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120. 서쪽의 빛
* * *
[ 120. 서쪽의 빛 ]
툭.
‘..!’
자신도 모르게 볼 아래로 떨어지는 눈물에 페르티안이 당황해하며 바라보자, 샤벨리아와 똑 닮은 그녀가 다정한 미소와 함께 그의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여전히 눈물이 많구나.”
"내가 왜.."
어떠한 마법도 현혹도 없는 그저 평범한 말 한마디이건만 가슴을 아리게 파고드는 그녀의 목소리에 페르티안의 눈동자는 혼란스러움으로 가득 찼다.
“여길 찾아와서 기억이 돌아온 줄 알았는데, 이거.. 생각보다 서운하네.”
쓸쓸한 표정으로 자신을 아련히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가슴 한쪽이 아려지는 것을 느끼며 페르티안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던 그때였다.
“누구.. 대체 당신은 누구..”
타악.
“뒤로 물러서십시오, 페르티안님.”
“프레데리카..?”
“...”
순간 자기 옆으로 나타난 프레데리카가 그녀를 경계하며 그의 팔을 잡아 뒤로 빼던 순간, 어디서 나탔는지 모를 검 두 개 정확히 프레데리카를 노리며 떨어졌다.
채쟁 !!
‘..!’
올 라운드를 상징하는 검은색 외투와 함께 화려한 흰색 제복을 입은 회색 머리칼의 미소년 하나와 푸른 머리칼에 붉은 눈이 인상적인 미소녀 하나가 샤벨리아를 닮은 여자를 보호하며 프레데리카를 노려보았다.
“그녀가 어떻게 이곳에 왔나 했더니, 데브.. 네 덕분이었구나.”
“...”
여자의 말에 언제 왔는지 데브가 겁먹은 표정으로 페르티안의 바지춤을 잡으며 빛나는 자기 왼쪽 연두색 눈동자를 숨겼다.
“데브를 알다니.. 당신 정체가 뭐죠?”
"나..?"
페르티안의 물음에 화사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는 자신을 보호하며 선 두 올 라운드의 검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클로비스 폰 발부르가 프리티마셰 페르로뷔나.”
‘!!’
"하켄 제국의 황제지."
놀라 커지는 페르티안과 달리 클로비스가 가까이 올 수록 프레데리카는 굳은 표정으로 자기 샤벨을 올리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이름은 그저 껍데기일뿐, 나는 세르..”
“그 입, 다무세요 알레나. 당신은 그 분이 아닙니다.”
“...”
주위를 모두 얼릴 듯한 엄청난 한기와 함께 프레데리카가 클로비스의 말을 자르자, 그녀는 페르티안을 바라보던 따스했던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살이 떨릴 정도로 무섭고 싸늘한 기운을 발산하며 프레데리카를 노려보았고, 심상치 않게 떨리는 공기에 잠시 마른 침을 삼킨 프레데리카는 마음을 정했단 듯 샤벨위로 차가운 냉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성좌의 의무를 무시하고 균형의 성좌를 죽인 당신에게 어울리는 건.. 오직 죽음 뿐입니다! 각오하십시오!!”
타앗.
‘..!’
살기 가득한 얼음결정과 함께 순식간에 주위를 얼려 버린 프레데리카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클로비스에게 달려들자, 번쩍이는 붉은 눈빛과 함께 푸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나타난 라스알게티가 프데레리카를 막아서며 말했다.
채애앵 !!
“폐하께 다가설 수 없습니다, 레벨리스.. 프레데리카.”
“라스알게티..”
피슛
“큭..”
막아선 라스알게티의 검이 마치 프레데리카의 샤벨을 통과해 지나간 듯 어깨에 예리한 생채기하나가 그어지며 그녀의 어깨가 이내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타닷
‘..!’
그러던 그때, 대치하고 있던 둘의 옆을 지나친 베텔게우스가 놀라 쳐다보는 페르티안의 뒷목을 노리며 정중한 어조로 속삭였다.
“옥체에 손대는 걸 용서해주십시오.”
“네..?”
휘익
부우웅 !
‘..!’
그렇게 베텔게우스의 손이 페르티안의 뒷목을 강타하려던 그 순간, 일렁이는 잔상과 함께 베텔게우스의 팔이 허공을 가로지으며 떨어졌다.
“데브..”
“도.. 도망쳐야 돼, 페티.”
“뭐..?”
빛나는 오른쪽 푸른 눈을 깜박인 데브는 급하단 듯 그의 바지춤을 당기며 계단아래로 이끌기 시작했다.
“놓치지 않는다.”
타앗.
휘익
“이 자식, 데브..”
하지만 이번에도 무슨 일인지 페르티안의 잔상만을 휘저은 베텔게우스가 짜증이 난단 듯 으르렁거리며 돌아보자 어느새 데브의 손에 이끌린 페르티안은 계단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 망할 눈동자. 모두 뽑아주겠어!”
콰앙 !
“으아아.. 빠.. 빨리 도망쳐야 돼.”
“데.. 데브..?”
당황해 빠르게 깜박이는 데브의 눈동자에 맞춰, 순간 느려지는 베텔게우스와 함께 자신과 데브의 잔상은 그와 달리 마치 환상처럼 빠르게 생겨나며 어느새 시장까지 도착해 있었다. 아마도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조작하는 것이 그녀의 권능인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베텔게우스라 할지라도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어.. 어떻게..”
“데네브카이토스!!!”
“쫓아오지 마!!”
피잉
마치 뱀처럼 사람 틈을 유연하게 지나쳐 달려오는 베텔게우스의 모습에 놀란 데브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치자 일순 발산된 연녹색 빛과 함께 그가 사라졌다.
‘..!’
“어디로 갔..”
“빨리 와! 빨리!!”
콰아아앙!!
믿기지 않는 현실에 페르티안이 눈을 깜박이자 데브는 발을 동동 구르며 그를 잡아끌었고, 그와 함께 아까 있던 언덕 위에서 엄청난 흙먼지와 함께 베텔게우스가 땅과 충돌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후두둑
“큭.. 이 자식..”
스윽.
분노에 찬 베텔게우스가 샤벨을 잡으며 일어서자, 클로비스는 손을 들어 그를 막고는 말했다.
“베텔, 라스알게티를 도와라. 데브는 내가 맡지.”
“아.. 알겠습니다.”
클로비스의 말에 베텔게우스는 송구스럽단 듯 고개를 숙이고는 프레데리카와 대치하는 라스알게티를 향해 달려갔고, 클로비스는 저 멀리 데브의 손을 잡고 도망치는 페르티안을 쫓으며 작게 속삭였다.
“널 다시는 놓치지 않을 거야, 프티. 다시는 말이지..”
***
“하아.. 하아..”
“빨리, 페티.”
“으.. 응.”
조그마한 데브를 따라 골목 이곳저곳을 뛰어가는 페르티안의 숨은 목까지 차올라 있었다. 하지만 데브는 예쁘게 땋은 주홍빛 머리카락을 귀엽게 휘날리며 그의 손을 더욱 꼬옥 쥐어서는 재촉했다.
휘익.
‘..!’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소용없던 것일까, 그들의 앞에 나타난 클로비스가 귀품있는 모습과 함께 위에서 착지해서는 앞을 가로막았다.
“프리티마셰를 내놔라, 데브.”
“시.. 싫어..”
“데브..?”
다가오는 클로비스를 겁먹은 표정으로 바라보는데브였지만, 그 작은 몸으로 페르티안을 지키겠단 듯 그녀는 자기 오른쪽 파란 눈동자를 빛내며 그의 손을 잡아당겼다.
“페티는.. 페티는 프.. 플룩스 꺼야!”
피잉
“소용없다.”
순간적으로 빨라지는 데브의 움직임을 알고 있단 듯 클로비스는 차분한 표정으로 푸른 두 눈동자를 빛내더니 데브의 권능을 비웃기라고 하듯 속도를 맞추어 따라오기 시작했다.
시잉
‘..!’
“위험해!”
채앵
파직
찔러 들어오는 클로비스의 샤벨에 놀란 페르티안이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아 데브를 보호하려 했지만, 클로비스는 오히려 자기 기운에 맞닿아 부서져 날아가는 페르티안의 샤벨 파편에 놀란 듯 순간적으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퍼벅
“으윽..”
‘!!’
그의 심장으로 날아가던 파편들은 대신 그를 감싸 안은 클로비스의 등에 박혔고, 생각치 못한 그녀의 행동에 페르티안은 놀란 눈동자와 함께 자신의 품에서 괴로워하는 클로비스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왜..?”
“괜찮아? 어디 다친 데 없어?”
고통도 잠시 클로비스는 마치 넘어진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엄마마냥 피가 흐르는 자기 몸 따윈 상관없단 듯 멍하니 내려다보는 페르티안의 몸 이곳저곳을 황망히 살피며 행여 생채기라도 생겼을까 오직 그의 안위만을 살필 뿐이었다.
“하아..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
툭.
'..!'
"미안.. 정말 미안해.."
멀쩡한 그의 모습에 안도의 미소를 지은 그녀는 조용히 페르티안의 가슴팍에 머리를 기대며 모든게 자신의 탓이란 듯 중얼거렸고, 한편 페르티안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혼란스러운 듯 눈동자가 흔들리며 품에 안긴 클로비스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페르티안의 품에 안겨 있던 그때, 한 줄기의 황금빛 섬광이 하늘에서 떨어지는가 싶더니 엄청난 살기를 두른 익숙한 인영하나가 걸어 나왔다.
“페르티안에게서 떨어져.”
“...”
마치 쌍둥이 자매인 듯 똑 닮은 그녀들이었지만, 서로에게 내뿜는 살기는 어떠한 원수보다 강렬했다.
“샤벨.. 리아?”
“페르티안, 어서 내 쪽으로 와.”
“...”
혼란스러운 듯 그런 둘을 바라보던 그때, 먼저 몸을 움직인 것은 샤벨리아 쪽이었다.
번쩍
‘..!’
카아앙 !!!
엄청난 울림과 함께 샤벨리아의 손에서 빛나오르는 순백의 샤벨이 클로비스의 앞에서 멈춰 흔들렸고, 그런 그녀의 검을 막은 클로비스의 손에는 칠흑보다 어두운 검은색 샤벨이 들려져 있었다.
“결국 손에 넣었구나, 플룩스.”
“닥쳐, 알레나. 형제를 죽인 죄를 물어 너를.. 삼성좌 자리에서 폐위하겠어.”
샤벨리아의 경고에 클로비스는 인간의 것이라 믿기지 못할 아찔하고도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아까와 다른 강대한 힘을 개방하며 말했다.
“귀엽구나, 플룩스. 하지만.. 반쪽짜리인 네가 과연 나를 이길 수 있을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