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35화 (35/254)

미래를 향한 교두보 (2)

주류 품평회가 끝나자.

협회는 예전으로 되돌아갔다.

시끌벅적하고 바쁘게 돌아가던 협회의 사무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했다.

빈자리도 제법 많이 보였는데 품평회를 마치고 휴가를 떠난 이들이었다.

남은 이들도 이미 휴가를 다녀왔거나 아니면 이제 곧 휴가를 갈 이들이었다.

나태영 대리는 이미 다녀온 쪽에 속해 있었는데 그을린 피부만 봐도 햇살 좋은 나라로 여행을 다녀온 것 같았다.

“아··· 적응 안 되네.”

겨우 일주일에 불과했지만,

다시 회사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아직도 눈을 뜨면 가족과 함께 다녀온 발리의 푸른 바다가 보일 것 같았다.

그래도 피로는 많이 털어낼 수 있었다.

휴가 전까지 그는 품평회 영상을 편집한 뒤에 올리느라 꽤 빡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영상은 제법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가장 압권은 역시 탁주와 약·청주 부문의 대상 발표였다.

### : 도대체 무슨 술이길래 점수가 저렇게 나오는 거야? 수염 하얀 할아버지 놀라는 표정은 계속 봐도 압권이네.

ㄴ ### : 그러게 나도 마셔보고 싶다.

### : 저 점수 완전히 주작 같은데

ㄴ ### : 품평회 구조상 불가능해. 블라인드라 어디 술인지도 모르는걸.

ㄴ ### : 다 아는 방법이 있겠지.

### :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벽향주는 알지. 그거 봄부터 계속 품절 대란 났던 거잖아. 하지만 오풍주라는 술은 처음 들어봤어.

ㄴ ### : 얼마 전에 삼척에서 오풍주 파는 거 봤는데··· 그때 안 마신 나를 저주해.

ㄴ ### : 저 점수 보면 사람들이 왜 애타게 구하려고 했는지 이해되네.

ㄴ ### : 그래도 요즘 들어 물량이 조금씩이나마 풀리는 것 같더라.

오풍주와 벽향주를 마신 뒤.

과연 저런 댓글을 쓸 수 있을까.

나태영은 절대로 그럴 수 없을 거라 자신했다. 아직도 그는 처음 오풍주를 마셨을 때의 감정을 잊을 수 없었다.

과장을 조금 덧붙이면 미칠 것 같은 황홀함 그 자체였다.

오저당에 대한 관심도 더 커져갔다.

요즘 그는 오저당의 너튜브 채널에 올라오는 영상만 매일 기다리고 있었다.

채널을 만든 지 한 달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벌써 구독자가 만 명을 넘어섰다.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우연히 벌어진 일은 아니다.

올리는 영상이 쓸데없이 고퀄이었다.

따로 업체를 쓰는 건지 의심될 정도다.

그만큼 촬영과 편집 모두 프로의 손길이 느껴졌는데 협회 채널보다 더 영상미가 돋보이기에 경쟁심이 살짝 생겼다.

영상의 종류도 꽤 다양했다.

자신들의 술과 어울리는 음식의 조합.

심지어 오풍주 칵테일을 만드는 방법도 올렸는데 바텐더의 미모가 장난 아녔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오저당 청년들의 일상 콘텐츠였다.

그다지 특별한 것을 하진 않았다.

어그로가 전혀 없는 힐링물에 가까웠다.

강원도 특유의 고즈넉한 시골 풍경이 주는 정취와 양조장이란 특별한 공간이 유독 돋보이는 영상이 많았다.

더구나 다들 젊고 외모도 훈훈한 편이라 여심을 꽤 흔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나저나 바이어에게 배포할 영문 자료를 제대로 만들어 오려나?”

조금 전에 오저당 대표와 통화했다.

2주 후에 열리게 되는 바이어 상담회에 사용할 영문 자료를 만들기 위해 자료를 요청했으나 오저당에서 직접 하겠단다.

일거리가 줄어든 것은 환영이나 과연 제대로 만들어 올까?

그의 경험상 대부분 수준 미달이었다.

애써 마련한 자리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일만큼 허탈한 게 없었다.

원래는 각자 준비하던 자료를 나태영이 직접 만들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아니다.

바이어가 가장 관심을 가질 대상과 대통령상 정도만 해주고 있었다.

그게 스스로 내린 한계치였다.

“혹시 개판으로 준비해오면 어쩌지?”

“뭘 개판으로 만들어?”

그때 등 뒤에서 고석 과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효자손으로 등을 긁고 있는 모습은 꽤··· 나태해 보였다. 오직 이 시기만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었다.

“오저당이요. 해외 바이어 배포용 자료 만들어주겠다는데 직접 하겠다네요.”

“문제없을 테니 거긴 신경 쓰지 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태영이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러자 고석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그에게 이야기해줬다.

“거기 사장이 해외 유학파라고 하더라. 해외에서 모셔온 심사 위원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봤는데 꽤 유창했어.”

“진짜 못 하는 게 없네요.”

“부럽냐? 부러우면 지는 거야.”

“과장님은 안 부럽습니까? 요즘 오저당 엄청 돈 잘 벌고 있잖아요.”

정확하게 파악되는 것은 아니지만,

엄청나게 생산량을 늘렸는데도 여전히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정도다.

거기 사장이 20대 중반에 불과한데 벌써 억대 연봉자가 부럽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나이에 뭘 했는지 몰라.”

“과장님도 저처럼 학교 다니느라 바빴겠죠.”

“학업 때문이 아니라 술 처먹느라 정신없었지. 그래도 후회는 없다.”

“왜요?”

“그때 술에 미쳐 살았던 덕분에 지금 내가 여기서 일하고 있지 않냐.”

나태영도 그건 인정했다.

옛날의 고석 과정은 엄청났다.

열정과 끈기의 대명사와 같았달까.

고석이 젊었을 때는 스코틀랜드부터 미국 그리고 이탈리아 등의 증류소와 와이너리를 직접 찾아다녔다.

단순히 궁금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술을 빚는 건지 알고 싶어서 한때는 제법 유명한 증류소에서 거의 1년 가까이 일했단다.

그 모든 것이 다 경력이 되어 주류 협회에 입사할 수 있었다는 것은 협회 내에서 전설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올해는 상담회에 참석하겠다는 해외 바이어가 얼마나 돼?”

“여기 명단 있으니 직접 봐보세요. 그래도 지난해에 비해서 많이 늘었어요.”

“나는 솔직히 바이어 상담회 왜 진행하는 건지 모르겠어. 만남을 주선해주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성과가 안 나오잖아.”

“재작년에는 계약 성사됐잖아요.”

“컨테이너를 1/4도 못 채웠으면 그건 그냥 찍먹 수준이지. 그리고 그 이후에 재주문 들어왔다는 소리 못 들었잖아.”

고석 과장은 그 정도의 물량이면 별 의미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재주문이 없다는 것은 현지 판매가 저조했다는 뜻이다.

돈이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기를 쓰고 달려드는 것이 바이어다.

“그래도 올해는 프랑스의 끌루소(Clouseaux)에서도 참가하겠다고 연락이 왔으니 기대해봐야죠.”

그 이야기를 들은 고석은 조금 놀랐다.

프랑스에 거점을 둔 끌루소는 유럽에서도 상당히 큰 주류 유통망을 가진 회사다.

다른 전통적인 물류 회사와는 조금 차이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유통이 플랫폼 기반 E-commerce라는 것이다.

“웬일로 끌루소가 상담회에 온대? 거기 매년마다 연락해도 씹었잖아.”

“거기 대표가 테넌트 위원장님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잖아요. 이번에 중간에서 힘 좀 써주신 것 같아요.”

“이래서 내가 그 할아버지를 미워할 수 없다니까. 그런데 큰 기대는 하지 마. 너도 알다시피 프랑스 쪽은 우리 술이 거의 안 팔리잖아.”

나태영도 그 정도는 안다.

예전에 어디서 본 자료였더라.

프랑스의 증류주 판매 순위에서 우리나라 소주는 겨우 25위에 불과했다.

상위권에 올라 있는 이탈리아, 멕시코 그리고 벨기에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다.

그래도 장점이 아예 없진 않다.

프랑스로 수출하면 한-EU FTA 협정에 따라 증류주와 맥주 등은 관세가 제로다.

하지만 나태영은 이번에 대통령상을 받은 벽향주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생각했다.

“혹시 모르죠. 해외에서도 대박 날지.”

“글쎄다. 그게 가능할까?”

“테넌트 위원장님 반응 못 봤어요? 듣자 하니 완전 꽂히셔서 귀국하기 전에 오저당에 가셔서 머물렀다던데요.”

“그분이야 원래 탁주에 환장하시잖아.”

나태영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테넌트는 전생에 한국인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탁주를 애정했다.

하지만 해외에서 초청된 다른 심사 위원의 반응을 봐도 다를 게 없었다.

이 문제는 상당히 중요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성과가 필요했다.

우리나라의 술을 발굴하고 상을 주는 것에서 조금 더 발전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협회에서 바이어 상담회를 진행하는 것이었고 올해는 기존과 달리 어느 정도 예감이 좋았다.

아니, 어떻게든 성과를 낼 생각이었다.

“두고 보세요.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

그로부터 며칠 뒤.

오저당은 3일 동안 문을 닫았다.

민족의 명절 설날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날은 몰라도 그런 날까지 일을 시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수호는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갔다.

하지만 나머지는 갈 곳이 없었다.

타향살이 중인 호세는 멕시코로 갈 수도 없는 일이고 쌍둥이는 시설에 당일날 잠시 인사를 다녀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날은 차편이 마땅치 않아서 나도 쌍둥이와 동행해야 했다.

오풍리에서 태백의 보육원까지.

대중교통으로는 이동이 불가능했다.

더구나 동생들 주겠다고 월급을 탈탈 털어서 산 선물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 덕분에 혼자 있기 심심하다며 따라온 호세와 함께 우리는 특별한 설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

물론, 빈 손으로 가진 않았다.

쌍둥이의 기특한 모습을 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

나는 아이들에게 줄 선물과 현금이 든 두툼한 세뱃돈 봉투를 준비해야만 했다.

나름대로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

다른 피부색 때문에 아이들이 기피하던 호세는 떠날 무렵이 되자 거의 슈퍼 스타급의 인기를 끌었다.

쌍둥이는 나의 그런 배려에 커다란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지금 이 감정 절대 잊지 마라. 몰래 도망가면 끝까지 쫓아가려니까.’

그렇게 거의 반나절을 보낸 뒤.

다시 양조장으로 돌아오자 그사이에 서울에서 출발한 삼촌이 도착해 있었다.

국내에 가족이라고는 삼촌과 나밖에 없는데 둘 중의 하나만 움직이면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삼촌이 왔는데 벌써 후회하고 계셨다.

“와··· 다음에는 연휴 때 절대 안 와.”

“차가 많이 막혔나 봐요.”

“평소보다 두 배쯤 걸린 것 같아.”

“추석은 각자 알아서 보낼까요?”

“차라리 그러자. 다른 날 잡아서 한가할 때 보는 게 더 효율적이지.”

합의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우리 둘 다 명절이라고 특별하게 생각하는 편은 아니었다. 예전에 부모님이 한국에 계실 때도 그랬다.

그리고 삼촌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나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삼촌은 곧장 숙성 창고로 향했다.

그곳의 한쪽 편에는 벽향주를 담은 오크통 몇 개가 보관되어 있었다.

대부분은 테스트용으로 숙성시키고 있는 것들이었으나 일부는 현송 사장님과 삼촌의 주문을 받아 숙성 중인 술이었다.

“조카를 보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숙성 중인 술 때문에 오신 거였군요.”

“너보다 잘 지내고 있는 놈이 어딨어.”

“개고생하고 있는 거는 안 보이죠?”

“그래도 처음에 내가 지원해준 투자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 잊지 마라.”

어휴··· 생색 좀 그만 내세요.

죽을 때까지 계속하실 생각은 아니죠?

얼핏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나 그게 또 틀린 말은 아니라 할 말은 없었다.

삼촌이 아니었다면 아예 양조장 일을 시작할 생각도 안 했겠지.

“잊지 않았으니 걱정 마세요.”

“부귀영화 같은 거는 안 바랄 테니 내 술이나 좀 잘 보살펴줘. 저거 맛 가면 정말 슬플 거야.”

“제 생각에는 목표로 했던 1년이 되기 전에 다 드실 것 같은데요.”

“최선을 다해서 자제하고 있는 중이야.”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현송 사장님은 완전히 달랐다.

그분은 아예 건드리지도 않았다.

무조건 1년을 기다렸다가 드실 기세다.

나도 가능하면 그러길 권장하고 있다.

가장 처음 빚었던 벽향주.

그게 어느덧 1년 가까이 숙성됐다.

이제는 겨우 30리터도 안 남았지만,

종종 맛을 확인할 때마다 놀라고 있는 중이다. 현재 파는 벽향주와 같은 술이 맞나 의심될 정도다.

“여기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벽향주도 장기간 숙성해서 더 고가의 제품으로 팔아도 되지 않을까?”

“불가능해요. 약주와 청주는 오크통에 숙성하는 것 자체가 주세법 위반이고 숙성 기간이 1년을 넘어가면 전통주로 인정받지 못해요.”

처음에는 안 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깊게 파면 팔수록 커다란 장벽이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리미엄 급은 생각지도 말라는 의미다.

법으로 유리 천장을 만들어 놓았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해본 적도 없었다.

지금이 무슨 대공황 시절도 아니고 보릿고개라 식량이 부족한 시절도 아닌데 이해가 안 되었다.

이것도 품평회 수상을 하러 갔을 때 친해진 어느 양조장 사장님이 해준 말을 듣고 알았다. 오죽하면 내가 그날 이후로 주세법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주세법이 그따위인 줄 나도 몰랐지.

전통주로 취급되지 않게 되면 세금 감면 혜택이 사라져서 세금이 거의 두 배로 붙게 된다.

“오저당은 기존에도 오크통을 썼잖아?”

“그건 이미 사용 기한을 넘은 거라 보관하는 용도로만 사용한 거지 그걸 통해서 향과 색을 입히는 거는 아니었죠.”

“하긴 생각해 보니 포지션이 애매하네.”

전통을 지키는 것은 좋다.

하지만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주세법의 구분법 그대로 술을 만들면 일본식 사케가 나오고 진짜 우리나라 청주는 약주로 구분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게 왜 그렇게 되냐고?

주세법의 논리 자체가 일제 강점기 당시에 만들어진 꽤 고리타분한 존재다.

일본의 누룩인 입국은 아무리 써도 함량 인정을 안 하고 오히려 전통 누룩을 1% 이상 쓰면 청주가 아니라는 논리다.

그래서 3% 이상 전통 누룩을 쓰는 벽향주도 주세법상으로는 청주가 아닌 약주로 구분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말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법이 무슨 그따위야?”

삼촌은 진심으로 화를 냈다.

하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오저당의 한계는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봐도 됐다.

하지만 빈틈은 분명히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주류법상 면세로 처리되는 수출이 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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