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59화 (59/254)

< 멕시코 y 테킬라 (3) >

멕시코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메스칼,

좋은 일을 축하할 때도 역시 메스칼.

당연히 테킬라도 메스칼의 일종이기에 우리는 축하의 의미를 담은 테킬라를 계속 마셔야 했다.

그게 우리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레스의 부활 외에도 호르헤의 성공 기원과 레오넬 할아버지의 쾌유를 염원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호세의 가족만 참석했는데 나중에는 거의 마을 잔치로 변질되었다.

그 모습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는데 오풍리 모습과 비슷했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것 같았다.

나도 술을 꽤 많이 마셔봤지만,

이렇게 많은 술을 마신 것은 처음이다.

어느 순간이 되자 몸속의 피 절반쯤은 알코올이 흐르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좋은 점이 있기는 했다.

술을 마시는 와중에도 테킬라를 빚는 것을 도왔는데 일반 요정이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숙성 과정을 거의 거치지 않고 병입하는 블랑코 등급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외모도 상당히 독특했다.

한국의 요정들이 한복을 입고 있었다면 이곳의 요정은 원주민 복장이었다.

화려한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쓴 녀석도 있었고 어느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처럼 해골 모양으로 분장한 녀석들도 있었다.

[술의 요정은 그 나라의 풍습과 역사 그리고 이미지가 그대로 투영되니까요.]

“다른 나라에 가면 또 다른 모습이겠지?”

[아무래도 그렇겠죠.]

“미국에 가면 아메리카 원주민의 모습을 하고 있으려나?”

어떻게 생겼을지 기대가 되는걸.

스코틀랜드에 가면 치마 같은 킬트를 입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궁금증을 누가 풀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직접 다양한 나라의 증류소를 다녀봐야 알 수 있겠지.

똑똑.

누군가 노크를 해서 문을 열자.

배웅을 하기 위해 호세가 서 있었다.

오늘은 이곳 테킬라를 떠나는 날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머물며 증류소가 정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으나 박람회 일정이 있어서 서둘러야 했다.

멕시코에서 머문 5일 동안.

상당히 정이 들었던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침나절에 호세의 할머니와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다는 약속은 했지만, 언제 가능할지는 알 수 없었다.

“이제 출발하셔야 해요.”

“진짜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

“이곳에서 진행되는 상황은 계속 공유해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네가 있는데 걱정할 이유가 없지. 제대로 마무리만 잘하고 다시 돌아와. 안 돌아오면 내가 잡으러 온다.”

“오지 말라고 해도 갈 거예요. 벌써 한국 음식이 그리워요. 이럴 줄 알았으면 라면이라도 가득 싸 올 걸 그랬어요.”

호세의 입맛은 한국인이 다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모처럼 먹게 된 멕시코 음식을 반기는 듯해 보였으나 오래가진 않았다.

그래도 멕시코 요리는 내 입맛에 잘 맞는 편이었다. 수프 요리도 제법 많이 있어서 해장을 하는 것도 수월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비리아(Birria)다.

토마토를 베이스로 새끼 양고기와 살사 소스를 사용해서 만드는 수프인데 해장할 용도로 그것만 한 것이 없었다.

아마 한동안 자주 생각날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여러 전통적인 음식과 호세 할머니가 지어주신 집밥도 그립겠지.

서둘러서 짐을 챙겨서 나오자 호르헤와 여러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

“아이레스를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해서 빚을 테니 걱정 마세요.”

“아디오스(Adiós) 아미고!”

작별 인사는 그리 길지 않았다.

이미 오전에 다들 인사를 나눈 상태였다.

그들의 환송을 받으며 호르헤의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 나와 라니는 곧장 비행기를 타야 했다. 하지만 그게 뉴욕으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뉴욕행 직항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멕시코 시티를 다시 들려야 했는데 아이레스 테킬라는 우리 여정과는 별개로 3일 전에 항공 화물로 보내놨다.

한두 병도 아니고 몇 박스나 되는 거를 수화물로 보낼 수는 없었다.

당연히 비용은··· 꽤 나왔다.

시간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뉴욕에 KR 마트와 심양의 직원이 있어서 그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시간 내에 화물이 도착할 것 같았다.

“올 때는 셋이었는데, 갈 때는 둘이라 그런지 꽤 허전하네.”

뉴욕행 비행기에 올라탈 무렵.

라니는 호세가 없음을 실감했다.

어차피 다시 한국에서 만나게 될 것이나 호세가 분위기 메이커이자 은근히 우리 둘을 잘 챙겼기에 빈자리가 꽤 컸다.

당연히 박람회에서도 우리 둘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작년에 진행된 박람회를 사진으로 보았는데 관람객 숫자가 적지 않아서 2박 3일 동안 꽤 고될 것 같았다.

“그래도 심양 머천트 직원이 나와서 도와주기로 했잖아.”

“고작 한 명밖에 안 되잖아.”

“아예 없는 것보다는 한 명이라도 있는 게 어디야. 적어도 교대로 쉴 수는 있잖아.”

심양이 어시스트를 해주는 이유는 이번 박람회에서 성과가 나오면 당연히 그들을 통해서 일이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손 놓고 있다가 권리만 챙겨 가려고 한다면 나중에 우리가 문제를 제기할 때 그들이 할 말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기대는 그리 크지 않은지 수동적인 모습을 자주 보였다.

아직 확신이 없는 것 같았다.

KR 마트를 통해 우리 오저당의 술이 이제 막 미국에서 팔리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는 대박이라 할 수는 없었다.

KR 마트에 우리 술이 입점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소식이 빠른 이들과 한국에서 우리 술을 들어본 이들 덕분에 판매되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고 했다.

‘그건 조만간 해결될 문제지.’

조급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이번에 박람회를 통해 우리 술이 미국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리면 되는 일이다.

부스 비용은 무료라고 하더라도 적지 않은 금액이 들어가는데 박람회에 참가한 가장 큰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처음에 목표로 했던 뉴욕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박람회가 열리기 하루 전이라 일단 오저당의 부스부터 확인하기 위해 짐만 풀어놓고 우선 행사장으로 향했다.

“배너랑 술은 잘 도착했겠지?”

“아까 주최 측이랑 연락했는데 심양 직원이 행사장에서 우리 대신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 같더라.”

“처음에는 무슨 박람회냐며 귀찮아하는 기색이더니 이제 와서 웬일이래?”

“그건 LA 본사 입장이고 뉴욕 사무실은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아.”

KR 마트의 동부권 진출과 함께.

심양 머천트도 뉴욕에 사무실을 열었다.

서부와 시차도 있고 거리도 상당한 터라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 규모는 작아서 몇 명 되지 않았다.

이야기 듣기로는 세 명이던가.

그중의 한 명은 파트타임 잡이었다.

지사장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직원은 한 명에 불과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뉴욕의 지사장이 가진 열정은 대단했다.

“오저당에서 오신 분들 맞으시죠?”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반갑습니다. 이번 박람회에서 서포트를 해드릴 루이스 슈미트라고 합니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우릴 반긴 것은 심양의 뉴욕 지사장인 슈미트였다.

직원을 보낼 줄 알았는데 지사장이 행사 준비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는 술을 옮기느라 땀 좀 뺐는지 와이셔츠 가슴팍이 흠뻑 젖어 있었다.

“저희가 직접 옮겨도 되는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누가하든 상관없죠. 이제 막 멕시코에서 오셔서 피곤하실 텐데 그냥 숙소에서 쉬셔도 된다니까 굳이 왜 오신 겁니까.”

“그래도 행사 전에 한 번은 와봐야죠.”

“아마 생각하신 것보다 더 많은 이들이 찾아올 겁니다.”

알고 보니 슈미트는 매년 브루클린 박람회를 개인적으로 방문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이곳에서 진행되는 주류 박람회가 커다란 행사는 아니었다고 한다.

겨우 지역 행사 수준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매년 업계 관계자 방문이 늘어나더니 이제는 상당히 많은 관람객이 찾는 꽤 커다란 박람회가 되었다고 했다.

“미국 동부에 있는 증류소와 브루어리는 대부분 참석한다고 봐도 됩니다.”

“서부 지역은 많이 안 오는 건가요?”

“아무래도 부스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한정적이니까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오저당이 부스를 받았다는 게 신기해요.”

“경쟁이 꽤 치열한가 봐요?”

“쉽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수준이죠.”

이거 갚아야 할 빚이 꽤 큰데.

고작 술 여섯 병으로 퉁 칠 수준은 아니었다. 나중에 스피릿 포인트 관계자한테 성의 표시라도 좀 해줘야지.

좋은 관계를 맺어두면 두고두고 도움이 될 곳이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안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부스와 행사를 준비하기 위한 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에는 오저당의 부스도 있었는데 라니가 직접 디자인해서 만든 배너와 걸개가 이미 걸려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글과 영문으로 표시된 오저당의 이름이었고 그 하단에는 OGD도 적혀 있었다.

누가 봐도 한국에서 온 브랜드인 것이 확실하게 보이는 디자인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눈에 확 띄었다.

아래 OGD를 적은 이유는 스피릿 포인트에서 오저당이란 정확한 명칭을 사용했으나 본문에 OGD라고 적힌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벌써 이것도 걸어 놓으신 거예요?”

“혼자 하시기 힘드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신 건가요?”

“여기 직원분들이 살짝 도와주셨어요.”

“그런데 너무 외진 거 아냐? 끝까지 들어와야 겨우 보이겠네. 차라리 돈을 좀 내더라도 여기보다 좋은 자리를 잡을걸.”

“그만큼 널널하니 좋겠네.”

사람이 북적여봐야 우리만 힘들지.

그리고 돈까지 내면서 올 거라면 여기 말고 조금 더 큰 박람회를 갔을 거다.

어차피 사람이 없어도 상관없는 것이 우리가 가장 먼저 노릴 타깃은 바이어다.

운이 좋게 주류 체인 한 곳이라도 입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남는 장사였다.

거기에 일반 관람객은 덤으로 얻어가는 것이라고 봐도 된다. 그것보다 익숙한 브랜드가 꽤 많은 것이 눈길을 끌었다.

“오··· 이거는 한국에서도 꽤 유명한 위스키인데 여기도 참가하나 보네요.”

“당연히 켄터키에 있는 버번위스키 증류소 상당수가 참석하고 있죠.”

“그중에 짐빔도 있나요?”

“아직 부스 설치를 안 한 건지 직접 확인하진 못했는 데 매년 참석하고 있으니 아마 가장 좋은 앞자리에 있을 겁니다.”

세계적인 위스키와 경쟁이라니!

박람회가 점수를 매기는 곳은 아니나 그래도 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덩치가 작은 양조장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장점은 패기와 끈기 아닐까.

여기서는 잃을 것이 전혀 없었다.

오저당은 미국에서는 아직 바다 너머 아시아에 있는 작은 양조장에 불과했다.

바닥에서 시작하는 터라 부담될 것도 없었고 오히려 도전 의식이 불끈 솟았다.

이번에 술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벽향주보다는 미국에 그나마 알려진 오풍주를 위주로 심양에 요청해놨다.

그 외에도 멕시코에서 오는 비밀 병기가 있기에 든든했다.

“아! 멕시코에서 보낸 테킬라가 안 보이는데 혹시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요?”

“오전에 공항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와서 직원이 가지러 갔습니다. 그건 내일 행사 시작 전에 가져올 겁니다.”

“다행이네요.”

혹시라도 제때 도착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되었는 데 문제가 없다니 다행이었다.

내가 증류소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호세가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었다.

멕시코는 다 좋은데 변수가 많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라고 했다. 그러니 뭘 하더라도 여유로운 마음가짐이 필수였다.

한국에서 며칠 만에 끝날 일이 멕시코는 몇 달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내일부터 3일 동안 우리가 여길 완전히 접수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자.”

“물론이지. 이럴 때 호세가 있었으면 화이팅 넘치고 좋았을 텐데.”

“그만큼 우리가 기운 내면 되지.”

“아자아자! 해봅시다.”

라니가 두 팔을 번쩍 올리며 외치자 주변에서 부스를 준비 중이던 다른 증류소의 직원들이 깜짝 놀라 바라봤다.

그 시선을 느낀 라니는 뒤늦게 입을 가리며 수줍게 내 뒤로 숨었다.

화이팅 넘치는 우리 둘의 모습을 보며 슈미트는 역시 젊음이 좋다며 웃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지금 나눴던 이야기가 현실이 될 줄은 슈미트는 물론이고 당사자인 우리도 전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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