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80화 (80/254)

버번의 흔적 (2)

멕시코에서 미국까지.

운항하는 거리는 길지 않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보내는 운송 기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다는 것은 커다란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변수가 있다.

멕시코에서 선적하고 출항까지 걸리는 시간은 도무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단순하게 차에 싣고 보내준다고 수출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슈미트가 손을 쓸 수 있는 것도 한계가 분명히 있었다.

적어도 멕시코 내부에서 세관과 물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가 필요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호르헤는 수출입 업무를 맡길 직원을 채용했다.

정확하게는 회사 하나를 인수했다.

테킬라 대부분은 인근에 있는 만사니오 항구에서 선적되기에 그곳에 있는 회사를 흡수하며 다섯 명이 추가로 고용됐다.

그들은 미국 수출만 담당하는 게 아니라 테킬라의 한국 수출과 오저당의 술을 멕시코로 수입하는 것도 맡아야 했다.

거기에 멕시코 내부 유통도 해야 하니 일거리가 적다고 할 수는 없었다.

“만사니오 사무실은 가보셨나요?”

[물론이죠. 그곳에는 번갈아 가며 직원 한 명만 상주하고 나머지는 테킬라에 구해 놓은 사무실에서 일하기로 했습니다.]

“직원들이 만사니오까지 왔다 갔다 하려면 꽤 힘들겠네요.”

[고작 300km인데 멕시코에서 그 정도면 가까운 거죠. 그리고 매일 술이 출고되는 거는 아니잖아요.]

땅의 규모가 달라서인지 한국과 다른 거리 기준을 가지고 있는 호르헤였다.

하긴 멕시코의 끝에서 끝까지 거리가 4,400km가 넘어간다.

“그러면 이제 OGD 멕시코의 직원 숫자가 서른 명 정도 되는 건가요?”

[정확하게는 스물아홉 명입니다.]

멕시코가 본사의 규모를 넘어섰다.

아직 수출 과정이라 매출이 본격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있으나 인건비가 저렴한 탓에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호르헤를 제외한 이들의 인건비를 모두 합쳐도 이사진이 받는 연봉보다 낮았다.

두 명의 이사가 많이 받는다기보다는 멕시코의 임금이 너무 낮았다.

“혹시라도 운영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번에 말씀하신 아가베 농장을 세울 땅을 알아보는 일은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아가베가 아무 땅에서나 잘 자라는 게 아니다. 같은 지역이라도 토양과 기후가 달라서 생산량의 차이가 생긴다.

“급한 일은 아니니 지금은 돈 레오넬 생산과 품질 관리에 신경 써주세요.”

*

루이빌에 도착한 다음 날.

우리는 시내 투어부터 시작했다.

가장 처음에 방문한 곳은 근처에 있는 버번 스토어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정말 다양한 버번을 구경할 수 있었다.

나도 처음 보는 버번이 많았다.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라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술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버번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

멕시코의 테킬라와 비슷하달까.

일단 버번위스키로 인정받으려면 지켜야 하는 룰이 제법 많이 있었다.

당연히 미국에서 빚어야 하며 51% 이상 옥수수를 쓰고 불에 태운 새 오크통을 써야 한다.

그 외에도 여러 조건이 있다.

생산 중에 필수 규정을 지키지 못하는 술은 버번이라 부를 수도 없게 된다.

스토어에서 일하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한 차례 둘러본 우리는 바구니에 자연스럽게 술을 몇 병 담았다.

“경마 라벨 붙여진 이것도 유명한 거지?”

“응. 켄터키가 경마로도 유명한데 매년 라벨 디자인이 바뀌는 탓에 이거 모으는 사람들도 꽤 많이 있어.”

“돈 레오넬이랑 소담도 매년 라벨 디자인을 바꾸는데 그렇게 수집하는 사람이 있을까?”

글쎄, 그건 나도 알 수 없지.

대신 판매할 때 알려줄 필요는 있었다.

올해가 지나면 다시는 살 수 없다는 것이 알려지면 영향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게 몇 년 지나면 컬렉션을 모은 이들을 보고 누군가는 후회하겠지.

아버지도 그런 이유 때문에 뒤늦게 수집을 시작한 케이스다.

“이거 호텔에 가져다 놓고 나오려면 시간이 걸리니 서둘러 나가자.”

“투어 프로그램 시간이 얼마 안 남았지?”

“30분쯤 남았어.”

처음에는 렌트를 해서 렉싱턴 쪽의 증류소를 찾아갈까 했지만, 그렇게 되면 시음을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시내에서 렉싱턴에 있는 증류소 네 곳을 하루에 도는 프로그램을 찾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스케줄이 너무 빡빡한 거 아냐?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루이빌 시내의 증류소 네 곳을 돌잖아.”

“여기 다시 견학 올 일이 과연 있을까?”

“그 시간과 돈이면 다른 곳을 가겠지.”

“그러니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이번에 잘 봐둬.”

수호는 걱정하지 말라며 왼손을 들었다.

녀석은 손에 카메라를 쥐고 있었는데 촬영 가능한 곳에서는 모든 것을 찍고 있는 중이었다. 직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용도라는 말은 핑계 같았다.

잊지 않기 위한 기록이겠지.

내가 실시간으로 모든 말을 통역하고 있지는 않기에 종종 수호는 가이드가 해주는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마다 다시 묻기도 애매한 탓에 녀석은 영상으로 기록하고 나중에 천천히 들어볼 생각인 것 같았다.

더구나 쌍둥이가 너튜브에 올릴 영상을 찍어오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여기 직원이 우리 구독자 수를 보더니 엄청나게 친절하게 굴었던 것을 보면 확실히 구독자가 많이 늘긴 한 것 같았다.

스토어에서 몇 병의 버번을 사서 호텔 방에 넣어두고 내려오자 가이드가 입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오늘 투어를 책임질 배퍼트입니다. 여기서 렉싱턴까지 70마일이니 1시간쯤 걸릴 겁니다.”

밝은 금발 머리카락을 가진 배퍼트는 40대 정도로 보였는데 덩치가 수호보다 훨씬 더 거대했다. 녀석이 그 옆에 서니 보통의 인간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인상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거대한 곰 인형을 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사람 좋은 미소를 가진 이였다.

우리는 그가 모는 차를 타고 곧장 렉싱턴으로 향했다. 프라이빗 투어를 예약했기에 누굴 더 태울 필요는 없었다.

“렉싱턴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버번위스키 증류소가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칠면조와 네 개의 장미 그리고 버펄로 라벨을 사용하는 곳이죠.”

“맞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상당히 좋은 버번을 만드는 곳이 많습니다.”

나도 그의 이야기에 동의했다.

그리고 각각의 증류소는 특징이 뚜렷했다. 천 에이커나 되는 땅에 증류소 건물 몇 채만 덩그러니 있는 곳도 있었고 어느 증류소는 거의 공장 수준이었다.

그러나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증류소답게 들리는 곳마다 술의 요정이 있었다. 숫자도 오저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이기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차이가 있기는 했다.

그곳에는 일반 요정만 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하급이나 중급 요정은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 되는 증류소에도 없다면 오저당이 정말 특별한 곳이란 의미였다.

그 외에도 공통점은 또 있었다.

모든 증류소의 벽에는 빠짐없이 검은 곰팡이가 끼어 있었다. 하지만 그 존재가 유해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Baudoinia Compniacensis.

일명 위스키 곰팡이라고도 불리는데 알코올의 증기를 먹고 사는 그것이 있기에 증류소 내부의 습도를 조절해 준다.

나와 수호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배퍼트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오히려 약간 TMI라 느껴질 정도였다.

“와··· 우리 반성해야 할 것 같아.”

“내가 생각해도 그래. 우리 오저당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이 정도의 열정을 보여주면 좋아하겠지?”

“확실히 그럴 것 같아. 그리고 프라이빗 가이드가 500달러라고 해서 비싸다고 생각됐는데 꼭 그렇지는 않네.”

나도 수호의 말에 동의했다.

우리 둘이 네 곳의 증류소에 입장하는 비용만 거의 200달러 가까이 나온다.

거기에 온종일 우리에게 붙어서 버번과 증류소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기에 충분히 납득 가능한 금액이었다.

우리가 차에 앉아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증류소 직원과 작별 인사를 마친 배퍼트가 운전석에 탔다.

그는 이 동네의 인싸처럼 보였다.

어딜 가나 아는 사람이 있었고 다들 그에게 친밀하게 굴었다.

“증류소 직원분들이랑 친한가 봅니다.”

“제가 여기 렉싱턴 토박이인데다가 가이드 외에도 부동산도 같이 하거든요.”

“본업이 부동산이신 건가요?”

“그렇다고 봐도 되죠. 가이드는 제가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즐겨서 시작한 일이에요.”

“제가 봐도 이쪽이 적성에 맞으시는 것 같아요.”

수호는 배퍼트의 말에 수긍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그는 차를 몰아 마지막 증류소 쪽으로 향했다.

다른 증류소보다 조금 외진 곳에 있었는데 주변에는 폐허가 되어 방치된 증류소 건물이 제법 많이 보였다.

“폐건물이 상당히 많네요.”

“예전에는 이것보다 더 많았죠.”

“그 예전이 어느 정도 시기를 말하는 건가요? 100년 전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요, 불과 20년 전이요.”

배퍼트는 2005년쯤에 이 동네를 휩쓸고 지나갔던 부동산 업자를 언급했다.

그들은 버려진 증류소 건물을 사들여 해체하는 것을 전문으로 했다고 한다.

산업 유산이고 뭐고 가리지 않았는데 그나마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은 리먼 브러더스 사태 덕분이라고 했다.

“그거랑 증류소랑 무슨 연관성이 있죠?”

수호는 이해가 안 되었는지 이유를 물었고 배퍼트는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그의 전문 분야인 부동산 이야기라 그런지 설명에 막힘이 없었다.

“그 당시에 부동산 가격이 폭락한 탓에 다들 손을 털고 떠날 수밖에 없었죠. 어휴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아··· 그렇군요.”

“뭐 그 덕분에 지금 가는 증류소도 40년간 버려져 있다가 새로운 주인을 만나서 급성장하고 있는 곳이 되었죠.”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목적지에 거의 도달할 무렵에 갑자기 향이가 내 머리카락을 당겼다. 그러더니 잠시 차를 세워달라고 부탁했다.

[어서요. 중요한 일이에요.]

향이의 반응을 보니 요정에 관련된 일인 것 같았다. 녀석의 시선은 한쪽 벽만 남아 있는 건물에 꽂혀 있었다. 나는 운전 중이던 배퍼트에게 멈춰달라고 했다.

다른 여행객이 동행하지 않는 프라이빗 투어라 가능한 일이었다.

“왜 그러시죠?”

“저기 있는 건물에 흥미가 생겨서요.”

내가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배퍼트는 속도를 줄여서 그 앞에 세웠다.

건물 앞에는 판매를 하겠다는 의미로 ‘FOR SALE’이란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저길 사시려고요?”

“그런 거는 아닌데 옛날 증류소는 어떤 구조인지 궁금해서요. 잠시 안에 들어가서 살펴봐도 될까요?”

“원래는 사유지라 안 되는데 제가 있으니 문제는 없을 겁니다. 저곳 소유주랑 꽤 친하거든요.”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에 차에서 내리자 수호는 그런 내 뒤를 따라왔다.

진짜 이곳을 사려는 거냐는 질문에 나는 그냥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내린 거라고 대답을 해줬다. 아직 향이가 왜 멈춰달라고 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이곳은 1880년대 지어진 증류소인데 예전에 폭설 때문에 무너져서 위험하니 건물 안이나 벽 근처로 가시면 안 됩니다.”

배퍼트는 세심하게 주의를 줬다.

나는 알겠다는 대답을 한 뒤에 향이가 사라진 방향 쪽으로 따라 걸었다.

그러는 사이에 배퍼트는 차 옆에서 담배를 폈는데 수호는 뭔가 질문할 게 있었는지 옆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쪽이에요!]

향이의 부름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녀석은 한쪽 구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쪽으로 다가서자 예상했던 대로 요정이 보였다. 하지만 상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해 보였다.

카우보이 복장을 한 요정 하나가 돌처럼 굳어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걸 본 향이는 침울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다.

뺨에서 흘러 떨어진 눈물은 빛방울이 되어 사라졌다. 향이는 그 모습이 술의 요정이 맞은 최후라 설명해줬다.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어?”

[글쎄요···저도 잘 모르겠어요.]

“여기에 다시 증류소를 세워서 술을 빚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다른 곳과 동일하게 일정 수준 이상의 술을 빚으면 요정들이 나타날 거예요.]

“혹시 여기에 있는 이 요정이 되살아날 가능성도 있어?”

향이는 한동안 말없이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잠시 머뭇거린 뒤에 아예 가능성이 없진 않다고 했다.

아주 드물게 새로운 요정이 아니라 그곳에서 소멸한 요정이 강하게 원할 경우에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 일단 시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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