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2화 (2/254)

이게 나의 운명인 것인가 (2)

짹짹짹!

새벽부터 새들이 오두방정이었다.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시끄러운 느낌이다.

재잘거리는 소리가 머리를 쪼는 것 같았다.

그 소리를 들으며 뒤척이고 있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요란스러운 기상나팔 소리는 좀처럼 울리지 않고 있었다.

맞다!

나 어제 전역했지.

누운 채로 한동안 뒹굴뒹굴하자.

그제야 전역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병 때부터 전역하는 그날까지 부숴버리고 싶던 기상나팔 소리도 이제는 안녕이다.

자유라는 게 이렇게 상쾌한 거구나.

갑자기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더는 새벽바람 맞아가며 빼액 소리를 지를 일도 없고 밤마다 자다가 일어나서 근무를 서는 일도 이제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습관이라는 게 무서웠다.

시계를 보니 오전 6시였다.

인체라는 것은 정말 신기하구나!

누가 깨우지 않아도 저절로 그 시간에 맞춰서 눈을 뜨는 게 오히려 무서워졌다.

아마 한동안은 이럴 거 같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이가 없었다.

내가 잠든 곳이 소파 위였기 때문이다.

마지막 기억을 떠올려 보면 아무래도 술을 마시고 거실 소파에 그대로 뻗은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고작 그거 마시고 뻗은 건가?”

내 주량은 소주 두 병이 넘는다.

마음먹고 마시면 그 이상도 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어제 마신 것은 미니어처 병에 담긴 술이 전부였다. 아무리 독한 술이라도 고작 그 정도를 마시고 뻗진 않는다.

한편으로는 조금 이해됐다.

내가 조금 피곤한 상태이긴 했다.

전역하자마자 곧장 삼척으로 달려왔다.

운전도 제법 오랜 시간 했고 여기까지 오는 길도 상당히 험한 편이었다. 운전을 처음 배운 미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길이었다.

꼬불거리는 산길이었다.

머리털 나고 처음 그런 길을 운전했다.

기존에 내가 운전했던 길은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길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에서는 대중교통이 편했기에 운전할 일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다시 누웠지만,

생각보다 잠이 안 와서 세수부터 했다.

시골에 있는 집이었으나 삼촌이 몇 해 전에 업자를 불러 크게 손을 봐서 꽤 깔끔했다.

그것은 일종의 투자와 같았다.

작은할아버지가 만드는 술.

이곳 오저당의 벽향주는 삼촌의 루프톱 바에서 제법 많은 판매량을 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매년 적자를 내고 있는 양조장을 돕기 위해 벌인 일이지만, 일반 소주보다 맛이 좋고 고급 전통주라 인기가 많았다.

처음부터 잘 팔리지는 않았다.

삼촌은 오랜 시도 끝에 단골을 만들었다.

심지어 전용 칵테일도 개발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삼촌 가게만의 유니크함이 되었다.

나를 이곳까지 보낸 이유 중의 하나가 재고가 떨어져서 급하게 공수하기 위함도 있었다.

“슬슬 정리해볼까.”

꾸물거릴 시간은 없었다.

가게를 열기 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려면 적어도 정오까진 모두 끝내야 어두워지기 전에 서울에 도착한다.

어제 대충 한 차례 정리했으나 아직 깊숙하게 살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한계는 있었다.

적어도 사과 박스 하나 정도였다.

그 이상은 보관하는 것도 힘들었다.

당연히 할머니의 사진도 그중의 하나였기에 의자를 놓고 그 위로 올라갔다.

적어도 저건 가져가야지.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액자를 철사로 고정해놓은 탓이었다.

꼬인 상태로 녹이 슬어서인지 아무리 애를 써도 떼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와··· 꿈쩍도 안 하네.”

포기해야하나 고민할 무렵.

등 뒤에서 인기척이 살짝 느껴졌다.

별생각 없이 돌아본 나는 심장이 철렁였다.

창 너머에서 누군가 뚫어지게 내 뒷모습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심지어 손에는 호미가 쥐어져 있었다.

곡성과 이끼 같은 영화가 떠올랐는데 실제로 눈이 마주치자 버럭 호통까지 치셨다.

“이노옴! 훔쳐 가려면 술이나 가져갈 것이지. 왜 남의 할망구 사진을 가져가려는 거야?”

이게 말로만 듣던 사자후인가.

깜짝 놀라 의자 위에서 중심을 잃을뻔했다.

허우적거리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고 내려온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밖을 내다봤다.

그리고 곧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잠시만요! 할아버지, 저 도찬이에요.”

다행히 잘 아는 분이었다.

예전보다 흰머리가 성성해졌으나,

양조장에서 일하는 정씨 할아버지였다.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할아버지는 호미를 치켜들며 경계했다.

하긴 이해가 되긴 했다.

예전에 왔을 때는 지금과 꽤 달랐다.

그 무렵에는 머리가 길어서 묶고 다녔다.

반면에 지금은 막 전역한 터라 머리카락이 짧아졌고 살도 제법 쪄서 못알아보실 수밖에 없었다.

“저 기억 안 나세요?”

“도찬이? 여름마다 놀러 오던 그 꼬맹이가 이렇게 컸다고? 야야라! 맞네, 맞아. 어릴 때 얼굴이 아직 남아 있네.”

“그간 잘 지내셨어요?”

“나야 뭐 별일이 있단가. 형님 장례식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는 직접 가봤어야 했는데 미안혀···.”

두 분의 사이는 각별했다.

거의 형제처럼 지내셨던 분들이다.

30년 넘게 양조장에서 같이 일하셨으니 오히려 친형제보다 더 애틋한 관계였다.

하지만 정 씨 할아버지도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았기에 서울까지 오진 못 하셨다.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그때는 아직 군대에 있을 때라 삼척에서 장례를 치르기 조금 어려웠어요.”

오풍리에서도 조문을 오긴 했다.

이장님이 직접 마을 어르신 몇 명과 함께 서울까지 오셨고 직접 오진 못해도 그분을 통해 조의금을 보낸 분들도 제법 많았다.

하지만 오풍리에 사시는 분들의 대부분이 고령인 터라 많이 오실 수는 없었다.

삼촌이 나를 보낸 이유이기도 했다.

적어도 고맙다는 인사는 드려야 했다.

그리고 그걸 핑계 삼아서 이곳 양조장을 처분하는 것도 이장님과 상담할 생각이었다.

잠시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정 씨 할아버지는 열쇠 꾸러미를 꺼냈다.

“이거 받어. 양조장 열쇠야.”

“할아버지, 제가 이곳을 운영할 수 있는 상황이···.”

“무슨 말 하려는 건지 알아. 어차피 형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끝난 이야기야. 나도 이제 늙어서 일하기 힘들었는데 잘 됐지.”

“죄송합니다.”

평생을 일하신 곳이다.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쉬울까.

하지만 마음에 없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이제는 몸이 예전처럼 따라주지 않는다며 정 씨 할아버지는 씁쓸하게 웃었다.

어차피 예정되어 있던 결말이긴 했다.

전통주의 명맥이 끊기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워하시는 느낌이었으나 그걸 내게 털어 놓지는 않으셨다.

“앞길이 창창한데 발목을 잡을 수는 없지.”

“당장 그만두시지 않아도 돼요.”

“나 혼자서는 술을 담글 수도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래도 형님에게 한 약속이 있으니 정리될 때까지 이곳은 내가 봐줄 테니 염려 안 해도 돼.”

계속해서 만류해보았지만,

정 씨 할아버지는 괜찮다고 몇 번이나 고사하고 그대로 발길을 돌려서 나가셨다.

왠지 어깨가 축쳐진 느낌이었다.

당연히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의 마음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오랜 추억이 서려있는 양조장을 내멋 대로 폐기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을 운영할 여력도 시간도 없었다.

당장 내년이면 다시 복학도 해야 하고 양조장을 운영할 돈도 내게는 전혀 없었다.

차라리 삼촌이 맡아서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으나 그럴 생각이 있으셨다면 벌써 뭐라도 언질을 해주셨을 것이다.

그 뒤로는 본격적으로 유품 정리를 했다.

혹시라도 놓치는 것이 없는지 서랍과 장롱 같은 곳도 주의 깊게 살폈다. 삼촌이 말하길 어르신들은 숨기길 좋아하신다고 했다.

당연히 장판 아래도 들춰봤다.

하지만 나오는 것은 꾸릿한 냄새뿐,

혹시나 싶었던 지폐 다발이나 그런 것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얼추 정리가 끝나자 사과 박스 하나가 가득 찼다.

“여기는 끝난 것 같고, 이제 술을 옮겨볼까.”

다음 차례는 술을 싣는 것이다.

아직 이곳 양조장에는 작은할아버지가 쓰러지기 전에 만든 술이 제법 남아 있었다.

당연히 삼촌이 공짜로 가져가진 않았다.

이곳에서 가져가는 술만큼 값을 치른다고 했는데 내 주머니로 들어오진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처리해준 상속세.

그것부터 갚기로 이야기되어 있었다.

조금 전에 정 씨 할아버지가 준 열쇠를 들고 한옥 옆에 있는 양조장의 문을 열었다.

입구와 내부는 상당히 청결했다.

매일 청소하는 티가 났다.

거미줄은 물론 먼지 한 톨도 안 보였다.

내부에는 오크통이 여럿 보였는데 벽향주를 더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원래 청주는 사케와 달리 옹기에서 숙성하는 것이 정상이나 방법이 없었다.

주변을 살피며 안으로 걸어들어가던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양조장 내부에 날아다니는 것이 꽤 많이 있었다.

파리 같은 것은 아니었다.

숫자도 적지 않았다.

최소 수십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그걸 본 나는 곧장 달려 나와서 문을 닫았다.

거의 반사적인 반응에 가까웠다.

벌레가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에이씨···. 장수말벌 같은데 이걸 어쩌지?”

크기가 그 정도쯤 되었다.

말벌은 일단 피하고 봐야 했다.

정 씨 할아버지를 불러야 하나 아니면 119를 불러서 처리해달라고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한 끝에 나는 다시 들어가서 확인하기로 했다.

혹시 박각시 나방이나 다른 것일 수 있다.

신고하기 전에 확인해야 했다.

문을 아주 살짝 연 뒤.

머리를 조금 들이밀어 안을 살폈다.

하지만 그걸로는 정확하게 살필 수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제대로 보일 것 같아서 조심스레 들어가니 뭔가 이상했다.

술통 부근을 날아다니고 있는 것은 곤충이 아니라 사람의 형태에 가까웠다.

“술이 덜 깬 건가. 헛것이 다 보이네.”

확실히 말벌이나 곤충 종류는 아니었다.

내가 실성한 걸까? 아니면 술이 덜 깬 걸까?

아무리 눈 씻고 바라봐도 변하는 건 없었다.

사람의 형태를 가진 그것들은 심지어 옷차림도 굉장히 독특했다.

사극에 나오는 사람들과 흡사했다.

일부는 선비처럼 차려입고 곰방대 같은 것을 쥐고 오크통 위에 앉아 있기까지 했다.

무슨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았다.

그래도 말벌이 아니라 다행인가.

아니, 저게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딱히 위험해 보이지 않았기에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손을 크게 휘둘러 낚아채 봤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마치 민들레 씨앗 같았다.

바람에 날려서 이리저리 날아다니기 시작했는데 심지어 즐기는 표정까지 지었다.

아, 얄미워!

그걸 보니 오기가 생겼다.

어떻게든 잡아보겠다며 애를 썼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고 잠시 후에 거친 숨을 내쉬며 뻗은 것은 오히려 나였다. 숨도 쉬지 않고 쉐도우 복싱을 한 느낌이었다.

잠시 그러고 있자 그것들은 이제 더는 관심이 없어진듯 조금씩 멀어져갔다.

그런데 녀석들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양조장을 채운 술통에 앉아서 마치 제 것인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주모 복장을 한 녀석도 있을 정도였다.

이 정체 모를 것들은 오크통을 제집 드나들듯이 술을 나눠주고 있었다.

그때 보이는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술은 음미하며 환한 웃을 지었고 또 어떤 술은 토할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그 차이가 뭔지 상당히 궁금해졌다.

나는 그중에서 반응이 좋지 않은 오크통의 마개를 열어서 살짝 맛을 보기로 했다.

뽀오옥!

마개가 열리는 소리는 청량했다.

이곳에서 만드는 전통주는 소량이다.

시중에 내보내기에는 가격도 높고 관리를 하는 것도 두 어르신이 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오크통 자체도 그리 크지 않았다.

가장 큰 것도 100리터 미만이었다.

일단 잔과 스포이트를 챙겨서 소량의 청주를 뽑아낸 뒤에 조심스럽게 맛을 보았다.

하지만 머금고 있던 술을 넘기기도 전에 모조리 뱉어낼 수밖에 없었다.

“푸읍! 이거는 완전히 맛이 갔잖아?”

숙성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았는데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마개를 열자 몰려든 정체불명의 그것들조차 코를 막고 다급하게 뒷걸음질을 쳤다.

완전히 식초가 다 되었다.

반대로 호응이 좋은 오크통은 달랐다.

확실히 깊은 맛과 향이 우러나오는 것이 제대로 시간이 축적된 느낌이 들었다.

아까와 달리 신난 표정으로 술통 안으로 들어가 헤엄치는 것들도 있었다.

그걸로 한 가지 추측이 가능했다.

양조장 안에 보이는 것들의 정체는 알 수 없으나 술의 상태를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예전에 삼촌이 술자리에서 말해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천사의 몫(Angel's Share).

술은 숙성하는 과정에서 증발한다.

보통 매년 2%가 증발하는데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대만은 10%나 된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그렇게 사라지는 술을 천사들이 마시는 것이라 말하고는 했다.

어쩌면 천사들이 실존하는 것 같았다.

혼자 보기 아까운 모습이라 스마트폰을 꺼내서 촬영해보았으나 부질없었다.

코앞까지 다가가서 찍었으나 영상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궁금한 게 있었다.

도대체 이것들이 왜 내 눈에 보이는 걸까.

그 이유가 무엇보다 궁금했다.

“뭐가 달라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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