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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81화 (81/254)

버번의 흔적 (3)

이미 각오는 하고 있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 거라 여겼다.

요즘에는 양조장 같은 곳을 갈 때마다.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요정과 관련된 일이다.

향이를 만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오저당을 이끌며 내린 결론이 하나 있다.

향이를 돕는 게 오저당의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된다는 것이다.

당장 돈 레오넬만 봐도 그랬다.

계획에도 없던 테킬라 증류소를 사들인 것인데 불과 반년도 안 되는 사이에 26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그것만으로도 투자한 비용을 뽑고도 남았다.

그것도 고작 첫 출고에 불과하다.

만약 매월 생산하는 5만 병씩 꾸준하게 판매된다면 올해 매출이 160억 이상이고 순수익은 40억쯤 될 것이다.

[정말로 여길 사들여서 증류소를 세우실 생각이신가요?]

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불가능한 일이다.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올해 상반기는 바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더구나 가지고 있는 자금이 그리 많지 않았다.

현재 여유자금이 7억쯤 된다.

오저당의 신축 창고 공사비로 나간 것도 있었고 지금까지 은근히 OGD 멕시코에 자금이 계속 들어가고 있었다.

테킬라를 몇만 병씩 생산하려면 거기 들어가는 아가베 가격도 상당했다.

모든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곳에 다시 증류소를 세워서 돌리려면 적어도 2년 이상은 예상해야 한다.

멕시코는 불과 반년 만에 제품을 내놓으며 정상화가 되었으나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멕시코의 시설은 노후되었다고 해도 보수해서 사용 가능한 수준이었다.

더구나 레오넬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레시피가 있었기에 제품 출시하는데 준비하는 과정을 대폭 단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완전히 폐허다.

폐허라고 하더라도 인수하는 비용도 적지 않을 것이고 미국의 인건비를 생각하면 건축하는 비용도 장난 아니다.

거기에 버번 레시피도 만들어야 한다.

그런 모든 것을 고려하면 2년도 짧게 잡은 것이다. 향이에게 그 부분을 설명하자 녀석도 이해를 해주었다.

[충분히 이해해요.]

“최대한 시간을 단축해볼게.”

[아니에요.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그래도 향이의 표정은 아까보다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놔두고 가도 될까?”

[어차피 우리 외에 요정을 볼 수도 없고 본다고 하더라도 물리적인 형체가 있는 것도 아니라 괜찮을 거예요.]

“그래도 혹시 요정 위로 벽이라도 쓰러지면 찾지 못할 수도 있으니 저쪽 구석에 옮겨두자.”

향이는 내 말에 따라줬다.

쓰러져 있는 요정을 들어서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가장 구석진 곳으로 갔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요정을 안전하게 놔둘 곳을 찾던 향이는 뭔가를 발견했다며 나를 불렀다.

[여기 안에 뭔가 있는데요?]

“쓰레기 아니야?”

[그런 거는 아닌 것 같아요. 돌돌 말려 있는 것이 서류처럼 보였어요.]

나는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향이는 한 번 꺼내서 보자고 했다.

별다른 기대 없이 그 부분을 파헤쳐 보니 향이의 말대로 구멍 속 깊숙한 곳에 뭔가 있는 게 보이기는 했다.

어깨까지 들어갈 정도로 깊었다.

바닥에 엎드리자 간신히 손끝에 잡힐 정도였다. 안간힘을 쓰며 잠시 후에 꺼낸 것은 상당히 오래된 것 같은 종이였다.

박물관에 있어야 할 수준이었다.

최소 수십 년에서 길게는 백여 년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폐허 속에 방치된 탓에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용을 보는 순간.

나는 노다지를 캔 기분이 들었다.

거기에는 <파사데나>라는 이름을 가진 증류소의 버번 레시피가 적혀 있었다.

아마 폭설로 건물이 무너지며 그 안에 숨겨놨던 것이 떨어진 것 같았다.

“주도찬! 이제 슬슬 가자.”

그때 밖에서 수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고민 끝에 나는 그걸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수호가 어딜 갔다가 오느라 이렇게 오래 걸렸냐고 물었다.

“흥미로운 게 있어서.”

“다 무너진 폐허인데 뭐가 흥미로워?”

“이걸 발견했거든.”

나는 수호에게 파사데나의 레시피를 보여줬다. 술을 빚는 녀석답게 수호는 곧장 그게 뭔지 알아봤다.

“이거 버번위스키 레시피 아니야?”

“이걸 어떻게 할까?”

“원래 주인이 있다면 돌려줘야지.”

수호는 오래 고민하지도 않았다.

나도 녀석과 같은 생각이라 여기 소유주를 잘 알고 있다는 배퍼트에게 다가가서 그걸 보여줬다.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어차피 거기에 적힌 옥수수와 다른 재료의 비율 그리고 증류 과정까지 세세하게 적힌 내용은 다 기억해 놓았다.

레시피 그대로 만들 생각은 없고 나중에 참고로 삼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걸 본 배퍼트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굳이 찾아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죠?”

“여기 소유주가 그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거든요. 술도 전혀 마시지 않고 오히려 증오하는 편입니다.”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증류소를 물려받은 사람이잖아.

더구나 버번의 생산지인 렉싱턴에 사는 이가 술을 증오하는 게 흔한 일인가.

“혹시 무슨 이유라도 있나요?”

“젊었을 때 음주 운전 차량 때문에 아내랑 어머니 모두를 잃었거든요. 그때 이후로 증류소 주변에는 얼씬 거리지도 않아요.”

“저런···.”

수호와 나는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하긴 그 정도의 사연이면 충분히 술에 대한 증오가 쌓일 것 같기는 했다.

술은 가볍게 즐기는 게 최고다.

즐기는 수준을 넘어 중독이 되거나 음주 운전 그리고 술을 먹고 난동을 부리는 이들은 술을 마실 자격조차 없다.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형량을 줄이는 것도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그건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술은 스스로 뭔가를 결정하는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아니다. 모든 원인과 결과는 술을 마신 당사자에게 있다.

흉기를 들고 범죄를 저지른 이가 잘못이지 흉기에게 죄가 있진 않잖아.

“이곳도 배퍼트 씨가 관리하는 매물인가요?”

“네, 저희 부동산에 등록된 겁니다.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거죠?”

“매매가는 어느 정도 합니까?”

내가 가격을 묻자 수호는 머리를 저으며 또 시작됐다고 작게 중얼거렸다. 반면에 배퍼트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우리 둘을 한 차례 유심히 바라보다 물어보았다.

“아까부터 느낀 건데 두 분도 증류소 관련된 일을 하시는 거 맞죠?”

“하하. 어떻게 아셨나요?”

“제가 설명해드릴 때마다 이미 어느 정도 알고 계셨잖아요. 그리고 일반 관광객은 생산 시설의 디테일에 신경 쓰진 않죠.”

“한국과 멕시코에서 증류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는 솔직하게 말해준 뒤.

명함을 꺼내서 그에게 건넸다.

그는 명함 구석에 찍혀 있는 OGD를 보고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이곳은 작년에 스피릿 포인트에서 평점을 받은 그 술 만드는 곳 아닙니까?”

심지어 그는 바크모에서 우리 술을 사서 마셔본 경험도 있었다고 했다.

확실히 매장의 수가 많은 곳을 통해 유통하니 벽향주를 접하는 이들이 많아지긴 한 것 같았다.

“만족스러우셨는지 모르겠네요.”

“오히려 없어서 못 사고 있죠. 바크모에 가끔 가는데 품절인 날이 더 많습니다.”

“저희가 더 노력해야겠네요.”

“아무튼 여기를 사겠다고 하면 코닌 씨가 엄청 반기겠네요.”

배퍼트는 잠시 가이드의 역할은 잊고 부동산업자가 되어 이곳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여기서부터 저쪽에 있는 건물까지 네 채가 한 묶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보수하면 사용 가능한 건물도 있나요?”

“창고로 쓰던 두 채는 보수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는 됩니다.”

“그래서 매매가는 얼마인가요?”

“지금 부동산 시세 기준으로는 적어도 150만 달러는 주셔야 합니다.”

대략 20억쯤 되는 건가.

생각보다 제법 큰 돈이 필요했다.

거기에 다시 건물을 보수하고 세우려면 적어도 그 정도의 돈이 더 필요하겠지.

12만 달러로 인수한 테킬라 증류소가 너무 혜자 같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수호도 그 금액을 듣더니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건지 내 팔뚝을 잡았다.

“진짜 살 생각은 아니지?”

“당장은 불가능하지.”

“그럼 나중에는 살 생각이 있다는 뜻이네?”

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테킬라가 본격적으로 판매되고 숙성 중인 벽향주도 출고되면 불가능한 금액은 아니었다. 그게 없더라도 현재 매출만 유지한다면 올해 하반기쯤에도 가능하다.

“혹시 가계약을 맺어둘 수 있을까요?”

폐허가 된 채로 방치된 증류소 건물이 수두룩한 여기 분위기를 보면 금방 팔릴 매물은 아니었으나 혹시 모르는 일이다.

“가계약이요?”

“미국에 법인을 세울 예정이긴 한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서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십니까?”

“빠르면 올해 하반기인데 여유 있게 내년 봄까지요.”

1년이란 이야기를 듣자 배퍼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답을 주었다.

“계약금을 어느 정도 챙겨주실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코닌 씨의 사정이 요즘 그리 좋진 못하거든요.”

“어느 정도면 가능할까요?”

“10%의 계약금에 위약금 세 배 정도면 어떻습니까? 그 정도면 제가 설득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억을 넣어두고 계약을 깨는 쪽이 세 배인 6억을 배상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되었다.

만약에 코닌이라는 이곳 소유주가 마음을 바꿔도 내게는 4억이 떨어지게 된다.

[저는 괜찮아요.]

향이도 내 의견에 동의해줬다.

여길 인수하는 금액에 대한 동의는 아니고 1년 후에 여길 가져와도 되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이거 여기서 이야기 나눌 거는 아닌 것 같은데 증류소부터 먼저 갔다가 제 사무실로 갈까요?”

“아니요. 마지막 증류소는 건너뛰죠.”

솔직하게 말하면 두려웠다.

만약 그곳에도 요정이 곤란한 처지로 있으면 정말 난감할 것 같았다.

여기에 세울 버번 증류소가 해결되기 전까지 가능하면 다른 양조장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잠시 후에 배퍼트의 차를 타고 향한 곳은 그의 집이었다. 배퍼트는 집을 사무실 겸용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흔한 일이라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그 안으로 들어서자 배퍼트의 아내가 반겨주었는데 거실에는 이미 증류소의 주인인 코닌이 기다리고 있었다.

출발 전에 미리 연락한 덕분인데 그의 집은 배퍼트가 사는 곳과 가까웠다.

거래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시세 그대로 사는 대신 우리는 폐허에서 발견한 레시피와 파사데나라는 이름과 역사도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걸었다.

그 부분에 있어서 코닌은 굉장히 쿨하게 거래를 받아들였다.

계약금은 카를로스에게 빌렸다.

미국에 있는 내 계좌에 그 정도의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계좌 이체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다행히 카를로스는 내가 버번 증류소를 인수한다는 말에 꽤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인지 3개월 안에 갚는 조건으로 15만 달러의 돈을 보내주었다.

“여기 사인하시면 됩니다.”

카를로스가 보낸 금액을 은행에서 확인받은 뒤에 배퍼트는 우리 둘에게 각각 사인을 받는 걸로 계약을 마무리했다.

망설임 없이 만년필을 쥐고 서명을 하는 코닌의 표정은 꽤 미묘했다.

시원섭섭하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아니 애증이 담겨 있다고 해야 할까.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곳이나 스스로 증류소으 문을 닫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사인을 한 뒤에 홀가분한 표정으로 곧장 자리를 떴다.

하루라도 빨리 증류소를 처분하고 싶어 했던 것 같았다. 수호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고 고개 저었다.

“와··· 20억짜리 거래인데 뭐 이리 쿨해? 당근에서 중고 거래하는 수준이네. ”

“그래도 복잡하게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걸고 질질 끄는 것보다는 훨씬 편하잖아.”

“그렇기는 하지.”

“제 와이프가 식사를 준비했다고 하니 같이 드시죠.”

배퍼트는 우리에게 식사를 제안했다.

제법 큰 거래를 마친 터라 표정이 상당히 좋았는데 그에게 떨어지는 수수료도 작은 편은 아니었다.

대신 그는 우리에게 기간 내에 잔금을 치러야 소유권이 완전히 이전되는 거라고 여러 번 주의를 주었다. 나는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을 해줬다.

“걱정 마세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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