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다! 산타 오셨네 (1)
그로부터 며칠 뒤.
마침내 창고가 완공되었다.
창고는 무척 만족스럽게 지어졌다.
강원도의 폭설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튼튼했고 외형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해외의 증류소처럼 벽돌로 짓고 싶었으나 그건 욕심이었다.
일단 들어가는 돈의 단위가 달라진다.
벌써 그런 수준까지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리고 완공이 되던 날.
마을에서는 제법 큰 잔치가 열렸다.
고사를 지내려고 준비했을 뿐인데 수상 소식을 듣고 축하해주려고 시간 내서 오저당까지 와주신 분들이 제법 많았다.
연화 건설 사장님과 직원들.
삼척 시청의 주무관님과 마을 사람들.
모두 합치면 마흔 명이 넘어갈 정도라 간단하게 하기로 마음먹었던 고사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커졌다.
반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가 맺은 인연들이었다.
그 덕분에 오저당도 모처럼 쉬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으나 하루 쉰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술도 아낌없이 내드렸다.
양조장의 장점은 마르지 않는 술독 아니겠는가. 마을 잔치로 변해버렸으나 문제 될 것은 전혀 없었다. 각각의 집에서 여러 음식을 가져오니 꽤 풍성했다.
마치 미국에서 경험한 포틀럭(Potluck) 파티와 흡사한 구석이 제법 많았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읍내로 나가서 족발과 고기 같은 음식을 사왔다.
하지만 그걸로도 부족해서 이러다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잡는 것은 아닌가 걱정될 정도였다.
다소 혼란스러웠던 그 날.
쌍둥이도 오저당에 첫 출근을 했다.
15분 차이로 태어난 두 아이의 이름은 각각 신유성와 신우주라고 했다.
태어난 직후부터 시설에서 자란 터라 누가 그 이름을 지어준 지도 모른단다.
신 씨라는 성도 원장님의 성을 따른 것이라고 했다. 외모는 평범한 편이나 둘 다 쌍꺼풀이 진하고 꽤 심한 곱슬이었다.
다만, 몸집이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호세도 호리호리한 편인데 그보다도 작아 보였다.
“머리카락이 긴 쪽이 신유성이고 짧은 쪽이 동생인 신우주 맞나요?”
“맞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
형인 신유성은 활달한 편인지만,
동생 신우주는 조금 무뚝뚝해 보였다.
같은 쌍둥이라도 캐릭터가 확실히 달라서 구분하기는 어렵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둘 다 긴장한 것은 똑같았다.
그 모습은 뭐랄까···.
자대 배치받은 이등병 같았다.
워낙 눈칫밥을 많이 먹은 탓일까.
잠깐 눈만 마주쳐도 긴장한 게 눈에 보일 정도라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 시기만의 파릇파릇함은 도저히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동네 어르신들의 관심을 꽤 끌었다.
오풍리에 모처럼 아이들이 온 덕분이다.
쌍둥이는 우리보다 네 살 정도 어리나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선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군대까지 다녀온 우리보다 훨씬 어리게 보시는 경향이 있었다.
“어여 이것도 먹어.”
“거참 복스럽게도 잘 먹네.”
“언제든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우리 집으로 와서 말해. 알았지?”
어쩌면 안쓰러워서 더 그러시는 건지도 모른다. 두 아이가 보육원에서 왔다는 것은 비밀로 두지는 않았다. 흠이 될 일도 아니고 어르신들도 신경 쓰지 않았다.
먹성 좋은 두 아이를 지켜보고 있자 아이들을 태우고 와주신 시청 복지 정책과의 이화선 주무관님이 다가왔다.
오저당과 저 아이들은 연결해주신 분이 바로 주무관님이었다.
“이번에 주류 품평회에서 벽향주가 대통령상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려요.”
이화선 주무관님의 말처럼,
우리는 결국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미 시상식도 다녀와서 양조장 사무실 벽면에 상장이 떡하니 걸려 있다. 당연히 온라인 스토어에도 이미지가 추가되었다.
충분히 자랑할만한 성과였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애초에 평가받은 점수 차이가 워낙 커서 오저당의 술 중에 어느 술이 될 거냐의 문제에 가까웠다.
실제로 치열한 설전이 있었단다.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쉽게도 오풍주가 아닌 전통이 있는 벽향주였다.
겨우 한 표 차이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시상식에서 심사 위원 중의 한 분이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조금 아쉬운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벽향주는 전수 받은 것이라 내 것이란 생각이 들기보다 잠시 가지고 있다가 물려줘야 할 술이라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오풍주는 그와 달리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우리가 개발한 술이다.
“감사합니다. 저 아이들은 오저당에서 제가 잘 보살필 테니 심려치 마세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이 일이 몸을 꽤 쓰는 일이라 힘들 텐데 잘 버텨줄지 걱정입니다.”
수호는 자주 막노동과 비교했다.
몸이 힘든 것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시멘트 포대 대신에 쌀 포대를 짊어져야 했고 술을 빚기 전에 옹기도 매번 닦아서 말려놔야 하는 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주무관님은 걱정 말라고 했다.
“제가 장담하건대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끈기가 있을 겁니다.”
“그러면 다행이고요.
“안타깝게도 어쩌면 환경이 그렇게 강요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죠.”
감히 상상을 할 수 없었다.
내가 금수저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저 나이에 유학까지 다녀왔다.
더구나 몇억이나 되는 땅과 이곳 오저당까지 유산으로 받았으니 출발선 자체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동정할 생각은 없었다.
쌍둥이에게는 오저당이란 기회가 주어졌다. 그걸 어떻게 쥐어 잡냐에 따라 인생이 바뀔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렇게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뭘 믿고 그런 말을 하냐고?
지금의 오저당은 급성장 중이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핫한 양조장이 바로 우리였고 벽향주는 물론이고 오풍주도 없어서 못 팔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쯤 되자 술을 빚는 게 아니라,
돈을 찍어내고 있다고 봐도 되었다.
벌써 오저당의 향후 생산량 중에 거의 반년치에 달하는 물량이 계약되었다.
반년 동안 매출 2억을 목표로 했던 오저당이었다. 하지만 내년에 내가 기대하고 있는 매출은 50억이 넘는다.
그것도 무척 보수적으로 잡은 거다.
지금처럼 만드는 족족 오풍주까지 완판이 된다면 70억까지도 가능하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이화선 주무관님이 부탁을 하나 해왔다.
“그래서 말인데 염치 불구하고 사장님께 한 가지 부탁을 더 드려도 될까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면 좋겠네요.”
“나중에 일손이 더 필요하실 때가 되시면 퇴소하는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세요.”
당장 대답해줄 수는 없었다.
상황이 안쓰럽다고 무턱대고 고용을 하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호세처럼 자기 몫을 해줄 정도는 되어야만 한다. 오저당에서 쌍둥이가 얼마나 빨리 적응하는지가 관건이었다.
“당장은 계획이 없지만, 가능한 염두에 두겠습니다.”
*
고사를 지내고 바로 다음 날.
이천에서 보낸 옹기가 들어왔다.
10말짜리 대형 옹기는 생각 이상으로 육중하고 커다란 덩치를 자랑했다.
겨우 2말이 더 들어간다고 보기는 어려울 정도였다. 하긴 정확하게는 10말보다 조금 더 큰 200리터 크기이긴 했다.
“이게 이렇게 컸었나?”
수호조차 혀를 내둘렀다.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컸다.
기존에 사용하던 8말은 우리 둘이 들고 옮겨도 될 정도의 크기였으나 10말은 적어도 세 명은 붙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셋이서 같이 들어야겠지?”
“허리 나가지 않으려면 그래야지.”
“이장님도 도와주러 오셨으니 세 명씩 나눠서 옮기면 되겠다.”
“수호 너는 이장님이랑 우주 데리고 하고 나는 호세랑 유성이랑 옮길게.”
그나마 힘이 좋은 수호가 있는 쪽을 이장님이 도와주시는 게 바람직했다.
화물차에서 내린 옹기는 곧장 창고 안으로 들여보내지는 않았다.
그 전에 세척부터 해야 했다.
내일부터 술을 빚어야 하는데,
그 전에 꼼꼼하게 헹궈내야 한다.
숙성이라는 게 작은 오차에도 변하는 폭이 상당히 큰 편이고 아무래도 새로 들어온 거라 이물질이 있을 수도 있다.
세척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만약에 온수기가 설치된 세척실을 만들지 않았다면 엄두도 안 났을 것이다.
우리가 쓰는 지하수는 무더운 여름에도 얼음장같이 차가워서 꼭 필요했다.
“진짜 온수기 설치한 게 신의 한 수다.”
“그래, 네 말을 듣길 잘했어.”
“오늘 세척을 다 끝낸다고 하더라도 이걸 언제 다 채울지 막막하네.”
“우리 둘이서 서른 개가 넘는 옹기를 작업했었잖아. 겨우 두 배밖에 안 되니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겨우 두 배? 그게 말이냐 방귀냐.”
수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아.
숫자는 두 배가 맞으나 옹기 크기가 커져서 거의 3배는 된다고 봐야 했다.
더구나 우리가 그걸 한 번에 채우는 것도 아니고 며칠간 고생해서 작업해야 가능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도와줄 사람이 많잖아.
우리 둘이서 모든 것을 해야 했던 초창기와 달리 이제는 직원도 여럿이다.
이장님까지 합쳐서 여섯이 움직이니 작업이 몇 배나 빨라진 것이 느껴졌다.
마음이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역시 맨파워가 가장 중요해.’
더구나 쌍둥이도 생각보다 일을 잘하는 편이었다. 주무관님의 말처럼 녀석들의 끈기는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수호처럼 힘이 센 것도 아니고 호세처럼 열정의 화신 같지 않았지만, 적어도 시킨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끝을 봤다.
수호가 내린 평가도 좋았다.
“우주랑 유성이 둘 다 생각보다 술 빚는 과정에 대해서 관심이 많더라.”
“그랬어?”
“나름 메모까지 해가면서 열심이야. 더구나 출근 첫날부터 고생했으니 저녁에는 고기나 구워 먹을까?”
역시 결론은 고기구나.
하지만 수호의 말도 틀리진 않았다.
첫날부터 고된 일을 잔뜩 시켰기에 나도 솔직히 마음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오저당을 운영하면서 지금까지 이렇게 일이 힘들었던 날이 과연 있었던가.
혹시 밤에 몰래 도주하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래, 어제 사 온 고기 많이 남았으니 오늘 다 먹어서 치워버리자.”
“이번 기회에 냉장고도 좀 큰 거로 바꾸면 안 될까? 너희 할아버지가 술 냉장고로 쓰던 곳도 꽉 차서 들어갈 곳이 없더라.”
“하긴 그렇기는 하지.”
오저당에 인력이 추가되면서,
여러모로 예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할아버지 혼자 사시던 집이라 냉장고가 그리 크지 않았다. 남자 다섯이 함께 살기 시작하니 냉장고가 버티질 못했다.
하루건너 한 번씩 장을 봐서 가득 채워놔도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안 그래도 전자 제품 같은 것들은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에어컨은 너무 오래돼서 새로 사는 가격보다 전기료가 더 나올 것 같았다.
더구나 아무리 틀어도 생각보다 시원하지 않다는 문제도 가지고 있었다.
“조만간 에어컨까지 싹 다 바꿔줄게.”
“오! 역시 주도찬, 시원시원해서 좋아.”
“다들 고생하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저··· 손님이 찾아왔는데요.”
그때 우주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형인 유성은 하루 반나절 만에 호세와 절친이 거의 다 되었지만, 우주는 아직 우리가 낯설었는지 여전히 쭈뼛거렸다.
시간이 어느 정도는 필요할 것 같았다.
“손님? 정중하게 죄송하지만, 품절이라 판매는 어렵다고 말씀드리고 돌려보내.”
지금은 팔고 싶어도 팔 게 없었다.
아무리 멀리서 왔어도 어쩔 수 없다.
이미 기존에 만들어 놓은 물량은 현송과 태백에서 모두 가져가고 없었다.
온라인 스토어도 잠시 닫아 놓은 상태였고 새로 계약한 주류 상사는 대기표를 뽑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오프라인 판매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게 직접 나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왜? 말이 안 통해?”
“음··· 그렇기는 한데요.”
“또 막무가내로 구는 사람이 왔나 봐. 내가 나가서 해결하고 올게.”
수호는 자신 있게 창고를 나섰다.
보통 그런 사람은 녀석이 잘 처리했다.
선택적 분노라고 해야 하나 아무리 막무가내인 사람들도 녀석의 팔뚝을 보면 흥분을 가라앉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수호는 몇 초도 안 지나서 돌아왔다.
가볍게 인사만 하고 돌아와도 이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수호도 역시 우주 못지않게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왜 그러냐고 묻자 녀석은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말을 했다.
“음··· 그게 말이지. 산타클로스가 오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