]
“적의 움직임은?”
“적의 포격과 기병이 분할되어 군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분할?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정찰병의 보고에 마벨이 인상을 찡그리며 묻자, 병사는 정말이란 듯 다급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정말입니다! 그리고 프레드릭 경이 흉갑기병대를 이끌고 나갔으니 곧 적의 기병도 위세가 꺾일 겁니다!”
“뭐라? 프레드릭이?”
빠른 그의 대응을 뭐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잡을 수 없는 적의 공격에 마벨은 그의 반응이 다소 성급하다고 느껴졌다.
“말을 타고 프레드릭에게 가 명령을 전해라, 적의 움직임을 파악할 때까지 진영 주위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알겠나?!”
“알겠습니다!”
마벨의 명령에 정찰병은 빠르게 자기 말에 올라타고는 진영 밖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정말 에스티올과 베르니아의 군이 맞단 말인가..”
심상치 않은 적의 편성에 마벨은 꽤 인상적이란 듯 자기 지팡이을 잡아 올려 손에 툭툭 치며 생각에 잠겼다.
파앙
‘..!’
“숙여!”
카앙 !
저격이라도 하는 것일까, 예상치 못한 적의 탄환에 놀란 내가 마벨을 뒤로 밀치며 그대로 탄환을 튕기자 그것을 신호탄으로 한 것일까, 마벨을 중심으로 적의 탄환이 노골적으로 빗발쳐 날아오기 시작했다.
티잉 – 팅 !
“이 자식들.. 대체 어디서 쏘는 거야?!”
성가신 공격에 내가 짜증을 내자 마벨은 차분한 얼굴로 머지않은 숲을 지팡이로 가리키며 말했다.
“적의 경보병 중대가 저기 있을 거야.”
“경보병?”
“그래, 이 정도 거리에서 예리하게 쏠 수 있는 건 페르티갈 예거들의 특수 라이플 외엔 없어. 슈트라우스!!”
“네, 각하!!”
“서쪽 외곽 숲을 향해 포격을 날려라, 적의 쥐 새끼들을 모두 쓸어버려!”
“옛!”
역시 판단이 빠른 것일까, 마벨의 명령에 슈트라우스 남작은 자기 목에서 호루라기를 들어 불더니 포병장교를 향해 수신호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수분도 안 되어 엄청난 수의 포탄들이 마벨이 가리킨 서쪽 숲으로 떨어지며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쿠구구궁 !!
“노르공! 블뤼힐!”
“예, 각하!”
“각각 좌우 보병 연대를 지휘해라! 이 패닉을 막으려면 귀공들이 나서야 한다!!”
“알겠습니다!”
기습에 대한 녀석의 대처도 놀랐지만, 고위장교들을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는 일선으로 보낸다니 나는 녀석의 결단에 황당하단 표정으로 외쳤다.
“미쳤어? 저들은 네 핵심 부관들이야?!”
“그래서?”
“뭐..?”
태연하게 되묻는 녀석의 모습에 내가 벙찐 표정을 짓자 그는 미소와 함께 내 어깨를 부드럽게 쓸어 쥐며 말했다.
“카트리나, 저들의 특권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야.”
“...”
“말뿐인 모범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나아. 그리고 네가 설원에서 그랬듯 저들도 자기 의무를 모를 만큼 무능한 자들이 아니야.”
수하들을 믿고, 병사들을 믿는 그의 확고한 말투에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그라도 똑같은 결정을 했을 테니까.
콰광 !!
“흐음.. 시작됐군.”
머지않은 곳, 차폐를 목적으로 위력포격하는지 진영 앞으로 떨어지는 엄청난 폭발과 함께 연합의 수많은 씰들이 일순 숲에서 벗어나 초원을 쇄도하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씰..?”
“훗.. 아무래도 적의 사령관은 날 이곳에서 밀어낼 생각이군.”
나만이 느낀 것일까, 적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오랜만에 재밌는 상대를 만났단 듯 희열이 서려 있었다.
“참으로 대단하고.. 발칙한 자가 아닌가.”
***
타다다
“비토리아, 마르티나.”
“네.”
“네.”
슈트렐리츠의 말에 뒤따라 달려오던 두 명의 메이드가 다소곳이 대답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진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라, 마벨만 쫓으면 된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의 명령과 함께 슈트렐리츠를 중심으로 좌우로 나눠진 쌍둥이 자매는 서로의 대검을 비스듬하게 쥐고는 초원을 빠르게 돌파하기 시작했다.
“발검!!”
스릉 – 스릉
한편, 전선 앞에서 포진해 있던 제국의 엘리트 씰들은 클라우비츠의 외침과 함께 허리춤에서 예리하고 날렵한 샤벨을 일제히 뽑아 쥐었고, 한 치의 동요도 없는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보였다.
그와 함께 11기사단인 마르쇼스, 호프슈어 그리고 슈하일 또한 긴장한 얼굴로 샤벨을 쥐고 있었는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표정의 클라비우츠가 샤벨을 뽑아 초원을 걸어 나오며 마력을 증폭시키며 외쳤다.
“제국 앞엔 승리 뿐이다! 저 연합의 개들에게 그 무력함을 일깨워라!!
“승리 만세! 승리 만세!!”
“황제 폐하의 검으로써 제국의 힘을 보여라!! 클로비스 4세 만세!! 하켄제국 만세!!”
“클로비스 4세 만세!! 하켄제국 만세!!”
그러자 제국의 엘리트 씰들은 일제히 그의 말을 영창하며 일순 전장일대의 분위기를 지배했고 클라우비츠는 샤벨을 움켜쥐며 외쳤다.
“돌격!!”
짧고 굵은 그의 명령에 제국의 엘리트 씰들은 쇄도해 오는 연합의 씰들을 향해 일제히 달려가기 시작했고, 이윽고 살의를 품은 두 무리는 드넓은 초원위에 맞부딪치며 치열한 전투를 펼치기 시작했다.
채재쟁
인간과 달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서 일까, 살인병기이자 마법 생명체인 그들의 싸움은 잔인하면서 집요했고, 비정할 정도로 차가운 그 효율성엔 인간미란 것이 없었다.
붉은 피가 튀며 사지가 잘려도 푸르게 빛나는 마나 하트의 빛이 꺼지지 않는 이상 그들의 싸움은 계속되었고, 상대의 샤벨에 마나 하트가 부서져서야 그들은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고 검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렇게 샤벨들이 햇빛을 받아 번뜩이는 은빛 전장 사이로 회색 제복의 미소년 하나가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며 슈트렐리츠의 옆으로 착지했다.
부우웅 부우웅 콰직 !!!
“오리지널, 활로는 저와 제 수하들이 뚫겠습니다.”
“블란카.”
“당신의 마스터는 별로지만,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진 않습니다.”
그 말과 함께 그를 지나쳐 달려 나가는 블란카 뒤로 정갈한 회색 제복의 에스티올 정예 씰들이 일사불란하게 뒤따르며 클라비우츠의 엘리트 씰들을 거세게 몰아 붙여 슈트렐리츠와 베르나아 쌍사자가 나갈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과연 성(?) 에마누엘레 기사단이군.”
삐이이익
슈트렐리츠의 휘파람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던 비토리아와 마르티나는 빠르게 그의 뒤로 붙어서는 블란카가 만든 협로를 따라 클라비우츠가 만든 저항선을 돌파했다.
“이런..! 적의 씰이 각하께 간다!!”
아차한 클라비우츠가 그들을 막아 보려하지만 이미 전장 한가운데에 있던 그와 그의 기사단은 치열한 전투에 발을 뺄 정도로 여유가 있진 않았다. 그렇게 블란카의 도움으로 마벨의 진영 근처로 가던 그때였다. 음산한 회색빛의 샤벨 하나가 마르티나의 목을 노리며 날아왔다.
“위험해!”
‘..!’
채애앵 !!
예사롭지 않은 공격에 슈트렐리츠가 기습에 노출된 마르티나의 팔을 잡아 뒤로 빼 던지며 그 검을 막아서자 묘하게 흥분된 목소리 하나가 그의 귀로 들려왔다.
“이런 대어(大?)가 낚이다니, 오랜만이야, 슈트렐리츠.”
“...”
검은 단발에 회색빛 눈동자를 번뜩이는 아큐벤스가 자기 검을 막은 슈트렐리츠가 반갑단 듯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으로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아큐벤스.”
씨익.
“여전히 검에 대한 자신이 넘치는구나. 검성!!”
채애앵 – 채앵
빠른 움직임과 함께 몰아붙이는 아큐벤스의 검에 슈트렐리츠는 자기 손위로하나의 샤벨을 전송시키며 중얼거렸다.
“티파레트.”
‘..!’
카아앙
콰아앙!!!
검이 부딪치자 마자 거대한 폭발이 그들을 감쌌고, 떨어지는 흙먼지 뒤로 멀쩡한 모습의 아큐벤스가 그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성가신 건 여전하군.”
“성가셔? 너야말로 쥐새끼처럼 잘 피하는구나.”
묘한 신경전과 함께 서로를 노려보던 그때, 슈트렐리츠가 뒤에 있던 두 자매를 향해 작게 속삭였다.
“이 녀석은 내가 맡지, 너희들은 임무를 계속해라.”
“알겠습니다.”
그의 명령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두 자매의 모습에 아큐벤스가 몸을 날리려 하자 다시 샤벨 하나를 손 위로 전송시킨 슈트렐리츠가 강렬한 푸른 뇌전과 함께 그를 짓누르며 말했다.
콰지지직 !!
“네 상대는 나다, 아큐벤스. 설마 다른 거에 신경 쓸 정도로 한가한 건 아니지?”
“슈트렐리츠..”
채앵 – 카앙 !!!
츠즈즈
기운을 폭발하며 슈트렐리츠를 뒤로 밀어낸 아큐벤스는 아까와 다른 분위기와 함께 샤벨을 쥐며 말했다.
“모두가 검성, 검성이라 치켜 세워주니 네가 뭐가 된 줄 아는구나.”
“뭐, 사실이니까.”
“건방진 것.”
티잉
아큐벤스와 말과 함께 그의 회색빛 눈동자가 푸른빛과 함께 음산히 빛나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슈트렐리츠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오만도 오늘까지다, 슈트렐리츠. 오늘 너를 구속해 직접 황제 폐하 앞에 무릎 꿇려주마, 이 배신자 레벨리스.”
그러자 슈트렐리츠는 방심할 수 없단 눈빛과 함께 작은 미소를 지으며 작게 속삭였다.
“확실히 네 권능을 본지도 꽤 됐군.”
꽈악.
“귀검(??)의 아큐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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