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122. 어둠의 성좌
* * *
[ 122. 어둠의 성좌 ]
채앵 – 챙 채애애앵!!
콰과과과 !!!
“꺄아악!!”
아름다운 두 미소녀의 모습과 달리 그녀들이 내뿜는 기운은 쉽게 넘길 것이 아니었다. 한 번의 칼부림에도 주변의 건물들과 창문들이 흔들렸고, 예기치 않게 빗겨난 검기들은 주변을 파괴하며 엄청난 광풍을 일으켰다.
철컥
“내게 도전하다니, 실망이구나 플룩스.”
샤벨을 검집에 넣은 클로비스는 자세를 잡으며 심기가 불편한 듯 인상을 찡그렸고, 샤벨리아는 불쾌하단 표정으로 그런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감히 아버지인척 흉내 낼 생각 마 알레나. 넌 그 분이 아니야.”
“흉내라.. 시간이 흘렀다 해도, 부모를 못 알아보는 딸이라니.. 안타깝구나!”
파밧
‘..!’
일순 모습이 사라진 클로비스는 엄청난 살기와 함께 샤벨리아 앞에 나타나서는 예리하고도 빠른 검격을 날렸다.
카아앙 !!
“카스토르의 인형 안에서 그대로 죽어라, 플룩스!!”
“큭..!”
키이이이잉 !!
이슈발랑퀘를 돌려 클로비스의 검을 막은 샤벨리아는 이윽고 목 근처로 파고드는 그녀의 강대한 힘에 조금씩 밀려났고, 두 신기의 마찰로 인해 검과 검 사이는 엄청난 주홍빛 마찰빛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알레나의 힘이란 말인가..?’
세 성좌의 힘은 서로가 더하지도 그에 못 하지도 않게 균형있게 그 힘을 나누어 받았다. 과거를 수호하는 어둠의 성좌인 알레나, 미래를 비추는 빛의 성좌 플룩스, 그리고 과거와 미래를 이어 주는 균형의 성좌 카스토르. 하지만 아무리 반쪽인 자신이라 해도 알레나가 이 정도로 자신을 몰아붙일 순 없는 것이었다.
“나와 같은 모습, 나와 같은 목소리. 카스토르 녀석.. 꽤 심히 불쾌한 인형을 준비해 놓았구나.”
키기기긱
심기 불편한 클로비스의 표정과 함께 그녀의 신기 후나후프는 강렬하고 스산한 어둠의 기운을 증폭하기 시작했고, 그에 비례해 그녀의 검을 막고 있던 샤벨리아의 이슈발랑퀘는 빛을 잃으며 거대한 어둠에 점점 먹혀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단.. 정말로 끝나겠어..’
상상 이상의 힘, 그렇게 클로비스의 어둠에 잠식되어 가던 그때였다.
콰직
‘..!’
우연인 걸까, 거짓말처럼 클로비스가 딛고 있던 발아래 돌포장 하나가 마치 그녀의 힘에 못이기듯 쪼개지며 그녀를 흔들었고, 일순의 찰나였지만 클로비스의 균형이 흐트러지며 그 위력이 약해졌다.
채앵 !
“아뿔싸..”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클로비스를 떨치고 뒤로 빠진 샤벨리아의 옆으로 작은 체구의 키탈파가 은청색 빛과 함께 예리하고도 아름다운 창을 내지르며 달려갔고, 곧이어 마력영창이 들려왔다.
“Explósĭo(엑스플로시오)!”
피이잉
콰아아앙 !!
엄청난 불기둥과 강렬한 폭발이 클로비스 중심으로 일어났고, 그 뜨겁고 강렬한 화염이 자자들기도 전에 키탈파의 날카롭고 정확한 은빛 창이 쾌속으로 찔러 들어갔다.
카아앙 !!!
‘..!’
“키탈파..”
걷혀지는 화염 속에서 멀쩡한 모습을 한 클로비스가 매우 화가 난 표정으로 창을 잡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키.. 키탈파! Cĕlérĭtas(켈레리타스)!”
피이잉
다급한 킨라라의 외침과 함께 키탈파의 몸이 하늘색 마력으로 감싸졌고, 이윽고 그녀를 향해 흉흉한 기운이 담긴 클로비스의 샤벨이 날아들어왔다.
콰아앙 !!
타악
“괜찮아?”
“응..”
자기 창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선 키탈파의 움직임은 킨라라의 마법 덕분인지 이전보다 민첩했지만 클로비스를 바라보는 그녀의 안색은 한층 어두워져 있었다.
챙그랑
“감히 내게 도전을 하다니.. 모두 죽여주마.”
아까와 다른 강렬한 마나폭풍과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저릿거리는 클로비스의 기운이 주위에 몰아치기 시작했다.
피이잉
“네 뜻대로 되진 않을 거야!”
그 모습에 은청빛 눈동자를 빛내며 키탈파가 몸을 날리자 클로비스는 묘한 미소와 함께 그녀를 쫓듯 모습을 감추었다. 그렇게 일반 사람의 눈을 쫓을 수 없는 두 인영의 잔상이 맞붙던 그때, 여린 키탈파의 목을 움켜쥔 클로비스가 공중에서 나타나며 그대로 도로에 그녀를 떨어트렸다.
콰아앙!!
“꺄아악!!”
만신창이가 된 키탈파를 짓누르며 미소를 짓고 있는 클로비스의 눈동자는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디스펠..”
“디스펠..?”
무슨 말이냔 듯 페르티안이 묻자, 킨라라는 두려움에 가득한목소리로 말했다.
“알레나의 궈.. 권능이예요, 말 그대로 모든 능력을 지우죠.”
‘..!’
마치 덫에 걸려 몸부림치는 사냥감을 물어뜯듯 은청빛 마력을 발산하며 저항하는 키탈파를 푸른빛 안광을 빛내며 우악스럽게 움켜잡아 제압한 그녀는 틈을 주지 않고 자기 후나흐프를 들어 키탈파를 찌르려 했다.
“멈춰!!”
그러던 그때, 쾌속의 섬광과 함께 샤벨리아의 순백의 검기가 클로비스를 파고들었다.
카아앙 !!
“당장 키탈파한테서 떨어져!!”
“플룩스..”
이슈발랑퀘를 빛내며 자신을 밀어붙이는 샤벨리아를 여유 있게 바라보던 클로비스는 아까보다 빠른 검격을 선보이며 그녀의 몸 이곳저곳에 생채기를 내기 시작했다.
피슉 !
“큭..!”
샤벨리아의 검도 느린 것은 아니었지만, 클로비스의 수준이 그녀를 웃돌고 있었다.
“포기해, 넌 내 상대가 될 수 없어.”
클로비스의 경고에 샤벨리아는 피가 흐르는 자기 몸을 움켜쥐고는 미소를 짓는가 싶더니, 이걸로 됐단 표정과 함께 고개를 들며 말했다.
“괜찮아, 필요한 건 얻었으니까.”
“뭐..?”
피이이잉
“큭.. 뭐.. 뭐냐?!”
어디서 날아온 걸까, 일순 새하얀 신성하나가 푸른 하늘 위에서 떨어지는가 싶더니 샤벨리아를 감쌌고, 그와 함께 새하얀빛줄기와 함께 강렬하고도 위협적인 황금빛 줄기가 터져 올랐다. 마치 원래 하나였을 두 기운이 합쳐지듯 주변을 감쌌던 클로비스의 어둠을 밀어내며 말이었다.
***
[ 응..? ]
[ 정신을 차렸구나? ]
새하얀 주변 위로 이전 서지웅의 모습을 한 인영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누.. 누구야?! ]
[ 뭐야, 나를 못 알아본다고? ]
[ 설마.. 내 반쪽? ]
씨익.
그러자 불투명했던 내 모습도 녀석과 같이 들어나며 우린 마주 보고 있었다.
[ 여긴.. 대체 어디야? ]
[ 두고 온 것을 찾아온 모양이구나. ]
녀석의 말에 난 주먹을 조용히 말아쥐고는 말하지 못했다.
[ 슬퍼하지 마, 모든 것은 순리대로 돌아가야 되고 넌 그것을 다시금 흐르게 만든 것이니까. ]
[ 왜지..? ]
[ 뭐가 말이야? ]
[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건데? 말해 봐!! 대체 난 뭐지?! ]
궁금했다. 그리고 항상 머리에 맴돌았다. 내가 내가 아닌 가짜란 사실도, 불완전하단 이유로 폐기되었던 또 다른 나 들과의 만남도, 무엇 하나 확실히 내게 설명해 주고 있지 않았다. 녀석도 내 마음을 느꼈는지 미안하단 표정과 함께 손을 잡으며 말했다.
[ 너무 날 미워하지 마, 너가 그녀를 만나야 했듯 나 또한 남아서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것뿐이니까. ]
[ 남아서 해야 할 일..? ]
[ 응.. 따라와 모든 걸 설명해 줄 테니까. ]
내 손을 쥔 녀석은 옅은 미소와 함께 나를 당기고는 빛이 나는 어느 문을 열어 나를 데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참을성이 없던 난 그사이를 참지 못하고 녀석에게 물었다.
[ 말해 봐, 나를 왜 거기로 보낸 거야? ]
내 물음 묵묵히 문으로 걸어가던 녀석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 우리가 가져서는 안 될 감정이니까. ]
[ 뭐..? ]
눈동자가 흔들리는 나를 응시하는 녀석의 표정은 차분했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다.
[ 미련은 집착이 되고, 집착은 미래를 붙잡지. 그리고 그 사라진 미래는 고여 썩어가는 물처럼 자신의 늪에 잠식 되어 방향타를 잃게 될 거야. ]
[ 방향타..? ]
[ 그래, 우리는 그 방향타가 잃지 않게 불을 밝히는 등불. 위대한 현자(?者) 세르지윈의 사상과 비전을 후대에 전해야 할 빛의 성좌니까. ]
‘..!’
철컥
그렇게 말한 녀석은 문손잡이를 잡아 돌렸고, 이윽고 강렬한 빛이 나를 덮쳐왔다.
“윽..!”
잠시 후, 눈이 부시던 빛이 사라지고, 어느 황궁보다 화려하고 정갈하게 정리된 드넓은 방이 내 시야 앞으로 펼쳐졌다.
[ 여긴..? ]
‘..!’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것도 잠시, 나는 방 중앙에 거대한 관 하나가 유려한 조각품들 사이에 놓여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시.. 시체?! ]
보존마법에 걸린 듯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은 노인은 고풍스러운 복장과 함께 손을 모은 모습으로 잠이 든 듯 고요해 보였다. 하지만 죽은 이를 본 내가 당황한 표정으로 녀석을 돌아보자 녀석은 슬픈표정과 함께 나를 응시하며 물었다.
[ 모르겠어? ]
[ 뭐.. 뭐를? 설마.. ]
지그시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에 순간 누군가를 떠올린 난, 다시금 관에 누워 있는 그를 돌아보았고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일순 고요한 호수면을 강타하듯 강한 파문이 일며 내 마음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 세르지윈 폰 발부르가 프리티마셰 페르토뷔나. 하켄제국의 역제(??) 프리티마셰의 하나밖에 없는 부군.. ]
흔들리는 눈동자로 관 너머에 평화롭게 잠든 그를 바라보던 그때 녀석의 목소리가 파고든다. 마치 지금의 현실을 다시금 부정하고 또 부정하고 싶었던 내가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려는 듯 그 잔인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말이었다.
[ 우리들의 오리지널이자 이 세상 씰들의 아버지.. 서지웅이야.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