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5화 (15/254)

와! 여름이다 (1)

요정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뒤늦게 선생님을 발견했을 것이다.

가뜩이나 오저당의 성장에 요정이 이바지하는 바가 엄청나다. 당연히 그에 따른 보상을 주기로 했다.

그런데 도대체 뭘 줘야 하지?

고민할 것도 없이 결론이 나왔다.

다른 어떤 무엇보다 술을 좋아하는 녀석들이니 마트에서 온갖 술을 사 왔다.

막걸리와 소주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양주와 와인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오죽하면 수호가 미친 거 아니냐는 눈빛으로 바라봤을 정도였다.

평소에 술을 이렇게 샀던 적이 없으니 나오는 반응이었다.

전혀 아깝지 않았다.

어차피 그걸 마시는 것은 우리다.

요정이 맛을 봐봤자 증발하는 양만큼의 아주 극소량이었다. 하지만 옹기나 오크통과 달리 마개는 열어줘야 했다.

완전히 밀봉된 병에 든 것이 숙성되지 않는 것처럼 요정들도 접근하지 못했다.

새로운 사실도 하나 알게 되었다.

양주와 와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직 국산만을 고집하는 아주 지조 있는 그런 요정들이었다. 오늘도 너희들에 대해서 이렇게 하나 알아가는구나.

그리고 또 하나 재미있는 게 있었다.

요정들 덕분에 본의 아니게 다른 술도가의 술을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술이라도 기준 미만이면 대부분의 요정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극소수의 입맛이 특이한 녀석들만 그런 술을 즐겼다.

‘아주 입맛만 고급져서 큰일이야.’

그중에서도 최애는 역시 벽향주였다.

이번에 요정들에게 준 것은 국내에서 빚어지는 술 중에 극히 일부에 불과하나 그래도 약간의 자부심이 생겼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작업을 하고 있자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수호가 돌아왔다.

“아! 시원하다.”

“꼭 바쁠 때 화장실을 가더라.”

“이 시간만 되면 마려운 걸 어떡해.”

“조금 전에 선생님의 아드님이 전화 주셨어.”

“혹시···?”

“시술 잘 끝났고 회복 중이셔.”

그제야 수호는 안도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잘 풀리진 않았다.

선생님이 안 계신 티가 곳곳에서 났다.

구심점을 잃은 탓에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곳곳에서 터졌다.

다행히 대부분 잘 넘겼지만,

온종일 일해서 빚은 막걸리를 모두 폐기한 날도 한두 차례 있었다.

반면에 벽향주는 기존에도 우리끼리 빚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꽤 많이 배웠다.

그 덕분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최악의 경우가 오더라도 막걸리를 버리고 벽향주만 빚으면 되잖아.

하지만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지금까지 들인 노력을 허무하게 날려버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기 위해 그간 많은 노력을 했다.

양조장 벽에는 과정을 빼먹지 않기 위해 흐름도를 붙여놨고 여러 변수를 가정해 해결 솔루션도 미리 준비를 해놓았다.

일종의 매뉴얼화라고 봐도 되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것도 아니잖아.’

비록 멀리 떨어져 계시지만,

전화로 물어볼 수도 있지 않은가.

내 옆에서 한동안 말없이 작업만 하던 수호는 선언하듯 외치며 벌떡 일어났다.

“흐아아, 오늘 작업은 이걸로 끝!

녀석의 주변에는 오늘 내보낼 택배 박스 수십 개가 쌓여 있었다. 벽향주의 판매량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한때 반짝하는 인기는 확실히 아니었다.

그 덕분에 수익도 적지 않았다.

예전보다 적은 재료로 더 많은 벽향주를 빚고 있으니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25개의 옹기를 최대한 활용하며 매달 만들어내는 양은 3,600리터가 넘는다.

그걸 팔아서 지난달에 기록한 매출총이익은 2천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순이익을 따지면 당연히 줄어드나 우리가 벽향주의 매출 증가를 위해 많은 판관비를 쓰는 것도 아니었다.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입소문이라는 게 참 무서웠다.

초반에는 연예인의 SNS 덕분이었지만, 어느덧 벽향주는 핫한 전통주가 되었다.

무엇보다 가격 대비 맛이 좋다고 소문난 덕분이었다. 그와 더불어 삼척시도 생각 외로 상당한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벽향주가 갑자기 인기를 끌자 시청의 담당 공무원들이 알아서 홍보를 해줬다.

우리가 만드는 벽향주의 일부는 삼척 특산물을 파는 가게에 다시 납품되었다.

심지어 벽향주를 소개하는 팸플릿을 만드는 것도 시에서 일부 지원해주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나는 일이 끝났다고 도망치려는 수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자리에 앉혔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다 끝난 거 아니었어?”

“아직 안 아니지. 이제 삼척에 있는 특산물 스토어에 보낼 물건 준비하자.”

“그거는 내일 오전에 실어 간다며 조금만 쉬었다가 하자. 요즘 너무 쉴 틈 없이 일만 하고 있는 것 같아.”

“언제는 빡시게 굴려달라며.”

“적당히란 것도 모르냐.”

수호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미루지는 않았다.

나도 피곤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막걸리를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를 보니 감당이 되지 않았다. 서둘러서 고급화 라인으로 가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막걸리와 벽향주를 비교할 때.

판매량은 벽향주가 1/3밖에 안 되나 이익은 오히려 3배나 높게 나온다.

750ml 한 병에 300원도 남지 않는 현재의 막걸리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벽향주의 생산량도 계속 늘어나는 중이니 사람이라도 한 명 더 쓰자.”

“뭘 시키려고?”

“술을 빚는 거는 바라지도 않아. 택배 포장만 맡아줘도 좋을 것 같아.”

병입만 한다고 끝이 아니다.

벽향주는 모든 과정이 수작업이다.

라벨을 붙이고 박스에 넣는 모든 일을 우리 둘이 직접 하고 있는 중이었다.

더구나 택배는 깨지지 않게 포장 작업도 해야 하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시간이 적지 않았다.

“안 그래도 구하려고 알아보는 중이야.”

나도 수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와 관련된 고민은 계속하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가 원한다고 이곳에서 일할 사람을 쉽게 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오풍리 주변에는 일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전혀 없었다.

젊은 층이 없는 농촌의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환갑이 넘으신 분들을 우리가 고용해서 일을 시키는 것도 무리였다.

생각보다 힘을 써야 하는 일이 많은데 허리라도 나가시면 답이 없었다.

그 문제에 대해 수호는 한 가지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냥 이모님이 도와주시면 안 될까?”

“이장님댁 이모님?”

“우리가 바쁠 때 종종 도와주셨잖아. 저번에 보니 손도 엄청 빠르시던데.”

“그게 가능할까?”

안 그래도 바쁜 분이다.

혼자 사시는 할머님들을 챙기시느라 이장님 못지않게 활동량이 많았다.

그 활동 대부분이 같이 음식을 만들고 수다를 떨어주시는 것이나 아무 의미 없는 일은 절대 아니었다.

거기다가 농사도 짓는다.

이장님의 본업은 더덕 농사다.

서늘한 기운을 좋아하는 더덕은 산간 지역인 이곳과 제법 잘 어울렸다.

참고로 양조장에 포함되어 있는 임야도 이장님이 일부 사용 중이었다.

산에서 키운 더덕이 더 비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호의 말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이모님과 의논하고 싶은 게 한 가지 있기는 했다.

그날 해가 질 무렵.

우리는 이장님 댁을 찾았다.

당연히 두 손 가득 막걸리와 벽향주를 들고 갔다. 부탁하는 입장이라 뇌물로 뭐라도 가져가야 했다. 이모님은 그런 우리를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셨다.

“그냥 오라니까 매번 이렇게 가져오니.”

“저희가 마실 거는 가져와야죠.”

“그럼 안주는 내가 맛있는 거로 준비해줄 테니 너희는 일단 가서 앉아있어.”

“에이, 그럴 수 있나요. 제가 옆에서 도와드릴게요.”

수호는 두 팔을 걷고 나섰다.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애쓴다 애써!

반대로 나는 이장님을 전담 마크했다.

내가 술병을 내려놓자 이장님은 잔부터 가져와서 막걸리를 채웠다.

“너희가 있으니 마을이 활기차서 좋네.”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마을 일에 자주 참석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다들 이해하고 있어. 요즘에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한다며.”

“도대체 어르신 두 분이 지금까지 어떻게 일하신 건지 신기할 정도예요.”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이장님과 나는 일단 잔부터 비웠다.

그리고 마을과 양조장에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삼척에 있는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는데 양조장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더라. 이제는 팔 생각이 없는 거지?”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수호랑 저 복학까지 미룬걸요. 가능하면 계속 운영할 생각이에요.”

“나야 너희 땅에서 더덕을 키우니 다행인 일이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팔릴지 몰라.”

만약 3개월전 쯤이었다면,

어느 정도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양조장을 팔 생각은 없었다.

이미 1년이란 기간 동안 휴학을 연장한 상태였고 그 이후의 계획은 아직 없었다.

그건 그때 가봐야 알 것 같았다.

만약에 내가 꿈꾸는 거대한 주류 회사로 성장할 가능성이 보이면 올인해야겠지.

누군가는 꿈이 너무 크다고 할지 몰라도 불가능하다 여기진 않았다.

지평 막걸리가 그 예다.

10년 사이에 거의 200배의 매출 상승을 이뤄낸 그곳은 현재 매출이 400억 대에 올라섰다고 한다. 그 성공 사례는 내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이기도 했다.

다행히 현재의 오저당은 꾸준히 성장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팔지 않을 거라고 전해주세요.”

“그래. 뭐든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 가능하면 최대한 도울게.”

“매번 신경 써주셔서 고마워요.”

“그나저나 기혁이 그놈은 조카들만 산골에 보내놓고 얼굴도 안 비추냐.”

“거기도 엄청 바빠요.”

유나 누나도 대회 준비로 바쁜데 손님의 숫자는 여전히 정점을 찍고 있었다.

프라이빗 룸에 매료된 건지 배수인도 동료 배우들과 자주 찾는다고 했다.

강북에 있는 2호점도 비슷한 상황이라 3호점을 오픈할까 고민하고 계실 정도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장님은 크게 웃으며 자기 일처럼 기뻐하셨다.

“아주 떼돈을 벌고 있겠네.”

“나중에 오면 거하게 쏘시라고 하세요.”

“그래, 우리가 탈탈 털어먹자. 하하!”

“그건 나중에 고민하고 오늘은 이것부터 드셔요.”

이모님이 내온 것은 배추전이었다.

기름진 냄새를 맡으니 허기가 밀려왔다.

사양 않고 젓가락을 쥔 우리는 막걸리와 함께 저녁 겸 안주를 먹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 술잔이 오가는 중에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본론을 슬쩍 꺼냈다.

“사실 저희가 온 게···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인데요.”

“그럴 거 같았어. 속 시원하게 말해봐.”

“눈치채셨나요?

“수호 녀석이 아까부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굴고 있는데 못 알아채는 게 더 이상하지.”

이장님의 말에 수호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하여간 표정 관리가 전혀 안 되는 녀석이었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기에 아까 수호와 나눴던 이야기를 꺼냈다.

“이모님이 괜찮으시다면 양조장 일을 도와주십사 부탁을 드리려고요.”

“어머!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니 기분이 좋네.”

“아시다시피 일을 크게 벌여놔서 손이 너무 부족해서요. 이모님이 와주시면 저희로서는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나는 상관없어. 결정은 본인이 해야지.”

이장님은 결정을 이모님에게 미뤘다.

여기서 하라 하지 마라 말하기는 조금 애매하신 눈빛이었다. 하긴 밖에서나 이장님이지 집에서는 꼼짝도 못 하셨다.

오풍리에서 몇 개월 살아보니 실질적인 권력자는 이모님이었다.

“흐음··· 고맙기는 한데 조금 애매해.”

이모님은 곧장 답을 주진 않으셨다.

망설이시는 이유를 물어보니 한 달 내내 양조장에서 일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마을에서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아 이장님 못지않게 바쁘셨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 농사도 도와야 하고 종종 마을 일도 봐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양해를 구하기 미안해질 것 같아.”

“그런 일이 있으시면 며칠 전에 미리 말씀만 해주셔도 저희는 괜찮아요.”

“에이, 월급을 받으면 그럴 수는 없지.”

“그러면 차라리 시급을 받아.”

이장님은 절충안을 내주셨다.

그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긴 했다.

서로 부담 없이 일한 만큼 돈을 받으라는 말에 이모님은 살짝 고민하는 눈치였다.

이곳에서 일손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이 양반 식사도 준비해야 하고 밭일도 해야 하니 오저당에서는 오후만 일해도 괜찮다면··· 좋아.”

“와아아! 다행이다. 정말 저 여기서 과로사 당하는 줄 알고 쫄았어요.”

“야, 그 정도는 아니었잖아.”

나는 적당히 하라고 눈짓을 보냈다.

좋은 근로 조건을 어필해도 모자랄 판에 죽겠다는 말만 하는 게 옳지는 않았다.

그제야 수호도 정신을 차렸다.

“대신 도찬이가 이모님의 시급은 넉넉하게 잘 쳐줄 거예요.”

“나야 좋지. 호호!”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한 식구가 된 기념으로 건배할까?”

이장님이 건배를 제의하자,

모두가 막걸릿잔을 동시에 들었다.

이제 한시름 놓을 수 있었기에 나는 물론이고 수호의 표정도 무척 밝아졌다.

하지만 한 가지 더 논의할 게 있었다.

“여름에 덕월 계곡으로 놀러 오는 사람들의 수가 어느 정도 되나요?”

“글쎄, 매년마다 다르기도 하고 딱히 숫자를 세본 적이 없어서 어느 정도라고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네···.”

이장님이 말끝을 흐리자,

곁에서 이모님이 대답을 해줬다.

“그래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잖아요. 얼마 전에 부녀회에서 통계를 본 적이 있는데 연간 10만 명 정도라고 하더라.”

적다고 보긴 어려운 숫자였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여름철의 성수기는 오저당으로서는 돈을 들이지 않고 술을 홍보할 기회였다.

더구나 돈까지 벌면 금상첨화였다.

“이번 휴가 시즌에 양조장 앞에 주막을 열어보는 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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