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섬광의 주인 _ 뇌전(雷電)의 샤벨리아-133화 (133/135)

〈 133화 〉 133. 오리지널

* * *

[ 133. 오리지널 ]

“하하.. 정말 가차 없으시네요.”

무너진 요새의 돌무더기와 함께 엉망진창이 된 아래에서 장난기 섞인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여유로운 표정과 함께 흙먼지를 뚫고 올라온 녀석은 볼품없이 부서진 자기 샤벨을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아~ 아~, 벌써 망가졌네.. 역시 벌레들이 만든 건 제대로 된 게 없네요.”

“너 이 자식..”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인간을 향한 여전한 녀석의 모습에 미간을 찡그린 난 알페카를 노려보았고, 녀석은 그런 내게 잔인하게도 선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만면 가득 지어 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있죠, 왜 그날.. 절 찌르신 거예요?”

“...”

“다른 이는 몰라도 당신만은 내 편이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왜일까, 해맑은 목소리 속에 숨겨진 원망 섞인 울림이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날 만든 건 당신이잖아요. 근데.. 왜 그러셨어요?”

“...”

이해할 수 없단 듯 광기 어린 순수한 눈동자가 나를 책망하듯 바라보고, 샤벨을 쥔 내 손은 미안 함에 미세히 떨렸다.

“왜.. 왜.. 그렇게 날 사랑했으면서..”

“알페카..”

*

*

*

카앙 ­

“알페카 폰 켈뱀부르크!”

하켄 왕국의 왕성 페트로뷔나의 중앙 홀 가운데 어린 소년하나가 몸집보다 커 보이는 족쇄가 채워져, 붉은 로브와 검은색 갑주로 무장한 심문관들의 장대에 목이 제압당해 짓눌려져 있었다. 게다가 베어진 상처가 좀처럼 아물지 않는지 처박힌 석벽타일 아래로 그의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거대한 옥좌 위, 어린 황제로 보이는 황금빛 머리카락의 미소년 옆에 선 중년 남자가 손에 쥔 은빛 창을 강하게 내리치며 자기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아.. 아버지..”

알페카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이제껏 보지 못했던 성난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세르지윈을 애원하듯 바라보았다.

“감히, 네가 인간을 해치다니.. 내가 정한 금기를 그 누구도 아닌 네가!!!”

강렬한 그의 노기에 홀의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한 채 눈치만 볼 뿐이었고, 그것은 황제도 마찬가지였다.

“아.. 아버님.. 알페카의 죄는 마땅히 중죄이지만, 올라운드로서 그가 왕국을 위해 세운 공훈을 생각하면..”

카앙 ­

“윽..!”

“폐하! 능력만 좋다면, 사람됨은 어찌 되도 좋단 말씀이십니까?!”

“아니, 저는..”

“역제가.. 아니, 어미인 프리티마셰가 바란 왕국의 미래가 그런 것입니까?!!”

“죄.. 죄송합니다.”

어린 황제가 세르지윈의 고함에 잔뜩 몸을 움츠리려 고개를 푹 숙이자, 중앙 홀의 많은 가신과 기사들은 한층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무엘!”

“예, 스승님.”

“볼펜뷔텔의 수장으로써 금기를 어긴 씰의 처분을 말해라!”

가신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백금발의 미남자는 구속당한 알페카를 힐끔 바라보고는 정갈히 그의 앞에 무릎을 꿇어선 보고했다.

“씰의 처분은 씰의 몫. 씰 들의 리더인 세 성좌의 의결에 맡기시죠.”

“좋다! 카스토르! 플룩스! 알레나!”

그의 부름에 근처에 있던 세 성좌가 사무엘 뒤로 걸어나와 일제히 세르지윈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너희의 의견을 말해라!”

그러자 달빛과 같은 아름다운 은발과 함께 자비라곤 없는 연보라색 눈동자를 번뜩이는 알레나가 고개를 들며 고했다.

“어둠의 성좌 알레나, 아버지의 금기를 어긴 그의 마나 하트를 즉시 소멸시킬 것을 간청합니다.”

“알레나!”

알레나의 말에 놀란 금발의 플룩스가 화들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 자기 아버지인 세르지윈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빛의 성좌 플룩스, 아버지께 간청합니다. 그의 죄가 크다 하지만 우리 형제들의 아이임은 변함없는 진실. 부디 그에게 자비를 내려 주십시오.”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죄를 지은 아이였지만, 살리고 싶었다. 잘못된 행위를 했다면 그것이 수고스럽다 하더라도 옳은 길로 인도해야 하는 것이 부모로서의 일이 아닌가? 이건 마치 구제할 수 없는 쓰레기란 듯 간단히 처리해 버리자는 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알페카의 짓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냔 말이냐?!”

노기어린 그의 외침에 몸을 움츠린 그였지만, 제발 자비를 내려달란 푸른 눈동자로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의 잘못된 행동은 부모인 세 성좌의 잘못. 어찌 그만 가혹한 형벌을 당해야만 합니까? 차라리 그의 형벌을 저희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흐음..”

플룩스의 애원에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던 세르지윈도 조금은 노기가 수그러드는지 턱을 쓰다듬으며 많아진 생각에 말을 아꼈다. 그러던 그때, 그들 가운데서 밤하늘과 같은 검은색 흑발을 내린 채 조용히 있던 카스토르가 감았던 은청색 눈동자를 떠서는 그에게 말했다.

“균형의 성좌 카스토르, 아버지께 간청드립니다. 알레나의 말도 플룩스의 말도 일리 있는 말, 저는 그들의 말을 타협해 알페카에게 콘다키오(Condícĭo)못에 처할 것을 요청합니다.”

‘..!’

“카.. 카스토르!!”

카스토르의 말에 흠칫 놀란 내가 그를 바라보던 그때, 아버지가 창을 내리치며 판결을 내렸다.

카앙 ­

“좋다! 카스토르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알페카에게 제한없는 콘다키오 형에 처함과 동시에 그 집행인으로 플룩스가 할 것을 명한다!”

“!!!”

‘뭐라고..?’

“자.. 잠시만!”

놀란 내가 벌떡 일어나 아버지를 향해 진심이냔 듯 쳐다보자, 그는 더 이상 들어 줄 말은 없단 듯 내게서 매정히 시선을 떼 고통에 신음을 흘리는 알페카를 노려보며 외쳤다.

“심문관! 어서 저 죄인을 끌고 가라!!”

*

*

*

그날의 일을 회상하는 것일까, 작고 작은 손으로 명치 부근의 제복을 천천히 말아 쥔 녀석은 가슴 아픈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꽤 아팠다구요.. 그 큰 못이 갈비뼈 사이로 천천히 들어와 심장에 박힐 때의 그 고통.. 아시냐구요?”

“...”

모른다. 하지만 못을 내리칠 때마다 마치 내 심장이 대신 으스러져 쪼개질 만큼 고통스러웠던 것은 기억한다. 잔인한 형벌을 이 죄 많은 손으로 치른 이튿날, 어떤 위로도 어떤 위안도 날 치유하지 못한 채 얼마나 많은 자책의 밤을 지새웠던가?

으득.

거대한 못에 비해 너무도 작고 여린 녀석의 몸에 망치를 휘두를 때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녀석의 절규와 신음이 아직도 내 귀를 떠나지 않고 생생히 맴돈다. 하지만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머나먼 과거의 일, 결코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변하지 않는 현재에 빠져 함몰될 수 없는 일.

나는 푸르게 빛나는 눈동자와 함께 녀석을 응시하며 말했다.

“네게 미안 하지 않아.”

“네..?”

“잘못이 있다면, 그렇게 되도록 눈치채지 못한 죄만 있을 뿐.”

파밧 ­

‘..!’

그렇게 말한 샤벨리아가 사라졌다 생각한순간, 일순 알페카의 앞에 나타난 그녀는 밝게 빛나오르는 이슈발랑퀘가 그의 가슴팍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키이이잉 ­

서걱 ­

“큭..!”

부서쥔 샤벨을 돌려 샤벨리아의 검을 비껴막은 알페카의 오른쪽 가슴으로 그녀의 샤벨이 깊숙이 찔러 들어갔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을 노렸단 듯 일순 광기 어린 미소를 지은 알페카가 자신을 찌른 샤벨리아의 손을 강하게 움켜잡으며 외쳤다.

씨익.

“그래야죠, 그렇게 나와야죠!!”

‘이 자식..!’

피잉 ­

순간 빛나오르는 녀석의 하늘색 눈동자와 함께 엄청난 압력이 내 목을 움켜쥐며 으스러질 듯 조여 오기 시작했다.

우득.

“큭..”

“하하하! 어때요? 조금은 제 고통이 느껴지세요?”

숨이 막혀왔다. 정말 내 목뼈를 부러트릴 생각인지 엄청난 무형의 압력이 내 목을 천천히 뒤로 꺾으며 목을 조르듯 파고들기 시작했다.

“으윽..”

“죽어.”

피잉 ­

꽈악.

“죽어!”

피잉 ­

꽈드득 ­

“크으윽..”

“죽어!!!!”

피잉 ­

광기 어린 녀석의 외침이 터질 때마다 하늘색 눈동자가 밝게 빛나며 내 목을 더욱더 강하게 파고들었고, 얼마나 강한 악력인지 이슈발랑퀘를 잡았던 손이 고통에 풀릴 정도였다.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벌써 찰흙처럼 손에 짓이겨져 으스러져 버렸을 무서운 염동력이었지만, 내겐 아니었다.

그저 목숨을 위협받는 지금조차 쉽게 끊을 수 없는 미련에 망설이고 있었을 뿐,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꽈악 ­

“이..”

“응..?”

“이 멍청한 놈!!”

부웅 ­

‘..!’

퍼어억 ­!!!

녀석의 염동력을 무식하게 힘으로 분쇄해 흐트려 버린 나는 그대로 머리를 휘둘러 녀석의 이마에 있는 힘껏 박치기했다.

“컥..!!”

묵직한 소리와 함께 코피와 함께 눈이 뒤집어진 녀석의 흰자위가 보였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가슴팍에 박았던 이슈발랑퀘를 회수해선 이번엔 빗나가지 않을 거란 듯 검에 쥔 손에 힘을 주어 녀석의 마나 하트를 향해 내질렀다.

그러던 그때, 익숙한 이명 소리가 내 귓가를 스친다.

삐이이잉 ­

카아앙 ­!!!

‘..!’

근처에 있었던 걸까, 기절한 알페카를 뒤로 던진 아슈트로가 내 검을 가로막은 모습과 함께 긴장한 눈빛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오랜만이네요. 플룩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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