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일이야? (2)
벽향주를 살 수 있는 방법 중.
온라인은 우체국 쇼핑몰이 유일했다.
주문이 들어오면 여기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쇼핑몰 창고에서 주문자에게 배송이 곧바로 나가는 방식이다.
온라인 판매에 익숙하지 않은 연세 많으신 두 분으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그곳을 통해 판매되는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끽해야 한 달에 십여 병쯤 나가려나.
이곳을 운영하기 전에 장부를 보니 분기별로 우체국 쇼핑몰에 납품하는 벽향주는 100병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 추석과 설날이 끼어 있을 때나 그리 부담되지 않는 가격의 전통주라는 이유로 조금씩 판매될 정도였다.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천 병을 주문한 게 맞아?”
“몇 번이나 물어봤어.”
“방금 태백 물산에 500병 납품하기로 약속해서 조금 애매해. 재고 확인하고 연락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번호 받아놔.”
“알았어.”
수호가 정중하게 사정을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은 뒤에 우리는 심각하게 이 상황이 왜 벌어진 건지 이야기를 나눴다.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질 리가 없었다.
분명히 뭔가가 있었다.
혹시나 삼촌은 알지 않을까.
그래서 전화를 해봤으나 어디서 뭘 하는 건지 오늘따라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수호가 뭔가를 발견한 건지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야야! 이거 때문인 것 같은데.”
녀석이 보여준 것은 SNS였다.
누군가 싶어서 봤더니 얼마 전에 삼촌 가게에 왔었던 배수인의 계정이었다.
그녀의 팔로워는 무려 수십만 명에 달할 정도였는데 거기 올라온 게시물 때문에 생긴 소동 같았다.
한낱 게시글에 불과했지만,
그녀의 팔로워 중에 0.1% 정도만 반응해도 수백 명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그들이 벽향주에 관심을 가지고 한두 병씩 사기 시작하니 생각지도 못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그런데 왜 하필 우체국 쇼핑몰일까.
내 질문에 수호는 곧장 벽향주를 검색해서 보여줬다. 가장 위에 보이는 것이 바로 우체국 쇼핑몰이었다.
그 외에는 온라인 어디에서도 살 수 있는 루트가 없었다.
“와··· 배수인이 우리가 빚은 술을 칭찬해줬어. 이게 꿈이냐 생시냐. 나중에 우리 양조장이 잘 되면 꼭 모델로 쓰자.”
“풉! 그게 가능하겠냐.”
“꿈은 크게 꾸라고 했어.”
하긴 수호가 얼빠이긴 하다.
입대하기 전에 배수인이 소속되었던 걸그룹의 팬이라고 했던 말도 기억난다.
녀석의 말처럼 잘나가는 배우를 모델로 삼아 광고를 찍으려면 도대체 벽향주를 몇 병이나 팔아야 하는 거지?
계산조차 안 될 정도였다.
그래도 기분 좋은 상상이긴 했다.
호프집 한쪽 벽에 우리가 빚은 술을 들고 있는 유명한 배우나 가수의 포스터가 붙으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그래서 우체국 쇼핑몰은 어떻게 할 거야? 지금 창고에 있는 술을 모조리 보내면 얼추 수량이 맞을 것 같은데.”
“그건 안 돼.”
“하긴 심 사장님 쪽에 보내야 하는 물량도 있고 전화로 주문하는 분들도 있으니 몽땅 보내는 거는 조금 그렇네.”
“그런 말이 아니야.”
배수인 배우가 마신 벽향주.
그건 우리가 새로 만든 것이다.
퀄리티의 차이가 너무나도 컸다.
아무리 생각해도 창고에 쌓여 있는 기존의 벽향주를 보낼 수는 없었다.
“새로 만든 것만 내보내야 할 것 같아.”
“그러면 한참이나 기다려야 하잖아. 그냥 기존의 벽향주부터 보내면 안 될까?”
“맛이 다르잖아.”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그건 나도 당연히 알고 있는 바였다.
모른 척하고 재고부터 털어내면 이득인 것도 안다. 그러나 양심상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기왕이면 맛 좋은 술로 보내서 재구매를 유도하고 싶었다.
길게 보면 그게 맞는 게 아닐까.
하지만 수호는 내 의견에 반대했다.
어차피 이곳을 운영하기로 예정한 시간은 겨우 반년에 불과했다.
그 이후에는 양조장을 처분하거나 폐업할 예정이지 않냐며 지적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복학하기 전까지만 운영한다고 했잖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 아냐?”
“오저당의 이름에 먹칠하면서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잊은 것 같은데 지금 네가 말하는 그거 너희 작은할아버지가 빚은 거야.”
오오··· 쓸데없이 예리해.
하지만 그런다고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걸 다 버리겠다는 거는 아니야. 기존의 것은 어반 스카이에서 칵테일용으로 쓰면 되니 걱정하지 마.”
수호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알고 있기에 그쯤에서 알겠다며 물러났다.
어차피 이곳의 운영은 내 몫이었다.
애초에 결사반대를 외친 것도 아니고 깊이 생각해 보라고 반대 의사를 내놓은 것 같았다.
“오늘까지 몇 병 만들었지?”
“지금 가지고 있는 거는 500병 되려나.”
“오늘 숙성이 끝나는 것도 있고 내일부터 이틀에 한 번씩 300리터를 확보할 수 있으니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
“그래도 부족하면 어쩌려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야지.
지금 당장 고민할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지금 술을 빚어도 완성되는 것은 한 달이나 기다려야 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이 오래가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니 휘둘릴 필요는 없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오래가진 않는다.
길어야 며칠 내에 다시 잠잠해질 것이다.
워낙 빠르게 바뀌는 세상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각날 때 주문하지 않으면 그대로 잊는 편이었다.
“부족하면 예약제로 팔면 돼. 어느 양조장은 매달 선착순으로 예약받아서 술을 판매하고 그러더라.”
“그렇게 기다려서 사는 사람이 있다고?”
“물론이지. 그러니 걱정하지 마.”
“전화 주문 오는 거는 어떻게 해?”
“가능하면 우체국 쇼핑몰로 안내해. 그쪽으로 내일 500병 보내고 이번 주중에 나머지 보내면 될 것 같아.”
한두 건이면 모르겠지만,
택배 업무까지 보긴 애매했다.
심지어 이곳 오풍리는 도서산간 지역이라 돈도 더 받는데 매일 택배가 오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에 두 번 온다.
그나마 와주는 게 어딘가.
일부 택배 회사는 아예 들어오지도 않아서 근처 마을에서 찾아와야 한다.
이곳에서 생활하며 가장 불편한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서울에서 살 때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지금 이 분위기만 계속 유지되면 휴학을 한 번 더 연장해도 될 거 같아. 이번에 바짝 땡기면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 걱정 없이 공부만 할 수 있잖아.”
수호의 말에 나도 동의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건 아직 예측할 수 없었다.
지금은 직면한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생산량을 늘리기가 어려웠다.
숙성시킬 옹기가 턱없이 부족했다.
기존에 오저당에서는 벽향주를 이렇게 많이 빚지 않았기에 옹기가 많지 않았다.
숙성이 완료되는 대로 병입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옹기부터 조금 더 들여놔야 하나.”
“비싸지 않아?”
“저번에 선생님께 여쭤봤는데 지금 쓰는 8말짜리가 40만 원 정도 하는 것 같더라.”
“싸다고 말하기는 어렵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거는 더 저렴해. 이곳에서 쓰는 거는 조금 특별하다더라.”
아무 옹기나 쓸 수는 없었다.
작은할아버지는 최고의 옹기를 구하기 위해서 장인에게 특별하게 주문하셨다.
그만큼 비싸지는 것은 당연했다.
오저당에 있는 옹기는 모두 이천에서 만들어져서 보낸 것이라고 했다.
“옹기값을 뽑으려면 적어도 서너 번쯤 사이클을 돌려야 한다는 건데···.”
“우리 인건비도 고려해야지.”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네.”
“숙성용 창고에 몇 개나 더 들어갈 것 같아?”
공간도 그리 넉넉하진 않았다.
잠시 숙성 창고에 들어가서 확인하니 많아 봐야 10개 미만일 것 같았다.
선반을 만들어서 올릴 수도 없는 것이 워낙 대형 옹기라 무게도 문제고 우리가 일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더구나 비용도 문제였다.
선반은 포기하고 옹기만 사더라도 대충 400만 원 이상의 투자금이 필요했다.
쉽게 주머니에서 나올만한 금액은 아니었다. 과연 지금 설비에 투자하는 게 맞는 걸까?
“그 정도의 돈이 있어?”
“삼촌이 투자한 돈이 남아 있지.”
“아··· 머리 아파. 이런 거는 그냥 네가 알아서 해라. 몸 쓰러 온 알바한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마.”
“치사한 새끼.”
“흙 만지고 사는 나보다 경영 전공하는 놈이 더 잘 알겠지. 나는 너를 믿는다.”
녀석이 그렇게 말하자.
더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이런 경험을 쌓기 위해 양조장을 하기로 마음먹었던 거잖아. 이건 오로지 내가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였다.
사소한 결정이라 여길지 몰라도 그 결정에 향후 생산량이 좌우된다.
‘경영이라는 게 쉽지는 않구나.’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생길까.
조금은 설레고 또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인생은 실전이라고 했던가.
책을 통해 보고 배웠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느낌이었다.
결단은 생각보다 쉬웠다.
이런 상황에서 머뭇거리면 바보다.
계속해야만 하는 이유가 더 많았다.
우리가 만드는 벽향주는 기존보다 훨씬 퀄리티가 좋았고 요정들도 있지 않은가.
그것들이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건지 확실하진 않으나 분명 뭔가 있었다.
“옹기부터 더 사자.”
“못 먹어도 고(Go)인가?
“아니, 어떻게든 떡상하게 만들 거야.”
지금까지는 삼촌과 맺은 계약을 목적으로 양조장을 운영 중이었다.
이제는 크게 볼 필요가 있었다.
수호는 내 이야기를 듣고 꽤나 반기는 표정이었다. 일이 그리 고된 편도 아니고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않는 꿀알바가 그리 흔한 편은 아니었다.
“나 휴학 연장하면 되는 거니?”
“아직 단정하지는 마. 대신 연말까지 벽향주로 2억 정도의 매출을 찍으면 나 이거 제대로 해보려고.”
“2억이라··· 아직 갈 길이 머네.”
“추가로 옹기 사들여서 몇 번만 사이클 돌려도 2억은 금방 찍을 거야.”
그게 최소한의 경계선이었다.
지금부터 매출 2억 미만이면 1년 내내 일해도 4억이 안 된다. 세금과 인건비 등을 지출하면 남는 게 거의 없었다.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었다.
열심히 일한 보람도 찾을 수 없다면 그쯤에서 그만둬야 하는 게 맞다.
더구나 나 혼자가 아니다.
선생님과 수호의 월급도 줘야 한다.
지난 한 달 동안 고정 지출을 계산해보니 적어도 매달 천만 원에 달할 정도였다.
생각보다 이것저것 나가는 게 많았다.
“네가 말한 수치를 찍으려면 도매로 계산하면 2만 병이 조금 안 되고 소매로는 1만 3천 병이 넘네. 열심히 팔아야겠어.”
도매로 벽향주를 팔 경우.
내게 떨어지는 금액은 적어진다.
당연히 삼촌의 가게에 넘길 때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납품을 할 때 소비자 가격에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도매가 나쁜 것은 아니다.
소매점을 통해서 구매자가 술을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온라인으로 술을 사서 마시는 이들보다 식당과 술집에서 판매되는 양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당연히 둘 다 포기할 수 없었다.
직접 주문을 받아서 아무리 팔아봐야 규모의 경제를 이길 수는 없는 일이다.
적절한 균형이 필요했다.
“이번 기회에 벽향주를 판매할 수 있는 오저당 사이트를 여는 것은 어때?”
“당장은 무리야. 지금은 포털사이트를 통해서 파는 거로 시작해도 될 것 같아.”
“하긴 홈페이지 만드는 것도 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가겠지. 그러려면 제대로 된 사진도 필요하지 않아?”
벽향주 사진이 아예 없진 않았다.
우체국 쇼핑몰에 등록할 당시에 촬영한 것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제대로 찍은 사진이라 여겨지진 않았다. 흰 배경에 술병을 놓고 찍은 게 전부였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구매 욕구 상승에 도움이 안 되었다.
매력 어필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다른 전통주들과 비교했을 때.
얼추 비슷한 수준 정도는 되었으면 했다.
사진을 직접 찍은 생각은 없었다.
아쉽게도 수호와 나는 사진을 찍는데 재능이 없는 편이었다. 다행히 주변에 부탁할만한 사람이 있기는 했다.
내가 염두에 둔 것은 지철이 형이다.
그 형이 지금은 어반 스카이에서 홀을 담당하고 있지만, 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했기에 실력은 충분했다.
우연히 형의 포트폴리오를 본 적이 있는데 사진 실력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왜 사진으로 성공하지 못한 건지 의아할 정도였다. 하지만 열정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예술이라는 것이 참 험난한 것 같았다.
“그건 지철이 형한테 맡기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