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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광의 주인 _ 뇌전(雷電)의 샤벨리아-119화 (119/135)

〈 119화 〉 119. 서쪽의 빛

* * *

[ 119. 서쪽의 빛 ]

샤벨리아 덕분에 마벨의 추격대를 피해 블루아 루즈 근교에 도착한 페르티안과 일행들은 짐을 풀고는 세베랑스 왕세자를 구출하기 위한 본격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최근 발루아가 요새의 경계가 철통 같다니까 우선 근처에 있는 생테앙 시장을 배회하며 살펴보자.”

“시장?”

키탈파의 말에 페히메가 호기심 가득한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키탈파는 귀엽단 듯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에우로페 대륙에서 제일 유명한 시장이야.”

“네? 정말요?”

“그럼, 가보면 놀랄걸?”

도로가 발달한 세베랑스는 대륙의 어느 왕국보다 유통망이 발달했는데, 그때문인지 각지에서 몰려드는 상인들로 상업이 융성했다. 비록 연합왕국의 신항로 개척으로 예전에 비해 그 위세가 덜하다고는 하지만 대륙에서 세베랑스를 거치지 않고는 장사를 할 수 없다 할 만큼 유수한 상회들이 대륙의 상권을 쥐고 있는 무역의 나라였다.

“페르티안님?”

“...”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지 멍하니 땅을 바라보고 있는 페르티안을 발견한 프레데리카가 그를 불러 보지만, 대답이 없는 페르티안이었다.

“페르티안님?”

“응..?”

“무슨 생각을 그리하십니까?”

“아.. 미안, 시장이라고 했지?”

밝은 미소로 대답하며 키탈파의 이야기를 다시금 집중하는 그였지만, 페르티안을 바라보는 프레데리카는 눈빛은 미심쩍음과 함께 곁에 있는 샤벨리아에게 향했다.

평소와 같이 화사하고 아름다운 얼굴로 미소 짓고 있는 그녀이건만 페르티안이 미묘하게 그녀를 피하듯 살짝 떨어져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까부터 샤벨리아 쪽은 바라보지도 않는데 처음엔 싸웠나 했지만, 그렇기엔 샤벨리아님의 표정이 너무도 즐거워 보였다.

“왜 그래 프리?”

“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 아니요.”

확실히 이상했다. 그녀가 이렇게 살가웠던 적이 있던가? 프리데리카는 배시시 웃는 샤벨리아의 모습에 역으로 당황하며 허둥지둥 고개를 돌렸다.

씨익.

하지만 샤벨리아는 그런 프레데리카가 귀엽단 듯 언니와 같은 눈빛으로 당황함을 애꿎은 옷매무새로 허둥대는 그녀를 흐뭇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스윽.

“페르티안?”

“새벽부터 움직였더니 배가 출출하네, 요기도 할 겸 내가 시장 서쪽을 돌아볼게.”

“그래? 그럼 나도..”

“아니, 나 혼자 갈게. 괜찮아.”

그를 따라 일어서는 샤벨리아에게 괜찮단 듯 미소를 지은 그는 무슨 일이지 하며 놀라 쳐다보는 일행들을 지나쳐 나갔다. 그러자 황급히 일어선 프레데리카가 샤벨리아에게 걱정 말란 듯 말하며 그를 쫓았다.

“제가 따라가 보겠습니다.”

“응..”

평소와 다른 둘의 모습도 그치만 샤벨리아님을 거절할 정도로 이상해 보이는 페르티안의 모습이 걱정되는 프레데리카였다.

덥썩.

“응..?”

“나도 갈래.”

무슨 바람이 분 것일까, 모닥불 근처에 앉아 있던 데브가 벌떡 일어나는가 싶더니 쪼르르 달려와 그의 손을 잡고는 배시시 웃는 것이었다.

처음엔 놀라는 듯싶던 그는 어린아이와 같은데브의 순수함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를 데리고 멀리 보이는 블루아 루즈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페.. 페르티안님?”

“조심해, 프레데리카.”

기껏 시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된것일까, 생테앙 시장거리는 엄청난 인파로 인해 지나가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파도와 같이 흐르듯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낑겨 허둥거리는 프레데리카의 손을 잡은 페르티안이 끌어당기자 그제야 살았단 듯 작은 한숨과 함께 자기 은발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프레데리카의 얼빠진 모습에 데브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프리가 뚱뚱해서 그래.”

“뭐라고요?!”

누가 보아도 마른 그녀였건만 데브는 볼에 잔뜩 바람을 넣은 표정으로 정말이지 쓸모없는 것을 달고 있단 듯 그녀의 미드를 찌르며 말했다.

“얼마나 먹었길래 살이 여기로 간 거야? 이 뚱땡이!”

화악.

“데.. 데브! 이건 사.. 살이 찐게 아니라고요!!”

“흥! 데브는 빨리 달고 맛있는 거 먹고 싶단 말이야! 근데 프리의 뿌룩뿌룩 찐 살 때문에 자꾸 늦어지잖아!!”

“으으..”

어린아이와 같은데브의 칭얼거림에 프레데리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억울한 표정으로 울상을 지었다.

“푸훗..”

“페르티안님?”

“아, 미안.. 프리의 그런 얼굴 처음 봐서.”

얼음공주처럼 얼굴에 표정이 없는 프레데리카였지만, 오늘따라 여러 가지 얼굴을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이 신기할 법했다. 그런 페르티안의 말에 프레데리카는 더욱 얼굴이 빨개져서는 입을 우물쭈물거렸고, 데브는 그런 프레데리카는 상관없단 듯 걸음을 멈춘 페르티안의 손을 잡아당기며 근처 사탕가게를 가리켰다.

“페티, 페티!”

“응? 왜 그래?”

“나 저거 먹고 싶어!”

“그래, 먹자.”

데브의 이끌림에 사탕가게로 간 페르티안은 잠시 후, 자기 주먹보다 큰 붉고 동그란 사탕 두 개를 들고 오는 그녀의 모습에 놀라 쳐다보며 물었다.

“그거 다 먹을 수 있어?”

“이건 내꺼, 이건 페티꺼.”

“내꺼?”

“응!”

당연하단 듯 내미는 데브의 사탕을 받아쥔 페르티안은 어딘가 익숙한 사탕의 모습에 멍하니 쳐다보던 그때였다.

“데브, 저는요?”

“프리는 없어!”

“네?! 왜요?!!”

“프리는 뚱땡이니까!”

“네?!!”

사탕가지고 투탁거리는 데브와 프레데리카를 바라보던 그때였다. 환청인지 익숙하면서 그리운 목소리가 페르티안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 프티, 그거 정말 먹을 거야? ]

‘응..?’

순간 놀란 페르티안이 주변을 살펴보지만,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모습만 보일 뿐 자기 귓가에 들렸던 목소리의 주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너 그거 먹으면 백퍼 살찐다. ]

멈칫.

무엇일까, 알 수 없는 목소리가 그의 주변을 맴돌며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란스런 얼굴로 사탕을 바라보던 그때였다.

[ 프티! 여기야, 여기!! ]

‘..!’

인산인해를 이루는 사람들 저 멀리, 집들이 층층이 지어진 계단 사이에서 햇볕에 얼굴이 가려져 보이지 않는 남자 하나가 그를 향해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고 있었다.

스윽.

무엇에 홀린 듯 걸음을 옮기자,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던 남자는 미소와 함께 몸을 돌려 계단 위를 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자기 가슴도 묘한 서레임에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따라 올라간 예쁘고 아기자기한 계단 위는 세월이 느껴지는 아담하고 귀여운 집들이 작은 언덕을 따라 있었고,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올려다보았던 발루아가 요새가 점차 시선이 맞아지며 자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 프티! 아직도 그렇게 체력이 약하면 어떡해?! 빨리 와!! ]

두근.

‘뭐지..?’

이토록 그립고 반가운 목소리가 있을까, 페르티안은 흔들리는 눈동자와 함께 자신을 이끄는 그 환상을 따라 햇볕이 아름답게 비치는 그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휘이잉 ­

‘..!’

초원과 나무들이 보이는 언덕 위는 많은 사람이 보이는 생트앙 시장과 함께 그의 앞으로 아름다운 르텔 강과 함께 강 입구를 지키는 발루아가 요새가 환상적인 경관을 펼치며 그의 눈앞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 여긴..”

자신을 이끌었던 그 그리운 환상은 모습을 감춘지 오래였고, 묘한 서운함과 설렘에 주먹을 살며시 쥐던 그때, 자기 눈앞으로 왜소한 체격의 한 인영이 외롭게 르텔 강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응?”

“아..”

태양을 머금은 듯 아름답고 윤기 있는 머리카락을 고풍스럽게 묶어 올린 미소녀 하나가 의아한 표정과 함께 눈가를 가린 가면을 쓴 모습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누군가 있을 줄 몰랐네요.”

“...”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녀의 눈길에 페르티안은 당황하며 몸을 돌려 내려가려던 그때였다.

덥썩.

‘..!’

자신의 손을 잡는 부드럽고 작은 여린손이 느껴져 왔고 놀라 돌아본 뒤에는 맑은 호수를 담은 듯 사파이어와 같은 푸른 눈동자 두 개가 믿을 수 없단 듯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프티..?”

“네..?”

“프티지? 프티 맞지?!”

“아니 전..”

와락.

‘..!’

거절할 틈도 없이 자기 품에 달려 안기는 그녀는 강하게 자신을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꽈악.

“기다렸어, 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

“아니.. 저기..”

‘..!’

가면 사이로 떨어지는 눈물을 보자 페르티안은 순간 말을 잃었다. 왜냐하면 연기이기엔 그녀의 눈동자가 너무도 기쁨에 떨리고 있었고, 누군가를 놀리기엔 너무나 아련했다.

스윽.

‘!!’

그리고 가면을 잡아내린 순간, 페르티안은 놀라 굳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가면을 벗은 그녀는 자신이 잘 아는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샤벨리아..?”

자기 말에 묘한 미소만 짓던 그녀는 발굼치를 들어 자기 목을 사랑스럽게 끌어안고는 작은 속삭임과 함께 떨리는 키스했다. 어떠한 애절함과 그리움을 대신할 수 없는 따스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이었다.

“널 기다렸어, 프티. 아니.. 나의 여왕, 프리티마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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