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129. 어둠의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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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 어둠의 성좌 ]
어두운 밤, 르텔 강 기슭 강변초소는 어느 때와 다름없이 한적하고 고요했다. 또한 강 하류를 방어하기 위해 본국에서 도착한 황제 휘하 제국 8함대가 블루아 루즈 근처 셍트 항에 정박해 마치 지금의 패권을 과시하듯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어이 한센!”
“아, 고맙네.”
오랜된 석벽을 개조한 망루에 있던 제국병사 하나가 동료가 가져온 커피를 받으며 미소를 지었다.
“마벨 각하의 7연대가 에스티올 군을 격파했다는 소식을 들었는가?”
“물론이지! 우릴 무시하던 남쪽의 광신도 놈들도 이제, 우리 제국의 힘을 알았을게야!”
“게다가 동부방면의 미할리츠 각하의 군대가 진군해 오던 키푸루스 군마저 대파시켰다니, 정말이지 황제 폐하께서 제창하신 대륙통일도 꿈도 아니겠어.”
제국의 연전연승에 병사들의 사기는 어느 때보다 높았고, 한 번 빼앗긴 기세는 쉽사리 가져오기는 힘든 것이었다.
“하하하! 맞는 말일세! 남은 건, 오만한 프러겔 놈들과 바다 지렁이 같은 연합왕국 놈들만 쓰러트리면 될 일일세!”
그렇게 웃음과 함께 나무잔에 받아온 커피를 마시던 그때였다. 넓은 르텔 강 저편에서 거무스런 무언가가 빠르게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응..?”
“저게.. 뭐지..?”
두 보초병은 눈을 찡그리며, 수상한 물체를 살펴보던 그때 순간 연보랏빛 하나가 번쩍이는가 싶더니, 마치 불이 붙어 번지듯 수십 수백발의 연보라빛이 번쩍이며 엄청난 포격소리와 함께 셍트 항을 덮쳤다.
쿠구구궁
‘!!’
삐유우우
콰과과광 !!!!
동시다발적으로 발사된 마력 탄은 제국군이 주둔하는 셍트항에 무차별적으로 떨어졌고, 그중 몇 개는 제국의 3급 전열함 몇 대에 적중하며 불이 치솟아올랐다.
“저.. 적습이다!!”
땡댕 ! 땡댕 !
망루에서 그것을 목격한 보초병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초소에 설치한 종을 급하게 치기 시작했고, 그 종소리와 함께 셍트 항 곳곳에 있던 초소들에서 비상종이 항구 전체를 깨우듯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적이..”
“저.. 저거, 여.. 연합왕국 기 아니야?”
망원경을 꺼내 강 너머를 살펴보자, 포격의 불길로 조금 밝아진 시야로 왕관을 쓴 사자의 문양이 새겨진 연합왕국기를 게양한 북해함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해안선에 오지 못하게 포병대에..”
적의 정체에 놀란 보초병이 품에서 신호탄을 꺼내려던 그때였다.
삐유우웅
‘!!’
콰과광 !!!
순간 번쩍인 연보랏빛과 함께 발사된 마력 탄이 강기슭에 있던 석벽망루를 그대로 직격해 흔적도 없이 없애버렸다.
촤아아아
“제독, 제국의 함대가 기능을 못 하고 있습니다.”
“전 함대 신속히 횡대로 전환해라!”
“넷!”
딸깍 딸깍
회색머리에 진한 남청색의 장교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는 순한 인상과 다르게 강인한 눈빛으로 불타오르는 셍트 항을 주시하며 명령을 내렸고, 부함장으로 보이는 부관은 그의 명령에 장교모를 잡아 고개를 끄덕이곤 다른 함대를 향해 랜턴을 들어 암호점등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제독의 명령받은 수많은 함선들은 일제히 랜턴을 깜박이며 마치 한 몸인 듯 순식간에 함선의 항로를 전환해 기함인 제독의 1급 전열함을 따라 긴 횡선을 만들었다.
스릉
“저 파렴치한 하켄제국과 전쟁광 클로비스 4세에게 우리 연합왕국 함대의 위용을 보여주자!! 발사준비!”
“발사준비 !!”
“발사준비해라!!”
샤벨을 허리춤에서 빼든 그의 명령에 장교들은 결연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제히 해병들을 향해 그의 명령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발사!!”
함대의 포격거리에 제국의 8함대가 들어오자, 그는 지체 없이 포격명령을 내렸고 그 순간, 횡대로 셍트 항을 포위하고 있던 연합왕국 함대에서 엄청난 빛이 번쩍이더니, 무수한 마력 탄 세례가 항구에 정박하고 있던 제국함대를 직격하며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
“끄아악!!”
마치 물 위속 지옥을 보듯 셍트 항은 엄청난 불길과 함께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고, 아비규환이 된 항구에는 미련도 없단 듯 제독은 아직은 고요한 블루아 루즈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메이틀랜드, 남은 건 너와 로얄원의 건승 뿐.. 성공하길 빈다.”
***
쿠구구궁
“단장, 카펠제독의 기습이 성공했습니다.”
붉게 치솟아 오르는 셍트 항을 망원경으로 확인한 연합왕국의 씰이 어두운 지붕에서 대기하고 있던 메이틀랜드와 동료들을 돌아보며 보고했다.
“좋아, 우리도 계획대로 작전을 실행한다.”
끄덕.
그녀의 말에 검은 망토를 두른 붉은 제복의 연합왕국의 씰들은 빠르게 산개하며 블루아 루즈 곳곳으로 사라졌고, 샤벨 검집을 쥔 메이틀랜드는 머지않은 곳에 있는 제국의 무기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리지널, 당신을 믿습니다.”
그러곤 비장한 얼굴과 함께 검집에서 샤벨을 빼든 그녀는 유연한 몸동작과 함께 뒤로 몸을 날리는가 싶더니 건물 아래에 있던 제국 병사들을 향해 떨어지며 외쳤다.
“위대한 연합왕국, 왕립 근위대 펨브로큰 기사단의 메이틀랜드다! 세베랑스를 침탈한 악덕황제 클로비스의 목을 내놔라!!”
한편, 점거한 무기창에서도 카펠제독의 포격을 확인했는지 페르티안과 그의 일행은 분주하게 화약을 옮기며 준비하고 있었다.
쿠웅
“후우.. 이걸로 이 건물은 끝인가? 키탈파! 거긴 어때?”
거대한 화약통 여러 개가 거대한 무기창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고, 페르티안은 마지막 화약통을 설치하고는 꽤 무거웠단 듯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석벽에 올라 망을 보고 있던 키탈파를 쳐다보았다.
“칫..”
시원한 바람이 나부끼는 석벽에 고양이처럼 올라 무기창 주변을 살피던 키탈파는 저 멀리 대로변에서 많은 수의 제국군이 말을 탄 장교들의 뒤를 따라 뛰어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날렵하게 아래로 착지해 그에게 보고했다.
“빨리 이동해야겠어, 생각보다 많은 수의 병사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어.”
“하지만 아직 건물 하나가 남았..”
“됐어, 저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시선을 끌거야. 나와 데브가 시간을 끌테니까 넌 어서 플룩스님이 있는 곳으로 가.”
“아.. 알았어, 그럼 부탁할게.”
부싯돌을 키탈파에게 넘긴 페르티안은 모자를 들어 고쳐 쓰더니 제국 군용마차를 몰고 나오는 몰트겐 후작에게 달려갔고, 어느새 제국병사 복장으로 위장한 아티뤼크가 속도를 멈추지 않고 달리는 마차에 따라와 올라서려는 그의 손을 잡아당겨 태우며 그들이 태운 마차는 무기창 후문을 통해 유유히 사라졌다.
“후우.. 남은 건 내 운을 시험해 보는 수밖에..”
그들이 떠난 것을 확인한 키탈파는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겠단 표정으로 부싯돌을 맞부딪치자 반짝이는 불꽃과 함께 불이 붙은 화약이 빠르게 모여 있는 화약통 쪽으로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잠잠하던 무기창 안으로 들어간 작은 불꽃은 셍트 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위력의 폭발이 터져 올랐다.
‘응..?’
콰아아아앙 !!
‘!!!’
휘이이잉
“꺄아악!!”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풍압이 키탈파와 데브를 덮치며 뒤로 밀었고, 두 소녀는 이 정도일 줄 몰랐단 듯 날아가던 자기 몸을 가누며 급히 쉴드를 펼쳤다.
츠즈즈
“뭐.. 뭐야..?”
티딩 – 팅
“으아앙! 바보 키탈파!!”
상상 이상의 폭발력, 오히려 화약을 설치한 그녀가 제일 놀랐단 듯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이던 그때, 자기 아래에서 불길한 붉은 섬광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눈치챈 그녀는 과도한 자기 행운에 몸둘 바를 모르겠단 듯 눈물 고인 표정으로 이렇게 외쳤다.
“서.. 설마..”
우우우웅
“마.. 마력석을 지하에 적재해 놓았던 거야?!!”
***
콰과과광 !!
벌떡
“뭐.. 뭐냐?!”
엄청난 굉음에 놀란 오토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벌컥 열자 엄청난 붉은 불꽃 기둥이 머지않은 무기창에서 치솟아 오르는 것이 보였다. 게다가 그것만이 아닌지 저 멀리 셍트 항은 마치 붉은 일렁임과 함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대.. 대체.. 이게 무슨..”
당황한 표정으로 창가에 짚은 그의 손이 미세히 떨리던 그때, 비상 종소리가 요새 전체를 가득 메우며 집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배.. 백작님, 적의 기습입니다! 어서 준비를..”
시잉 – 콱 !
“끄윽..”
털썩
‘!!’
밖에 대기하고 있던 부관이 병사들을 이끌고 집무실로 들어와 보고하던 그때였다. 의자를 박찬 프레데리카가 식탁 위의 나이프를 부관을 향해 던졌고, 피거품을 물며 뒤로 쓰러지는 그를 방패로 병사들에게 접근한 그녀는 그들의 가슴팍을 움켜쥐며 작게 중얼거렸다.
“얼어버려.”
‘..!’
쩌저적.
“커억..”
“컥..”
챙그랑
심장주변만 투병한 얼음으로 얼려진 병사들이 힘없이 쓰러지자 백작은 떨리는 손을 들어 자신에게 다가오는 샤벨리아를 향해 말했다.
“네.. 네놈들.. 대체 정체가 뭐냐?”
씨익.
그러자 샤벨리아는 땅바닥에 떨어진 샤벨을 발로 차올라 가볍게 손으로 잡아 몇 번을 쥐어 휘두르고는 화사한 미소와 함께 그에게 말했다.
“뭐긴, 침입자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