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영 주점 (2)
우리가 빚는 술을 파는 주점.
그건 내가 세운 계획 중 하나다.
2년 전에 오저당을 이어받아 시작할 때부터 구상했던 것인데 이제 슬슬 시작해도 좋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미룬 이유는 두 가지다.
가장 중요한 여유 자금도 없었고 술도 계속 품절이라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매장에 공급할 정도의 술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그 외에도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오저당이 보유한 술은 벽향주와 오풍주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소담 소주와 돈 레오넬도 추가되기에 다양한 술을 팔 수 있다.
‘퍼플 라벨을 못 파는 건 조금 아쉽네.’
진짜 벽향주라 할 수 있는 퍼플 라벨은 수출용으로 빚은 술이라 제외해야 한다.
잠시 아무런 말없이 멍하니 바라보던 삼촌은 뒤늦게 그게 무슨 소리냐며 되물었다.
“오저당의 술을 파는 주점?”
“예전에 직원들이랑 갔던 강남에 있는 느린걸음 양조장 아시죠?”
“당연히 알지. 강남 외에 다른 곳에도 몇 곳 있잖아.”
“그곳과 비슷한 거라 보시면 돼요.”
양조장에서 운영하는 주점이 없진 않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느린걸음이란 이름의 양조장에서 운영하는 술집이다.
서울만 이미 여섯 곳이 있었고 부산에도 얼마 전에 진출한 걸로 알고 있다.
물론, 다른 술도 팔기는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양조장에서 빚은 술과 추천 안주를 주문해서 마시는 편이다.
다른 술을 마실 거면 굳이 그곳을 찾아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장사가 쉽진 않아.”
“당연히 저도 알죠. 삼촌 가게에 하루이틀 출근했던 거 아니잖아요.”
“적자가 나오면 어떻게 할 거야?”
“상관없어요.”
크게 돈을 까먹는 게 아니라면 당분간 어느 정도의 적자는 감수할 생각이다.
서울에 주점을 여는 것은 일종의 홍보 수단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 부분은 황 이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눠서 구체적인 수치도 뽑은 상태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미리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대신 나는 지금껏 준비한 것들을 거론했다.
“이모님이랑 유나 누나가 작년에 만든 콘텐츠 있잖아요. 거기에서 소개한 음식과 칵테일을 팔 생각이에요.”
그것들이 단순한 콘텐츠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오저당의 술을 파는 주점을 고려해서 진행했던 것들이었다.
이미 유나 누나가 만든 칵테일 레시피도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한동안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자 오히려 삼촌보다 이옥주 지점장이 더 관심을 보였다.
“나는 이거 괜찮다고 보는데요. 컨셉도 확실하고 무엇보다 재미있잖아요.”
무엇보다 오저당이 보유한 마니아층이 제법 두껍다는 것도 한몫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벽향주 화이트 라벨만 하더라도 최근 반년간 평균을 내면 매달 17만 병이나 팔리고 있다.
그리고 오풍주도 벽향주 못지않은 인기를 끌며 매출이 나날이 상승 중이다.
“그럼 나 대신 옥주 네가 하던지.”
“정말 그래도 돼요? 어반스카이 3호점 오픈도 밀렸는데 차라리 젊고 잘생긴 주 사장님 쪽으로 붙어야겠다.”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그러기냐? 의리 없는 녀석 같으니.”
“뭐래, 의리 때문에 어반스카이 3호점 맡아주겠다고 했던 거잖아요.”
알고 보니 이옥주 지점장은 다른 프랜차이즈의 직영 주점을 운영하다가 얼마 전에 퇴사를 했다고 한다.
나는 웃으며 슬쩍 장난을 쳤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저랑 같이 일해보지 않으실래요?”
그런데 삼촌 반응이 예상외였다.
그쯤 되면 발끈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정반대였다.
“옥주 정도면 믿고 맡길 수 있지.”
“삼촌, 진심이세요?”
“3호점이 언제 진행될지도 모르잖아. 옥주 네 생각은 어때?”
“농담이었는데 뭘 이리 진지하게 받아들여요?”
이옥주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재차 묻는 질문에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오빠만 괜찮다면 저는 오저당의 주점을 맡아서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죠.”
“주도찬, 네 생각은?”
“대형 프랜차이즈 주점을 운영한 경험이 있으시니 맡아주시면 고맙게 여겨야죠.”
“좋아.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삼촌의 내건 조건은 간단했다.
어반 스카이 3호점을 열려고 맺었던 가계약을 내가 물려받는 것이었다.
정식 계약을 맺은 것은 아니었으나 계약금이 들어가 있는 상태라고 했다.
“이거 짬처리 같은 거는 아니죠?”
가게 위치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가능하면 권리금이 싼 곳에 자리 잡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홍보는 너튜브를 통해서 하면 된다. 23만 명의 구독자 중에 일부만 와도 운영은 가능했다.
“장소도 좋고 권리금도 저렴한 곳이야. 내가 가게 열려고 했던 장소인데 설마 아무 데나 계약했겠냐.”
“그건 오빠 말이 맞아요. 저도 가게 위치 때문에 3호점 맡겠다고 한 거였어요.”
3호점이 들어가려고 했던 곳은 로데오 거리에 있는 30평 정도 되는 가게였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건물주라 평균보다 훨씬 저렴하다는데 직접 보지도 않고 이 자리에서 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직접 보고 결정해도 될까요?”
몇억이나 투자하는 일이다.
아무리 삼촌이라도 말만 듣고 덜컥 그렇게 하겠다고 답을 하기는 어려웠다.
삼촌의 안목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다를 수도 있다.
“당연하지. 비어있는 곳이라 지금이라도 당장 가볼 수 있어.”
“술 드셨는데 지금요?”
“테킬라 한 병을 세 명이 나눠 마셨잖아. 그게 얼마나 된다고 그러냐.”
하긴 삼촌의 말이 맞긴 했다.
삼촌은 물론이고 이옥주 지점장도 술이 상당히 센 건지 얼굴색조차 안 바뀌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기에 알겠다며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삼촌 집에서 로데오 거리까지.
택시를 타니 오래 걸리진 않았다.
3호점을 내기로 했던 곳에 도착하니 이옥주 지점장이 왜 그런 결정을 한 건지 쉽게 이해가 가능했다.
“위치 하나는 정말 좋네요.”
로데오 거리의 중심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거리 부근에 있는 자리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바로 옆에 있는 건물들과 비교하면 저렴하기는 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1층이 아니라 2층이라는 것이다.
“1층도 공사 중이던데 거긴 어떤 곳이 들어오는 거죠?”
“커피 전문점이라고 들었어.”
“고깃집 같은 곳이 아니라 다행이네요.”
저녁마다 고기 냄새가 풀풀 풍기는 곳이 들어오면 난감한 상황이 생길 것 같았다.
“로데오 거리는 처음 와보는 건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요.”
“여길 처음 와본다고?”
“가로수길이랑 강남에서 약속을 잡지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로데오는 뭔가 구식처럼 느껴지잖아요.”
“와··· 세대 차이 느끼네요.”
내 이야기를 들은 두 사람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결국에는 삼촌이 이 거리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로데오 거리가 패션의 중심지라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게 도대체 언제 이야기죠?”
“90년대쯤이니까. 네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네.”
“가로수길보다 임대료가 저렴해서 요즘 이곳에 요식업이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군대+양조장.
두 기간을 합치면 거의 4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강원도 산골에서 보낸 탓일까.
요즘 서울의 어느 지역이 핫한지 알 수 없었는데 삼촌이 이곳에 3호점을 정한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평일 낮 시간대인데도 불구하고 유동 인구가 상당했다. 저녁이 되면 이보다 몇 배는 많아진다고 한다.
일단은 양해를 얻고 가게 안쪽도 살폈는데 생각보다 그리 넓지는 않았다.
주방이 들어설 곳도 조금 비좁게 느껴졌으나 무엇보다 테이블의 숫자가 그리 많이 들어올 것 같지는 않았다.
삼촌의 말로는 대략 15개 정도의 테이블 이상은 어렵다고 했다. 그 이상이 되면 손님들이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애초에 내가 세운 계획은 10개의 테이블 정도였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데 술을 마실 때 넓은 공간보다는 아기자기한 공간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제 겨우 시작 단계다.
처음부터 크게 하는 것보다 일단은 가능성부터 보고 만약에 반응이 좋다면 다른 곳에 더 크게 2호점을 만들면 되지.
고작 한 곳만 오픈할 생각으로 시작하는 일이 아니다.
원래 꿈은 크게 꾸는 거라고 했다.
혹시라도 장사가 잘되면 느린걸음 양조장처럼 몇 곳을 더 만들 생각이다.
거기서 더 나가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것도 아주 쬐금 고려 중이었다.
“좋네요. 여기로 하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옥주 지점장님.”
“저 채용된 거 맞나요?”
“그럼요. 조만간 4대 보험 관련해서 오저당 직원이 연락드릴 겁니다.”
직영점으로 운영될 곳이라 이옥주 지점장은 오저당의 직원이 되어야 했다.
내 감이 맞다면 두 분의 관계가 단순한 것 같지는 않기에 아마 삼촌도 이곳에 상당히 신경을 쓸 것 같았다.
“여기 인테리어 싹 다 바꿔야 할 것 같은데 공사하는 과정을 지점장님 옆에서 삼촌이 조금 챙겨주실 수 있나요?”
마음 같아서는 내가 여기 상주하면서 일 처리를 하고 싶었으나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다른 직원을 보내자니 다들 바빠서 오래 자리를 비우기 힘들었다.
다행히 삼촌은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줬다.
“당연히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
로데오 거리를 방문한 뒤.
나는 삼촌 집에서 하루를 머물렀다.
이옥주 지점장과 이야기를 하느라 제때 일어나지 못한 것도 이유였으나 서울에서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었다.
다음 날 정오 무렵이 되자.
황 이사가 허머를 끌고 서울로 왔다.
나를 픽업하러 온 것이라기보다 해외 법인 설립 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내게 전달해주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사장님 덕분에 모처럼 서울 구경도 하고 좋네요.”
“가끔 이렇게 나와야 할 것 같아요. 산골에서 술만 빚고 있는 사이에 세상이 참 빠르게 바뀌더군요.”
이번에 느끼는 바가 참 많았다.
양조장에서 술을 빚는 동안 바뀐 것들이 제법 많이 있었다. 아직은 괜찮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 도태될 것 같았다.
그건 황동선 이사도 공감했다.
누구보다 트렌드에 민감한 것이 광고와 마케팅 영역이기 때문이다. 1년 단위로 크게 바뀌니 그 역시 노력 중이었다.
“은행이 닫기 전에 가려면 일단은 업무 먼저 봐야 할 것 같아요.”
“어디부터 가실 건가요?”
“해외 법인 신고부터 하고 외국환은행 가는 거로 하죠.”
OGD USA는 오저당의 100% 투자로 세워진 곳이라 해외직접투자에 속한다.
국내에서 자본금을 보내려면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었다.
과거에 OGD 멕시코를 세울 때.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꽤 버벅거렸는데 이제는 한 번 경험해봤다고 조금 수월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 송금하는 금액은 3억쯤 된다.
카를로스에게 갚을 돈 외에도 페레즈의 임금과 활동비로 쓸 용도의 돈이었다.
당연히 그걸로는 부족하기에 시간을 두고 추가로 투자할 예정이다.
모든 업무를 마친 뒤.
오후 늦은 시간에 우리는 오저당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운전은 황 이사가 맡았는데 그는 시동을 걸기 전에 태블릿을 내게 건넸다.
“안에 보고드려야 하는 사항들이 있으니 가시면서 검토 부탁드립니다.”
그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었다.
어차피 서울에서 오저당까지 가려면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상당히 많았다.
태블릿을 들고 처음부터 천천히 읽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은 이미 보고 받았던 것이었다.
미국에 있을 때도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황 이사와 화상 회의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걸 보여주는 것은 기억을 상기시켜줄 용도였다. 여러 항목 중에 잊고 있던 것이 실제로 있었다.
“아! 어제는 바빠서 연락을 못 드렸는데 오저당의 직영 주점을 삼촌에게 맡기는 일은 실패했어요.”
“이런··· 그러면 어쩌죠?”
“대신 ‘단골’이라는 프랜차이즈 직영을 운영하던 지점장님에게 맡기기로 했어요.”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자,
황동선 이사는 잘 풀려서 다행이라며 웃었다. 직영 주점을 맡아서 운영해줄 이를 찾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태블릿에 있는 여러 내용에 대해서 대화하며 한 장씩 넘기고 있을 무렵에 갑자기 향이가 날아와 찰싹 달라붙었다.
녀석이 본 것은 라니가 러프하게 그린 향이의 이모티콘 초안이었다.
[와! 이게 정말 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