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48화 (48/254)

스피릿 포인트 (2)

마을 입구에 있는 창고.

그곳의 위치는 조금 애매했다.

걸어가자니 20분이나 걸리고 차를 타고 가자니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그래서 거길 오갈 때는 항상 자전거를 애용했다.

우리가 그곳에 설비를 들여놓고 대량 생산을 준비하기로 결정한 것을 가장 반긴 것은 다름 아닌 주류 상사들이었다.

생산량의 증가도 중요했으나 무엇보다 접근성이 훨씬 좋아졌기 때문이다.

오저당까지 들어오는 길은 좋지 않다.

비포장 구간이 있어서 비가 많이 오면 난장판이 됐고 길도 좁아서 화물차끼리 중간에 마주치면 정말 난감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마을 입구는 차를 돌릴 수 있는 공간도 넓었고 마을 회관 앞의 주차장에서 잠시 화물차를 세워 놓고 쉴 수도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 입구까지 나온 나는 곧장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 내부는 많이 바뀌었다.

텅 비어 있던 그곳에는 바오 양조장에서 가져온 설비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설비가 바오에 있었을 때와 동일한 성능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오히려 업그레이드되었다.

이번에 손을 본 곳이 제법 많았다.

기존에 사용하면서 문제가 있던 부분을 이번 기회에 싹 다 바꿨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기능과 설비 몇 가지도 추가했다.

그중의 하나가 소형 증류기였다.

증류주를 만들어서 팔려는 것은 아니고 수출용 벽향주의 도수를 올려줄 용도다.

청주 그 자체만으로 23도까지 올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추가로 알코올을 넣어서 주정 강화를 해야만 했다.

이건 끌루소의 요청이기도 했다.

그들은 조금 도수를 높여주길 바랐다.

일반 벽향주와는 차별성을 두길 원했고 우리는 거의 독점에 가까운 주문량을 가진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와 별개로 다른 용도도 있었다.

개인적인 취미 생활 삼아서 종종 여러 종류의 증류주를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당장 상품 개발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강원도에서 나오는 감자로 보드카를 만들면 어떤 맛일지 만들어보고 싶었다.

이미 시중에 그와 비슷한 제품이 있기는 했지만, 토종 술을 제외하면 관심 없는 요정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내가 빚은 술도 과연 관심이 없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술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 향이 만은 좋아해 줄 것이다.

“오셨습니까?”

그때쯤 조택훈이 나타났다.

설비 뒤에서 나오는 그의 얼굴과 손에는 검은 기름때가 곳곳에 묻어 있었다.

예전에 바오 양조장에서 봤을 때를 생각하면 그의 표정은 정말 좋아졌다.

얼마 전에 텅 비어있던 바오 양조장의 건물과 땅도 모두 처분했는데 제법 좋은 값을 받아냈다고 들었다. 아마 개인 자산을 비교하면 나보다 더 부자일 거다.

“지금 테스트 가동이 가능하다고요?”

“네. 병입하는 부분은 아직 조금 더 손을 봐야 하는데 그 외에는 문제없을 겁니다. 일단은 몇 번 돌려보면서 손 봐야 할 곳이 없나 찾아봐야 합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시죠.”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한번 돌릴 때마다 재료가 들어가지만, 많은 양은 아니라 아깝지는 않았다.

오히려 설비 이전을 책임지고 있는 조택훈이 긴장한 것 같았다.

상황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게 마무리되어야 잔금 1억을 받을 수 있게 되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수중에 많은 돈이 있어도 1억을 우습게 여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이이잉!

그가 붉은 버튼을 누르자,

곳곳에서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조택훈을 따라 바오 양조장에서 오저당으로 옮겨온 직원 둘이 능숙하게 쌀가루와 물을 채워 넣었다.

그 뒤로는 예전에 바오 양조장에서 봤던 것과 동일하게 모든 과정이 진행됐다.

유심히 지켜봤으나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어느 곳에서도 발생하지 않았다.

생산과 숙성 그리고 포장.

크게 보면 그렇게 3단계로 구분된다.

옆에서 지켜보니 숙성을 위한 저장고에 들어가는 것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엇다.

하지만 숙성 이후에 포장 단계로 넘어가는 부분은 조택훈이 말한 대로 보완이 필요했다.

“라벨이 살짝 삐뚤어지네요.”

“안 그래도 손보는 중인데 금방 고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 부분은 어차피 후작업에 속하니 일단은 만들어진 술부터 확인해보죠.”

이제부터는 내 몫이었다.

어떻게든 품질을 유지해야 한다.

대량 생산을 한다고 달라지게 되면 기존 고객들마저 등을 돌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괜히 손맛이라는 단어가 있는 게 아니다.

미세하게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간격을 어떻게든 메꿔야 한다.

그날부터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설비 옆에서 보내야만 했는데 시행착오가 적지 않게 나왔다. 그걸 보완하기 위해서 요정들의 배치도 바꿨는데 양조장과 숙성 창고에 있던 일부를 옮겨왔다.

‘하급 요정이 하나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둘밖에 없는 게 아쉬웠다.

오저당과 숙성 창고 그리고 이곳까지.

모두 세 곳에서 술을 빚고 숙성하고 있기에 한 곳은 향이가 직접 관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오저당이 가장 적합했다.

한옥 바로 옆에 있으니 향이가 오가는 것도 그리 멀지 않았다. 내게서 멀리 떨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녀석이라 이곳을 맡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걱정되진 않았다.

숙성 창고 때 경험한 게 있잖아.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자 요정이 늘어나는 것은 멈췄지만, 설비를 돌려서 숙성까지 끝내면 분명 변화가 있겠지.

지금은 그걸 믿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

시간이 흘러 5월 말이 될 무렵.

리뉴얼의 준비는 거의 마무리가 됐다.

새롭게 주문한 보틀과 라벨이 들어왔고 대량 생산을 위한 테스트가 반복됐다.

오저당의 직원들도 그 덕분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만큼 이번 리뉴얼은 중요했다.

작은 양조장에서 머무느냐 아니면 중소기업으로 성장하냐의 기로였다.

당연히 다들 리뉴얼을 공개하는 날이 다가옴에 따라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유성과 우주도 마찬가지였다.

쌍둥이 형제는 매일 술을 빚는 일을 하면서도 너튜브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종종 과부하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으나 둘은 그에 대해 한 번도 불평을 해본 적이 없었다.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었다.

술을 빚는 것도 보람된 일이지만,

무엇보다 영상을 만드는 게 좋았다.

영상을 찍고 편집해서 올릴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은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거기서 얻는 성취감이 상당했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것.

그전까지는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다.

유성과 우주는 언제나 존재감이 희미한 편이었다. 앞에 나서서 뽐내기보다 뒤에 숨어서 사는 게 익숙했다.

괜히 관심을 받아봤자 피곤해졌다.

자신들의 성장 과정을 알게 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비슷했다.

동정을 하거나 편견에 가득 찬 시선을 보내는 게 보통이다.

“오··· 역시 비싼 카메라가 다르기는 하구나. 화질이 진짜 죽여준다.”

우주가 부지런히 영상을 편집하고 있자, 등 뒤로 다가온 유성이 탄성을 터트렸다.

지금껏 찍었던 영상과는 차원이 다른 결과물이 화면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일단 화질이 완전하게 달라졌다.

기존까지는 아쉬움이 조금 있었다.

장비의 한계 때문에 HD급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제는 4k로 촬영된 탓인지 영상의 퀄리티가 급격하게 높아졌다.

하지만 우주는 너무 가까이 붙은 유성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며 투덜거렸다.

“그만큼 파일이 무거워서 편집하는 나는 몇 배나 더 힘들거든.”

“그래서 사장님이 컴퓨터까지 싹 다 바꿔주셨잖아. 이거 우리 월급으로 사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걸.”

“그렇기는 하지.”

그건 우주도 인정하는 바였다.

사장님은 너튜브 구독자 5만 명이 넘어서자 통 크게 장비 전체를 최신형의 고가 장비로 모두 다 바꿔주셨다.

거기에 흔들림을 줄여줄 짐벌과 상당히 비싼 노트북도 추가되었다.

쌍둥이 형제가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였으나 엄두도 내지 못하던 장비였다.

하지만 공짜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만큼 더 좋은 영상과 결과물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도 조금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고 지금껏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반응도 좋았다.

그중에서 라니 실장님과 호세 대리님이 출연하는 영상의 경우에는 외국인 유입이 많아서인지 가장 조회수가 많이 나왔다.

하지만 본질은 잊지 않고 있었다.

모든 인기와 관심은 오저당 쪽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영상을 기획할 때마다 그 부분을 항상 염두에 뒀다.

예를 들면 일상에 관련된 영상을 찍더라도 오저당에 대한 이야기와 제품을 백그라운드에 은근히 배치해놨다.

그게 가장 힘든 일이었다.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 선에서 멈춰야지 그 이상을 넘어서면 거부감을 보였다.

그래도 거의 반년 가까이 영상을 찍다 보니 그게 어느 정도인지 대충 감이 잡혀가고 있었다.

“리뉴얼 준비는 거의 다 끝난 거 맞지?”

“며칠 전에 사장님이 설비 세팅은 끝냈다고 했잖아. 지금쯤 저장고에 벽향주를 거의 다 채웠을 거야.”

“이러다가 오풍주는 뒷전으로 완전히 밀려버리는 거 아닐까?”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오저당이 올리고 있는 매출의 대부분이 벽향주에 치중되어 있었다.

오풍주도 적지 않게 생산 중이나 여러 호재가 맞물린 벽향주에 비교하는 것은 조금 어려웠다.

앞으로 대량 생산 체계로 바뀌면 오풍주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문제는 두 사람의 업무 대부분이 막걸리 생산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벽향주를 빚는 것도 도왔으나 라벨이 둘로 나뉘면서 조금 애매해졌다.

화이트 라벨은 이제 바오 양조장에서 넘어온 이들이 맡아서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퍼플 라벨은 추가 생산이 거의 없고 수호 실장님과 호세 대리님이 숙성 중인 오크통을 관리하는 게 전부였다.

“절대 안 되지. 오풍주가 잘 팔려야 우리 일자리가 유지되는 거야.”

“당분간은 오풍주쪽으로 집중해서 영상을 찍을까? 이제 곧 우기가 다가오니 막걸리 매출이 늘어날 때가 됐잖아.”

“그전에 벽향주 리뉴얼 홍보하는 영상부터 끝내야 해. 그러니 방해하지 말고 너튜브 댓글이나 좀 관리해.”

“오케이!”

유성은 곧장 노트북을 열었다.

댓글은 보통 그가 관리하는 편이었다.

그것까지 우주가 하기에는 편집해야 하는 양이 너무나 많았다. 더구나 소통하는 것은 유성이 훨씬 더 유연했다.

오저당 채널도 악성 댓글이 달린다.

이유 없는 분노에 잠식당한 키보드 워리어는 어딜 가나 존재하는 편이었다.

우주는 비난을 잘 참지 못했으나 유성은 그런 댓글에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안쓰러웠다.

별거 아닌 일에 분노부터 터트리는 이들이 과연 일상생활이 가능할까?

그런데 시간을 쓸 바에 조금 더 긍정적인 일에 열정을 쏟고 말지. 그런 생각을 하며 유성은 너튜브 채널에 로그인했다.

“오늘은 또 어떤 또라이가 있으려나···. 응? 이 사람들은 뭐지?”

오늘따라 댓글이 좀 이상했다.

평소에도 영어로 작성된 댓글이 종종 달리기는 했지만, 한국어 댓글에 비하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

열 개 중에 한두 개도 안 되었다.

하지만 갑자기 영어로 작성된 댓글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기존에 비하면 몇 배쯤 되는 것 같았다.

유성은 다급하게 우주를 불렀다.

“이거 왜 이런 거야?”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혹시 우리가 인종 차별이나 다른 실수 같은 걸 하진 않았겠지?”

“마지막으로 올린 게 라니 실장님에게 닭갈비랑 막국수를 소개하는 영상이라 그런 내용은 전혀 없었어.”

영어를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확한 뉘앙스를 파악하긴 어려웠다.

둘은 어쩔 수 없이 호세 대리님에게 잠시 와달라고 부탁을 해야만 했다.

오저당에 있는 영어에 능숙한 사람들 중에서 아무래도 호세가 가장 편했다.

종종 과도한 파이팅 때문에 피곤할 때가 있으나 처음에 입사했을 때부터 두 사람을 항상 챙겨두던 이가 호세 대리님이다.

잠시 후에 문자를 받고 사무실로 들어온 호세는 흔쾌히 자리에 앉아서 댓글을 하나씩 읽어주기 시작했다.

### : 여기가 그 OGD 맞지?

ㄴ### : 응, 링크가 걸려 있던 홈페이지에서 넘어오니 여기더라.

### : 스피릿 포인트에서 4.5점 넘게 나온 술이 얼마 만이지?

ㄴ### : 연간 서너 개 정도 되려나. 정말 보기 드문 점수인 거는 확실해.

ㄴ### : 그런데 스캇은 언제 한국까지 간 거야? 얼마 전까지 아프리카에 있었던 거로 알고 있는데.

### : 그런데 이름조차 어려운 막걸리라는 술은 어느 나라 술이야?

ㄴ### : 한국 술이라고 적혀 있잖아.

ㄴ### : 내가 알기로는 취향 많이 타는 술이야.

### : 나도 스피릿 포인트 보고 왔는데 이거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ㄴ### : 나도 알아보고 있는 중이야. 하지만 아직 구할 방법이 없더라.

ㄴ### : 아시아 마트 같은 곳에도 없어?

ㄴ### : 전혀!

세 사람은 동시에 한 가지의 의문이 들었다. 댓글에 계속 반복되어 나오고 있는 한 사람과 단어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스캇이란 사람은 누구고, 스피릿 포인트는 도대체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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