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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3화 (1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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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를 빚기로 결정한 뒤.

우리는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선생님에게 막걸리를 빚는 방법부터 제대로 배우는 것이었다.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제품의 질이 따라오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었다.

그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다.

막걸리는 생각보다 변덕스러웠다.

작은 차이에도 맛이 수시로 변했다.

그래도 몇 차례 테스트용 막걸리를 빚으며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올라왔다.

선생님이 옆에 계신 덕분이었다.

긴 시간 동안의 수많은 경험이 빛났다.

어떤 변수가 생겨도 그때마다 해결책을 내놓아주셨다. 수호와 나는 그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되었다.

“으아아. 허리 아퍼.”

수호는 허리를 펴며 앓는 소리를 냈다.

나도 녀석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막걸리를 빚는 것은 무척 고되었다. 벽향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양이니 당연했다.

밥을 찌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이게 밥통으로 밥을 하는 게 아니다.

찜기 같은 곳에서 증기로 익혀야 하는데 중간중간 밥을 휘저어줘야만 했다.

밥을 뒤집지 않으면 바닥에 눌어붙어서 증기가 나오는 구멍이 막히게 된다.

벽향주를 빚을 때는 소량인 데다가 죽을 쒀서 작업하기에 상상도 못 해봤다.

이렇게 힘든 일을 할아버지 두 분이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수호도 내 말에 동의했다.

“이걸 어떻게 두 분이 하셨지?”

“그러게 말이다. 평소 빚으시던 양이 이것보다 두어 배는 된다고 하셨잖아.”

“무엇보다 너무 더워.”

점차 여름이 다가오는 계절이다.

양조장 안은 밖보다 훨씬 뜨거웠다.

밥을 짓기 위해 올라오는 증기로 인해 찜질방에 갇힌 느낌이었다. 잠깐 장갑을 벗어보니 손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수호가 그걸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쌀보다 우리 손이 먼저 익겠다.”

“나도 마찬가지야. 이제 거의 다 된 거 같지 않냐?”

“그런 것 같아.”

“내가 가서 선생님 모셔올게.”

잠시 후에 모셔온 선생님은 밥의 상태부터 확인하더니 흡족하게 웃었다.

표정만 봐도 합격인 것이 확실했다.

“잘 지어졌네. 이 정도 실력이면 나한테 확인 안 받아도 될 것 같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전체적으로 잘 익었으니 걱정마러.”

그만큼 노력도 많이 했다.

어떤 과정도 쉽게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막걸리를 빚는 과정을 알려주실 때마다 동영상을 찍어두고 쉬는 시간에 수호와 같이 반복 학습을 하는 중이었다.

거기에는 또 다른 용도도 있었다.

선생님이 언제까지 함께할 수는 없다.

하루가 지날수록 대구에 계신 아드님 댁에 가실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우리도 그쯤에서 손을 뗄 예정이었다.

하지만 복학을 미루고 제대로 운영할 생각이라 그 이후를 염두에 둬야 했다.

그래서 영상을 찍는 것이다.

맛이 변할 때를 위한 대비였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타성에 젖으면 술맛이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선생님도 항상 이런 말을 해주었다.

‘사시사철 술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가장 힘들어. 그게 술도가의 진짜 실력이라 할 수 있지.’

맛이 들쭉날쭉하면 안 된다.

그래도 선생님의 평가는 꽤 좋았다.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기 위한 칭찬은 아니었다. 아닌 것은 확실하게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분이다. 다행히 벽향주처럼 오저당의 막걸리도 그 맛이 훌륭했다.

하지만 아직 완성은 아니다.

연습용으로 빚은 막걸리 중의 일부는 최소한 한 달 이상 숙성을 할 예정이다.

어느 정도까지 숙성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가장 맛이 좋은 기간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밥은 잘 찌어졌으니 옮기자.”

선생님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우리는 밥을 퍼내서 누룩 작업실로 옮겨 누룩을 띄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허리를 숙인 채로 휘저어가며 밥알에 누룩을 비비는 일은 꽤 어려웠다.

가장 힘든 작업 중의 하나였다.

손바닥은 찌릿찌릿한데 허리도 굽히고 일하니 등골이 쪼개지는 것 같았다.

그 작업이 잘 되면 밥알에 솜털처럼 균이 붙는데 그대로 두면 덩어리져서 썩는다고 하셔서 다시 나눠서 담아놔야 했다.

그 뒤로 담금 작업까지 거친 뒤.

2차 발효를 끝내면 2주쯤 걸린다.

삼양주인 벽향주와 다르게 추가 작업 없이 끝나지만, 아예 손 놓고 있는다고 막걸리가 빚어지진 않았다.

손이 가는 것은 오히려 더했다.

뽀글거리며 발효 중인 막걸리가 그냥 놔둔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서너 시간마다 저어줘야 한다.

일어나자마자 비몽사몽한 상태로 양조장부터 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성과는 꽤 좋았다.

선생님의 기준은 무난하게 통과했다.

기존에 만드시던 막걸리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내릴 정도였다.

하지만 나만의 기준은 따로 있다.

내 기준은 요정들의 반응이다.

잘 빚어진 술에는 요정이 맴돈다.

최소 다섯 이상은 되어야 잘 된 술이다.

그 이하는 대부분 숙성이 덜 되었거나 맛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그 이상을 바랐다.

고급 막걸리로 팔려면 적어도 요정의 숫자가 열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오랜 관찰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각각의 반응도 중요했지만, 얼마나 모이냐는 것도 중요했다.

‘잘 되어야 할 텐데···.’

*

그로부터 2주 정도가 지난 뒤.

본격적인 여름이 오는 7월이 되었다.

그 무렵에 우리는 처음으로 막걸리를 출하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 내보내는 것은 일반 막걸리다.

아직 고급 막걸리는 준비되지 않았다.

디자인부터 가격 책정.

그리고 적당한 숙성의 기간까지.

여러 가지 고민할 것이 많기에 일반 막걸리가 안정된 후에 진행하기로 했다.

그간 빚어 놓은 막걸리가 많아서 문제가 될 정도라 내린 결정이었다.

연습 삼아 빚은 양이 생각보다 많았다.

대형 설비에 쥐꼬리만큼 재료를 넣고 빚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웠다.

그중의 일부는 식초가 되어 버려졌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팔아도 문제가 없었다.

예전에 팔던 오저당의 막걸리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술맛이 더 좋아졌다.

나의 주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평생을 오저당 막걸리를 드신 마을 어르신 전부가 비슷한 평가를 내려주셨다.

“태백 물산 사장님은 언제 오기로 했어?”

“택배차 오는 시간이 안 겹치게 2시쯤 도착할 거라 오전에 메시지 왔어.”

“서둘러야겠네.”

“오저당 막걸리의 첫 출하라 그런지 오늘따라 되게 떨린다.”

수호는 호들갑을 떨었다.

그간 고생이 참 많기는 했다.

소규모로 빚던 벽향주와 달리 막걸리는 몸이 고되다는 표현이 저절로 나왔다.

이번에 출하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나 1,500병은 넘어갔다.

당분간 사나흘에 한 번씩 이 정도 수량이 계속 나오게 될 예정이었다.

그 정도면 매출이 꽤 증가될 것이다.

적어도 매달 천만 원 이상이었다.

아직 우리가 목표로 하는 수치에 도달하려면 멀었으나 가능성이 보였다.

“그런데 선생님은 어디 계셔?”

오늘따라 선생님이 안 보였다.

평소에는 우리보다 더 일찍 양조장에 나와서 이것저것 확인하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은 새벽에 잠시 뵌 후에 양조장에 다시 오시지 않으셨다.

“아까 잠시 오시기는 했어.”

“언제쯤에?”

“너 양조장 안에서 멍 때리고 있을 때.”

“그나저나 요즘 선생님 건강이 많이 안 좋아 보이지 않냐?.”

“나도 그렇게 생각해. 최근에 기력이 떨어지시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라 걱정이야.”

요즘 선생님의 건강은 좋지 않았다.

신경을 안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다 줄초상 치르는 게 아닌가 동네 어르신들도 무척 걱정할 정도였다.

형제처럼 지내시던 작은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확실히 달라지셨다.

그 이전까지는 무척 정정하셨다.

그런데 이제는 양조장에 오가는 것도 힘들어하실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연세가 있으신 탓에 방심할 수 없었다.

“아드님한테는 자주 연락드리고 있지?”

“안 그래도 요즘 사나흘 간격으로 전화를 드리고 있어. 아드님도 걱정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시더라.”

“선생님이 대구로 떠나시면 우리는 어쩌냐?”

최악의 경우.

우리끼리 술을 빚어야 한다.

모든 과정에 대해서 배우기는 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변수가 생기면 우리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겨우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모든 것을 다 배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되었다.

“일단은 최대한 빨리 습득해야지. 우리에게 다른 방법이 없어. 그래서 영상으로 찍어 놓고 있잖아.”

“야야. 저거 태백 물산 차 같은데?”

“2시에 오기로 했다며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마을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수호의 말대로 화물차 하나가 보였다.

평소보다 작은 1톤 트럭이었다.

오늘 싣고 갈 물량이 75박스밖에 안 되니 큰 화물차까지는 필요치 않았다.

잠시 후에 내린 이는 우리 막걸리만 애타게 기다리던 심재필 사장이었다.

양조장 입구 앞에 차를 세운 뒤.

운전석에서 내린 그는 우리를 향해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오늘은 대리님을 안 보내시고 직접 오셨네요.”

“드디어 오저당에서 빚는 막걸리를 다시 맛볼 수 있는 날인데 직접 와야죠.”

계속 느끼고 있는 것이지만,

심 사장님의 말에는 사심이 가득했다.

도매로 돈을 벌려는 것보다 우리가 빚은 막걸리를 다시 마실 수 있다는 것을 훨씬 더 반기는 느낌이었다.

그런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병입을 하기도 전에 심 사장님은 양조장에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커다란 말 통 가득 사가신 전력도 있으셨다.

조기 축구회 회원들이랑 마실 거라고 했는데 선생님 말로는 예전에도 종종 그렇게 사가셨다고 했다.

“그런데 말이에요. 어떻게 새로 오신 사장님들 술이 더 맛난 것 같아요. 혹시 아스파탐 같은 거라도 첨가하신 건가요?”

“아뇨, 저희 막걸리에는 안 들어가요. 혹시 맛이 많이 달라졌나요?”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기존의 막걸리보다 맛이 좋아졌지만,

정작 옛날 맛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변했다는 이야기를 듣기 딱 좋았다.

그렇게 기존의 고객 중에 얼마나 떨어져 나갈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막걸리의 판매량이 저조하면 우리가 애써 투자한 시간이 허무해질 것이다.

“하하!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희 조기 축구회 사람들 말로는 지금이 훨씬 더 좋다고 하더군요.”

“다행이네요.”

“제가 어떻게든 팔아볼 테니 걱정은 하덜말고 많이만 빚어주십쇼.”

심재필 사장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의 말에는 약간의 허세가 들어있지만, 그래도 왠지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감이 잘 안 와서 그러는데 이번에 싣고 가는 게 다 팔리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과거의 장부를 확인하면,

출하하셨던 양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거의 반년 가까이 제대로 유통되지 않은 탓에 동일한 매출을 기대할 수 없었다.

심재필 사장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호언장담했다.

“아마 오늘 중으로 다 사라질 겁니다. 다음에 나오는 막걸리가 사흘 뒤라고 하셨죠? 그것도 곧장 넘기시면 됩니다.”

“그 정도인가요?”

“가게 하나당 두 박스씩만 넣어도 마흔 곳이 넘지 않으니까요. 저희가 뚫어 놓은 소매처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럼 심 사장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벽항주도 조금 더 태백 물산에 밀어 넣어주시면 더 좋고요. 요즘 그거 원하는 곳이 상당히 많습니다.”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2주 정도 후부터 추가로 들어온 옹기에서 숙성 중인 벽향주를 병입할 수 있다.

고작 열 개의 옹기에 불과하나 추가로 생산되는 양이 꽤 됐다.

“시간이 빠듯하니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죠.”

심 사장은 마음이 급해 보였다.

오늘 중에 오저당 막걸리를 소매처에 납품하려면 빨리 움직여야 했다.

막걸리를 싣는 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른 박스도 안 되는데 세 명이 같이 움직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트럭이 떠난 뒤에 나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양조장 안으로 들어갔다.

땀을 흘렸더니 갈증이 심해서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요정들의 상태가 안 좋아 보이잖아.

다들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양조장 내부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확실히 평소와는 달랐다.

그 순간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들자 곧장 땀에 젖은 수건은 내던지고 양조장을 박차고 나왔다.

아무래도 선생님께 무슨 일이 생기신 것 같았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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