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49화 (49/254)

스피릿 포인트 (3)

설비를 세팅하는 일은 어려웠다.

100인분의 음식을 준비한다고 1인분 레시피에서 곱하기만 한다면 절대 같은 맛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술도 비슷했다.

대용량으로 빚으니 종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벽향주의 맛이 달라졌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나는 2주 넘게 설비에 매달려서 끊임없이 술을 빚어야 했다.

그래도 그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다.

옹기로 숙성했던 벽향주의 맛.

그걸 그대로 구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수없이 반복하며 적절한 재료의 비율을 찾아냈고 옹기에서 2주간 숙성하던 기간을 1주 더 늘려서 맞춰낸 성과였다.

시간은 조금 더 걸리더라도 생산량의 단위가 달라지니 상관없었다.

앞으로 공장을 풀가동할 경우.

기존에 10만 병이던 생산량에서 최소 몇 배 이상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사람과 달리 기계는 끊임없이 생산을 할 수 있고 거대한 숙성용 저장고를 그만큼 많이 설치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며칠 정도만 더 숙성하면 되겠네.”

저장고에 보관 중인 술은 차질없이 숙성되고 있었고 이제 며칠만 더 지나면 병입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당연히 목표로 했던 날짜의 변동은 없었다. 내 목표는 그날이 오기 전에 10만 병 이상의 술을 출고시키는 것이다.

온라인도 당연히 병행할 예정이다.

우체국 쇼핑몰과 기획전 협의도 마쳤고 새롭게 찍은 사진으로 라니가 직접 상품 페이지도 예쁘게 만들어놨다.

저장고에 기댄 상태로 한동안 앞으로의 스케줄을 계산하고 있자 호세와 쌍둥이가 나를 불렀다.

“사장님! 잠시 시간 있으세요?”

세 녀석 모두 표정이 조금 미묘했다.

급한 일이 있는 것 같기에 나는 확인 중이던 저장고의 뚜껑을 닫고 내려갔다.

그러자 녀석들은 스캇과 스피릿 포인트에 대해서 내게 전달해줬다.

“스캇은 누군지 모르겠는데 스피릿 포인트는 어떤 곳인지 알지.”

“아시는 곳이에요?”

“예전에 미국에 있을 때 종종 들어가 봤던 곳이야. 캐나다랑 미국 쪽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주류 평점 사이트거든.”

수많은 술 중에서 어떤 술을 고를지 도움을 주는 평점 사이트라고 보면 된다.

당시에는 내가 아직 미성년자라 직접 이용하진 않았고 아버지와 함께 추천 와인 등을 확인하고는 했었다.

거기가 조금 독특하긴 했다.

와인과 위스키에 편중된 유럽과 달리 아메리카 대륙과 호주 등에서 인기 있는 스피릿 포인트는 제3세계 술까지 다뤘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버번위스키 평점을 주던 작은 블로그였으나 꼼꼼하고 신랄한 평가 때문에 상당히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제는 많은 회원을 거느린 커뮤니티로 발전했으나 대형 증류소의 광고는 받지도 않고 깔 거는 까는 거로 유명했다.

무엇보다 발품을 많이 팔았다.

1년 중에 몇 개월 정도는 휴가 삼아 세계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술을 찾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들었다.

이번에 우리가 거기 걸린 것 같았다.

한 마디로 운이 좋았다고 봐야겠지.

“거기서 우리 평점을 내렸다고?”

“제가 들어가서 확인해 봤는데 벽향주는 없고 오풍주만 평점을 매겼더라고요.”

“이상하네. 벽향주는 왜 빠진 거지?”

“스캇이란 사람이 리뷰한 내용을 보니 벽향주는 리뉴얼 예정이라 평점을 내릴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제외했답니다.”

호세는 내게 그 화면을 보여줬다.

노트북에 띄워진 스피릿 포인트 홈페이지 안에 들어가 보니 오풍주의 이미지가 메인에 걸려 있는 게 보였다.

그걸 클릭해 보니 4.5점이라는 평점이 큼지막하게 보였다.

“오··· 여기 점수 짜기로 유명한 곳인데 상당히 높은 점수를 줬네. 내가 알기로는 이런 점수 정말 나오기 어렵거든.”

“이것 때문에 오풍주를 어떻게 구할 수 있냐는 댓글이 수백 개나 달렸어요.”

“한국에 와서 마시는 방법밖에 없지.”

끌루소도 우리가 빚은 오풍주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지만, 결국에는 유통 기한 때문에 벽향주만 가져간 상태다.

더구나 미국이나 캐나다 쪽은 오저당과 연결된 어떤 네트워크도 없는 불모지 같은 곳이다. 좋은 기회인 것은 분명하나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여기서 LA까지 보내는 것만 최소 20일에서 한 달 정도가 걸린다고 들었다.

내륙 지방으로 옮기는 것까지 고려하면 지금의 유통기한으로는 턱도 없었다.

적어도 두 달에서 석 달 정도는 되어야 시도라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한번 진지하게 알아봐야겠네.’

우리가 기술이 없다고,

다른 곳에도 없으리란 법은 없다.

국내의 대기업 급인 주류회사에서는 특수 살균 방식으로 6개월에서 1년까지 유통 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고 들었다.

가능하면 살균은 하지 않고 제품을 유통하고 싶으나 그게 안 된다면 살균을 해도 맛을 유지할 방법을 찾아야겠지.

그래도 우리가 다른 곳보다 유통기한이 짧은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오풍주가 생막걸리 중에서는 제법 긴 편이다.

“야야! 이거 도대체 뭐야?”

그때 라니가 뛰어 들어왔다.

손에 쥔 스마트폰에는 호세가 보여준 것과 똑같은 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하지만 나를 찾아온 것은 우리 술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인 것 같았다.

“이 미친놈이 내 쌩얼을 찍어서 홈페이지에 박제해놨어. 저번에 체험 프로그램에 왔던 덩치 큰 그놈 맞지?”

그때 그 얼굴이 쌩얼이었나?

뭔가 많이 바르고 왔던 것 같았는데.

한국식 화장에 적응하더니 쌩얼의 기준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아마도 그런 것 같아. 멀리서 찍어서 너인 줄도 모르겠는데 뭘 그렇게 흥분해?”

“아니던데. 내 지인들이 바로 알아보고 메신저로 연락 왔는데.”

“그러니까 평소에도 사람답게 좀 살자.”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해주자 그게 위로냐며 라니는 으르렁거렸다.

진짜 물릴 것 같았기에 그쯤에서 살짝 발을 빼며 호세를 향해서 손짓했다.

“호세, 스피릿 포인트 홈페이지에 주소 적혀 있는 거 있어?”

“잠시만요. 사업장 주소인지 정확하진 않은데 하단에 LA 주소가 있기는 해요.”

“그럼 이번 주에 벽향주 화이트 라벨 나오면 그쪽으로 몇 병 보내줘.”

“괜히 보냈다가 기존보다 못 하다며 나쁜 평점을 내리면 어쩌려고?”

라니는 걱정되었는지 만류했다.

아직 리뉴얼되는 벽향주가 기존과 동일한 수준이란 확신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염려는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아직 벽향주에 대한 자신감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다.

요정들이 보이는 반응도 변함없었다.

여전히 녀석들은 벽향주에 흠뻑 빠져 있었고 저장고 내에서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평점 따위는 신경 안 써도 된다.

최악으로 나와도 영향은 전혀 없다.

우리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판매를 하는 것도 아니고 스피릿 포인트가 유럽 판매량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손해보단 이익이 많다는 이야기다.

만약에 잘 풀리면 미국과 캐나다 쪽의 유통망을 알아보고 안 되면 끌루소와 협력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들면 된다.

내가 그 부분을 설명해주자 호세는 그렇게 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품 나오면 준비해서 보낼게요.”

“그리고 수호한테 말해 놓을 테니 영어로 쓰여진 댓글 관리하는 것도 좀 도와줘.”

“그건 나도 같이해줄게.”

“라니 너는 바쁘지 않아?”

“오히려 얘네가 더 바쁘지. 리뉴얼 예고한 날짜에 준비한 영상도 올려야 하는데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잖아.”

예정된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디자인 투표를 한 이후에 아직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그리고 가격의 변동 사항도 알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모든 것은 쌍둥이가 영상으로 만들어서 너튜브와 오저당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동시에 공지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장 반응이 올 거란 기대감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야기가 얼추 끝나가자 라니는 일정부터 재확인했다.

“병입은 언제부터 시작할 거야?”

“5일 후면 가능할 것 같아.”

“그러면 그날 바로 출고되는 거야?”

“오전에 작업한 거는 오후에 내보내도 되니까. 그렇게 배차 요청하려고.”

이제는 병입까지 자동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수작업으로 병입과 라벨 작업을 하던 기존 벽향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작업이 가능한 상태였다.

예전에는 며칠씩 걸리던 일이 이제는 고작 하루면 끝날 정도이니 거액의 투자를 한 보람이 확실히 있기는 했다.

나는 그쯤에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일을 하자며 모두를 향해 외쳤다.

“스피릿 포인트는 잠시 잊고 예정대로 일정에 맞춰서 일합시다.”

*

리뉴얼 공개 4일 전.

드디어 벽향주의 숙성이 끝났다.

그리고 이제 완성된 벽향주를 내보내기 위해서 병입을 시작하는 날이 되었다.

첫날에 병입해야 하는 양만 거의 2만 병에 달했기에 일정은 새벽 일찍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기계가 모든 것을 해주진 않는다.

공병을 기계에 넣고 캡핑 작업이 끝난 벽향주를 박스에 넣는 것은 사람이 직접 해야 하기에 서둘러서 움직여야 했다.

어스름하게 날이 밝아올 무렵에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떴다.

아직 알람이 울리기도 전이었다.

이상하게 누군가 귓가에서 계속 내 이름을 부르며 간지럽히는 기분이었다.

가위에 눌린 기분마저 들었는데 막상 눈을 떠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왜 이렇게 몸이 가벼운 거지?

조금 이상한 일이었지만, 시계를 본 나는 서둘러 나갈 준비부터 했다. 직원들이랑 약속한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문을 열고 나가자 이미 수호가 거실에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어났냐. 안 그래도 깨울까 했는데.”

“호세는?”

“먼저 씻고 있어. 그다음은 내 차례.”

“내 순서까지 오려면 한참 걸리겠네. 그냥 나는 공장에 가서 씻으련다.”

어차피 그곳에도 온수는 나온다.

가볍게 세수하고 머리만 감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여름에는 일하면서 땀을 많이 흘리기에 샤워 시설 정도는 기본적으로 설치해놔야 했다.

“그러던지. 우리도 늦지 않게 갈게.”

나는 알겠다며 손을 흔든 뒤.

수건과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나왔다.

어느덧 6월이 되었기에 새벽 공기는 예전만큼 차갑지는 않았으나 오늘따라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서 앞이 안 보였다.

그 때문에 자전거도 천천히 몰았다.

이제 이 부근의 지리는 익숙해져서 눈을 감고도 다닐 정도였으나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아서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허전한 느낌이 들어 주변을 살폈다.

왜 그런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어디에도 향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 걱정되지는 않았다.

안개 속 어딘가 있겠지.

그게 아니면 오저당에 있을 거다.

녀석은 잠이라는 것을 자지 않기 때문에 새벽에는 거기에서 요정들과 어울렸다.

예전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그때는 옆에 없는 줄도 모르고 공장으로 갔는데 향이가 알아서 나를 찾아왔었다.

자기를 놔두고 혼자 갔다고 삐지기는 했지만, 그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향이의 기분을 풀어주는 거는 잘 숙성된 술 한 잔이면 해결되었다.

“알아서 찾아오겠지.”

지금 녀석을 찾아서 움직이자니 마음이 너무 급했다. 서둘러 공장까지 간 나는 외부에 만든 놓은 간이 샤워실로 향했다.

거기서 가볍게 세수하고 머리를 감자 그제야 잠이 깬 느낌이 들었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어내며 공장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나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곳에는 예전에 숙성 창고 때와 같은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숫자가 배회하고 있었다.

정말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느낌상으로는 천 단위까지 늘어난 것 같았다. 그중에는 내가 원하던 하급 요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거기까지는 충분히 그럴 수 있기에 놀랍지는 않았다.

그 중심에는 향이가 있었다.

내 곁에서 안 보이던 이유가 있었다.

녀석은 나보다 먼저 이곳에 와 있었다.

그런데 어제까지 내가 알던 향이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이제는 왕세자처럼 아청색의 곤룡포를 입고 있었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진짜로 내가 놀란 이유는 향이가 내게 다가와서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건가 싶었는데 확실히 향이가 말하는 게 맞았다.

[드디어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네요. 술의 요정들을 대표해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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