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76화 (76/254)

테킬라 웨이브 (3)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이별을 아쉬워하며 작별하는 이들.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게이트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이들까지 공항에는 만남과 이별, 설렘이 공존했다.

나는 그중에서 기다림에 속했다.

LA 국제 공항의 입국장 앞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지켜보던 나는 선글라스를 낀 누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누나! 여기예요.”

“이야··· 주도찬 성공했네. 이젠 사부를 미국까지 불러내고 말이야.”

“그래서 섭섭하지 않게 출장비까지 챙겨 드렸잖아요. 정말 급한 일이 아니었으면 이런 무리한 부탁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

나는 카를로스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곧장 누나에게 LA로 와달라고 부탁했다.

가능하면 나 혼자 해결하고 싶었으나 누나 없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 그 돈 받아도 되는 거야? 생각보다 너무 많던데 무리하는 거 아니야?”

“그 정도는 끄떡없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사장님!”

누나는 장난스럽게 고개 숙이더니 이내 혀를 살짝 내밀며 웃었다. 그때 누나의 등 뒤에서 누군가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나는 보이지도 않냐?”

“왔냐? 처음으로 비행기 타고 해외 나온 소감은 어때?”

“별거 없더라. 괜히 기대가 컸어.”

“크큭··· 수호 이 녀석 비행기에 탈 때 신발 벗어야 한다니까 고민하던 거 있지.”

“누나! 그건 우리만의 비밀이잖아요.”

이번에 누나가 올 때 수호도 함께 왔다.

원래는 현지에서 누나를 커버해줄 사람을 붙이려고 했으나 수호가 강력하게 자신이 그 일을 하겠다며 나섰다.

호세가 멕시코에서 복귀한 덕분이다.

누룩도 겨울에 많이 만들어 놓았고 숙성 중인 벽향주만 관리해주면 수호가 잠시 자리를 비워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수호가 여기서 할 일은 많지 않았다.

누나가 바텐더로 일하면 옆에서 재료 준비 등의 보조를 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가능하면 나도 틈틈이 도와줄 생각이나 아마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카를로스와 함께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파티에 공급되는 벽향주와 돈 레오넬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에게 제품을 소개하는 일을 할 예정이다.

“출발하기 전에 말했듯이 테킬라 베이스로 만드는 칵테일은 자신 없어.”

“걱정하지 마요. OGD 멕시코에서 빚은 테킬라가 어느 정도 커버해줄 거예요.”

“그 정도로 자신 있어?”

“아마 마셔보시면 깜짝 놀랄걸요.”

유나 누나와 수호는 상당히 호기심을 보였다. 아직 둘 다 완성된 돈 레오넬을 마셔보지 못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일단 숙소로 가서 이야기하자고 제안했다.

“뭐 타고 이동할 거야?”

“렌트한 차 가지고 왔어요. 내일 가야 하는 파티 장소가 차 없이는 가기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일단 숙소로 가자. 미국까지 오는 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피곤해.”

시차를 처음 겪어서일까.

수호는 평소보다 기운이 없어 보였다.

“이제 내가 멕시코에 출장 다녀오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겠냐?”

“첫 해외 출장인데 이깟 피로쯤이야 감수해야지. 아직 나는 너무 좋다.”

“그것도 처음 몇 번만 그렇지. 시간 지나면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더라.”

누나의 말에 나도 동의했다.

낯선 분위기와 풍경도 며칠만 지나면 금방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주차장으로 간 우리는 차를 타고 시내의 숙소로 향했다.

호텔에 잡은 방은 두 개다.

하지만 패밀리 룸으로 설계된 곳이라 방 사이에 공간은 거실로 사용이 가능했다.

짐부터 풀어 놓은 두 사람은 곧장 돈 레오넬을 내놓으라며 성화였다.

누나는 내일 돈 레오넬을 베이스로 칵테일을 만들어야 하니 이해되었다.

어느 정도의 맛을 가진 술인지 알아야 칵테일에 넣을 비율을 미세하게 조절이 가능했다.

하지만 넉넉하게 내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 나는 방에서 한 병만 꺼내왔다.

야박하다고 느낄 수도 있으나 현재 수량이 그리 넉넉하진 않았다.

“멕시코에서 추가로 보내주기로 했지만, 양이 많지 않아서 오늘은 이걸로 끝내죠.”

“내일 일해야 하는데 많이는 못 마시지. 그런데 사장님은 어떻게 구워삶은 거야?”

“그건 비밀이에요.”

이번에 유나 누나를 부르면서 당연히 삼촌에게도 양해를 구해야만 했다.

다행히 강북 지점에서 일하다가 그만둔 바텐더 형의 일정이 비어서 일주일 정도 대신 강남 지점에 출근하기로 했다.

잠시 후에 둘은 비어버린 돈 레오넬의 병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유나 누나는 칵테일을 만들기에 다양한 술을 접한 경험이 많았고 수호는 내가 멕시코에서 꽤 많은 테킬라를 사다 줬다.

당연히 테킬라의 맛 정도는 알고 있다.

돈 레오넬이 다른 보통 수준의 테킬라와 다르다는 것은 곧장 알아챘다. 이미 내가 말한 게 있기에 더 달라고는 할 수 없어서 꾹 참고 있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거 한국에 수입되는 거 맞지?”

“며칠 전에 바크모에 입점 계약해서 대부분은 미국으로 보낼 거예요.”

“가능하면 어반 스카이도 조금 챙겨줘. 칵테일로 만들어도 엄청 맛있을 것 같아.”

“누나가 책임지고 팔아 주신다면 못 가져올 것도 없죠. 아! 수호랑 누나 근무복 챙겨오신 거 맞죠?”

유나 누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텐더는 아무 옷이나 입을 수 없다고 내게 알려줬던 것이 바로 누나였다.

카를로스가 내게 부탁했던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격식 있는 옷차림이었다.

그것 때문에 나도 백화점에서 제법 비싼 턱시도 한 벌을 뽑아야 했다.

“수호 저 녀석 덩치가 더 커져서 새로 사느라 진땀 뺐다. 가슴둘레가 워낙 커서 기성복 중에 맞는 게 없을 정도더라.”

“뭐든 과하면 안 좋다니까요.”

“내 근육이 뭘 잘못했다고 이러십니까?”

“아주 큰 잘못을 했지.”

유나 누나는 귀국할 때 수호 옆에 앉지 않을 거라고 고개를 저었다. 하긴 저 덩치가 옆에 앉으면 좁았을 것 같았다.

“어차피 저랑 도찬이는 켄터키 가야 해서 귀국은 각자 따로 하기로 했잖아요.”

“증류소 투어 예약은 했어?”

“물론이죠. 출발하기 전에 해놨어요.”

이번에 수호가 미국에 온 이유 중의 하나가 미국의 버번 증류소를 견학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수호가 생산을 책임지는 이사인데 다른 나라 양조장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견문을 높여줄 필요가 있었다.

우리 오저당의 장점은 젊고 역동적이란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다.

올해 연말쯤에는 우수 직원을 뽑아 해외로 연수 보내는 것도 고려 중이었다.

멕시코 지사 쪽도 가능했고 테넌트가 있는 스코틀랜드도 가능했다. 그러한 생각을 밝히자 수호 역시 동의했다.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나 누나는 초창기에 오저당에 취직할 걸 땅을 치며 후회하는 중이라고 농담을 했다.

그랬으면 지금쯤 임원 자리도 가능했지 않겠냐는 말에 나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대답을 해줬다.

“누나는 언제든 환영이죠.”

“너희 삼촌이 진심으로 화낼지도 몰라.”

“그래도 소담 소주로 칵테일 개발하는 거는 해주실 거죠?”

“시간이 조금 걸릴 텐데 괜찮겠어?”

나는 상관없다고 대답을 해줬다.

벽향주를 칵테일에 사용하며 매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경험해봤다.

이번에 초대받은 것도 거기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술자리 문화를 주도하는 것.

그것만큼 오래 가는 것이 없었다.

더구나 요즘은 RTD(Ready To Drink)라 부르는 가볍고 맛있는 술이 MZ세대에서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미리 만들어 놓은 칵테일을 상품화한 것이라고 봐도 된다.

보드카나 럼에 주스와 탄산을 미리 섞은 것이라 도수도 낮고 쓰지 않아서 홈술을 하기에 좋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소비자만 좋은 것은 아니다.

생산자는 같은 양을 빚어도 훨씬 많은 양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던 유나 누나는 핵심을 짚어냈다.

“오저당도 RTD를 만들려고?”

“소담 소주 런칭을 우선 진행하고 괜찮은 레시피가 나오면 올해 가을쯤에 시도를 해볼까 생각 중이에요.”

올해 런칭되는 술이 많이 있지만,

그 이후의 계획도 여러모로 구상 중이다.

한 자리에 안주하면 더는 성장하기 어렵다. 지금 빚는 술을 더 많이 파는 일은 직원들에게 맡겨도 된다. 나는 그보다 먼 미래의 일들을 구상해야 한다.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이 걸리는 일들까지.

미리 준비를 해놔야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RTD도 그런 여러 의미에서 생각한 한 가지 방식이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요즘 대형 마트에 가면 RTD 존을 만들어 놨더라.”

유나 누나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무래도 집에서 손쉽게 즐기는 칵테일이란 점 때문에 평소에도 그쪽으로 관심이 상당히 많았던 것 같았다.

“만약에 RTD를 진행하면 새로 짓는 창고 2층에서 할 생각인 거지?”

수호의 질문에 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3층 창고 중에 1층은 소담을 빚는 공간으로 확정됐고 3층은 벽향주 퍼플 라벨의 숙성 창고로 쓸 생각이다.

남은 공간은 2층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래에서 빚은 소담을 위로 끌어올려서 작업을 하면 되기에 업무 효율상 그곳이 가장 적당했다.

한동안 우리는 다양한 술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그사이에 추가로 사 온 술까지 바닥을 보였고 해도 저물었다.

그쯤 되자 수호는 내일 진행될 파티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대충 어떤 파티인지 이야기를 듣긴 했으나 나도 자세하게 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마 내일 파티에 가면 수호는 물론이고 누나도 깜짝 놀랄 것이다.

“가보면 알게 될 거야.”

*

다음 날 저녁이 다 될 무렵.

우리는 파티 장소로 이동했다.

원래 칵테일 바를 운영하기로 되어 있던 업체에서 준비를 다 해놨기에 그들의 칵테일 도구를 쓰면 된다고 했다.

우리는 파티 1시간 전에 가서 세팅되어 있는 바에서 칵테일만 만들면 된다.

다른 것은 딱히 신경 쓸 것이 없었다.

누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흡족해했다.

“준비하는 과정이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데 다행이네.”

“그래도 가서 물건들 위치랑 양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봐야겠죠?”

“물론이지. 1시간이면 충분해.”

“그나저나 도찬이 턱시도 입으니까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아요?”

누나와 수호는 어반 스카이의 근무복을 입고 있었지만, 나는 미리 준비한 턱시도를 입고 차를 운전하는 중이었다.

처음 입는 거라 너무 어색했으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어쩔 수 없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맞네.”

“나도 턱시도 입어 보고 싶은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벌 뽑아줄게.”

“기억하고 있을 거야.”

“내가 언제 약속 안 지킨 적이 있었냐. 미국에 와보고 싶다고 해서 이번에 부른 거 아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수호도 인정했다.

한동안 차 안에서 농담을 주고받으며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달렸더니 산비탈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 나왔다.

조금 외진 곳이었으나 주변의 집은 대부분 상당히 비싼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산비탈 저쪽 편에는 너무나 익숙한 ‘HOLLYWOOD’ 사인이 보였다.

“저걸 내가 직접 보다니!”

“나도 할리우드 사인은 처음 보는 거야.”

“이렇게 지나가다가 할리우드 스타도 보는 거 아니야?”

“길가의 돌멩이도 아니고 스타를 그렇게 쉽게 볼 수 있을까?”

유나 누나는 고개를 저으며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이런 곳에 살 거란 생각은 버려야 했다.

대부분의 스타는 공기 좋고 풍광이 기가 막힌 곳에 저택을 짓고 산다.

하지만 그런 누나의 생각은 머지않아서 깨졌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수많은 수퍼카가 즐비하게 서 있었다.

모두 파티에 참석하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수호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길 우리가 들어가도 돼?”

“저쪽 입구가 아니라 옆쪽에 문이 따로 있다고 하니 거기로 들어가야 해.”

“그런데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봤는데?”

“뭐래, 누가 봐도 안토니오 클라이잖아.”

“허억! 정말 그 안토니오 맞아?”

지난해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하며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가진 배우를 보자 수호는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보였다.

그건 누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쯤에서 오늘 파티에 대해 설명해줬다.

여기서 열리는 파티는 할리우드에서 진행된 시상식의 뒤풀이다. 공식 연회는 아니고 안토니오를 비롯한 마음 맞는 배우들과 영화계 인사들이 모인 자리다.

카를로스가 테킬라 홍보를 위해 뚫은 이쪽 인맥이 꽤 두터웠는데 파티 준비를 그가 맡았기에 우리도 초대될 수 있었다.

수호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입을 다물지 못하고 경악했다.

“와··· 미쳤다. 할리우드 배우들 파티에 우리가 초대된 거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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