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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광의 주인 _ 뇌전(雷電)의 샤벨리아-131화 (131/135)

〈 131화 〉 131. 어둠의 성좌

* * *

[ 131. 어둠의 성좌 ]

야밤의 기습으로 해안선이 붉은 불빛으로 물들고, 청명하고 고요했던 밤하늘이 매캐한 검은 연기로 뒤덮이자, 블루아 루즈의 신민들은 불안 함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도로변에 나와 웅성거렸다.

다그닥 – 히이잉 ­

“모두 들어가라! 별도의 지시가 있기까지 야간 통행금지다!!”

말을 탄 제국의 헌병들이 도로로 나온 신민들을 위협하며 그들을 집으로 내몰기 시작했고, 그 뒤로 무장한 제국의 병사들이 속속 오와 열을 맞추며 블루아 루즈의 주요 도로변들을 속속히 점거하며 혹시 모를 폭동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다그닥 다그닥 ­

“이랴!”

그런 삼엄한 도로 사이로 제국의 마차 한 대가 빠르게 말을 몰며 달리고 있었고, 말을 모는 마석에는 제국군으로 위장한 페르티안과 아티뤼크가 있었다.

“멈춰라!!”

“워워!”

히이잉 ­

발루아가 요새로 가기 위해 블루아 루즈의 중심가이자 샹마르큐 궁전으로 이어지는 대로를 질러 가던 그때였다. 한 무리의 제국헌병들이 페르티안의 마차 앞으로 나오며 급히 그들을 멈춰 세웠다.

“웬 놈들이냐?!!”

그러자 마차를 급히 멈춘 페르티안은 자신에게 다가온 헌병장교를 바라보며 급하단 듯 말했다.

“상부의 긴급명령을 수행 중입니다. 길을 열어 주십시오.”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모른단 말이냐?! 현 시간부로 시내에 계엄령을 선포하라는 황제 폐하의 명령이다!!”

생각지도 못한 계엄령에 곤란해 하던 그때였다. 마차 안에서 샤벨 검집을 마차바닥에 강하게 내리치며 노기에 찬 몰트겐의 목소리가 들여 왔다.

쿵 ­!

“어떤 놈이 황제 폐하의 근위대 길을 막는 것이냐?!!”

순간 분위기를 압도하는 그의 목소리에 헌병장교가 깜짝 놀라 마차를 쳐다보자, 문이 벌컥 열리며 굉장히 심기가 불편한 얼굴의 몰트겐이 황실을 상징하는 황금 수로 화려하게 문양이 새겨진 장교복과 함께 고급 검은 외투를 어깨를 걸친 모습으로밖으로 나왔다.

“네놈이냐?!!”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의 모습과 호통에 같은 편인 페르티안과 아티뤼크 또한 당황한 얼굴로 눈을 깜박이며 그를 쳐다보았고, 헌병장교는 황실 근위대 고위장교로 보이는 그의 모습에 사색이 되는가 싶더니 다급히 발을 붙이며 경례를 붙였다.

척.

“크.. 클로비스 4세 만세!!”

스윽.

헌병장교의 경례에 가볍게 손을 올려 인사를 받은 몰트겐은 그의 견장을 힐끔 바라보더니 심히 못마땅하단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상황을 말해라, 대위.”

“그.. 그것이..”

바짝 얼어붙은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더듬었고, 그 모습에 흰 수염을 씰룩거린 몰트겐은 노기에 찬 목소리로 마차 문을 발로 차더니 쩌렁쩌렁 외쳤다.

쾅!!

“지금 나랑 장난하나?!!”

“아.. 아닙니다!!”

“그럼 귀가 먹었나?! 아님, 내가 목소리가 작나?!!”

“죄.. 죄송합니다!!”

울 것 같은 헌병장교의 모습에 페르티안은 후작은 나라와 국경을 넘어 사람 잡는 것만큼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 연합왕국의 기습과 함께 적의 씰들이 도시로 침입했단 첩보다.”

“여.. 연합왕국 말입니까?”

“그래, 현재 이곳에 주둔한 병력이 몇이지?”

“헌병대에서 급파한 2개 중대가 샹마르큐 대로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헌병장교의 보고에 몰트겐은 답은 듣지도 않겠단 듯 마차에 다시 오르며 이렇게 말했다.

“현 시간부로 이곳 헌병대의 지휘권을 근위대가 갖는다. 최소한의 병사들만 남기고 모두 내 마차를 따르도록.”

“예..? 하.. 하지만 이곳을 지키라는 헌병대의..”

쿵 ­!

“윽..!”

검집을 거칠게 내려찍는 몰트겐의 모습에 몸을 움츠린 헌병장교가 그를 힐끔 쳐다보자 몰트겐은 심술궂고 무서운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돼?! 행여 세베랑스의 왕세자가 적의 손에 들어간다면 헌병대도 헌병대장도 모두 모가지야! 알아?!!”

“예..? 예?!! 와.. 왕세자 말입니까?!”

“그럼, 공주님이겠나?”

“아.. 아닙니다! 명령 바로 받잡겠습니다!!”

천연덕스러운 몰트겐의 연기에 넘어간 헌병장교는 식은땀을 닦으며 목에 찬 호루라기를 불며 병사들을 소집하기 시작했고, 마석에 있던 페르티안과 아티뤼크는 ‘대박’이란 표정과 함께 우쭐거리며 입을 씰룩이는 몰트겐을 존경한단 듯 쳐다보았다.

그러자 몰트겐은 작게 윙크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게 바로 인생일세, 알겠는가?”

***

채애앵 ­

콰앙 ­ !!

엄청난 먼지와 함께 쓰러진 제국병사들 사이로 할버트를 손에 쥔 샤벨리아가 푸른 눈동자를 두리번거리며 걸어 나왔다.

“콜록콜록, 뭔 먼지가 이렇게 많은 거야.”

“빨리 이동하시죠, 페르티안님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프레데리카가 냉기 서린 샤벨을 적의 가슴에서 뽑으며 그녀에게 말하자, 샤벨리아는 자기 뒤에서 세상 모르고 자는 왕세자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키라도 작으면 업기라도 편하지, 이건 완전 발이 땅에 닿네, 닿아.”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을 왕세자를 업고 있는 샤벨리아의 모습은 술 취한 오빠를 업고 집에 귀가하는 여동생의 모습과도 같았다.

“쿡..”

“웃지 마.”

“푸훗.. 하.. 하지만.. 푸후웃..!”

울컥.

“내가 웃지말라 했지!”

꽈악. 쭈우욱­

“아악!! 다.. 달못 했어여.. 누아.. 주세에 여..”

뒤에서 웃는 킨라라에게 달려든 내가 볼을 잡아 늘리던 그때였다. 어두운 복도 저편에서 자그마한 체격의 소년하나가 샤벨을 내려 석벽바닥에 긁으며 우리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츠르릉 ­

“응..?”

“우에에..?”

‘뭐지?’하며 소년을 바라보던 그때였다.

씨익.

파지직 ­

콰아앙 ­!!

‘..!’

“피해!!”

순간 그의 몸 주변에 익숙한 황금빛 스파크가 이는가 싶더니, 섬광과 함께 모습이 사라졌다.

채애앵 ­!!

‘이.. 이 자식..!’

키이이잉 ­

파직!

목으로 날아온 샤벨을 할버트를 돌려 막아 세운 나는 온몸을 지져 버릴 정도로 강렬한 전격에 인상을 찡그렸고, 우리를 갑작스럽게 습격한 놈의 얼굴은 모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살며시 드러난 입가를 보건대 꽤 어린 소년임을 알 수 있었다.

카아앙 ­!!

밀어붙이는 녀석의 샤벨을 튕기며 할버트를 찌르자, 놈은 옅은 미소와 함께 몸을 뒤로 빼며 중얼거렸다.

“아쉽네.”

장교모 사이로 앳된 미소와 함께 그렇게 말한 녀석은 옆에서 날아오던 프레데리카의 검을 비웃듯 가볍게 피하더니, 이번에는 푸른 냉기가 서린 샤벨을 번뜩이며 프레데리카를 향해 달려들었다.

쩌저적 ­

‘..!’

카앙 ­! 카앙!!

날이 부딪힐 때마다 얼어붙이는 냉기는 프레데리카를 빼닮은 듯 감옥복도는 차가운 냉기로 인해 조금씩 얼어붙기 시작했다.

‘내 권능에.. 프레데리카의 권능을 흉내낸다고..?’

채애앵 ­

“킨라라!”

“알았어!!”

녀석을 뒤로 떨친 프레데리카가 킨라라를 돌아보며 외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을 짚으며 준비해 놓은 마법 시동어를 외쳤다.

“Tribulátĭo (트리불라티오)!”

콰직 ­

그러자 바닥이 균열이 가는가 싶더니 순간 자라 오른 날카로운 송곳들이 살아 있는 거친 암석 날붙이처럼 낯선 습격자를 따라가며 무자비하게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휘리릭 – 처억.

“Tribulátĭo (트리불라티오).”

‘..!’

“뭐.. 뭐라고..?”

얄미운 고양이마냥 킨라라의 마법을 이리저리 피해 가볍게 착지한 녀석은 벽을 손에 짚고는 킨라라와 같은 마법진을 발현하며 시동어를 외치자 놀라 눈이 동그랗게 떠진 킨라라를 향해 날카로운 송곳들이 벽을 따라 솟아오르며 다가왔다.

콰직 ­!!

“이 자식!”

킨라라를 노리고 솟아오르는 돌을 할버트로 부신나는 일순 강렬한 뇌전을 일으키며, 손에 쥔 할버트를 그대로 녀석을 향해 날려 버렸다.

파지지직 ­!!

시유우웅 ­

콰아앙 ­!!!

황금빛 뇌전줄기 함께 일순 쏘아진 창은 녀석을 지나쳐 뒤에 있던 석벽을 터트리며 꿰뚫어 사라졌고, 순간적으로 뚫린 구멍으로밖의 바람이 감옥으로 몰아치던 그때, 머리에 쓰여져 있던 녀석의 모자가 바람에 날아갔다.

“!!”

사라진 모자와 함께 드러난 얼굴을 본 순간, 우리 셋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너는..”

귀여운 금발 곱슬머리에 맑은 하늘색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천사와 같이 순진하고 귀여운 얼굴, 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이면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숨기기엔 치사할 정도로 거대한 것이었다.

“알페카..”

씨익.

내 말에 녀석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올라간다. 그리고 단정하고 절도 있는 무릎인사를 하며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단 듯 강렬한 살기를 숨기지 않고 말이었다.

“하켄 대제국, 올 라운드 넘버 원. 알페카 폰 켈뱀부르크 인사드립니다.”

“너가 어떻게..”

“어떻게라뇨, 기뻐하실 줄 알았는데 실망이네요, 플룩스..”

제도 깊이 수감되어 봉인되어 있을 녀석이 블루아 루즈에 있다니, 나는 당황한 눈동자로 녀석을 쳐다보았고, 알페카는 차갑게 타오르는 하늘색 눈동자와 함께 자기 가슴팍을 강하게 쥐며 말했다.

“수백 년이 지났건만, 당신에게 꿰뚫린 가슴은 아직도 아프네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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