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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4화 (1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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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집은 멀지 않았다.

양조장 뒤편으로 100m쯤 되려나,

조금만 걸어가면 사시는 집이 나온다.

애초에 이곳에 터를 잡을 당시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집을 사들인 덕분이다.

그만큼 오래된 집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허름하진 않았다.

30년 이상 되는 세월 동안 살며 몇 차례나 되는 보수 작업을 거친 상태다.

작은할아버지의 한옥을 수리할 때도 선생님의 집 역시 어느 정도 손을 봐놨다.

뜨거운 물도 펑펑 잘 나오고,

무엇보다 겨울철 단열도 잘 되었다.

어르신들이 추운 날인데도 보일러를 잘 틀지 않기에 삼촌이 신경을 조금 썼다.

집의 외관도 깔끔한 것이 선생님의 성격이 그대로 엿보이는 것 같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난 뒤.

양조장부터 시작해서 집까지.

언제나 청소에 신경 쓰던 선생님이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육체적인 노동이 아니었다. 그보다 새벽 일찍 일어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선생님, 안에 계세요?”

마당에서 소리 내 봤지만,

어디에서도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혹시 주변에 계신가 근처를 돌아다니며 살펴보아도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그쯤 되자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보통은 어딘가를 가실 때.

우리에게 미리 말씀을 해주신다.

종종 동네 어르신들과 술을 마시다 전화를 받는 것을 잊으셨기 때문이다.

술을 빚다가 물어볼 게 있으면 곧장 찾아오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진짜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

그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 났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런데 잠시 후에 벨 소리가 집안에서 요란하게 들려왔다.

집안에 계신 것이 분명했다.

다급하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선생님은 거실 바닥에 쓰러져 계셨다.

그 옆에는 약을 드시려고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물병이 엎어져서 바닥은 엉망이 된 상태였다. 확실히 잠시 잠든 모습은 아니었다.

“선생님! 정신 차리세요.”

서둘러 다가가서 살펴보았다.

몸은 불덩이 같았고 진땀도 가득 흘리신 것이 상태가 상당히 심각해 보였다.

안 되겠다고 생각되어 곧장 119에 신고를 한 뒤에 수호에게도 이 사실을 전했다.

잠시 후에 밖이 소란스러웠다.

창밖을 내다보니 이장님의 차가 보였다.

누가 오풍리의 홍반장이 아니랄까 봐 귀신 같이 찾아오신 걸까?

자세히 보니 수호가 뒤에 타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곧장 집 안으로 뛰어왔는데 이장님은 무슨 상황인지 묻기보다는 쓰러져계신 선생님부터 들쳐 엎었다.

“이장님은 어떻게 아시고···?”

“수호 녀석이 곧바로 전화줬어.”

“잠시만요. 조금 전에 119 불렀는데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건 서울 이야기고,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만 한세월이야. 구급차가 오는 길은 뻔하니 엇갈리진 않을 거야.”

이장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여기서 토를 다는 일은 불필요했다.

누구보다 이 동네를 잘 아시는 분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풍리까지 구급차가 아무리 빨리 와도 30분이나 걸린다.

그래도 이장님은 꽤 침착했다.

우리는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 되었다.

이장님은 우리의 도움을 받아 선생님을 뒷좌석에 눕히고는 운전석에 앉았다.

“수호 너는 선생님 호흡 괜찮은지 계속 확인하고 숨을 안 쉬시면 인공호흡 시작해. 어떻게 하는지 알지?”

수호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할 수 있다고 대답을 했다.

군대에서 그 정도는 배우고 나왔다.

녀석의 대답을 들은 이장님은 곧장 시동을 걸고 나한테도 지시를 내렸다.

“도찬이 너는 119에 다시 전화해서 내 차 번호 알려주고 910 지방도 타고 태백에 있는 병원으로 출발한다고 해.”

“삼척이 아니고요?”

“거기는 너무 멀어. 그리고 여기 오풍리로 오는 구급차는 태백에서 와.”

내가 알겠다고 대답을 하자,

이장님은 차를 몰고 달리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도 운전하실 정도로 익숙한 마을 길이라 그런지 머뭇거림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심지어 마을을 벗어나는 다리를 통과한 후부터는 더욱더 빨라졌다.

와인딩 고수가 따로 없었다.

순두부 싣고 달리는 어느 애니메이션의 드라이빙 장면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속도를 거의 줄이지 않고 코너를 돌 때마다 타이어가 비명을 질러댔다.

이러다가 우리가 먼저 죽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드니 저절로 손잡이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이장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은 시간 싸움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달리자.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구급차가 보였다.

차를 타고 이동 중이라고 말을 해놓은 상태라 비상용 깜빡이를 보고 멈춰 섰다.

국도 한쪽 구석에서 선생님을 옮겨 실은 구급차는 우리 못지않은 빠른 속도로 태백에 있는 유일한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은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시계를 보니 오풍리에서 병원까지 걸린 시간은 20분 정도였다. 평소라면 적어도 10분 이상은 더 걸리는 거리다.

병원에 도착한 후부터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때부터는 의료진의 영역이었다.

뒤로 물러나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대구에 계신 아드님에게 연락부터 해야 했다.

잠깐의 통화를 마치자 수호는 그제야 털썩 주저 앉았다.

“어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려서 미치겠다.”

충분히 이해가 되기는 했다.

수호는 달리는 내내 차에서 선생님의 온몸을 주무르며 호흡을 확인했다.

쥐었다 폈다 하는 손이 바르르 떨리는 것만 봐도 진이 다 빠진 느낌이었다.

이장님은 그런 녀석의 어깨를 한 차례 두드려주셨다.

“너희 둘 다 수고했다.”

“그런데 왜 그러신 거래요?”

“의사 선생님 말로는 심근 경색이라는데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났을 거라 하더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조금 더 늦게 발견했을 경우.

어떻게 되셨을지 알 수 없었다.

만약에 그 찜찜한 기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겼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그것만 생각하면 아찔했다.

“때마침 찾아가서 다행이었네요.”

“그래도 정 씨 할아버지는 너희가 있어서 다행이었지. 다른 분들은 자주 들여다보지 않으면 정말 큰일 치를 수도 있어.”

“이런 일이 자주 있나요?”

“매년 한두 번씩은 있는 일이야. 마을에 어르신이 많으니 앞으로는 더 자주 이런 일이 생기겠지.”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혼자 사시는 분이 마을에 꽤 많았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마을 전체를 매일 살피는 것은 어려웠다.

더구나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작은할아버지 일이 있었던 탓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이장님은 온갖 응급 처치를 꾸준하게 배운다고 했다.

초반에 대응만 잘하더라도 그 예후가 크게 달라지는 탓이었다.

“여름에는 밭일하시다가 열사병으로 쓰러지시는 분도 있고 놀러 온 사람들이 갑자기 불어난 계곡물에 익사도 하지.”

“꽤 오래전에 폭포에 빠져서 돌아가신 분이 있었던 거로 기억해요.”

“그게 10년쯤 전인가. 올해도 아무런 사고 없이 잘 보냈으면 좋겠다.”

계곡이란 곳은 참 무서운 곳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나 비라도 내리게 되면 순식간에 물이 불어 덮칠 수도 있다. 실제로 경험해보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다.

어릴 적에 계곡 트레킹을 할 때.

살짝 내리는 비라 무시했었으나 생각 이상으로 물이 차는 속도가 빨랐다.

폭우가 내리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빠르게 수위가 높아지는 곳이 덕월 계곡이었다.

“이장님. 여기는 제가 지킬 테니 그만 수호랑 함께 돌아가서 일 보시죠.”

“그게 무슨 소리야. 의리 없이 선생님을 놔두고 나만 가라는 게 말이 돼?”

“우리 둘 다 여기 있으면 막걸리는 어떻게 하려고? 누군가 한 명은 가서 관리를 해줘야지.”

“그래, 도찬이 말대로 하자.”

“너는 어떻게 하려고?”

“아드님이 오실 때쯤 전화줄 테니 차 끌고 나 태우러 와.”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셋이나 병원에 앉아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수호와 이장님은 멀리서 선생님 얼굴을 다시 한번 뵙고 곧장 떠났는데 그 뒤로는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병색이 가득한 환자들까지.

가만히 앉아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를 맡으니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그날 오후 늦은 시간.

선생님의 아드님이 도착했다.

대구에서 출발하시는 거라 거리가 상당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오셨다.

시간을 고려해 보면 쓰러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장 달려오신 것 같았다.

“그쪽이 이번에 오저당을 물려받은 주 사장님의 손자분인가요?”

“처음 뵙겠습니다. 제가 전화드린 주도찬입니다.”

“통화만 여러 번 하고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네. 정석우라고 해요.”

직접 뵙는 것은 처음이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선생님의 아들이라 여길 정도로 상당히 닮았다.

잠깐의 인사를 나눈 뒤에 정석우는 선생님을 뵙고 밖으로 나왔다.

“의사 선생님은 만나 보셨나요?”

“오는 길에 통화했는데 혈전 용해 약물을 처방했답니다. 관상동맥 중재술이란 시술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럼 여기서 시술하시는 건가요?”

“아무래도 대구에 있는 더 큰 병원으로 모셔야 할 것 같네요.”

이곳 태백의 병원도 제법 크지만,

가까운 곳으로 모실 생각인 것 같았다.

하루 이틀 만에 일어나실 상태는 아니다.

그 이후로도 계속 관리가 필요하다.

간병인 없이 혼자 계실 수도 없고 아드님이 계속 오갈 수도 없었다.

그건 전적으로 선생님의 아드님이 결정하실 문제라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제가 더 유심히 살펴봤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갑자기 쓰러지실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래도 저희 때문에 대구로 가는 것을 미루고 계속 남아계셨으니까요.”

“아버지가 결정하신 거예요. 그리고 집에 계셨다면 더 큰 일이었지. 맞벌이를 하는 탓에 낮에는 아무도 없어서 무슨 일이 생겨도 뒤늦게 알았을 겁니다.”

정석우는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늦지 않게 발견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해주었다.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당연히 양조장 이야기도 나왔다.

“아버지가 함께 빚어준다는 조건으로 양조장을 다시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어서 어쩌죠?”

“아닙니다. 그동안 선생님이 저희와 함께해주신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그래도 마음이 좋지는 않네요.”

진심으로 하는 말 같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린 시절에는 부자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선생님은 아드님이 대대로 내려오는 양조장 기술을 내심 잇길 바랐다고 했다.

하지만 끝내 사양하고 대구에 터를 잡았다고 했다.

“그때는 술 냄새가 너무 지겨웠어요.”

“충분히 이해해요.”

“오죽하면 아직도 술은 거의 안 마십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이가 드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하더군요.”

그렇게 말한 뒤 정석우는 캔을 찌그려서 쓰레기통에 던지듯 넣었다. 그때 얼핏 본 그의 손은 상당히 거칠어 보였다.

인생의 고단함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하지만 던지는 실력은 좋지 않았다.

상당히 많이 빗나간 캔을 주워서 쓰레기통에 넣고 자리로 돌아온 그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를 해줬다.

“며칠 전에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었어요. 두 사람만 괜찮다면 계속 머물며 벽향주의 지방무형문화재를 물려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선생님이요? 그런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했어요.”

“어찌 되었든 이제는 불가능해졌죠.”

“오저당은 저희가 어떻게든 할 테니 선생님은 쾌유에만 신경 써달라고 잘 말씀드려주세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잠들어 계신 선생님에게 인사를 드린 후에 나는 병원을 나왔다.

조금 더 있으려고 했으나 아드님은 그만 가도 좋다고 계속 나의 등을 떠밀었다.

밖의 공기는 무척이나 상쾌했지만,

기분만큼은 그리 상쾌하지는 않았다.

조금 헛헛하달까? 아니 정확하게 막막하다는 느낌이 맞을 것 같았다.

이제는 수호와 내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오저당의 기둥 같은 분이다.

하지만 더는 기댈 존재가 없었다.

그때 타이밍 좋게 수호가 나타났다.

녀석은 차창을 내려서 병원 앞에 서 있는 내게 어서 타라며 손짓했다. 미리 연락을 해둔 덕분에 딱 맞게 도착할 수 있었다.

차에 올라탄 나는 병원에서 아드님과 나눈 이야기를 녀석에게 전달해줬다.

선생님이 대구로 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수호의 표정은 나라를 잃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당부를 하듯 말했다.

“여기서 접자는 말은 하지 마라.”

그럴 생각은 해본 적도 없어.

선생님 없이 술을 빚는 것은 조금 불안한 것은 사실이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나 스스로를 믿어야 했다.

“선생님이 안 계시더라도 우리 둘이 어떻게든 해봐야지. 그러니 나만 믿고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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