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38화 (38/254)

SF 고라니 (2)

육아와 커리어.

둘을 양립하기는 참 어렵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어려운 걸 해냈다.

한국의 교육 열기를 생각하면 방목형 육아에 가까운 편이기는 했지만, 나를 아예 방치한 것은 아니었다.

‘이 정도면 잘 키우신 거지.’

나도 나름 엄친아에 가까웠다.

영어도 잘하지 명문대에 합격했지.

키도 큰 편이고 외모는··· 노 코멘트!

이제는 돈도 잘 버니 연애 경험이 거의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아쉬울 게 없었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커리어가 부족할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쪽으로 더 잘나가셨다.

외모만 봐도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 티가 확실히 났다. 어째 임원이 되신 후로 더 세련되게 바뀌신 것 같았다. 그리고 여전히 동안이신 것도 변함이 없었다.

“오랜만에 들으니 재밌네. 한 번 더 엄마라고 불러봐.”

조금 놀랐던 탓일까.

평소 쓰지 않던 엄마라 부르자,

어머니는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국으로 떠난 이후로 그렇게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뭔가 의도를 가지고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성인이 된 티를 내고 싶었던 걸까.

그전까지의 나와 구분하고 싶었다.

더구나 그 당시는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 내 인생을 시작하는 관문 같은 시기였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개똥 같은 이유였다.

“임선희 씨.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망할 놈아! 그게 1년 만에 본 엄마한테 할 소리냐. 전역을 했는데 얼굴을 보러 한 번을 안 와? 이래서 아들자식들은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어.”

그간 꾹꾹 눌러놨던 것을 터트린 탓인지 퍼붓는 한탄은 거의 래퍼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어머니의 적성은 디자인 쪽이 아니었나 봅니다. 이제라도 스웩 넘치는 힙합 쪽으로 가보셔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어버리자, 어머니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래, 그래야 주도찬이지. 내가 쇠귀에 경을 읽지. 너한테 뭘 바라겠어.”

“벌써 퇴근은 아니신 것 같은데 어디 갔다가 오시는 겁니까?”

“외주 업체랑 잠시 이야기 좀 나누다가 왔지. 아직 퇴근하려면 시간이 좀 남아 있는데 여기 있을 거야?”

“그냥 책이나 읽으면서 시간 때우고 있을게요. 퇴근하실 때 연락주세요.”

무슨 책인지 궁금하셨던 걸까.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책을 뒤집어 표지를 확인하셨다. 마케팅 책이었는데 그걸 본 어머니는 나를 흘겨봤다.

“마케팅 책이네?”

“배움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죠.”

“너 복학할 마음은 아예 접은 거지? 지금까지 낸 등록금 아까워서 어째.”

“소자가 모두 변상하겠습니다.”

많이 잡아봐야 천만 원쯤 되려나.

어차피 생활비는 내가 벌어서 썼고 등록금과 기타 용돈을 합치면 그 정도다.

못 갚을 정도의 돈은 아니었다.

만약에 내가 등록금이 비싸기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의 주립 대학을 다녔으면 적어도 5만 달러 이상은 나왔을 거다.

그러니 오히려 저렴하게 느껴졌다.

“돈이 문제니? 졸업장은 있어야지.”

“연봉 3천쯤 되는 사회 초년생 회사원과 매출 백억 단위의 회사를 이끄는 사장 중에 어떤 아들이 더 마음에 드십니까?”

“하여간 한 마디도 안 져.”

그러다가 어머니의 시선이 이민 가방에 고정되었다. 생각보다 엄청 큰 부피라 눈에 안 띌 수 없기는 했다.

“너 혹시 그사이에 양조장 말아먹고 미국으로 도피 온 거니?”

“무슨 그렇게 섭섭한 말씀을···.”

“그럼 이건 도대체 뭐야.”

“몰라서 물으시는 거예요. 아니 도대체 뭘 그렇게 가져다 달라는 게 많아요?”

삼촌에게 듣기로는 어머니 화장품도 제법 많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임선희 여사님의 기준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어머니는 정색을 하며 고개 저었다.

“그게 얼마나 된다고 그러니?”

“거의 다 유리병이라 무게가 장난이 아니던데요. 그냥 다음에는 택배로 보내드릴게요.”

“4년 만에 오는 거면서 생색내는 거는 조금 아니잖아. 누가 들으면 매번 올 때마다 이렇게 시키는 줄 알겠다.”

“그래서 이걸 준비했죠. 늦었지만, 생신 축하드려요.”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서 어머니 앞에 놓았다. 누가 봐도 주얼리가 들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포장이었다.

평소 장신구를 좋아하는 어머니의 취향을 고려해서 고른 선물이었다.

안에 든 것은 제법 비싼 목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라 가격이 200만 원쯤 하는 제품이다.

절대 쉽게 살만한 금액은 아니었다.

법인 명의로 산 허머와 달리 개인 통장의 돈으로 사는 거라 손이 벌벌 떨리더라.

이걸 살 돈이면 유럽에서 만든 225리터 사이즈의 보르도 타입 오크통 하나를 살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되어야 했다.

저번에 오풍주 디자인을 부탁드린 것도 있고 이번에 미국에 온 이유 중의 하나인 벽향주 리뉴얼 부탁도 드려야 했다.

일종의 뇌물이라고 보면 된다.

다행히 상자를 열어 본 어머니의 반응은 좋았다.

“어머, 이거 제법 비쌀 텐데.”

“마음에 드시나요?”

“그렇기는 한데 썩 내키지는 않네.”

“왜요?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거로 바꾸셔도 돼요.”

“마음에 쏙 들어. 하지만 이게 공짜란 생각이 안 드는 거는 왜일까?”

역시 눈치 하나는 백단이셔.

어머니는 양손을 깍지끼고 고개를 살포시 올려 놓았다. 그러고는 어서 말해 보라는 듯이 나를 지긋이 바라보셨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내게 뭔가를 바라시는 게 있을 때마다 저렇게 나왔다.

그럴 때마다 압박감이 상당했는데 나도 이제는 조금 크긴 했나 보다.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받기 싫으시면 말고요.”

이 자리에서 부탁하긴 애매했다.

손을 뻗어 다시 가져가려고 하자 어머니는 손등을 찰싹 때리며 저지했다.

확실히 마음에 드시긴 한 것 같았다.

일단 목걸이부터 챙기신 후에 시계를 확인하시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30분만 기다려. 금방 준비해서 나올 테니.”

“조기 퇴근하시게요?”

“임원이 좋은 점이 뭔데. 1시간 정도 일찍 나오는 거는 일도 아니지. 1년 만에 아들이 왔는데 누가 날 막을 거야?”

그렇게 말한 뒤에 어머니는 30분도 안 되어서 다시 돌아온 덕분에 나는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우리가 곧장 집으로 향한 것은 아니었다.

밖에서 외식을 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예전에도 집에서는 거의 요리를 하지 않으셨던 분이라 놀랍지는 않았다.

집에는 우유와 시리얼 그리고 달걀과 빵 정도만 있을 뿐이지 그 외에 식재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이 있다.

어머니의 요리 실력은 정말··· 최악이다.

아들이라는 이유로 아무리 포장을 해주고 싶어도 불가능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나는 집밥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오히려 밖에서 사 먹는 게 훨씬 맛있잖아.

가정적으로 음식 솜씨가 뛰어난 오풍리의 이모와는 정말 정반대의 캐릭터였다.

그런 두 분이 어떻게 친해진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오! 여기는 정말 오랜만이네요.”

텍사스본 스테이크 하우스.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조금 외진 위치의 레스토랑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의 최애 스테이크 하우스 중 하나다.

가격은 다른 곳보다 조금 비싼 편이나 옛날부터 조금 특별한 일이 있으면 우리 가족은 이곳을 자주 찾았다.

고기의 맛도 무척 중요하지만,

콜키지 서비스 때문이기도 했다.

콜키지란 코르크 차지(Cork Charge)를 줄인 말인데 비용만 내면 내가 마실 술을 가져와서 마셔도 된다는 뜻이다.

더구나 여기는 자주 오는 단골에 한해서 멤버십을 주는데 거기에 가입되면 콜키지 프리라 추가로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당연히 이곳을 가장 좋아하는 분은 아버지셨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오풍주구나!”

올해 나이 마흔여덟의 주우혁.

아버지와 삼촌의 나이 차이는 제법 큰 편이지만, 술을 애정하는 점은 형제라 그런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살집이 조금 있는 삼촌과 달리 아버지는 조금 마른 몸매였다.

하긴 그것만 다르겠어?

공부를 죽도록 싫어했던 삼촌과 달리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학문에 뜻을 뒀다.

현재는 샌프란시스코 주립 대학교 로스쿨에서 법을 가르치고 계셨다.

어쨌든 아버지는 스테이크가 나오기도 전에 내가 가져온 오풍주부터 따랐다.

“에헤이! 음식 나올 때까지 조금 기다려. 남들이 보면 알코올 중독자인 줄 알겠네. 창피하게 왜 그래?”

“기혁이 이놈이 맨날 자랑질을 해대서 내가 도저히 참을 수가 있어야지.”

“도수도 그리 높지 않은 거니 어머니도 한 잔 드셔보세요.”

일반 막걸리보다는 꽤 세지만,

이 두 분한테는 애교에 불과했다.

아버지 못지않게 어머니의 주량도 상당한 편이다. 부모님이 간단하게 와인을 마신다고 하면 최소 두세 병 이상이다.

여기서 잠시 밝히자면···.

나의 탄생 비화도 술 때문이란다.

계산해보면 내가 태어난 게 어머니가 이십 대 초반쯤인데 열렬한 사랑과 엄청난 양의 술로 인해 속도위반을 하셨다.

어쩌면 양조장을 운영하게 된 것도 다 그때부터 계산된 운명인 걸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그런 식이면 식당보다 양조장이 더 많이 생겼겠지. 향이도 내 생각에 동의한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히죽거렸다.

요즘 들어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종종 내 생각을 읽는 것 같단 말이지.

“캬아···! 이거 도대체 뭐냐?”

“뭐긴 뭐에요. 아들이 빚은 탁주죠.”

“내가 널 잘못 키운 것 같아. 이런 재능이 있는 줄 20년이 넘도록 전혀 몰랐네.”

“오저당을 물려주실 생각을 하신 것을 보면 작은할아버지는 알았나 봐요.”

“그러게 신기하네.”

어머니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작은할아버지는 내게 이런저런 것을 많이 알려주셨다.

그때는 술 냄새 나는 양조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달갑지 않았으나 싫은 내색을 할 정도로 막돼먹진 않았다.

예상대로 아버지는 오풍주에 열광했다.

미국에서 막걸리를 맛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LA를 중심으로 막걸리가 들어온 지 10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매출 1위의 브랜드는 벌써 천만 병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것과 비교하긴 어려웠다.

그건 오히려 오풍주에 대한 모독이다.

아직은 대외적인 성과나 국제주류대회 같은 곳에서 수상은 못 했으나 숙성 기간도 길고 재료도 우리 쪽이 월등했다.

“상상만 하다가 직접 맛보니 어떠세요?”

“기혁이 말은 반쯤은 걸러서 들어야 해서 못 미더웠거든. 그런데 기대 이상이야.”

“나름 한국에서 올해 최고의 탁주로 꼽힌 술이에요.”

“우리 하나 더 딸까?”

“그전에 이것부터 맛보시죠.”

나는 벽향주 병을 테이블에 올려놨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벽향주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건 이미 기존에 마셔봤던 것이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진열장에도 아직 몇 병이 남아 있다고 했다.

“이거 내용물은 조금 달라요.”

“설마! 1년간 숙성했다던 그거야?”

“제일 처음에 빚은 거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부모님 드리려고 제가 큰마음 먹고 가져왔죠.”

생색내려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거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리 걱정되지는 않았다.

숙성 속도가 2배로 빨라진 덕분에 이제 6개월 정도면 지금 수준까진 도달한다.

“도련님이 숙성 중인 술 이야기를 듣더니 그날에 맞춰서 한국에 들어갈 거라고 벼르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네.”

“그럴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을 거야.”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

“느낌이 온다니까.”

나는 그쯤에서 뚜껑을 열었다.

비어있는 잔에 그걸 따르자 아버지는 곧바로 시음을 시작하셨다. 어머니도 궁금하긴 했는지 뒤따라 잔을 들었다.

그 뒤에 보인 반응은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두 분 모두 상당히 흡족해하셨다.

아니 완전히 빠졌다고 봐도 되었다.

스테이크가 나왔는데도 잔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계셨다. 다른 거는 몰라도 술에는 진심이신 분이다.

아무리 내가 빚은 거라도 입에 맞지 않으셨다면 곧장 잔을 내려놨을 것이다.

지금 반응만 보면 완전히 흡족하신 것 같았다.

뇌물이 제대로 먹힌 것 같아서 한국에서 힘들게 가져온 보람이 느껴졌다.

나는 그쯤에서 본론으로 들어갔다.

가장 기분 좋으신 이 순간을 노려야 했다.

이번 일만 잘 풀리면 왕복 티켓값은 뽑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제가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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