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 134. 오리지널
* * *
[ 134. 오리지널 ]
“아슈트로.”
나를 가로막은 녀석을 지그시 노려본 나는 이슈발랑퀘에 기운을 불어 넣어 그대로 녀석을 뒤로 날려 버렸다.
카앙
“큭..!”
작은 신음과 함께 도시 아래로 날아간 녀석이 중심을 잡으며 날 올려보던 그때, 뱀처럼 교묘한 불규칙한 검 하나가 틈을 주지 않겠단 듯 내 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채애앵
“너는..”
일반적인 샤벨보다 두텁고 구불거리는 특이한 검에 잠시 눈이 커졌던 나는 이내 눈매가 가늘어지며 공격한 이를 돌아보자 밤바람에 회색 머리칼이 휘날리는 미소년 하나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플룩스.”
“베텔게우스.”
‘알페카 뿐만 아니라 상위랭커 올 라운드 둘이라니..’
세베랑스 왕세자에 대한 관심은 비단 우리뿐만은 아닌지, 꽤 번거로운 녀석들이 대거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키기긱
“흥.. 알레나가 꽤 성대한 선물을 보냈군.”
“곧 그 미소 사라지게 해드리죠, 이단은.. 죽음 뿐이니까요.”
“...”
우린 신을 믿지 않는다. 대신 한 인간의 신념을 믿는다. 그의 이상을 찬양하고, 그의 이념에 기도를 올리고, 그리고 그의 이상에 우리는 전파한다.
씰 하나하나가 그의 충실한 사제가 되어, 그의 거룩한 말에 따라 그리고 그의 고결한 의지에 따라 성스러운 고행이라 일컫는 인간과의 불합리한 계약에 우리를 던진다.
얼마나 많은 형제들이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과 감히 입에 담지 못한 악행에 스러지고 망가져갔던가,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성스러운 그의 이념을 위한 위대한 희생, 반역의 칼날을 든 지금도 내 가슴 한 켠엔 그가 내려 준 신앙이 나를 그리고 내 마나 하트를 움직인다.
꽈악.
하지만 그 선(?)도 빛이 바래 타락할 때도 있는 법. 우린 그의 위대한 사자(?者)이지, 삐뚤어진 집착에 맹신하는 광신도 따위가 아니다.
“너도 눈이 멀었구나, 베텔.”
“성좌였던 당신이.. 할 말은 아니군요, 안 그렇습니까, 이 더러운 이단자..”
녀석의 비난에 난 비릿한 조소함께 검에 힘을 불어 넣으며 외쳤다.
“그게 바로 네가 썩어 빠졌단 거야!!”
우우웅
‘..!’
빛나오르는 흰색 섬광과 함께 엄청난 기운이 이슈발랑퀘를 빛내며 놀라 눈이 커진 베텔게우스를 향해 번져가기 시작했다. 마치 이 모든 것을 정화할 듯 자비 없는 강렬한 빛을 선사하며 말이었다.
***
히이이잉
빛나오르는 흰색 섬광이 블루아 루즈 전체를 순간 뒤덮었다 사라지던 그때, 요새 근처에 도착한 페르티안과 그의 일행은 놀라운 그 광경에 마차를 멈춰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샤벨리아..”
마석에서 벌떡 일어난 페르티안은 불안한 눈동자와 함께 빛이 번쩍였던 요새 위를 바라보았고, 그것은 아티뤼크와 몰트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스윽 – 타악!
“페르티안 님.”
“프레데리카, 그는..”
기절한 한 미남자를 안고 땅에 착지한 프레데키라는 시간이 없단 듯 다급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세베랑스의 왕세자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탈출을..”
“잠시만요, 샤벨리아는요? 그녀는 어디에 있죠?”
그러자 그녀의 옆으로 착지한 킨라라가 요새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그게.. 전하는 추격해온 오리지널을 막는다고 저 위에..”
“뭐라고요?!”
킨라라의 말에 놀란 그가 마차에 내리려 하자, 아티뤼크는 그의 손목을 낚아채 잡아 쥐며 말했다.
“어딜 가시려 합니까?!"
"저기, 샤벨리아가..!"
왜 그녀만 관계되면 차분했던 마음도 이리 쉽게 흐트러지는 걸까, 페르티안은 심상치 않은 발루아가 요새의 분위기에 걱정가득한 표정으로 그녀가 있을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아티뤼크는 그러면 안 된단 듯 단호한 얼굴로 그의 손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정녕 그걸 샤벨리아님이 원하실거로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샤벨리아님이 주신 시간을 헛되게 하시면 안 됩니다. 그녀를 믿으세요, 고작 씰 몇에 간단히 쓰러질 분이 아니십니다.”
"아티.."
잠시 망설이던 그는 이내 알겠단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에 표정이 밝아진 프레데리카와 킨라라는 데리고 온 왕세자를 마차에 싣기 시작했다.
"다 되었습니다."
“흐음.. 남작.."
몰트겐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요새 위에서 시선을 떼지 못 하는 그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묻자, 흔들리는 눈동자로 요새를 올려다보던 페르티안은 결심한 듯 주먹을 쥐고는 더는 미련을 주지 않겠단 듯 마석에 앉으며 말했다.
"가시죠."
"그럼, 출발하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몰트겐이 외치자, 마차는 다시금 말을 몰아 요새를 빠져나갔고, 요새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제국의 헌병군은 다시금 그들의 마차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
“콜록콜록..”
후두둑
무너진 석벽에서 기괴한 사검이 나와 땅에 박히는가 싶더니 먼지로 뒤짚어쓴 베텔게우스가 기침하며 돌무더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이지 무모하고 대담한 공격.. 이네요. 전에는 이러시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그러자 샤벨리아는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허리에 손을 얹고는 베텔게우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흥! 원래 이게 내 성격이야. 왜? 감당 안 돼?”
“훗.. 정말 많이 달라지셨네요.”
씰은 마스터의 영향을 받는다고 했던가? 전생의 연인이자, 프리티마셰의 후생인 페르티안과의 계약 때문일까, 녀석의 말대로 난 이전의 내가 아닌 오리지널인 그의 성격에 가까워져 있었다.
긴 세월을 뚫고 찾아온 그의 피는 죽어 있던 내 마나 하트를 뜨겁게 불태우며 내 육체를 움직이게 하고, 그와의 유대감은 오랫동안 성숙하지 못했던 내 영혼에 한 줄기 빛이 되어 안식을 주었다.
한 때, 혼란스러워 이 감정에 주저했던 때도 있지만 지금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에 대한 내 마음은 진심이고 더 이상 누군가의 분신이 아니라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나임을 자각하고 있단 걸 말이다.
스릉
“하지만 그렇다 한들 당신이 불리한 건 변함없죠.”
“뭐..?”
피잉
‘..!’
내려앉는 흙먼지 사이에서 번쩍이는 하늘색 두 눈동자가 보이는가 싶더니, 일순 내 몸이 무언가에 묶인 듯 옥죄어지기 시작했다.
“아.. 알페카..”
“큭큭.. 어머니, 너무 여유로우신 거 아니에요?”
언제 깨어난 것일까, 샤벨을 잡으며 나를 경계하는 아슈트로와 베텔게우스 사이로 천사와 같은 순수한 미소를 머금은 알페카가 걸어 나왔다.
꽈아악
“큭..”
“그 목.. 그대로 비틀어 드리죠. 아슈, 베텔.”
끄덕.
귀여운 얼굴과 달리 싸늘하게 중얼거리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아슈트로와 베텔게우스가 약속이나 한 듯 땅을 박차며 내게 쇄도해 오기 시작했다.
‘제길.. 모.. 몸이 제압당해 피.. 피할 수 없겠어..’
알페카의 염동력 때문에 움직임이 현격이 둔해진 지금, 아슈트로의 신속과 베텔게우스의 사검을 피할 순 없었다. 내 귀를 때리는 스산한 이명과 마나 하트를 교활히 노리고 위협적으로 찔러오는 사검의 끝자락을 낭패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때였다.
“안 돼!!”
피이잉
‘..!’
엄청난 마력과 함께 녹색 눈동자만을 치켜뜬 데브가 귀엽게 손을 앙 쥔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의 권능인지 마치 시간을 제어하듯 모습이 사라져 보이지 않던 아슈트로와 베텔게우스가 난감하면서도 당황어린 표정으로 바로 내 코앞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손에 쥔 샤벨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플룩스 다치게 하지 마!!”
“큭.. 데브..”
“성가신 것..”
둘은 데브의 시간제약에 베겨낼 재간이 없는지 작은 신음과 함께 힘겹게 눈동자를 돌리며 갑작스레 나타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던 그때, 은빛 섬광과 함께 창을 쥔 키탈파가 빠른 속도로 알페카에게 쇄도하며 외쳤다.
“네가 그 문제의 넘버 원이구나!”
으득.
“네가 왜 아버지의 창을..”
시이잉
콰득!!
‘..!’
날카로운 그녀의 찌르기에 놀란 알페카가 급히 권능을 수거해 몸을 비틀어 보았지만 어느새 날아온 창은 알페카의 오른쪽 어깨를 정확히 관통하며 그를 꿰뚫은 채 몇십 미터를 질질 끌고 갔다.
주륵
“끄아악!! 이놈!!!”
“아.. 아버지의 인테리티오(Interítĭo)창을 맞고도 버틴다고..?”
찔린 순간 어떤 씰도 육체를 붕괴시킨다는 세르지윈의 유산이자 키탈파가 선사받은 창이었다. 하지만 그런 창에 꿰뚫려 오른쪽 어깨가 괴사가 되었음에도 알페카의 마나 하트는 강렬한 빛을 선사하며 육체를 유지시키고 있던 것이었다.
“네.. 네가 키탈파구나.”
움찔.
괴랄하게 올라간 그의 사악한 미소가 귀여운 얼굴과 달리 공포감을 선사했다. 그렇게 떨리는 손으로 창을 잡고 있던 그때, 왼팔을 들어 키탈파의 창으로 만신창이가 된 자기 어깨를 잡고는 알페카는 이렇게 말했다.
“진짜 싸움을 보여주마, 사랑스런 동생아.”
씨익.
“..!”
파앙 !!
“키탈파 피해!!!”
“아..”
자기 오른쪽 어깨를 그대로 날려 버린 알페카는 왼손 하나로 충분하단 듯 섬광 같은 움직임으로 놀란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고, 그 모습에 위험을 감지한 내가 소리를 지르며 하나의 섬광이 되어 쏘아져 날아갔다.
성좌들만이 아는 비밀, 알페카의 진실된 무서움은 카피도 염동력도 아니었다. 그 어떤 것으로도 그를 소멸시킬 수 없는 임모털, 바로 불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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