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일이야? (3)
예상은 빗나갔다.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았다.
벽향주는 만드는 족족 완판되었다.
엄청난 열풍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품귀 현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우리가 빚는 벽향주는 만드는 족족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심지어 어떻게든 사겠다며 양조장까지 직접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 한 일이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신기한 것 같았다.
구할 수 없으면 더 간절해진달까.
괜히 한정판 같은 리미티드(Limited) 마케팅이 성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충분히 이해되었다. 한때는 밤잠까지 줄여가며 한정판 운동화를 모은 적도 있었지.
리셀 테크가 제법 쏠쏠했었다.
13만 원짜리 운동화를 사면,
사흘만에 210만 원이 되기도 한다.
미국에 있을 때는 리셀 상점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한 적도 있었다.
한동안 죽어라 술만 빚고 있자 얼마 뒤에 지철이 형이 오저당에 직접 왔다.
형이 타고 온 차를 바라보던 수호는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들며 감탄했다.
“저 차를 타고 온 형이 존경스럽다. 자칫 잘못하면 목적지가 아니라 황천길로 직행할 것 같은데 무섭지도 않나?”
그러게 말이다.
형이 타고 온 차는 꽤 힘겨워했다.
주행거리가 20만 km를 넘어섰고 10년쯤 된 오래된 중고차라 어쩔 수 없었다.
오죽하면 고물차라 놀리던 삼촌의 차가 영롱해 보이는 착시가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저 차는 형의 보물이다.
쉬는 날마다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는 형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이동 수단이다.
그래도 저건 조금 선을 넘기는 했지.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지도 못하는 형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손을 흔들며 웃어주었다.
“가게가 아니라 여기서 보니 더 반갑네.”
“어서 오세요. 차는 안 막혔어요?”
“평일이라 그런지 서울 벗어나니 한적하더라. 오랜만에 왔는데 이곳은 전혀 변함이 없구나.”
이곳을 와본 적이 있던가.
생각해 보니 형이 여기 온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내가 입대한 후에 1호점, 2호점 식구들이 휴가차 놀러 왔었다.
술이 차고 넘치는 양조장은 그들에게는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존재였다.
당시에 오저당에서 마신 술이 엄청났다는 이야기는 거의 전설처럼 남아 있었다.
“아··· 맞다. 형 여기 처음이 아니죠?”
“사장님이 단합 대회 장소를 여기로 고른 덕분이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휴가였어.”
“모처럼 쉬는 날인데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해요. 요즘 가게에 손님이 엄청나게 많이 온다면서요?”
우리만 바빠진 게 아니었다.
삼촌의 가게에도 여파가 미쳤다.
SNS를 보고 글래시어 칵테일을 마시겠다고 오는 손님이 대폭 늘었다.
그 덕분에 어반 스카이는 보관 중이던 기존의 벽향주를 거의 다 쓸어갔다.
“말도 마. 그 체력 강한 유나도 다크 서클이 입가까지 내려왔을 정도야.”
“그 정도예요?”
“손님들 대부분이 글래시어 칵테일을 주문하니 어쩔 수 없지. 우리가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
“우리 때문에 누나가 고생이 많네요.”
수호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녀석의 상사병은 꽤 심각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있다면 어반 스카이에 인력이 보충됐다는 것이다.
바와 홀에 각각 한 명씩 추가되어 그나마 어반 스카이는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새로 일하시는 분들은 괜찮아요?”
“다들 경력이 있어서 금방 적응하더라. 그 덕분에 이렇게 하루나마 쉴 수도 있고.”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벽향주가 우체국 쇼핑몰 메인에 걸렸던데 소감이 어때?”
“솔직히 조금 얼떨떨해요.”
우체국 쇼핑몰도 바쁘게 움직였다.
당장 메인 화면에 배너를 띄우고 선착순 판매하는 등의 방법을 마련해주었다.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이런 일이 종종 있는 편이라고 했다.
청와대 만찬주로 지정되거나,
주류대상에서 수상하는 술도가의 경우.
판매량이 급증하는 일이 있다고 했다.
작은할아버지도 그런 술은 꼭 시켜서 드셔보셨기에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일단 장비부터 내릴게.”
지철이 형은 곧장 움직였다.
뒷좌석에서 꺼낸 것은 카메라와 삼각대 그리고 조명으로 보이는 장비였다.
내가 알기로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만 합쳐도 천만 원 단위가 넘어갔다.
차는 저 모양이어도 카메라에 쓰는 돈은 절대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곧장 촬영하게요?”
“해가 좋을 때 전경부터 찍게. 양조장 사진도 찍어두면 좋잖아.”
“그렇기는 하죠.”
원래 이곳까지 올 필요는 없었다.
새로 빚은 술을 담는 병이 달라진 것도 아니기에 어반 스카이에서 찍으면 된다.
하지만 형은 그보다 직접 와서 양조장과 한옥을 배경으로 찍기를 바랐다.
촬영 준비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명은 설치할 필요가 없어서 양조장 앞에 삼각대를 세우는 게 전부였다.
수호도 그 옆에서 도와주면서 자신이 꾸미고 있는 정원을 살짝 어필했다.
“아직 꽃이 안 피어서 조금 그렇지만, 정원도 잘 나오게 부탁드릴게요.”
“걱정하지 마.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수호의 부탁은 흔쾌히 받아들여졌다.
그리고는 나중에 꽃이 만개할 무렵에 다시 찍어주겠다는 약속도 해주었다.
양조장의 외부와 내부 촬영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부가적인 컷이라 시간을 오래 잡을 이유는 없었다.
사진 속의 오저당은 단아했다.
어제오늘 대청소를 한 보람이 있었다.
술을 빚는 것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이 위생 관리였다. 우리의 일과는 항상 청소로 시작해서 청소로 끝난다.
술도 음료 중의 하나다.
더구나 숙성이란 과정을 거친다.
그러니 청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돌아가신 작은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선생님도 그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셨다.
수호가 아침 내내 청소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형은 주변을 한 번 살폈다.
“어쩐지 엄청 깔끔하더라.”
“마음 같아서는 외벽에 페인트칠도 다시 하고 싶은데 참고 있는 중이에요.”
“곧 장마 기간이라 애매하긴 하네.”
“그게 지나면 이 마을이 유일하게 붐비는 휴가철이 시작되기도 하죠.”
인근에 있는 덕월 계곡 때문이다.
그곳은 여름철이 되면 인기가 높아진다.
워낙 외진 곳이라 어릴 적에는 인근 주민 외에는 아는 이들이 거의 없는 곳이었으나 최근에 방송을 탄 뒤로 제법 알려졌다.
얼마 전에는 입구 쪽에 여러 마을이 합동으로 운영하는 캠핑장도 오픈했다.
“덕월 계곡 좋지. 나도 종종 여기 생각이 나긴 하더라.”
“청정 지역인 데다가 조용하니 휴양하기 딱 좋은 곳이죠. 머리 식히기 이곳만큼 좋은 장소는 못 본 것 같아요.”
“그리고 여름에는 계곡 트레킹만큼 시원한 것은 없죠.”
수호도 한마디 거들었다.
녀석도 한여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기가 되면 계곡물을 첨벙이며 걷는 계곡 트레킹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장님이 해준 야생화 이야기 때문에 기대감이 너무 높아진 것 같았다.
“지금도 가능해?”
“아니요. 아직은 계곡물이 너무 차가워서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예요.”
“그냥 올해는 이곳에서 휴가를 보낼까?”
“저희는 언제나 환영이죠.”
“다음에는 유나 누나랑 사장님도 같이 놀러오면 더 즐거울 거 같아요.”
수호의 말에는 사심이 가득했다.
그런 녀석의 말을 들은 지철이 형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녀석을 바라봤다.
그 미소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았는데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촬영부터 해야겠다.”
촬영하는 과정은 무척 복잡했다.
생각보다 구상한 컷이 많아 보였다.
한옥과 양조장 그리고 심지어 계곡 주변까지 가서 사진을 찍을 정도였다.
심지어 소품도 챙겨왔는데 틈틈이 보여주는 결과물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 도기로 만든 잔과 벽향주가 놓인 모습은 꽤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벽향주를 담는 병의 디자인은 그리 마음에 들진 않았다. 사진이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너무 밋밋한 형태였다.
하지만 그걸 바꾸는 것은 아직 무리였다.
“역시 프로는 다르네요.”
“네 덕분에 제품 촬영도 모처럼 해보고 좋네. 이런 기회가 생각보다 없어.”
“형은 예술 사진을 더 좋아하잖아요.”
“먹고 살려면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지. 쉬는 날에는 종종 행사 사진도 찍고 그래.”
내가 잠시 아무런 말이 없자,
형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서 내밀었다.
팸플렛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지철이 형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설마, 사진 전시회 열어요?”
“더 늦기 전에 도전해보려고 시도조차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대관하고 액자값 내느라 통장이 박살 났다.”
“정말 축하드려요.”
“전시회 시작되면 도찬이랑 같이 꼭 갈게요.”
수호도 자신의 일처럼 축하했다.
우리 둘 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삼촌에게는 미안한 말이었지만,
지철이 형이 사진작가로 잘 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는 현실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형이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사진으로 구성된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기 위한 기다림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결심을 한 것 같았다.
계기가 분명 있었을 텐데 그게 뭔지는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형은 사진을 어떻게 시작한 거예요?”
“글쎄··· 계기가 뭐였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아.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그게 뭔데요?”
“사진을 전공하겠다고 할 때 집에서 엄청 말렸거든. 그런데 이걸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 밀어붙였지.”
“지금은 후회 안 하세요?”
수호가 옆에서 질문을 하자,
지철이 형은 곧장 고개를 저었다.
그런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던 건지 그 모습은 꽤 단호해 보였다.
“다행히 아직 그런 적은 없어. 종종 삶이 힘겨울 때가 있지. 그럴 때는 이것도 다 지나갈 거라 믿는 수밖에 없어. 꿈이란 것이 쉽게 이뤄지는 게 아니잖아.”
조금 부러웠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어린 시절부터 내겐 꿈이 없었다.
종종 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으나 구체적으로 구상한 것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꿈을 구체화시켜서 쫓아가는 수호나 지철이 형이 부러웠다.
경영을 전공으로 택했을 때.
그때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삼촌처럼 장사를 하거나 사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만 막연하게 있었을 뿐이다.
성적에 맞는 과를 찾다 보니 합리화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생각보다 적성에 맞는 것 같아 다행이긴 했다.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만이 가진 매력이 확실히 있었다.
아직은 밑바닥에 불과하지만, 종종 이런 생각도 들었다. 세계 최고의 주류 회사를 내 손으로 일구고 싶다는 것이었다.
복학하기 전까지만 잠시 일하겠다던 나의 마음은 조금씩 사라지고 없었다.
“저도 작은할아버지가 물려준 이 양조장 제대로 한 번 해보려고 생각 중이에요.”
“드디어 마음먹었구나.”
“우리 목표는 배수인 배우를 나중에 오저당의 광고 모델로 세우는 거예요.”
수호도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그 이야기를 들은 형은 크게 웃었다.
그렇다고 수호의 말을 비웃는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녀석이 품은 커다란 꿈을 응원해주었다.
“꼭 소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해.”
“뭐가요?”
“수십 년 동안 술 맛이 변함 없다던 벽향주가 너희가 온 이후에 바뀌었잖아. 그것도 나쁜 쪽이 아니라 좋은 쪽으로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글쎄요. 저희도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알 것 같아요.”
수호가 자신 있게 나섰다.
지철이 형이 왜 그런 것 같나며 묻자 녀석은 나를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내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바라보자 수호는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예전처럼 눈대중으로 술을 빚지 않고 요즘은 모두 계량화하고 있거든요. 저는 그 때문에 가능한 거라 생각해요.”
아니, 그게 아니야.
내 생각은 너랑 다르단다.
이 모든 일은 요정 때문인 것 같아.
그게 아니면 도무지 설명할 수 없어.
우리가 이곳에서 술을 빚으며 머문 것이 한 달이 넘어가고 있다.
처음에 왔을 때보다 요정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아직까지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지 원인은 찾을 수 없었다. 말이라도 통하면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 같았다.
아무리 말을 시켜도 반응조차 없었다.
도대체 너희 정체가 뭐니?
‘의사소통이라도 되면 편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