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섬광의 주인 _ 뇌전(雷電)의 샤벨리아-130화 (130/135)

〈 130화 〉 130. 어둠의 성좌

* * *

[ 130. 어둠의 성좌 ]

쿠궁 ­

츠스스 ­

세트항을 지나가는 연합왕국의 포격이 발루아가 요새를 강타하자, 두터운 석벽이 흔들리며 흙먼지가 떨어져 내렸고, 비상종과 함께 성벽 위로 뛰어올라온 제국군은 일제히 뒤로 빼놓았던 포대를 앞으로 전지시키기며 응전을 준비했다.

댕댕 – 댕댕 ­

“포대 전진 앞으로!!”

삐이익 ­

“으랴앗!!”

쿠웅 ­

지휘관의 호루라기와 함께 흩어진 병사들은 무겁고 큰 대포 하나에 장정 넷이 달라붙어 앞으로 전진시켰고, 이윽고 요새의 성벽 위로 엄청난 수의 포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스릉 ­

“황제 폐하께서 지켜보신다! 이대로 돌려보내지 마라!!”

샤벨을 빼든 지휘관의 명령에 각 포대를 지휘하는 포병장교들은 절도 있게 모자를 잡아 고개를 끄덕이고는 땀을 흘리며 마력 탄을 들고 나르는 병사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빨리빨리 움직여라!!”

“꾸물거리는 사이에도 적의 포격은 멈추지 않는다!!”

백작과 달리 모든 제국군의 장교가 무능하진 않는지 파편에 긁혀진 상처와 함께 콧수염이 인상적인 중년 남자가 붉게 타오르는 셍트항과 검은 연기가 치솟는 요새를 차분히 훑고는 박력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시간 없다!! 각 포대 신속히 상황보고해라!!”

“1번, 2번 포대 장전완료!”

“3번, 4번, 5번..”

그의 외침에 포병대들은 땀을 훔치며 장약과 마력 탄을 장전시키고는 긴장한 표정으로 중앙에 있는 그를 돌아보며 보고하기 시작했다.

꽈악.

“연합왕국 놈들..”

이 정도로 피해를 당할 때까지 기습을 허용한 것에 화가 난 것일까, 그는 미간을 찡그리며 횡대로 항구를 지나가는 연합왕국의 북해함대를 잠시 쳐다보는가 싶더니, 함렬 중앙을 가리키며 외쳤다.

“모두 맞힐 필요는 없다! 적의 함렬 중앙에 포격을 집중해 퍼부어라!! 준비가 끝나면 확인 없이 계속해 포를 쏴라!!”

척.

“알겠습니다.”

삐이익 ­

지휘관의 명령에 부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호루라기를 불며 명령을 전달하자, 요새의 포대들은 길게 늘어진 카펠제독의 함대 중앙을 노리며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

붉은 마력빛과 함께 빠르게 쏘아진 마력 탄은 카펠제독의 함대 중앙에 무차별적으로 폭발하며 공격하기 시작했고, 처음 두세발은 대포격 결계로 포격을 견디던 연합왕국의 전열함도 연이어 떨어지는 제국의 포격에는 못 이기겠는지 결국 붉은 불꽃과 함께 터져오르며 함선이 좌초 돼 가라앉기 시작했다.

“제독, 적의 포격이 중앙쪽 함대만을 노리며 떨어지고 있습니다!”

“흐음.. 함선, 모두 신속히 항구를 이탈한다!”

“알겠습니다!”

두서없는 포격이 아닌 정확히 자기 함선을 좌초시킬 목적으로 집중되어 떨어지는 포격에 카펠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지체 없이 함대를 후퇴시키기 시작했고, 무수히 깜박이는 암호점등과 함께 연합왕국의 함대는 제국의 포격을 놀리듯 유유히 포격권에서 벗어나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타다다 ­

“대포 소리가 멈춘 것 같은데?”

“함대가 후퇴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빨리 움직이죠.”

백작을 포박한 우리는 어두운 감옥로를 뛰어가고 있었고, 이윽고 저 멀리 한 무리의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문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철컥.

씨익.

“저기구나.”

파지직 ­

샤벨검집에서 검을 밀어 잡은 나는 하얗게 일렁이는 전격과 함께 일순 모습이 사라지며 병사들에게 쏘아졌고, 갑작스럽게 나타난 우리들의 모습에 당황한 병사들은 어깨에 메고 있던 플린트 락을 황급히 고쳐쥐려 했다.

“저.. 적이다!”

“쏴.. 쏴라!!”

하지만 어느새 녀석들의 코앞에 나타난 나는 아름답지만 사악할 만큼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휘두르며 녀석들을 지나쳤다.

피슛 ­

“컥..!”

“끄윽..”

털썩.

번쩍이는 빛과 함께 문 앞에서 나타난 내가 샤벨을 털자, 병사들은 붉은 피를 흩뿌리며 풀썩 쓰러졌고, 그 모습에 잡혀 있던 오토백작은 믿을 수 없단 듯 중얼거렸다.

“마.. 말도 안 돼, 인간의 움직임이 어떻게..”

그러자 난 내게 걸었던 일루젼 마법을 해제시키며 말했다.

“누가 인간이래?”

‘!!’

가슴골 위로 보이는 푸른 마나 하트에 그는 눈이 동그랗게 떠지더니, 점점 푸르게 변하는 내 눈동자에 누군지 알겠단 듯 파랗게 질린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서.. 설마, 프.. 프러겔의 마녀?!”

빠직 ­

“누가 마녀래?!!”

울컥한 내가 잡아 죽일 듯이 눈을 부라리며 녀석에게 달려들자, 킨라라가 나를 부여잡고는 참으란 듯 울며 소리쳤다.

“지.. 지금, 이러실때가 아니라구요!!”

“놔! 저 녀석 머리끄덩이 내가 다 잡아 뜯어버릴 거야!!”

“히이익!!”

탈모인이었던 백작은 내 말에 경악을 하며, 자기 머리를 사수하겠단 듯 황급히 손으로 머리를 감추고는 프레데리카의 뒤로 숨었다.

“플룩스님, 진정하시죠. 곧 있으면 경비병이 올 겁니다.”

“으으..”

“맞아요! 어서 빨리 왕세자를 구해야 한다구요!”

“알았어! 알았다고!! 너, 아주 운 좋은 줄 알아. 나중에 또 마녀라고 하면 그땐 확! 알지?!”

끄덕 끄덕.

내 협박에 그는 알겠단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며, 프레데리카의 뒤에 숨어 그녀의 옷깃을 살고 싶단 듯 꽈악 쥐었다.

쿵쿵.

“흐음.. 이 문, 결계가 쳐져 있네?”

샤벨 손잡이로 치며 문을 만지던 난 문 전체가 마력과 함께 강한 주문이 새겨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감옥 중에 이 문만 이렇게 강한 주문으로 보호되고 있다는 뜻은 반대로 이곳에 아주 중요한 사람이 갇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킨라라.”

“네?”

“열어.”

귀찮은 건 딱 질색이란 듯 내가 문에서 떨어지며 어서 열란 듯 고개짓을 하자, 킨라라는 ‘우우’하는 표정과 함께 볼을 부풀며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뭐 전용 열쇠공도 아니고, 꼬옥~! 이럴 때만 써먹는다니까.”

“뭐라고?”

“아.. 아니예요, 연다구요. 열어.”

내 반문에 화들짝 놀란 그녀는 문에 손을 대고는 작게 시동어를 외쳤다.

“Liberátĭo (리베라티오).”

피잉 ­

철컥 – 철그덕 ­

분홍빛 마력과 함께 문전체로 번진 빛은 숨겨졌던 기하학 무늬를 문 위로 발현시키기 시작했고, 그녀의 마력집중과 함께 문 전체에 새겨진 무늬들은 킨라라의 이끌림에 따라 돌아가 멈추며 묵직한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하나하나 해금되어 열리기 시작했다.

딸깍 ­

“됐다!”

그 말과 함께 천천히 열려지는 문 뒤엔 거대한 동공과 같은 황량한 석실이 눈으로 들어왔다.

‘여기에 왕세자가..’

“!!”

싸늘하고 척박한 감옥의 모습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때, 거대한 쇠목걸이를 차고는 비참히 양팔이 좌우로 묶여져 늘어져 있는 하늘색 머리카락의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개만도 못한 놈들..”

챙강 ­! 카앙 ­!

풀썩.

“윽..”

너무도 비참한 그 모습에 참다못한 내가 두터운 쇠사슬을 칼로 잘라 내자 왕세자는 작은 신음과 함께 바닥에 널브러졌고, 난 그 모습에 달려가 그를 부축해 안았다.

찰그랑 ­

“전하, 괜찮으십니까?”

“으음..”

“킨라라!”

“네! Proféctus (프로펙투스)!”

피이잉 ­

쇠약해진 왕세자의 모습에 걱정이 된 내가 킨라라를 부르자 그녀는 왕세자의 가슴팍에 손을 올려 놓더니, 고위 치유 마법을 발동시키며 그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급한 상처는 치료했지만, 안식이 필요해요.”

“이런..”

다소 편안 해진 표정의 왕세자를 내려다보던 나는 결심했단 듯 그를 들쳐 엎고는 천으로 그와 내 몸을 단단히 묶기 시작했다.

“플룩스님, 대체 뭐 하시려고..”

마치 아기를 엎듯 왕세자를 들쳐업은 내 모습이 신기하단 듯 쳐다보는 프레데리카에게 난 복도에 세워져 있던 옛 갑옷과 함께 있던 ‘할버트’를 잡아 쥐며 말했다.

“뭐긴, 들쳐업고 가는 거지.”

“저기 있다!”

타다다 ­

말하기 무섭게 제국의 병사들은 우리가 있는 곳으로 모여 들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그들 앞으로 범상치 않은 움직임과 함께 쇄도해 오는 인영 세 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놈들..”

예리한 은빛 샤벨을 번쩍이며 쇄도해 오는 엘리트 씰들을 응시하던 나는 왕세자가 내게 단단히 묶여져 있음을 확인하고는 손에 쥔 할버트를 휘두르며 그들을 향해 튕겨 날아갔다.

‘!!’

“비켜라! 비켜!!”

부우웅 ­

서걱 – 스각 ­

카아앙 –

“으랴아앗!!”

파직!!

일순 두 명을 할버트를 휘둘러 갈라 베어 버린 나는 내려찍으려는 내 무기를 샤벨을 들어 막은 적의 씰을 두터운 석벽바닥에 찍어 눌러버렸다. 그러자 제국의 병사들은 그 모습에 사색이 되며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괴.. 괴물이야!!”

“씨.. 씰 셋을 이.. 일격에 죽였어!!”

저벅.

수라와 같이 죽은 씰의 피를 뒤집어쓴 내가 재가 되어 날아가는 씰들의 잔향 속에 걸어 나오자 병사들은 나와 일정의 간격을 띄우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작고 연약해 보이는 소녀 하나에 겁을 먹은 수십의 병사들의 모습은 정말이지 아이러니한 모습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리한 미소녀라 볼 수 없는 엄청난 위압감과 함께 푸른 눈동자를 빛내며 걸어오는 그녀는 마치 하나의 맹수와 같았고, 마치 가둘 수 없는 거대한 사자를 보듯 아름다운 황금빛 머리카락을 휘날린 그녀가 표효와 같은 외침을 터트리며 말했다.

“신성 프러겔 제국, 제1성 샤벨리아 폰 퓌러슈타트다! 누가 또 내게 덤비겠느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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