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 132. 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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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2. 오리지널 ]
나의 아버지이자 나의 원신이 만든 첫 번째 오리지널, 저 아이가 태어났을 때 우리 세 성좌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누군가의 카피가 아닌 자신의 인격을 가진 진정한 첫 번째 씰이 태어났음을 말이다.
수많은 형제들의 실패와 피 속에서 태어난 완벽한 아이였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컸던 것일까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있어야 할 그것을 갖지 못한 채 말이다.
서걱
“제.. 제발..”
“흐응, 아프구나? 아픈거지?”
감정 없이 빛나는 아름다운 하늘색 눈동자가 입가로 피를 흘리며 자비를 바라는 소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팍에 박힌 은빛 칼날이 아름답고 순수한 그의 모습과 상반되어 괴리감을 풍겼다.
콰직
“커윽.. 커억..”
괴로움에 떠는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있는 것이라곤 소름 끼치는 순수한 호기심 뿐.
콰앙
“알페카!!”
“플룩스!”
참혹하게 죽은 시녀의 모습에 말을 잃던 그때, 순수한 어린아이와 같이 활짝 웃으며 내게 달려오는 그 아이의 모습에 난 소름이 끼치며 제발 내가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니라 부정하고 싶었다.
타악.
“왜 이제 오셨어요?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
내 품에서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와 그의 뒤에서 눈물과 함께 절망 속에 죽은 시녀를 본 내 손은 가늘게 떨고 있었다.
“왜..”
“네?”
“왜.. 시녀를.. 아니, 사람을 죽인 거야..?”
마지막 희망을 쫓듯 난 사랑스런 그 아이의 입술을 애원하듯 뚫어지게 쳐다보았지만, 그 귀엽고 아름다운 입술에서 나온 말은 나를 배반하는 말이었다.
“인간은 참 약한 거 같아요, 그냥 살짝 찔렀을 뿐인데 죽다니.. 쿡, 바보 같아.”
“뭐라고..”
“아버지도 시왕전하도 참 바보 같아, 이런 약한 것들을 위해 뭘 하겠다고. 저런 숫자만 많은 벌레따윈 차라리 싸악..”
짜악
‘..!’
녀석의 뺨을 때리는 내 표정은 절망 그 자체였다. 하늘이 무너지고, 내 마음도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플.. 룩스..?”
아프다, 나를 올려다보는 저 아이의 시선이 날 아프게 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씰로써 그리고 그의 창조물로써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음을 말이다.
쿠웅
‘..!’
저벅저벅.
“알페카 폰 켈뱀부르크, 황제 폐하의 명령으로 너를 살육혐의로 체포한다!!”
검은 중갑옷을 입은 황제의 기사들이 칙서로 보이는 두루마기를 펼치며 나와 그 아이가 있는 방으로 밀려들어와 포위하기 시작했다.
“폐하의 칙서라고..?”
놀란 내가 흑십자 기사단의 단장을 돌아보자, 그는 어두운 표정과 함께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페르로뷔나 외곽 폐신전 지하에서 납치된 사람들이 대량으로 학살된 현장이.. 발견됐습니다.”
‘..!’
“체포해라!!”
“...”
충격에 말을 잇지 못 하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기사단장은 내 뒤에서 무슨 일인지 모르겠단 듯 눈을 깜박이는 알페카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자, 기사들은 육중한 갑옷소리와 함께 나를 지나쳐 그 아이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내 몸에서.. 손 떼, 이 벌레들아.”
기사들에게 목이 눌려 무릎이 꿇린 그때, 강렬한 살기와 함께 알페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알페카!”
놀란 내가 녀석을 막기 위해 몸을 돌린 그때, 하늘색으로 빛나는 그의 눈동자가 고개를 듦과 동시에 자신을 결박하던 기사 둘의 갑옷을 마치 종이 구기듯 가볍게 짓이겨 버리기 시작했다.
콰직 – 콱
“커억!!”
“끄아악!!”
주르륵 – 투둑
기형적으로 구겨진 갑옷과 함께 붉은 피가 갑주 사이로 흘러 떨어지며 주위 기사들을 겁에 질리기 했고, 나 또한 잔혹한 그의 모습에 눈동자가 떨렸다.
씨익.
“벌레 같은 것들이 오냐오냐해주니까, 기어오르는 구나.”
피잉
“안 돼!!”
순간 뻗어오는 녀석의 권능에 놀란 내가 손을 들어 방어해보지만, 내 결계에서 벗어나 있던 기사 여럿이 그의 염동력에 짓눌리며 잔인하게 학살당하기 시작했다.
쿠웅
주륵
묵직한 철소리와 함께 비명횡사한 기사들의 얼굴이 투구 밖으로 보였다. 하지만 왜일까, 난 어떤 손도 쓸 수 없었다. 이리 끔찍하고 잔인함을 목도했건만 아직도 내 마음속에 녀석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듯했다.
“플룩스.”
“...”
“안아주세요, 저 너무 힘들어요.”
녀석은 순간 많은 힘을 쓴 건지 피곤한 얼굴과 함께 어리광 섞인 말투로 자신을 안아달란 듯 내게 손을 내밀며 다가왔다. 하지만 난 그 순간에도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그때, 내 귓가로 알레나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며 나를 지나치는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넌 너무 물러, 플룩스.”
‘..!’
“알레나, 잠깐만!!”
“와~, 알레나! 나 보러 온거예요?”
흠칫한 내가 어느새 나를 지나쳐 그 아이를 향해 걸어가는 알레나를 잡아보려 하지만 아름다운 은발에 자비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연보라색 눈동자는 자신을 반기며 미소 짓는 알페카를 향하며 이렇게 말했다.
“쓰레기 놈.”
“네?”
파밧
‘!!’
순간 지나간 은빛섬광과 함께 멈춰 선 그의 날카로운 낫이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무슨 일이 벌어진 지 모르겠단 듯 눈을 깜박이는 알페카의 전신에 붉은 선이 그어지는가 싶더니 일순 피를 뿜으며 그를 바닥에 떨궈버렸다.
“커억.. 컥.. 아.. 알레나..”
“...”
피를 흘리며 왜 그러는 거냔 듯 애처롭게 바라보는 알페카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한 알레나는 뒤에서 놀라 서 있던 기사단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데려가라.”
“예..? 예! 체포해라!!”
그의 말에 황제의 기사들은 피를 흘리는 알페카의 목엔 마력 차단 족쇄를 그리고 작고 여린 팔과 다리엔 묵직한 쇠사슬을 채워 그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프.. 플룩스.. 나 아파요.. 나 좀..”
“알페카..”
타악.
‘..!’
안쓰러움에 내가 녀석에게 다가가려 하자, 알레나는 그런 내 가슴팍을 팔로 가로막고는 자비라곤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의 명령이다, 더 이상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
화약냄새가 섞인 밤바람 사이, 나와 녀석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어머니라 해야 하나요? 모습이 많이 바뀌셨네요.”
“...”
녀석을 바라보는 내 눈동자는 숨길 수 없는 떨림에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났더군요, 성좌 중 하나가 죽을 줄이야.. 내가 죽이려고 했는데.”
진심으로 아쉽단 듯 알페카는 날이 나간 자기 샤벨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말하고는 날 웃으며 쳐다보았다.
“그래도 어머니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예요,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만큼은.. 내가 죽이고 싶었거든요.”
스륵.
“프레데리카, 왕세자를 데려가.”
“플룩스님..?”
내게 묶었던 왕세자를 몸에서 풀은 나는 알페카를 경계하며 말했다.
“페르티안과 합류해, 그동안 저 녀석은 내가 맡지.”
“저희도 도우겠습니다, 혼자보단 셋이..”
“하라는 대로 해!”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우리를 지켜보는 알페카를 응시하며 내가 말했다.
“저리 보여도 나와 같은 ‘페르펙티오’ 타입, 같은 오리지널이라도 ‘옵타티오’ 타입인 너희들이 어떻게 할 녀석이 아니야.”
아버지와 세 성좌의 축복받고 태어난 아이, 하지만 그 축복이 후회스러울 만큼 녀석의 힘은 그 책임감과 의무감이 결여된 씰로써 있어서 안 될 불완전한 존재이자 불량품이었다.
그 때부터였을까, 다음으로 창조된 아이들은 힘이 제약된 옵타티오 타입의 마나 하트를 선사받았고, 알페카와 같은 선례를 만들지 않겠단 듯 엄격한 서열과 함께 씰들을 관리했다.
“준비는 모두 끝마쳤을까요? 아님, 더 기다려 드려요?”
“이 자식..”
왕세자 따윈 어찌 되든 자신과 상관없단 듯 순수하지만 집착과 원망이 일렁이는 녀석의 하늘색 눈동자가 나를 꿰뚫듯 바라보고 있었다.
“훗.. 알레나도 급하긴 했나 보네, 너 같은 쓰레기를 감옥에서 꺼내 데려올 정도면 말이야.”
“쓰레기라.. 어머니, 가슴이 아프네요.”
싱긋.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그렇게 말한 녀석은 일순 표정이 굳더니 황금빛 스파크와 함께 모습이 사라졌다.
“건방진..”
파지직
순백의 스파크와 함께 사라졌던 샤벨리아는 감옥 복도 중간에서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성난 사자와 같이 아름다운 황금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밝게 빛나오르는 이슈발랑퀘를 알페카를 향해 날렸다.
쩌저적
‘..!’
“흉내만으론 날 넘어설 수 없다, 알페카.”
“확실히..”
챙강
이슈발랑퀘에 금이 간 알페카의 샤벨이 산산조각이 나는가 싶더니, 엄청난 검기와 함께 그를 요새바닥 아래로 던져 버렸다.
콰아앙 !!!
타악.
엄청난 싱크홀과 함께 바닥아래로 떨어진 알페카를 보고 있단 듯 아까와 달리 비정한 표정의 샤벨리아가 굳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겠단 듯 어느 때보다 차갑게 말이었다.
“멀쩡한 거 알고 있어, 장난 그만하고 올라와. 이 망할 아들새끼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