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43화 (43/254)

리뉴얼 (1)

프랑스 북동부의 트루아.

인구 6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에서 작은 규모의 타투샵을 운영하는 프랑수아는 최근 들어 한 가지 삶의 낙이 생겼다.

그에게는 매달 박스 하나가 배송되는데 그 안에는 항상 세 가지의 술이 담겨있다.

상자를 받아볼 때까지.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른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뜯어보는 재미가 상당한 편이었다. 일종의 구독 서비스 같은 것인데 프랑수아 같은 경우에는 50유로 상품에 가입한 상태였다.

물론, 더 비싼 서비스 옵션도 있다.

가장 저렴한 것이 50유로였고 여유가 있었다면 100유로나 200유로 옵션을 선택하는 것도 고려해봤을 것이다.

당연히 상위 옵션은 그만큼 더 좋은 술이 오게 된다.

만족도는 상당히 좋았다.

끌루소는 항상 가성비를 챙겼다.

같은 금액이라도 더 좋은 술을 선정해서 담아주는 편이었다. 선택을 쉽게 하지 못하는 성격을 가진 그로서는 이것만 한 서비스가 없었다.

“이번에는 또 뭐가 들어있을까?”

제발 샴페인은 아니길!

트루아는 프랑스에서도 샴페인으로 유명한 샹파뉴아르덴에 있는 도시다.

어린 시절부터 샴페인만큼은 정말 다양하게 마셔본 탓에 이미 호불호가 강하게 자리 잡은 상태였다.

경건한 자세로 박스를 열자.

안에 들어 있는 3가지 술이 보였다.

하나는 누가 봐도 레드 와인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럼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도저히 뭔지 알 수 없었다.

생전 처음 보는 문자였다.

무슨 술인지조차 읽을 수 없었다.

한 가지는 확실한 것은 아시아의 술인 것 같았는데 기대감과 동시에 불안했다.

예전에 한번 중국의 술이 배송된 적이 있었는데 한 모금 마시고 정말 토할 뻔했다.

당시에 프랑수아는 진심으로 끌루소의 구독 서비스를 끊어버릴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선입견은 갖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건지 박스 안에는 간략한 소개 글과 함께 QR코드가 인쇄된 종이가 동봉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올해 최고의 술로 선정된 벽향주를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QR코드를 찍어서 들어가 봤다.

그곳에는 벽향주라는 술에 대한 세세한 히스토리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글로벌 서비스답게 프랑스어를 비롯해서 영어와 독일어까지도 제공되고 있었는데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더구나 한국 술이었다.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부터 OTT 서비스를 통해 자주 접하게 된 한국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 역시 데스 서바이벌 게임을 드라마로 만든 작품을 보고 열광했었다.

“오··· 도수가 그리 높진 않네.”

저알코올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타투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다.

한 번만 실수해도 영원히 피부에 남아 버리기에 조심해야 했다. 수전증이라도 생기면 타투리스트에겐 최악이다.

뭐든 적당한 게 좋았다.

프랑수아는 럼과 와인을 옆으로 밀어 놓은 뒤에 한국의 청주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곧장 뜯어서 맛을 보진 않았다.

병을 집어 보니 미지근한 것이 쿨링을 조금 할 필요가 느껴졌다.

달그락!

얼음을 채운 통을 준비한 뒤.

그 안에 벽향주를 넣은 그는 서둘러서 샤워부터 하고 다시 돌아왔다.

술을 마신 후에는 가능하면 곧장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괜히 어설프게 마셨다가 폭음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뒤.

프랑수아는 벽향주의 마개를 열었다.

코끝에 감도는 청아한 향부터 그의 마음을 쏙 빼앗아갔다. 하지만 진짜는 잠시 후에 마신 첫 모금이었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맛이었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팔뚝 가득 자란 솜털이 바짝 서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버번 위스키처럼 펀치감이 있는 풍미는 아니었고 어떻게 보면 일본에서 만드는 사케와 살짝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건 도대체 얼마나 하려나?”

한 병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끌루소의 미끼에 완전히 걸려든 그는 곧장 QR코드로 띄워 놓은 페이지에서 제품 구매 링크를 눌러 보았다.

그곳에서 가격을 확인한 그는 아주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500ml에 15유로.

생각보다 저렴하진 않았다.

로컬 와인보다는 상당히 비싼 편이고, 위스키보다는 조금 저렴한 수준이었다.

평소라면 소비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 신중한 편이었으나 오늘따라 프랑수아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327··· 319···.

재고 숫자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10초에 한 번씩 수치가 바뀌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몇 개씩 떨어지던 것이 점차 그 폭이 더 커지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약간의 여유는 있었다.

하지만 프랑수아가 방심하는 사이.

재고 수치가 떨어지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두 자릿수가 되었고 이내 품절되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뭐야··· 왜 갑자기 품절인데?”

심지어 주문도 실패했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술을 찾아서 설렜던 마음도 차게 식어 좌절감으로 바뀌었다.

프랑수아는 이제 반도 남지 않은 벽향주를 보며 갈등하다가 뚜껑을 닫았다.

“아까운데 나머지는 내일 마셔야겠다.”

*

그와 같은 시각.

뫼리스는 환호를 질렀다.

벽향주의 초반 성적은 매우 좋았다.

런칭 후에 초기 물량 2천 병이 모두 판매되는 데 걸린 시간은 일주일에 불과했다.

이런 일이 흔하진 않았다.

끌루소에서 매년 계약하는 술 중에서 초기 물량도 다 팔지 못하고 사라지는 술이 무척 많다. 하지만 한국에서 온 벽향주는 시작부터 남달랐다.

물론, 운도 어느 정도 따랐다.

이번 달 랜덤 박스는 원래 다른 직원이 계약한 보드카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생산과 운송에서 연달아 차질이 생기면서 뫼리스가 확보한 한국의 술이 운 좋게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렇게 뿌려진 게 천 병이었다.

나머지 천 병은 일반 구매가 가능하도록 남겨놨는데 그마저도 다 팔린 것이었다.

현재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벽향주는 유럽에서도 먹혔다.

확실한 증거가 곳곳에 있었다.

QR코드를 통해 유입된 구매자의 통계가 무려 95%를 넘어서고 있었다.

랜덤 박스를 통해 벽향주를 접한 이들의 재구매가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미리 진급 축하드립니다.”

바로 앞에 있는 책상을 쓰는 동료의 축하를 받자 뫼리스는 멋쩍게 웃었다.

지난 며칠 동안 그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한국을 거쳐서 도착한 쿠바 출장을 완전히 망쳤기 때문이었다.

“어허! 작년처럼 떨어질 수도 있으니 벌써 축배를 들진 말자고.”

“그럴리가요. 이번에 한국에서 계약한 술 대박 징조가 보이잖아요. 네임드급 브랜드도 아닌데 이런 일이 흔한가요.”

조금 얼떨덜한 기분이긴 했다.

일이 이렇게 풀릴 수도 있구나.

심지어 주문하는 이들의 국적도 다양한 편이었다. 프랑스는 기본이었고 영국과 독일 그리고 체코 등에서도 반응이 왔다.

대표가 왜 자신을 콕 집어서 한국으로 보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지난해 진급에서 누락되었으니 기회를 주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그를 보내기 전부터 대표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여간 그 양반도 보통은 아니었다.

타고난 직감 하나로 회사를 지금까지 키워낸 사람이었다. 남들은 어림도 없다고 하던 시기에 플랫폼을 만들었다.

어쨌든 다시 승진의 기회가 생겼다.

프랑스 사람 상당수가 승진보다는 삶과 직업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편이나 끌루소에서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승진을 하게 되면 연봉이 높아지는 것과 별개로 바이어로 활동하면서 사용 가능한 자금의 규모가 달라지게 된다.

바잉 버짓이 증가할수록,

성공할 기회가 더 늘어나게 된다.

그쯤 되자 뫼리스는 벽향주 관련 서류를 주섬주섬 챙겨서 곧장 대표실로 향했다.

지금은 머뭇거릴 때가 아니었다.

“대표님. 잠시 이야기 나눌 시간 있습니까?”

끌루소의 대표인 아르노 오다르.

멋진 콧수염이 인상적인 그는 뫼리소가 노크를 하며 들어오자 손짓을 하며 앞에 놓인 의자에 앉으라고 자리를 권했다.

“무슨 일입니까?”

“얼마 전에 한국에서 계약한 벽향주에 대한 보고를 드릴 게 있습니다.”

“아! 안 그래도 품절된 것은 저도 확인했습니다. 그것 보세요. 제가 반드시 성공할 거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추가 주문은 어떻게 넣어야 할지 의논드리고 싶어서요.”

뫼리스의 말을 들은 오다르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 주문량을 가지고 터치를 전혀 하지 않던 그였다.

이제 와서 무슨 의논을 하겠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제 의견이 필요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군요.”

“제게 주어진 상반기 바잉 버짓이 거의 다 소진되었습니다.”

“쿠바 건이 무산되었다고 들었는데 그쪽 예산을 돌리면 되지 않습니까?”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뫼리스는 엑스트라 버짓을 바랐다.

끌루소에는 특별한 케이스가 생길 경우에 기존에 보유한 바잉 버짓 외에도 추가로 예산을 더해주는 시스템이 있다.

그걸 결정하는 것은 오직 끌루소의 오너인 오다르의 권한이었다.

“이유를 설명해주시죠.”

뫼리스는 종이 한 장을 보여줬다.

거기에는 조금 전에 오저당에 전화를 해서 물량 확인을 한 이후에 메일로 보낸 발주서였다. 다음 달까지 매달 5천 병의 벽향주를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거기까지는 특별할 게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통화하며 들은 게 있었다.

일반 벽향주의 대량 생산화와 더불어 향후 예정된 리뉴얼 그리고 내년에 출시될 프리미엄 벽향주까지 오저당의 변화는 상당했다.

“이번에 보셔서 아시겠지만, 벽향주는 유럽에서도 상품성이 증명됐습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죠.”

“그러니 내년에 출시될 추가 숙성한 고급 벽향주도 우리가 선점해야 합니다.”

경쟁업체들도 귀가 있고 눈이 있다.

잘 팔리는 제품을 그냥 두고만 보진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자신들의 플랫폼에 벽향주를 넣으려고 애를 쓸 게 분명했다.

최근 주류 플랫폼들 사이에서 생존을 위한 경쟁은 치열하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세상이다.

일단 한 번 벌어지면 그 격차를 다시 좁히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나 다양한 상품을 저렴하게 가져와서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 시켜 줄 수 있는지 다투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손을 쓰기 전에 미리 선점을 해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미 끌루소는 업계 1, 2위에게 당한 게 적지 않게 있었다. 증류소의 입장도 이해되는 것이 그들이 제시하는 규모의 경제가 꽤 달콤했을 것이다.

“선주문을 넣자는 말인가요?”

“대표님도 오저당 대표가 선물한 추가 숙성시킨 벽향주를 맛보셨잖습니까.”

“정말 훌륭한 술이었지요. 제가 듣기로는 양이 얼마 되지 않을 거라고 하던데 혹시 몇 병 정도인지 확인했습니까?”

뫼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정확하게 나온 것은 없었다.

오저당에서는 아직 그 부분에 대해서 전혀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었다.

오저당의 규모는 크지 않다.

더구나 주 사장에게 들었을 때의 뉘앙스를 생각해보면 그리 많은 양의 벽향주를 숙성 중이진 않은 것 같았다.

어느 정도만 선주문을 넣으면 완전한 독점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다르도 그걸 잘 알고 있기에 반응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그래서 얼마면 되겠습니까?”

“3만 병이면 대략 50만 유로쯤 된다고 하니 절반인 25만 유로를 계약금으로 걸면 충분히 확보 가능할 겁니다.”

“확실한 겁니까?”

“아까 오저당 직원과 통화하면서 확인받은 내용입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거기서 큰 차이는 없을 거라고 했다.

3만 병이면 그리 많은 수량은 아니나 독점으로 가져와서 세팅만 잘하면 상당한 수익을 남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특히 한정된 생산량을 가지고 있는 제품일수록 로열티 마케팅이 가미되는 탓에 그 효과는 극대화된다.

한동안 뫼리스의 이야기를 듣던 오다르는 결심을 내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놓치면 안 될 기회였다.

선주문이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일부 증류소의 경우에는 출고 일정을 파악해서 미리 주문을 넣어놓기도 한다.

끌루소만 하더라도 와인과 샴페인 외에도 그렇게 사전 계약을 해서 물량을 확보한 증류소가 수십 곳에 달할 정도였다.

“요청한 25만 유로 엑스트라 버짓은 지금 바로 승인해줄 테니 오저당에서 빚는 숙성 벽향주를 미리 다 사들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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