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섬광의 주인 _ 뇌전(雷電)의 샤벨리아-121화 (121/135)

〈 121화 〉 121. 서쪽의 빛

* * *

[ 121. 서쪽의 빛 ]

‘조금만 더..!’

만개한 붉은 마력 속에서 몸을 날린 난 느려지는 슈트렐리츠 샤벨과 비교해 몸이 빨라지며 어느새 낭패섞인 표정으로 날아오는 샤벨을 바라보는 마벨의 곁에 다가갈 수 있었다.

파직 ­

“큭..!”

하지만 강력한 마력 방출에 비해 과부하가 걸린 이 육체의 마나 하트는 불안한 마나균열을 일으키며 고통을 가하기 시작했고, 이에 버틸 수 없었던 나는 그대로 마벨에게 몸을 날리며 날아오는 슈트렐리츠의 샤벨에 박히며 몸을 굴렀다.

서걱 ­

‘..!’

쿠다탕!!

“카트리나!!”

샤벨에 박혀 날아가 구르는 날 본 마벨은 경악하는 표정과 함께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고, 마벨의 안전을 확인한 아큐벤스는 그 대신 칼을 맞은 내 모습에 놀라 잠시 흐트러진 슈트렐리츠를 파고들며 맹렬히 공격을 퍼부었다.

주륵 ­

“으윽..”

마나 하트를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간 슈트렐리츠의 샤벨이었지만, 녀석의 신기답게 상처 부위를 중심으로 빠르게 독이 퍼져가며 지혈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카트리나!!”

“윽.. 흐.. 흔들지 마..”

“페안(Pæan)! 페안!!!”

피잉 – 피이잉 ­

마벨은 피가 멈추지 않고 흐르는 내 상처를 쥐어 누르며 힐을 영창해 보지만, 슈트렐리츠의 독은 일반적인 치유 마법에 듣지 않는지 아물어지던 상처는 다시금 터치며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채재쟁 ­

“슈트렐리츠! 지금 딴 데 정신 팔 여유가 없을 텐데?!!”

서걱 ­

“큭..!”

한편, 자기 검에 다친 카트리나에 정신이 뺏겼던 걸까, 슈트렐리츠는 날카롭게 날아오는 아큐벤스의 회심의 일격을 피하지 못한 그는 어깨를 관통당하며 뒤로 밀려났고, 박힌 샤벨검신을 잡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대체 왜..”

이해할 수 없단 듯 카트리나를 바라보던 그는 점점 몰려드는 적의 엘리트 씰에 인상을 찡그리더니 부상을 입어 서로를 부축해 서 있던 비토리아와 마르티나를 돌아보며 명령을 내렸다.

“후퇴다! 목숨을 최우선으로 후퇴해라!!”

그의 명령에 두 자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망설임 없이 마벨의 진지를 벗어났고, 슈트렐리츠 또한 분하단 표정으로 아큐벤스를 노려보며 작게 으르렁 거렸다.

“이게 끝이라 생각하지 마라.”

쨍강 ­

‘..!’

아큐벤스의 샤벨을 그대로 손으로 부신 슈트렐리츠는 어깨에 샤벨이 박힌 그대로 몸을 돌려 모습을 감췄다.

“각하!!”

“각하! 괜찮으십니까?!!”

적의 포격에 잠시 물러섰던 카트브라 남작을 시작으로 근처에서 포병대를 지휘하던 슈트라우스 남작이 병사들을 이끌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마벨과 내 주위로 다가왔다. 하지만 마벨은 내가 흘린 피에 엉망이 된 모습으로 절망에 가까운 표정으로 절규하듯 자기 마력을 퍼부으며 날 살리려 했다.

“젠장! 젠장!!! 왜 안 듣는단 말이냐?!!”

“각하! 이성을 되찾으십시오!!”

“무슨 이성을 되찾으란 말이냐?! 방해가 되니 비켜라!!”

“쿨럭..”

머리가 멍하고 어지럽다. 인간보다 생명력이 강한 씰이기에 이 정도였지 보통의 사람이었으면 이 정도 출혈이면 벌써 죽고도 남을 치명상이었다. 게다가 마벨을 확실히 죽이려고 특별한 독을 준비한 것인지 아무리 대륙 최고의 마도사인 마벨이라 할지라도 이 정체불명의 독을 해독하진 못했다.

“안 돼! 어떻게 널 되찾았는데!! 이렇게.. 이렇게 허망하게 보낼 순 없어!!”

침착하고 언제나 시크했던 녀석이 이런 표정을 지을 줄 알았다면 좀 더 재밌었을 텐데, 나는 옅은 미소와 함께 피 칠갑이 된 손을 들어 녀석의 볼을 만지며 떨리는 입술을 들썩였다.

스윽 ­

“괘.. 괜찮아..”

내가 놓고 왔던 것, 그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이해된다. 절망 어린 녀석의 눈동자를 보니 더욱 그것이 확연해지고 뚜렷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미련 ]

그래, 녀석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던 것이었다. 서투르고 이런 감정들에 어수룩한 나지만, 나도 모르게 다시금 녀석을 만나고 싶단 마음이 내 안 어딘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꿈꿨던 것은 아니지만 녀석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단 사실이 기쁘다.

“이러기 위해 있었.. 던.. 거야..”

꽈악.

볼을 쓰다듬는 내 손을 강하게 쥐는 녀석의 온기가 느껴져 왔다. 하지만 내 육체는 녀석의 따뜻한 온기와 반대로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우.. 울지마, 대륙 최고의 마.. 마도사의 가오가 있지..”

“크으윽..”

고개 숙인 녀석의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그를 위로해 줄 시간이 내겐 별로 없었다. 허리 아래서부터 느껴지지 않는 감각은 빠르게 상체를 타고 올라왔고, 난 곧 이 시간이 끝남을 직감하고 있었다.

“사.. 살아야 해, 꼭.. 살아.. 알았지?”

끄덕.

피식.

내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 녀석의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아 나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올랐고, 난 마나 하트 속 녀석과 맺었던 계약이 균열이 일어 무너짐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욱.. 쿨럭..!”

“카트리나!!”

정말 끝인가? 이런 감각 느끼고 싶지 않았는데, 더구다나 신경 쓰는 남자에게 이런 흉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경련하는 몸과 함께 역류하는 피를 한움큼 대지에 토해낸 난 창백해진 표정으로 녀석을 응시하며 최대한 괜찮단 듯 미소를 지어 올리기 시작했다. 난 행복하다고, 그리고 너 대신 내가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이란 듯 녀석을 따스하게 쳐다보며 말이었다.

“또.. 만나자..”

퍼억 ­!!!

“카트리나!!!”

붕괴된 계약과 함께 균열이 심하게 간 마나 하트 속에서 마벨의 피가 터지며 카트리나의 동공이 넓어졌고, 마벨의 손에 쥐어진 그녀의 팔이 힘없이 추욱 늘어졌다.

스스스 ­

그와 함께 산화되어 가듯 그녀의 육체가 검은재가 되어 천천히 부서져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벨은 아직 붕괴되지 않은 그녀의 육체를 붙들며 토해내지 못할 울음을 흘리며 슬픔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파바방 ­

“가.. 각하!!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

방어선을 뚫은 라인슈볼츠의 군대 일부가 마벨의 진지 근처까지 접근하며 총탄을 퍼부었고, 가르디오르의 자비 없는 포격 또한 계속해 대지에 떨어지며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스윽.

“후퇴한다.”

“예..?”

한 줌의 재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진 카트리나의 부서진 마나 하트를 손에 쥔 마벨은 굳은 표정으로 일어서며 그렇게 말했고, 카트브라 남작은 어딘가 분위기가 바뀐 그에 놀라며 다시금 되물었다.

“18연대가 후위를 맡는다, 근위대가 추격대를 막는 동안 모든 군은 질서정연하게 세베랑스 몽틸리앙까지 후퇴한다.”

“아.. 알겠습니다.”

마벨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인 카트브라 남작은 그의 후퇴명령을 전하기 시작했고, 초원에서 에스티올 베르니아 연합군과 혈전을 벌이던 마벨의 제국군은 후퇴나팔에 11기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전투에서 빠르게 발을 빼며 후퇴하기 시작했다.

스윽.

“...”

그렇게 후퇴하는 자기 군대를 조용히 내려다보던 마벨은 자기 백마에 올라타선 하늘을 올려다보며 원망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정녕 이게 당신이 원하는 겁니까?! 꼭 이러셔야 했냐 말입니다!!"

하지만 청명한 하늘은 그의 원망에도 그저 맑을 뿐 아무런 변화도 없었고, 그런 무관심한 신에 화가 난 듯 마벨은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며 피끓는 절규를 퍼부었다.

"좋습니다, 당신은 끝까지 지켜보십시오. 내가 무엇을 하고 또한 무엇이 가능한지를!!"

그리곤 고개를 돌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강렬한 증오심이 가득한 눈동자로 록티아 산맥을 노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빛을 잃은 부서진 마나 하트에 맹세하듯 울분이 섞인 격정적인 목소리를 애써 누르며 말이다.

“내 이름을 걸고 맹세컨데, 저 산맥너머의 모든것을 불태우리라. 이 에우로페 대륙에서 너희들의 작은 흔적까지 철저히 파괴해 내 분노를 온 대륙에 각인 시킬 것이다. 반드시.. 반드시 말이다.”

***

피잉 ­

슈우우웅 ­

“응..?”

블루아 루즈 외곽, 마차 아래에서 모닥불을 쬐던 키탈파는 심상치 않은 마나의 파동을 느끼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늘을 올려다보자,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는 하얀 신성하나가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플룩스..?”

“키탈파!”

킨라라 또한 그 파동을 느꼈는지 그녀에게 다가왔고, 키탈파는 긴장 어린 표정으로 저 멀리 보이는 블루아루즈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킨라라, 포탈.”

“포탈..?”

“시간 없어, 빨리!”

“으.. 응.”

키탈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킨라라가 마력을 발하며 포탈을 열었고, 치마를 걷어 짧게 고정시킨 키탈파가 자기 은청색 머리카락을 들어 묶어 고정하고는 상자에 숨겨두었던 은색 창을 잡아 쥐며 식은땀과 함께 작게 중얼거렸다.

“떠났던 빛의 성좌가 돌아온다는 건.. 역시 그녀를 만났단 얘기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키탈파는 긴장 어린 표정과 함께 킨라라와 함께 포탈에 뛰어들었고, 잠시 후 초원은 아무 일도 없었단 듯 고요한 바람만 불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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