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8화 (8/254)

처음이지만, 그래도 괜찮아 (4)

처음으로 빚은 술이 완성되었다.

나는 곧장 그 사실을 삼촌에게 알렸다.

당연히 삼촌은 우리가 빚은 벽향주가 예전 맛 그대로인지 꽤 궁금해했다.

그래서인지 당장 그걸 가지고 어반 스카이로 가지고 올라와달라고 하셨다.

안 그래도 가야 하긴 했다.

벽향주가 거의 다 떨어졌다고 한다.

당연히 그 길에 수호도 동행했는데 유나 누나를 보러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녀석이 아니었다.

실제로 어반 스카이에 갈 때마다.

수호는 빠지지 않고 동행하고 있었다.

매주 목요일 정오쯤에 출발해서 토요일 아침 일찍 돌아가는 패턴이었다.

그렇다고 녀석이 쉬는 것도 아니다.

내가 유나 누나의 서브를 보는 것처럼 수호는 지철이 형을 도와서 홀을 맡았다.

누나의 일을 커버해줄 바텐더는 구했으나 서빙 알바를 구하기 힘들었다.

시급은 괜찮았으나 너무 늦게 끝나기에 근처에 사는 게 아니면 조금 애매했다.

하지만 이것도 이번 주로 끝이다.

어제 지철이 형한테 들어보니 다음 주 월요일부터 알바가 출근하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수호의 표정은 출발할 때부터 줄곧 그리 좋지 않았다.

일을 핑계로 누나 곁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던 녀석다웠다.

“죽으러 가는 거냐? 인상 좀 펴라.”

“연애도 못 해본 너는 나의 이 지고지순한 순정을 절대 이해 못 할 거야.”

“웃기고 있네. 너도 마찬가지잖아.”

“이 몸은 고등학교 때 사귀어 봤다니까.”

“고작 이틀 사귀고 차였다며 그런 것도 사귀었던 거로 치냐?”

수호가 순정파이긴 하다.

반대로 말하면 더럽게 끈질겼다.

누나는 이 녀석에게 관심조차 없었다.

오히려 내 눈에는 지철이 형이랑 뭔가 묘한 분위기가 느껴질 때가 많았다.

솔직히 수호보단 형이 더 어울렸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 친구라 종종 티격태격해도 사이가 나쁘진 않았다.

옆에서 오랜 기간 지켜보니 지철이 형도 누나에게 호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걸 수호라고 모르진 않았다.

어반 스카이 지하에 주차를 마친 뒤.

수호와 나는 카트에 술을 싣고 삼촌의 가게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영업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우리가 온다고 하니 미리 출근해 있던 삼촌은 곧장 벽향주부터 살폈다.

“그게 너네가 만든 벽향주야?”

“주문하신 대로 기존에 만든 벽향주 7박스랑 새로 만든 것도 가져왔어요.”

“일단 안으로 옮기자.”

“이건 저희가 할 테니 오픈 준비부터 하세요.”

고작 몇 박스에 불과했다.

어반 스카이의 창고에 술을 옮긴 뒤에 우리도 오픈 준비를 잠시 도와드렸다.

그런 뒤에야 삼촌은 형과 누나를 불러서 모았다.

“지철아, 오픈까지 20분 정도 남았는데 이 녀석들이 만든 술부터 확인해보자.”

“곧 영업 시작인데 저희도 같이요?”

“나 혼자 결정하는 것보다는 더 정확할 거 아냐. 그리고 유나 너는 계속 칵테일 만들려면 확실하게 확인해야지.”

“당연하죠. 겨우 한두 잔 마시고 취해서 일을 못 할 사람은 여기 없잖아요. 그러니 어서 시작하시죠.”

세 사람은 바에 앉아 술을 내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걸 그대로 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기왕이면 제대로 시음 과정을 거치고 싶었다.

“잠시만 기다리시죠.”

나는 등을 돌려 선반을 열었다.

그곳에서 내가 꺼낸 것은 잔이었다.

일반적인 것은 아니고 여러 색이 입혀진 테이스팅 전용 위스키 잔이었다.

안에 담긴 술의 색을 볼 수 없게 해서 쉽게 구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용도였다.

하지만 잔은 두 개가 아니었다.

한 사람당 세 개씩 앞에 놓아야 했다.

두 개는 각각의 벽향주를 담고 다른 하나는 입가심용 생수를 따를 용도였다.

그걸 본 삼촌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오호! 제대로 해보려고?”

“물론이죠.”

“우리는 뒤돌아 있으면 되지?”

“그래 주면 좋죠.”

유나 누나는 물론이고 지철이 형과 삼촌도 동시에 등을 돌렸다.

세 사람 모두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우리가 빚은 술을 마시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수호와 나는 각각의 잔에 술을 따랐다.

붉은색 잔에 술을 따르는 녀석의 손에는 기존의 벽향주가 쥐어져 있었고 나는 파란색 잔에 새로 만든 벽향주를 따랐다.

겨우 세 개의 잔에 술을 따르는 거라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다.

“준비 다 됐습니다.”

“뭐 이렇게 자신감이 넘쳐?”

“일단 맛부터 보시죠.”

따로 첨언을 하진 않았다.

어떤 걸 먼저 마시든 상관없었다.

누가 마셔도 맛의 차이는 확실히 느낄 수 있을 정도이기에 나오는 자신감이었다.

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붉은색 잔부터 마셔볼까?”

삼촌이 제안하자 형과 누나는 동시에 같은 색의 잔을 들고 코를 가져다 댔다.

술을 마시기 전에 향을 맡는 것은 이쪽 세계에서는 국룰과 같은 것이었다.

향은 술을 평가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세 사람의 표정은 미묘했다.

하지만 어떤 의견도 내놓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말을 아끼고 있었다. 그래도 벽향주를 한두 번 마신 게 아니라 익숙했는지 그리 오래 술을 머금고 있진 않았다.

생수로 입을 헹군 뒤.

옆에 있는 파란색 잔을 들었다.

아까와 똑같이 향을 맡았는데 아직은 특별한 반응이 나오지는 않고 있었다.

아쉽게도 향은 기존과 비교하면 그다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술맛은 기존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다를 것이다.

실제 반응도 그랬다.

“미치겠네···.”

첫 모금을 마신 뒤부터.

삼촌은 잠시 혼란에 빠진 것 같았다.

처음에 마신 것이 기존의 벽향주인 것이 분명했기에 두 번째로 마신 파란색 잔은 새로 빚은 것이라 생각하신 것 같았다.

그런데 오히려 이쪽의 맛이 더 좋았다.

“사장님. 아무래도 처음에 마신 게 기존의 벽향주가 맞죠?”

“유나 네 말대로 익숙한 거는 첫 번째가 맞는데 그러면 이건 도대체 뭐야?”

“도찬이가 빚은 벽향주가 기존에 마셨던 것보다 더 맛있다는 뜻이죠.”

지철이 형은 내게 윙크를 하며 말했다.

잘했다는 칭찬이자 이게 네가 빚은 게 맞지 않냐며 확인하기 위한 행동 같았다.

두 번째로 마신 술이 훨씬 좋다는 것은 유나 누나와 삼촌도 인정했다.

“그래서 정답이 뭐야?”

“말씀하신 대로 처음에 마신 붉은색 잔에 담긴 것이 기존의 벽향주고 나중에 마신 파란색 잔이 저희가 빚은 거예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그냥 받아들이세요.”

“정 씨 할아버지도 계시는데 이렇게 맛이 바뀌는 게 말이 되냐고.”

삼촌은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기존의 맛을 어느 정도 유지해도 성공이라 여겼다. 조금 못하더라도 약간은 감수할 생각이라 하셨었다.

그런데 오히려 맛을 더 개선해서 돌아올 거라 생각지도 못하신 것 같았다.

“이 정도면 통과된 건가요?”

“일단 네가 만들어온 술부터 더 따라봐.”

“여기 있습니다.”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수호는 술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라벨은 기존의 것과 동일했으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술의 빛깔도 조금 더 황금빛이라 육안으로 구분하는 게 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혹시 몰라 작업해놓은 것이었다.

“손님, 한 잔 더 드릴까요?”

바텐더 흉내를 내며 말하자.

삼촌을 비롯해 모두가 잔을 내밀었다.

그런다고 변하는 것은 없었다.

결국에는 내가 빚은 술이 더 맛있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유나 누나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 정도 차이면 제가 만드는 글래시어 칵테일 맛도 바뀔 것 같은데요.”

“그렇겠네! 지금 한 번 만들어봐.”

“잠시만요.”

선수 교체가 진행되었다.

유나 누나는 바 안으로 들어왔다.

애초에 벽향주의 생산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려던 이유가 칵테일 때문이다.

그런데 맛이 바뀌었으니 저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칵테일은 매우 섬세하다.

미세한 차이가 맛의 변화를 만든다.

글래시어 칵테일만 하더라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편차가 꽤 심한 편이다.

그러니 누나가 걱정하는 게 이해됐다.

잠시 후에 누나는 글래시어 칵테일을 만들어서 다섯 개의 잔에 나눴다.

그런 뒤에 맛을 봐달라며 우리 앞으로 내밀고는 자신도 곧장 시음했다.

하지만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흐음··· 오히려 맛이 좋아진 것 같은데요. 사장님은 어때요?”

“내 의견도 같아.”

“누나가 만든 건데 의심할 여지가 없죠.”

모두의 의견은 같았다.

다행히 맛이 나빠지진 않았다.

오히려 뒷맛은 더 깔끔해졌달까.

기존보다 깊고 오묘한 맛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기에 유나 누나도 꽤 흡족해했다.

“도찬이가 만든 이 술을 가지고 대회에 나갔으면 더 높은 순위에 올랐을 것 같아서 오히려 아쉽네요.”

“좋아. 이 상태만 유지하면 약속대로 모두 다 사들여줄게.”

“예쓰!”

삼촌의 기준을 통과한 것이다.

수호와 나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환호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만들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물량을 다 삼촌에게 넘길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저희가 빚은 벽향주 전부를 삼촌에게 넘길 생각은 없어요.”

“뭘 어떻게 하려고?”

“기존에 작은할아버지가 뚫어 놓은 도매 업체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팔려고요.”

“그건 네가 알아서 하면 될 일이니 나한테 보고할 필요는 없어. 우리 쪽에 공급하는 양만 잘 챙겨주면 돼.”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현재 만들어지는 양이면 충분했다.

초기에 삼촌이 투자한 삼천만 원은 현재 숙성 중인 것만 완성되어도 충분히 갚을 수 있었다. 그것만 하더라도 이곳 어반 스카이에서 두어 달 정도 쓸 양이다.

“그리고 벽향주를 어느 정도까지 만들어서 보관하실 건지 말씀해주셔야 저희도 계획을 짤 수 있어요.”

“내 예상보다 술이 너무 잘 나와서 솔직히 고민이야. 시간을 조금 주면 정리해줄게.”

“사장님 이거 대박 나면 나중에 사고 싶어도 못 사요.”

수호는 설레발을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지긴 할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다는 것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안다.

아무리 술이 좋아도 그것만으로 판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벽향주의 맛은 자신 있지만,

가격과 유통도 무시할 수 없다.

더구나 인지도도 바닥인 상태였다.

전통주로 유명한 한산소곡주나 안동 소주에도 못 비비는 게 현재 상황이다.

간단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인생을 걸고 뛰어들어도 힘든 일이다.

고작 반 년짜리 프로젝트로 큰 걸 바라는 것도 조금 우스웠다. 하지만 그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낼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최선은 다해봐야지.’

그걸로 시음은 끝났다.

이제는 슬슬 오픈해야 할 시간이었다.

시음에 쓴 잔을 닦으며 정리하고 있자 지철이 형은 여느 때처럼 오픈을 알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프라이빗 룸에도 기다렸다는 듯이 단골 손님이 들어왔다.

삼촌은 오픈과 동시에 들어온 남자를 무척 반가운 얼굴로 맞이했다.

영화감독 서인국이라고 했던가

어반 스카이를 아지트처럼 여기며 하루가 멀다고 찾는 단골이었다.

예전에는 꽤 끗발 날리던 감독이었다던데 솔직히 나는 그게 실감 나지 않았다.

내 눈에는 그냥 백수처럼 보였다.

옷차림도 항상 후줄근했고 최근 몇 년 동안 딱히 작업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심지어 우리 가게에서 외상으로 술을 마시는 날도 제법 많았다. 그때 수호가 곁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누나가 저 사람 영화감독이라던데, 진짜야?”

“나도 몰라. 마지막 영화가 거의 5년 전이라고 했는데 그마저도 망했다잖아.”

“하긴 누나가 영화 제목을 알려줘도 들어본 기억이 없더라.”

“혹시나 해서 그러는 건데 감독님 귀에 들리지 않게 조심해라.”

옆에서 잔을 마른 수건으로 닦던 유나 누나가 우리에게 주의를 주었다.

하긴 폭망한 경력은 숨기고 싶을 텐데 그걸 굳이 상기시켜줄 필요는 없었다.

당연히 누나의 말은 곧 법으로 여기는 수호는 우렁차게 대답했다.

“넵! 알겠습니다.”

그래도 무명 감독은 아니다.

예전에 녹색 창에 검색해본 적이 있다.

마지막 영화는 망했어도 그 이전의 영화는 300만 관객을 동원해서 충무로의 꽤 유망한 감독으로 거론되던 분이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이상했다.

일행이 안 보였다.

서 감독님은 혼자 술을 안 마신다.

언제나 무리를 지어서 다니시는 분이다.

이곳을 아지트처럼 여기는 무리가 있는데 그들 대부분은 연예계에서 일한다.

역시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일행으로 보이는 손님이 두 명 들어왔다.

그런데 평소 같이 술을 드시는 후줄근한 아저씨들이 아니라 상당한 인기를 끄는 여배우였다. 마침 입구 쪽을 지켜보던 수호는 여배우의 얼굴을 알아보고 깜짝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내가 헛거를 보고 있는 거는 아니지? 진짜 국민 여동생 배수인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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