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섬광의 주인 _ 뇌전(雷電)의 샤벨리아-127화 (127/135)

〈 127화 〉 127. 어둠의 성좌

* * *

[ 127. 어둠의 성좌 ]

달그닥. 달그닥.

어두운 블루아 루즈 밤거리, 은은한 조명 아래로 마차 한 대가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으슥한 골목을 지나 달리는 도로위엔 돌길을 지나는 마차바퀴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덜덜덜.

그와 함께 마차 안에는 아름답게 치장한 미소녀 세 명이 있었는데, 화사하면서도 어딘가 귀여운 붉은 드레스를 입고는 있는 금발의 미소녀가 드레스가 짧아 흰 허벅지가 드러난 다리를 아저씨처럼 떨며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젠장.. 젠장..”

중간중간 검은 실크천으로 아기자기하게 매듭이 지어진 모양이 그녀의 미모를 더욱 귀엽게 하고 있었지만, 당사자는 그것이 꽤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아름다운 얼굴과 달리 험한 말을 내뱉으며 누군가를 저주하고 있었다.

“키탈파, 잘도 내게 이런 옷을 입혔겠다.”

플로헤타의 마법안약으로 에메랄드와 같이 산뜻한 연녹색의 눈동자가 된 샤벨리아가 사랑스런 눈동자를 깜박이며 구시렁 거렸다.

“이 검은 리본을 왜 여기에..”

이렇게 허벅지를 노출한 적이 없는 나였다. 짧아도 너무 짧은 스커트와 같은 드레스는 내가 봐도 화끈거릴 정도였고, 왼쪽 허벅지엔 얇은 검은 천이 어딘가 야하게 감겨 귀여움 속에 섹시함을 어필하고 있었다.

“으아악!!”

아무리 위장이라고 하지만 이런 소녀소녀하고 어딘가 야릇한 차림은 아직 내성이 없는 나였다. 게다가 드러난 어깨며, 마치 강아지처럼 붉고 검은 천으로 만든 프릴이 목을 감고 있었는데 이건 뭐 남자 홀리려 작정한 여자로 오해받기 딱인 차림이었다.

“근데 진짜 이거 너무 파인 거 아니냐고?!”

내 손가락보다 얇은 끈 두 개가 드레스를 받치며 어깨에 매어지듯 지나가 있었는데, 문제는 적나라하게 드러난 가슴골이었다. 킨라라의 환상 마법으로 가슴골 위 마나 하트를 숨기긴했지만 역시 야해도 너무 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자신의 모습에 닭살이 오르며 머리를 쥐어잡던 그때였다.

쩌저적 ­

순간 내 왼쪽에서 엄청난 한기와 함께 북극의 설빙보다 차갑고 시린 프레데리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여 버리겠어, 죽여 버리겠어.”

‘윽..’

엄청난 살기와 함께 프레데리카의 주변은 그녀가 내뿜는 냉기에 얼어붙고 있었는데, 얼마나 살기가 가득한지 나조차 그 한기에 피부가 따끔할 정도였다.

“내게 잘도 이런 옷을.. 내게..”

그녀도 나처럼 패닉인지 민망한 자기 옷차림에 절망하고 있었다. 은하수와 같은 은발을 귀엽게 포니테일처럼 묶어 올린 그녀는 어깨가 파인 셔츠 타입의 드레스였는데 문제는 뒤가 적나라하게 파여져 있단 것이었고 또 하나는 목깃만 셔츠인지 가슴과 허벅지, 다리까지 이어지는 전신은 검은 타이즈로 야하게도 그녀의 몸매를 들어내고 있었다.

물론 어깨 아래 팔과 허리를 감싼 흰색 천이 귀여운 리본과 함께 러블리함을 선보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딘가 야해 보이는 옷차림마저 가려줄 순 없었다.

스릉 ­

“당장 죽여..”

타악.

“프카!! 거.. 검은 언제 가져온 거야?!”

단도를 꺼내 당장에라도 죽이러 가겠단 듯 일어서는 그녀의 팔목을 잡은 난 급히 그 단도를 뺏었고, 프레데리카는 치욕적이란 듯 눈물이 작게 맺힌 눈으로 내게 소리쳤다.

“전하! 이런 꼴을 당하고도 참으란 말입니까?!”

“하하하..”

‘나도 못 참지.. 그래도 검은..’

하긴 평생을 무인으로 살아온 프레데리카였기에 그녀도 여자이기 전에 검사였다. 그렇기에 나처럼 이런 옷차림엔 내성이 없긴 마차가지인 듯싶었다. 하지만 단 한 명, 우리와 다르게 킨라라만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예쁘게 차려입은 자기 다리를 앞으로 뻗으며 ‘헤에’거리고 있었다.

“킨라라.. 넌 괜찮은 거야?”

내 물음에 킨라라는 ‘우웅?’하는 귀여운 표정과 함께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리며 내게 말했다.

“플룩스님은 싫어요?”

“뭐..?”

“예쁘지 않아요? 나 이런 옷 처음이예요! 헤헤..”

“아.. 그래..?”

순진한 걸까, 아님 바보인 걸까 너무 해맑게 웃는 녀석의 모습에 난 할 말을 잃으며 ‘그래, 좋아서 좋겠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킨라라의 복장은 좀 더 매니악했는데, 이 세계에서 어떻게 저런 복장이 있을 수 있는지 그녀의 드레스는 약간 세일러복과 비슷했다. 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흰색 모피가 목을 감싸 뒤로 늘어져 있는가 싶더니 그 아래로 긴 실크천 두 개가 예쁘게 매듭지어져 아래로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우리와 달리 하늘거리는 천이 어깨를 덮어 그녀의 손목 위까지 드리워져 귀여움을 어필했지만, 펑퍼짐한 상의는 살짝 짧은지 그녀의 복부를 살짝 들어내었다.

게다가 테니스 스커트와 같은 민트빛 드레스는 짧아도 너무 짧아 그녀의 흰 허벅지를 모두 들어낼 정도로 야했고, 대신 예쁜 프릴로 장식된 흰색 스타킹이 그녀의 각선미를 덮고 있었다.

‘나도 저렇게 무감각해지고 싶다..’

보기만 얼굴이 화끈거리는 모습이건만 킨라라의 모습은 천진난만했고, 난 그런 그녀가 이젠 오히려 부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스스로가 입은 옷에 자괴감에 빠져나락에 떨어지던 그때,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마차가 멈추는 소리와 함께 주변이 소란스러워 짐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냐?! 멈춰라!!”

“아, 안녕하십니까?”

요새 뒷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대장이 간이 전등을 들고 마차로 다가오자 마차를 멈춘 사달수드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아이고, 수고들 많으십니다. 저희는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 오늘 백작님께 물건을 납품하러 온 상인들입니다.”

“흐음..”

사달수드의 말에 경비대장은 전등을 들어 사달수드와 그 옆에 앉아 있는 뚱보리니를 살펴보았고, 녀석들은 예쁘지도 않은 얼굴을 씨익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크흠.. 백작님이? 그.. 그래도 일단 확인은 하지.”

“헤헤 물론입죠.”

비굴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주무르는 사달수드의 모습에 헛기침하며 우리가 타고 있는 마차간으로 다가온 경비대장은 문을 활짝 열었고, 잠시 후 여자 셋밖에 없는 마차 안으로 올라서서는 고개를 집어넣어 우리를 돌아보았다.

꿀꺽.

시간이 정지된 듯 긴장된 순간에 우린 조용히 그를 쳐다보았고,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의 시선에 우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어.. 무슨 문제라도..?”

심상치 않음을 느낀 사달수드가 단검을 뒤로 숨키며 다가와 묻던 그때, 경비대장은 홍당무처럼 빨개진 표정으로 말을 버벅이며 말했다.

“오.. 오늘은.. 꽤.. 꽤 이.. 일품들을 데려왔군..”

“에이, 당연하거 아니겠습니까?”

‘휴..’

역시,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본 건 수상해서가 아니라 프레데리카와 킨라라의 미모가 아름다워서였기 때문인가? 이래서 미소녀와 함께 있어야..

“지금 플룩스님 보고 붉어진 거 맞죠?”

“응..”

“역시, 우리가 아니었어!! 플룩스님 바보 바보!!”

“...”

‘뭐..?’

황당한 녀석들의 말에 내가 놀라 돌아보자, 킨라라는 분하단 듯 눈물을 글썽이며 내 등을 투닥이고 있었고, 그 얼음같던 프레데리카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는데 난 그게 더 충격이었다.

‘거짓말.. 이지?’

다시 묻듯 프레데리카를 응시하자, 녀석은 슬쩍 날 쳐다보는가 싶더니 고개를 획 돌리는 것이 아닌가?

쿠궁 ­

‘아..’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건지, 좋아해야 하는 건지. 난 어처구니없단 허무한 웃음을 흘리며 그렇게 천혜의 요새 발루아가에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시발..”

***

“윽..”

“폐하!”

화려한 침상 위, 맑은 호수를 박은 듯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가 감겨져 있던 눈커풀 사이로 들어나 깜박이는가 싶더니 화사하고 찬란한 태양과도 같은 금발을 늘어트리며 일어섰다.

“아직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놈은..?”

클로비스의 물음에 홀슈타인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현재 행방이 오리무중입니다. 아슈트로와 베텔게우스가 뒤쫓아 그들의 수색에 나섰으니 단서를 잡을 겁니다.”

“빌어먹을!!”

쨍그랑 ­

홀슈타인의 보고에도 무엇이 그리 분에 풀리지 않는지 클로비스는 침상 탁자에 있던 도자기를 던지고는 눈앞에 없는 상대 대신 허공을 증오스럽게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플룩스 놈.. 잘도 나와 프리티마셰를 방해했겠다.”

“상처가 아물었다 하나 아직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

수술과 신관들의 치료마법으로 샤벨리아에게 베어졌던 그녀의 가슴은 매끈한 모습이었지만, 어디까지나 겉모습일 뿐이었다. 중상을 입은 것은 변하지 않았기에 홀슈타인의 말대로 몸조리를 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씰이 아닌 인간이니까 말이다.

욱신.

“윽..”

“왜 그러십니까? 또 상처가 아프십니까? 당장 신관을..”

스윽.

홀슈타인의 소란에 클로비스는 인상을 찡그리며 괜찮단 듯 손을 들어 올렸고, 이브닝드레스 차림을 한 자기 아랫배를 손으로 쥔 그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인간의 몸이 이렇게 귀찮을 줄이야..”

“...”

그렇게 말한 클로비스의 엉덩이 옆으로 붉은 혈흔이 조금씩 퍼져 나오기 시작했고, 조용히 그것을 바라보던 홀슈타인은 묵묵히 이불을 들어 그녀의 아래를 가려주고는 괜찮단 듯 말했다.

“곧 하녀들을 불러오겠습니다.”

“그래..”

짜증 나게 신경을 긁는 아픔이었지만, 오히려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녀석에게는 없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축복이자 특권이니까 말이다.

“프리티마셰..”

청초한 얼굴로 고개를 든 클로비스는 창문밖으로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보았고, 은은히 빛나는 달빛에 일렁이는 그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외롭고 위태로워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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