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126. 어둠의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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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6. 어둠의 성좌 ]
“끄아악!!”
“참으십시오, 폐하! 어서 폐하의 팔을!!”
세련된 세베랑스의 샹마르큐 궁전 가득 소녀의 비명이 가득 차 올랐고, 화려한 침상 주위엔 고위 귀족들과 대신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치료받고 있는 클로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깊은 검상에 상처가 심각한지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신관들과 의사들에 둘러싸여 치료받고 있었는데, 출혈이 심해 의사의 수발을 드는 시녀들이 끊임없이 방을 들락거리며 피를 가지고와 그녀의 팔뚝에 놓으며 살리려 필사적이었다.
“모두 나가시죠, 폐하의 옷을 벗겨야겠습니다.”
의사의 말에 침상주위를 호위하던 올 라운드들은 귀족들과 대신들을 방 밖으로 안내하기 시작했고, 강제로 복도로 쫓겨난 귀족들은 황제의 친위대에게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웅성거렸다.
“아직 제대로 전쟁을 시작도 안 했는데 여기서 폐하를 잃었다간 큰일입니다.”
“그러게 말이오, 직계후손도 없는 이 마당에 황계가 끊기면..”
유일한 황족인 클로비스만이 잔혹했던 피의 숙청 끝에 남겨진 단 하나의 황계였다. 아직 전쟁초기인 지금 제국의 구심점이 황제가 승하라도 했다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의 이해득실이 얽힌 이번 대륙전쟁은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해외 식민지들이 개척되고 있는 상황에 연합왕국에 비해 해군력이 약했던 하켄처지에선 불안한 해상무역로 보단 올만 성국으로 이어지는 안전한 대륙 무역로를 개척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에우로페 대륙과 중앙해를 두고 마주 보듯해안선이 이어진 나르메르 대륙 북쪽 해안선을 점령한 올만과의 접촉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어느 지역보다 중앙해가 협소한 바스티오 반도의 점령이 중요했고, 그 결과 에스티올 성국을 침공하는 결과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다음 목표로는 프러셀을 관통해 중앙해 동쪽 끝에 있는 올만의 최대 무역도시인 ‘테르키다노플’에 도달하는 것이었는데, 어느 쪽도 연합의 저항이 강해 쉽사리 이길 전쟁이 아니었다.
“자폐아라 소문났던 그녀가 갑자기 황제가 될 때도 놀랐건만, 이번엔..”
“쉿! 귀가 많소, 그 말은 금어이지 않소.”
클로비스의 과거에 대해서 많은 것이 비밀로 되어 있었고, 알고 있다 해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불경죄였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치열한 황위경쟁에서 가장 먼저 희생될거로 생각했던 그녀가 중립을 지키고 있던 올 라운드들의 충성 서약을 받아 단숨에 형제자매들을 숙청할 것이라곤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왈가왈부할 거 없소, 그저 우리가 할 일은 폐하가 어서 몸을 회복하기만을 기다릴 일 뿐이오.”
“확실히 그렇군요..”
그렇게 귀족들은 불안과 걱정스러운 얼굴로 클로비스가 치료받고 있는 방을 바라볼 뿐이었다.
***
같은 시각, 샤벨리아 일행은 클로비스의 위독으로 한층 경계가 강화된 블루아 루즈 상황에 곤란해하고 있었다. 게다가 세베랑스 왕세자가 갇혀 있는 발루아가 요새는 말할 것도 없이 경비 인원이 늘어났는지 이전보다 철통 같은 경계를 선보이며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블루아 루즈로 가는게 아니었어., 미안..”
페르티안은 모닥불에 모여 앉은 모두에게 자신 때문이란 듯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자 키탈파는 화들짝 놀라며 아니란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예요, 제가 시장으로 가자고 해서 그런 걸요.”
“아니야, 내가 그때 딴 곳으로 새지만 않았어도..”
점점 딥하게 자책하며 아래로 빠져드는 침울한 페르티안의 모습에 보다 못한 샤벨리아가 그의 목을 팔로 둘러 조이며 소리쳤다.
“너 자꾸 궁상떨래?!!”
“아악!! 샤.. 샤벨리아!!”
“아니래잖아! 아니라는데 뭘 구시렁 구시렁 거리고 있어!!”
탁 탁.
“기브! 기브!! 샤벨리아!!!”
“너 정신 차릴래? 아님 계속 조여 줄까?”
“그.. 그게 뭐.. 뭔소리야?!! 아악!!!”
사랑이 담긴 내 헤드락 덕분일까, 내게서 풀려진 녀석은 아까의 침울함 대신 죽다 살았단 듯 괴물보듯 날 째려보았다. 뭐 그 눈빛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기운차린 상으로 이번 한번은 용서해주기로 했다.
“뿌듯해 하고 있죠?”
“그러게, 뭘 뿌듯해하는거지?”
빠직.
‘이것들이..’
칭찬해 줘란 표정으로 내가 팔짱을 끼며 콧바람을 뿡뿡 내자, 맞은편에 있던 사달수드와 몰트겐이 다 들릴 정도로 속닥거리며 내 심기를 건드렸다. 이에 내가 울컥하며 녀석들에게 달려들려던 그때였다.
“저어..”
모닥불에 모여 앉아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던 미에가 보라색 눈동자를 깜박이며 조심히 목소리를 냈다.
“응..? 뭔데 미에야.”
사달수드의 볼을 잡아당기며 내가 미소를 짓자 미에는 자신에게 모여진 시선에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제가 길 하나를 알아요.”
“뭐?!”
그 말에 모두가 놀라며 다가오자, 그는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고 나는 사달수드를 뒤로 던지고는 미에에게 다가가 물었다.
“뭔데 뭔데?”
“그게.. 요새 아래로 가는 수.. 수로 하나가 있어요.”
“수로?!”
“맞아! 거기 작은 수로 하나 있어!”
“샤.. 샤를.”
미에의 말에 샤를이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 대단하지’하며 미에를 끌어안으며 씨익 미소를 지었고, 난 피식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들..’
페르티안이 수도를 갔을 때, 페히메를 포함한 세 명이 우리 몰래 발루아가 요새 근처까지 간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이었던 탓에 경비병들은 특별히 의심하지 않았고, 대담하게도 노는 척 경비병들의 눈을 피해 요새로 들어가는 작은 수로길을 발견한 듯싶었다.
“근데, 수로길이 좀 작아요.”
“작다고?”
내 말에 페히메가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길을 그렸는데, 아무래도 어른은 들어가기 힘든 크기인 것 같았다.
“확실히.. 높이가 작네.”
“괜찮아, 누나. 우리가 들어가서 열어 줄게.”
이 사고뭉치는 뭐가 자랑스러운지 허리에 손을 짚고는 ‘에헴’하며 맡겨달란 듯 가슴을 탕탕쳤고, 그 모습에 혈관이 솟은 난 녀석의 귀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뭐가 괜찮아야?! 너 누굴 닮아서 이래?!”
“아야!! 아파 누나!! 나 귀.. 귀 떨어져!!”
“넌 아파도 돼!!”
“으아악!!”
그렇게 샤를잡아 혼내던 그때, 또다시 사달수드와 몰트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닮았네요.”
“그러게, 닮았네. 하는 짓이 똑같애.”
‘저것들이 진짜..’
쌍심지를 켜고 샤를과 더불어 두 녀석을 잡으려던 그때, 페르티안이 단호한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 허락할 수 없어.”
“페르티안..”
생각지도 못한 그의 반대에 모두가 쳐다보자 녀석은 혼을 내듯 샤를과 미에, 그리고 페히메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전쟁이야, 어른으로써 너희를 위험한 곳으로 보낼 수 없어.”
“형!”
“하지만..”
페르티안의 반대에 세 명은 울상을 지으며 반발하지만 페르티안은 결심을 했단 듯 고개를 저으며 녀석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만약 실패하면? 그게 아니더라도 너희들 중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는다고 생각해 봐.”
“괜찮아! 그런 건 각오하고..”
“안 돼!!”
샤를의 반발에 페르티안은 화가 난 얼굴로 소리를 치며 나무라기 시작했다.
“이건 영웅 놀이가 아니야. 사람의 목숨이 달린 거야. 게다가 그깟 명예에 너희를 위험에 밀어 넣는다? 그럴바엔 실패하는 게 나아!”
“형!!”
완고한 페르티안의 모습에 샤를이 답답하단 듯 반발해 보지만, 난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또한 세베랑스의 왕세자보다 저 세 명이 더 소중하니까 말이다.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이 좁혀지지 않던 때, 조용히 앉아 있던 아티뤼크가 손을 들며 말을 꺼냈다.
“뭔데, 아티?”
내 말에 잠시 얼굴을 붉힌 아티뤼크는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말했다.
“경비가 전보다 엄중해지긴 했지만, 요즘도 요새뒷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합니다.”
“요새 뒷문?”
“네, 요새 책임자인 오토 백작이 그.. 여.. 여자를..”
“여자..? 자세하게 말해 봐, 여자 뭐?”
무슨 말이냔 듯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아티뤼크는 더욱 얼굴이 빨개지며 개미 지나가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그게.. 여자를 밝히는 새.. 색마라고..”
‘..!’
그의 말에 난 순간 얼굴이 홍당무가 되며 어버버 거렸고, 옆에 있던 킨라라는 ‘어머’하며 볼을 손으로 받치며 홍조를 붉혔다. 다만 프레데리카는 차가운 표정으로 작게 혀를 차곤 ‘쓰레기’라 한 건 비밀이었다.
“그 말은 창부로 위장해 잠입하잔 거야?”
“네.. 네, 죄.. 죄송합니다. 수로 외엔 그 길밖에 없는 것 같아..”
부끄러운지 그가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하자 난 그를 와락 끌어안으며 기특하단 듯 말했다.
“이구!! 아티도 아직 꼬마네!!!”
“으아아!! 샤.. 샤벨리아님!!!”
얼굴에 뭉개져 느껴지는 내 가슴에 당황한 그가 놀라 발버둥 쳤지만, 나프스 엘인 아티는 외견상으론 아직 소년티가 물씬 풍기는 아이였기에 난 어른인척하는 그가 귀여워 더 놀려주고 싶었다.
“그만해, 샤벨리아. 더 이상하면 애 죽겠어.”
“아..”
피가 머리로 몰려 빨간 홍당무가 된 아티뤼크는 해롱거리며 기절하기 직전이었고, 항상 과묵했던 녀석의 새로운 모습에 난 조금은 친해졌단 생각에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그걸로 결정이지?”
“흐응~, 그게 뭔데?”
“뭐..?”
“그.러.니.까. 그 결정이란 게 뭔데?”
“으으..”
음흉한 눈빛과 함께 장난스럽게 묻는 내 말에 역으로 당황한 페르티안이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하자 난 가슴을 모아 받치듯 몸을 끌어안으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뭐냐고? 응?”
“아.. 알잖아, 뭔지.”
“아니요~, 전혀 모르겠는데요? 뭘까요?”
출렁.
“샤.. 샤벨리아..”
적극적인 내 모습에 페르티안은 더욱 당황을 하며 뒷걸음질을 쳤고, 난 어서 말하란 듯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 갔다.
“말해 줄때까지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
“으으..”
적극적인 내 대쉬에 녀석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하며 더욱 얼굴이 빨개졌고, 난 오랜만에 보는 순진한 녀석의 모습에 장난기가 폭발하며 더욱 몸을 들이댔다.
“자, 말해 봐. 뭔데? 응?”
출렁출렁.
“그.. 그만..”
터억.
‘..!’
“응..?”
그렇게 뒷걸음질 치던 그때, 돌부리에 걸린 페르티안이 놀란 표정과 함께 내 팔을 잡았고 난 넘어지는 녀석의 무게에 끌려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콰당 !
“꺄아악!”
“우악!!”
우린 그렇게 땅에 떨어졌고, 충격과 함께 눈을 질끈 감았던 난 생각보다 아프지 않은 몸에 살며시 눈을 뜨던 그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부.. 부부..”
‘!!’
화아아악
내 가슴이 마치 에어팩 마냥 뒤로 넘어진 페르티안의 얼굴을 짓누르며 뭉개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아.. 아아아!!! 이 색마!!!”
짜악
화들짝 놀라 얼굴이 빨개진 난 그대로 페르티안의 뺨을 때리곤 가슴을 가려 도망쳤고, 붉은 손바닥이 선명한 얼굴과 함께 땅에 넘어져 있던 페르티안은 쌍코피와 함께 죽어도 여한이 없단 듯 행복한 미소와 함께 작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저.. 천국을 터치하고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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