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7화 (7/254)

처음이지만, 그래도 괜찮아 (3)

술맛의 절반은 정성이다.

작은할아버지는 항상 그 말을 했다.

술을 빚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막걸리와 달리 벽향주는 준비되어 있는 기계화 설비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생산량이 많지 않았기에 모든 과정은 옛 방식 그대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어렵지는 않았다.

창고에 보관 중인 멥쌀가루를 꺼내 체를 이용해서 한 차례 걸러내는 게 시작이다.

하얀 가루를 뒤집어쓰며 모두 걸러내자 수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났다.

“얼추 된 것 같으니 선생님 모셔올게.”

그리고는 곧장 양조장으로 뛰어갔다.

네 놈의 속셈을 내가 모를 줄 아냐.

아주 잠시나마 에어컨 바람을 쐬려고 저러는 게 분명했다. 참고로 선생님은 정 씨 할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작은할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마을 사람들도 그분을 정 씨 할아버지라 불렀지만, 버릇없게 우리까지 그렇게 부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감이 좋게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는 마스터 디스틸러라는 호칭도 조금 고려했었다.

해외의 증류소에서는 술 빚는 장인이자 생산 책임자를 그렇게 부른다.

문화재이신 덕분에 자격은 충분히 있으셨으나 그건 할아버지가 거부했다.

양놈들 호칭 따위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그래서 절충된 호칭이 선생님이었다.

우리가 배우는 입장이었다.

그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합당했다.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선생님은 벽향주 비법 전수에 충실했다.

시작 전에 기본적인 술을 빚는 과정을 설명하셨는데 단숨에 습득하긴 어려웠다.

수십 년 동안의 노하우는 꽤 방대했다.

분명히 온갖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선생님이 이곳에서 일하며 쌓은 경험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만큼 벽향주를 만드는 과정은 꽤 복잡했다. 동동주처럼 한 번의 작업으로 만드는 단양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 번의 작업이 필요한 삼양주.

벽향주는 두 번의 덧술을 넣는 술이다.

전통주에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두 번의 작업을 거치는 이양주보다 한 차례 더 손이 가는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삼양주는 이양주보다 독한 맛이 덜하고 향이 깊어지며 술의 빛깔도 맑아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술은 당연히 더 고급스러운 전통주로 구분된다.

잠시 후에 수호와 함께 나온 선생님은 우리끼리 작업해 놓은 것을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수고했어. 이제 여기에 미지근한 물을 넣어서 죽을 쑤면 돼.”

“보통은 고두밥을 쪄서 술을 빚는 줄 알았는데 벽향주는 아닌가 봐요?”

“고두밥이 아니라 지에밥이 맞아.”

나는 수호의 오류를 정정해줬다.

술을 빚기 위해 짓는 밥은 고두밥이 아니라 지에밥이라 불러야 맞다.

그리고 죽으로 술을 빚으면 생산되는 술의 양이 많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는 하다.

흔히 사용되는 지에밥을 이용한 술은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죽과 같은 다른 방식은 처리 과정이 한 차례 더 많다.

더구나 지에밥은 더 맑고 가장 높은 도수의 술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렇다고 지에밥으로 바꿀 수는 없다.

벽향주를 빚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나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면 죽으로 술을 빚는다는 것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적어도 서너 가지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수호는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듣는 거라 그런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벽향주도 종류가 여러 가지인가 봐요?”

“기록된 고서마다 방식이 조금씩 달라.”

“사장님과 함께 재현한 오저당의 벽향주는 그중에서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의 방식과 가장 흡사하지.”

“그런데 선생님은 어떻게 평안도의 술이라 알려진 벽향주를 빚는 방법을 배우신 거예요?”

“아주 어릴 적에 떠났지만, 태어난 곳은 평안도야. 우리 가족은 대대로 술도가 집안이라 옛날부터 벽향주를 빚었거든.”

느낌인지 몰라도···.

선생님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마치 고향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섣부른 오해였다.

선생님이 가족과 함께 피난 내려온 게 두 살 무렵이라 기억조차 없다고 하셨다.

“하하. 기억도 안 나는 곳을 고향이라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 내게는 이곳 오풍리가 고향이나 마찬가지야.”

그렇게 말하면서 주변을 한번 둘러보는 모습이 아련하게 느껴졌다. 머지않아 떠난다는 것이 실감 나신 것 같았다.

잠시 아련한 눈빛을 하고 있던 선생님을 뒤로하고 우리는 작업을 이어갔다.

죽을 쑤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미지근한 물을 넣고 섞으면 그만이었다.

당연히 물의 양은 옆에서 선생님이 조절해주었는데 거의 작업을 끝낼 무렵에 누룩을 추가했다.

“이게 우리 양조장의 자랑이지.”

누룩에 대한 자부심은 상당했다.

일반적인 양조장과 달리 오저당은 토종 누룩을 직접 만들어서 술을 빚는다.

국내의 술도가 대부분이 값싸고 맛도 일정하게 만들어지는 일본의 누룩인 입국(粒麴)을 사용하는 것과는 달랐다.

오저당의 역사는 누룩 그 자체였다.

벽향주를 다시 되살리는 일보다 오히려 자체적인 누룩을 만드는 일이 어려웠다고 작은할아버지는 항상 강조하셨다.

무엇보다 균일한 맛을 내기 위해 들인 노력이 상당했던 거로 알고 있다.

“누룩은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확실히 수호는 질문이 많았다.

어린 시절부터 자주 놀러 오던 나는 틈틈이 본 게 있었고 누룩도 빚어봤다.

술에 대한 지식도 작은할아버지와 삼촌 등을 통해 들은 바가 꽤 많았다.

술자리에서 온갖 잡다한 술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기던 분들이었다.

반면에 녀석은 처음 겪어보는 경험이라 모든 게 신기해 보이는 거겠지.

내 경험을 보자면 술을 빚는 것보다 누룩을 빚는 것이 훨씬 더 힘들었다.

자칫 썩거나 진균의 번식에 실패하기에 훨씬 더 섬세함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누룩이 잘못되면 술의 맛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오저당에서 만드는 벽향주의 핵심은 이 누룩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수호의 질문을 들은 선생님은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그 뒤로도 눈을 반짝이며 수많은 질문을 했다. 그러나 정작 내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보잘것없는 지식을 가지고 자만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작업을 마치고 보관을 위해서 식히고 있는 죽 주변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양조장 내부에서 보았던 것들.

그 녀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참고로 나는 그걸 요정이라 불렀다.

천사라 부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작은 탓에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이름을 붙여도 상관없다.

어차피 내 눈에만 보이는 것들이다.

정확히 그것들의 정체가 뭔지 알려줄 사람도 없으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

‘아주 난장판 그 자체네.’

요정들은 야단법석이었다.

캣닢에 취한 고양이 같달까.

녀석들의 관심은 무척 지대했다.

아직 발효도 안 된 밑술 재료 앞에서 보여주는 행태는 제각각이었다.

어떤 요정은 손가락으로 죽을 휘젓고 있었고 일부는 열심히 토론 중이었다.

분위기는 꽤 치열했다.

그래도 나쁜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기대하는 느낌이 전해졌다.

요정들의 말이 들리는 것은 아니나 표정과 몸동작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심지어 옹기에 들어가서 뜨뜻한 죽의 표면에 등을 지지는 녀석들도 있었다.

녀석들이 흥분하는 이유가 있었다.

모처럼 양조장에서 술을 빚는 중이다.

작은할아버지가 쓰러지신 게 4개월 전쯤이다. 그때부터 오저당은 어떤 술도 빚지 않고 있었다. 술에 미친 녀석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반응을 보면 첫 단추는 잘 끼운 것 같았다.

그 뒤로는 해야 할 일이 없었다.

옹기에 넣고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이제부터는 우리 대신에 시간이 열일을 해줘야 한다. 날이 따듯해진 덕분에 밑술의 발효는 사나흘 정도 걸린다.

날이 따뜻한 덕분에 다른 계절에 비해 발효하는 기간이 짧았다.

완성까지는 30일이 걸린다고 했다.

그 사이 두 차례나 더 작업해야 한다.

벽향주가 삼양주인 탓에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여름이 다가오는 시기라 그 정도였지 지금이 추운 겨울이었다면 일주일쯤은 더 걸렸을 것이다.

그동안 멍하니 기다리진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술은 계속 빚었다.

선생님의 지도하에 매일 술을 빚으니 양조장에 있는 옹기는 술로 가득 채워져 더는 담아 놓을 공간이 없을 정도였다.

오크통은 아직 사용하지 않았다.

적어도 삼촌의 기준은 통과해야 했다.

질 낮은 벽향주를 보관해봤자 돈과 시간 모두를 손해 보기에 신중해야 했다.

그리고 30일째가 되던 날에 우리는 첫날에 빚어서 숙성이 끝난 벽향주를 담은 옹기를 개봉하기로 했다.

“제대로 만들어졌겠지?”

수호는 걱정이 앞서 보였다.

충분히 녀석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기존과 같은 맛이 안 나오면 한 달 내내 고생한 것이 수포가 될 수 있다.

제값을 받으려면 예전의 벽향주와 어느 정도 비슷한 수준이라도 되어야 비벼볼 가능성이라도 있을 것이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우리끼리 맨땅에 헤딩하며 술을 빚은 것도 아니잖아.”

“삼촌이 만족해야 성공이라며.”

“술맛에 있어서는 깐깐한 분이기는 해도 선생님이 옆에서 같이 빚어주셨잖아.”

작은 것 하나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해주셨다.

그 덕분에 배운 것이 정말 많았다.

한 달이 지난 지금은 기초적인 작업 정도는 우리끼리 진행할 정도였다.

모든 것은 계량 덕분이다.

기존처럼 눈대중으로 하진 않았다.

물 한 바가지를 넣을 때도 모두 계량을 하고 있고 보관 창고의 온도도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하나 있었다.

생산되는 술이 생각보다 많은 편이었다.

수십 년 동안 같은 양의 재료를 사용해 벽향주를 빚어오던 선생님의 말씀이시니 확실히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보통은 오차가 그리 크지 않다.

술을 빚을 때마다 온도와 습도 여러 조건에 의해서 차이가 발생해도 결과물에 크게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매번 술을 빚을 때마다 예상치를 뛰어넘어 옹기에 담긴 술이 넘치는 일이 생기고 있었다.

그건 선생님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 말은 기존과 뭔가 차이가 있다는 것인데 나는 그 원인을 요정이라 보았다.

요정들은 틈만 나면 보관 창고에 들어가서 술이 익어가는 것을 지켜봤다.

당연히 반길 만한 일이다.

같은 양의 재료를 써서 더 많은 술이 나오면 그만큼 내게는 이득이었다.

생산 원가가 낮아지는 만큼 얻게 되는 순수익이 늘어나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요즘들어 요정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선생님 기다리시겠다. 어서 가자.”

우리는 서둘러 양조장에 들어섰다.

옹기에 담아 숙성 중인 벽향주는 그 안에 있는 숙성 창고에 들어 있었다.

온기가 가득한 그 안에 들어서자 마침 선생님이 가장 처음에 담은 벽향주에 국자를 넣어서 술을 뜨고 계셨다.

또르르륵···.

도자기 잔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무척이나 청량했다. 제발 맛도 그만큼 깔끔하게 잘 나왔으면 좋을 텐데.

가장 최악의 경우가 누룩 같은 잡향이 술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도 향이 좋은 것은 식초가 되진 않은 것 같았다.

“선생님, 맛이 어떤가요?”

“설마 예전이랑 차이가 있나요?”

“···.”

나와 수호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연달아 질문했으나 선생님은 말이 없었다.

심지어 머리를 갸웃거리고 계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는 점점 더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혹시 술을 빚는 과정 중에 뭐가 잘못된 것일까.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

지금껏 술을 빚어 창고를 가득 채운 옹기에서 발효 과정을 중인 술도 문제다.

지금까지 들어간 돈이 적지 않았다.

이미 삼촌이 투자한 삼천만 원의 돈은 멥쌀 등을 사느라 거의 다 써버렸다.

너무 자만했던 것이었을까.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여전히 술잔을 들고 진중하게 맛을 음미하고 계셨다.

더는 참을 수 없어서 잔을 들어 술을 따르자 수호도 내 앞으로 자신의 잔을 내밀었다.

잔을 반쯤 채운 뒤.

우리는 동시에 벽향주를 마셨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감탄사가 터졌다.

이게 진짜 우리가 직접 땀을 흘려가며 빚은 벽향주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느낌상으로는 딱 한 번 맛을 보았던 몇 년쯤 숙성시킨 벽향주와 엇비슷했다.

선생님이 왜 아무런 말 없이 술을 음미하고 계셨는지 알 것 같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수호와 나는 서로 마주 보며 소리쳤다.

“대박! 성공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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