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46화 (46/254)

리뉴얼 (4)

영상은 곧장 올라갔다.

복잡한 편집은 필요 없었다.

3분 내외의 간결한 설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투표에 참여하는 이들의 숫자는 많았다. 반나절도 안 됐는데 이미 이천 명이 넘는 이들이 투표했다.

알 수 없는 너튜브의 알고리즘.

그게 멱살을 잡고 끌어가는 중이었다.

심지어 어떻게 알고 온 건지 프랑스에서 문신 가게를 한다는 외국인도 우리 술을 마셔봤다며 투표를 하고 갈 정도였다.

하지만 그리 신기하진 않았다.

오저당의 너튜브 채널에는 외국인도 은근히 방문을 많이 하고 있는 편이었다.

현재 등록하고 있는 모든 영상에 영문 자막이 들어가고 있는 덕분이다.

그들은 술에만 관심이 있진 않았다.

대도시인 서울로 대표되는 한국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강원도 산골의 풍경에도 상당히 많은 관심을 보였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그 영상을 보고 호주에서 이곳까지 찾아온 이도 있었다.

### : 무조건 1번. 뭔가 한국적이잖아.

ㄴ### : 고리타분해. 저런 디자인이 먹힐 것 같아?

ㄴ### : 개취 존중 좀 하지.

### : 조금 난잡해 보이지 않아? 그런데 왜 라벨의 절반이 영문인 거야?

ㄴ### : 예전에 올라온 영상 보니까 오저당에서 프랑스로 수출하더라.

ㄴ### : 안 그래도 품절이 자주 나서 구하기도 힘든데 수출까지 한다고?

ㄴ### : 프랑스에서도 구하기 힘들어. 얼마 전에 끌루소에 입점했다고 해서 들어가 봤는데 바로 품절됐더라.

### : 끌루소가 뭔데?

ㄴ### : 온라인 주류 마트쯤 되려나.

ㄴ### : 아하! 이해됐음.

### : 셋 다 마음에 든다. 확실히 예전 벽향주 패키징은 정말 별로이긴 했어.

### : 1번이 좋아. 색상별로 사서 진열장에 세워 놓으면 인테리어 효과도 나올 것 같아.

결과는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대부분의 선택이 한쪽으로 쏠렸다.

무려 60% 이상이 내가 선택한 조각보를 응용한 디자인이 좋다고 답을 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판매된다는 점에서 나온 결과물인 것 같았다.

그리고 라벨의 색상도 결정됐다.

국내에서 판매될 일반 벽향주는 화이트 라벨이 되었고 수출용인 숙성 벽향주는 퍼플 라벨을 사용하기로 했다.

색 선정은 라니의 영향이 꽤 컸다.

적어도 둘 중의 하나는 보라색을 반드시 넣길 원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녀석의 최애 아이돌 때문이었다.

라니가 원한다고 다 들어주는 것은 아니었으나 녀석의 논리에 설득당하고 말았다.

3,000만 명이 넘어가는 팬클럽.

그들의 파워는 생각 이상으로 엄청났다.

라니만 보더라도 일단 보라색만 보면 구매를 고민할 정도로 충성도가 높았다.

어떤 물건이냐가 중요하진 않았다.

그냥 반사적으로 소유욕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런 점을 생각해 보면 판매량에 영향이 있기는 할 것 같았다.

그러니 채택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이걸로 확정된 거지?”

내 질문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결과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온라인에서 진행한 너튜브 투표와 별개로 내부에서 직원 대상으로 진행한 투표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다만, 용량에 대해서는 조금 의견이 나뉘었다.

500mL와 750mL.

그 차이가 생각보다 컸다.

국내에서는 조금 더 저렴하게 지금의 용량 그대로 가는 게 맞았고 수출용은 위스키나 와인과 같이 맞추는 게 편했다.

그렇다고 라벨마다 용량을 다르게 하고 싶진 않았다.

결론은 500mL였다.

대신 가격은 기존보다 조금 낮췄다.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파는 게 맞지.

오히려 선택의 폭은 용량이 작은 편이 크다고 봐야 했다. 와인 한 병을 다 못 마시는 이들도 생각보다 많다.

주당들은 걱정되지 않았다.

알아서 한 병 더 사서 마시겠지.

대신 숙성 벽향주는 기존의 도수인 18도보다 조금 더 높은 23도가 되었다.

끌루소와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라니는 마지막으로 내게 확인을 받았다.

“화이트 라벨은 2유로 낮추고 내년에 보낼 퍼플 라벨의 공급 가격은 14유로라고 끌루소에 전달하면 돼?”

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국내 소비자가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화이트 라벨이 만이천 원으로 낮아지고 퍼플 라벨은 이만오천 원이 되는 것이다.

끌루소가 선주문한 금액이 50만 유로였기에 우리도 그에 맞춰서 6천 병 정도 더 보내면 된다.

“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그 정도 맞아. 소매 가격이 19유로니까 유럽에서 판매되는 금액은 거의 24유로겠네.”

“그보다 조금 더 비싸질 수도 있지.”

“뭐 그건 그쪽이 알아서 할 일이잖아. 우리는 주문 받은 대로 내년 여름에 보내면 돼.”

이미 준비는 모두 끝낸 상황이다.

기존부터 틈틈이 오크통을 채우고 있었고 얼마 전에 백련 와인에서 받아온 오크통에도 벽향주가 채워지고 있었다.

이제는 1년 동안 기다리며 술을 관리해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리뉴얼 일정은 어떻게 할 거야?

라니는 무엇보다 그걸 궁금해했다.

이제 디자인이 정해졌으니 보틀도 주문해야 하고 라벨도 뽑아야 한다.

퍼플 라벨은 어차피 내년에 병입하는 거니 지금 당장 만들 필요는 없었다.

“설비 이전 스케줄을 고려하면 조금 시간이 필요해. 거기다가 테스트도 해야 하니 5월 중에는 불가능할 거야.”

“그래서 언제쯤 예상하는데? 그걸 알아야 나도 준비를 하지.”

최대한 빨리 진행할 필요는 있었다.

이미 너튜브를 통해 리뉴얼에 대해 알린 터라 오래 미룰 수는 없었다. 나는 잠시 일정을 계산한 후에 날짜를 정했다.

“6주 후인 6월 15일에 하자.”

*

오저당 옆의 덕월 계곡.

그곳은 직원들의 휴식처였다.

청아한 물 흐르는 소리는 ASMR이 따로 없었고 발을 담그고 있으면 춘곤증 따위는 단숨에 날아가 버렸다.

오늘도 그곳에는 두 아가씨가 앉아서 잠시 휴식을 하고 있었다.

올해 21살이 된 옥주윤과 성나희.

두 사람은 요즘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 전까지는 죽을 생각을 했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때 겪은 일은 다시 떠올리기 싫을 정도였다.

“오저당에 취직해서 정말 다행이야.”

“여기 아니었으면 우리 어떻게 됐을까?”

“술을 빚는 게 아니라 언니들 따라가서 술 따르고 있겠지.”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만큼 절실했던 상황이었다.

지옥 같았던 첫 직장을 그만두고 석 달 동안 구직 활동을 했으나 자리가 없었다.

통장의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며 먹을 거라고는 라면 몇 개가 전부였었다.

그쯤에서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보육원에서 함께 생활했던 몇 살 차이 나는 언니들이었다. 그녀들은 쉽고 빠르게 돈을 버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그게 어떤 일인지는 뻔한 것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 유혹에 넘어갈 뻔한 두 사람이었다.

그만큼 절실했다.

그때 손을 내밀어준 게 오저당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시청의 주무관님 소개로 온 이곳은 그녀들에겐 천국 같은 곳이었다. 동생처럼 여기던 우주와 유성 형제도 있기에 안심이었다.

“그 망할 사장 놈 코를 뭉개놓고 나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쉽네.”

나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모습을 본 주윤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나희와 그다지 다른 심정은 아니었다. 지난해 첫 직장을 얻은 그녀들은 지옥을 보았다.

쥐꼬리만 한 월급과 강한 노동 강도.

시설에서 자란 고아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하고 경멸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성희롱을 하는 인간들도 있었다.

그곳에도 좋은 사람은 많았지만,

기억은 나쁜 쪽만 강하게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두 사람을 이용해 먹으려던 사장 놈이 가장 문제였다.

수당 없는 야근과 주말 특근.

심지어 개인적인 심부름도 시켰다.

처음에는 고용해줬다는 고마움에 별말 없이 일을 해줬는데 그게 쌓이다 보니 나중에는 당연한 일처럼 되었다.

“우리가 그만큼 잘 해야 해. 그래야 보육원에 있는 동생들도 우리처럼 기회를 얻어.”

“내년에 보육원에서 퇴소하는 아이들이 네 명이던가?”

주윤은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백에서 여기만큼 좋은 직장은 구하기 어려웠다. 근무 조건도 좋고 월급도 하는 일에 비해서 꽤 후한 편이었다.

더구나 숙소와 식사까지 제공되었다.

따로 집을 알아볼 필요도 없었고 아주머니들이 번갈아 가며 직원들 식사도 준비를 해주시는 덕분에 식비도 절약됐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이가 비슷한 직원들이 많은 것도 그녀들의 입장에서는 장점이었다.

쉬는 날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 거나 가끔씩 여행을 가기도 했다.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었다.

그 중심에는 라니 실장님이 있었다.

얼굴도 예쁘고 머리도 좋을뿐더러 맡은 일도 똑 소리 나게 잘하는 라니는 어느덧 두 사람의 롤모델이 되었다.

“주윤아, 너 연화 건설 언니한테 경리 업무 배우는 거는 어떻게 되고 있어?”

“아직 멀었지. 그래도 요즘은 옛날보다 숫자랑 많이 친해진 편이야.”

“에휴··· 나도 어서 적성이 뭔지 찾아야 할 텐데 큰일이야.”

오저당은 조금 독특한 곳이었다.

각자 맡은 일이 분명하게 있었지만,

다들 스스로 일을 찾아서 움직였다.

근무 시간 중에 멍하니 시간을 때우는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수호 실장님은 쉴 때마다 양조장 부근에 화초를 심느라 바빴고 쌍둥이 형제는 매일 모여서 너튜브 컨텐츠 회의를 했다.

심지어 라니 실장님은 요즘 양조장 벽에 벽화를 그리고 있는 중이었다.

두 사람도 은근히 영향을 받았다.

한동안 고민을 한 끝에 주윤은 경리 일을 배우기로 했다. 항상 사장님 혼자 영수증을 처리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옆에서 도울 생각으로 실장님들과 의논한 끝에 연화 건설의 경리 언니와 세무사에서 업무에 대한 것들을 배우고 있었다.

그 때문에 가끔 자리를 비워야 했는데 그때마다 사장님이나 실장님이 직접 시내까지 태워다 주셨다.

종종 그렇게 시내로 나갈 때마다 일탈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천천히 찾아도 돼. 사장님이 지금 하는 일만 제대로 해도 우리 몫은 충분히 하는 거라고 저번에도 말씀하셨잖아.”

“그건 부담 갖지 말라고 하신 말이고 라니 실장님처럼 이곳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고 싶단 말이지.”

“거기에 승진은 덤이고?”

나희는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세 오빠만 보더라도 일년도 안 되는 사이에 어느덧 대리까지 올라갔다.

실력만 입증한다면 저절로 진급을 하는 곳이 오저당이었다.

물론, 그게 공짜는 아니다.

그만큼 맡아서 하는 일이 많긴 했다.

하지만 월급의 차이가 제법 있기에 두 사람은 빨리 진급을 하고 싶었다.

그래야 저축도 하고 보육원에 당당하게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린이날 선물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쌍둥이랑 논의해서 정해야지. 우리 둘이 하기에는 조금 부담되잖아.”

“그거 사장님도 보태주신다고 하셨어.”

“사장님이?”

“응. 어제 태워다 주시면서 어린이날에 보육원 갈 거냐고 물어보시더라.”

“역시 사장님이셔!”

나희는 크게 기뻐했다.

덕분에 한시름 놓게 되었다.

제법 많은 돈이 들어갈 게 분명해서 은근히 부담되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주윤은 기분이 묘했다.

친구의 표정만 보면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장님은 분명 좋은 사람이 맞다.

하지만 서로의 처지가 너무 달랐다.

친구가 혼자 짝사랑하며 마음고생을 하다가 결국에는 상처만 받고 끝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됐다. 그녀가 보기에는 사장님은 나희에게 관심이 전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너 설마 사장님 좋아하는 거는 아니지?”

“왜? 그러면 안 돼?”

“나중에 상처받을까 봐 그러지. 사장님한테는 라니 실장님도 계시잖아.”

“라니 실장님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두 분이 보통 사이가 아니었다고 호세 오빠가 말해준 거 못 들었어?”

당연히 그녀도 들은 바가 있었다.

오저당에서는 두 사람의 사이를 의심하는 이들이 제법 많이 있었다.

라니 실장님과 사장님은 절대 아니라고 했으나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두 사람은 친구 이상으로 다정했다.

아메리카 스타일인지 모르겠지만, 가끔씩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상황이 있었다.

하지만 나희는 뭘 본 건지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주윤에게 말했다.

“아니, 절대 아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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