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영 주점 (5)
고사를 지낸 바로 다음 날부터.
오저당의 직원들은 상당히 바빠졌다.
완공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조택훈 공장장은 곧장 증류기를 비롯한 소담 소주를 빚을 설비를 들여오기 시작했다.
그건 수호도 다르지 않았다.
3층은 퍼플 라벨을 위한 공간이다.
녀석 역시 벽향주를 숙성할 용도의 옹기를 미리 주문해 놓은 상황이었다.
그 덕분에 오저당의 입구는 무척이나 번잡했다.
“지금 들어오시면 안 돼요! 후진하세요.”
“여기 공간 없는 거 안 보이세요? 차가 나가야 작업을 하실 거 아니에요.”
“오라이! 스톱!”
문제는 일부 화물차가 약속된 시간에 오지 않아서 한 번에 몰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수없이 경험한 직원들이었다.
과거에도 품절이 풀릴 때마다 주류 상사에서 보낸 화물차가 몰려들었다.
그런 경험 덕분인지 수호를 비롯해 여러 직원들은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했다.
새롭게 만든 주차장도 한몫했다.
화물차 십여 대 정도는 가뿐하게 들어갈 정도의 수준이라 순서가 밀린 화물차는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저걸 다 합치면 도대체 얼마야?’
내 눈에는 그게 다 돈으로 보였다.
대형 증류기와 옹기를 주문하는데 들어간 돈만 몇억이나 되기 때문이었다.
나름 대량 주문을 하며 할인받았는데도 옹기값만 1억 8천만 원이 들어갔다.
거기에 주점 권리금과 인테리어를 하며 나간 돈 그리고 인근의 땅을 약간 산 탓에 오저당의 사내유보금은 바닥을 쳤다.
거액의 돈이 순식간에 사라지니 조금 허무했다.
하지만 그리 걱정되진 않았다.
해외 지사를 제외해도 현재 오저당 본사가 매달 얻는 순수익은 거의 6억에 달할 정도다. 당연히 직원들 연봉과 잡비 그리고 운영비를 모두 뺀 금액이었다.
수출되는 양이 늘어난 덕분이다.
유럽의 끌루소에서는 오프라인 영업에 성공해서 프랑스 프랜차이즈 마트 두 곳에 추가로 우리 술을 넣는 데 성공했다.
당연히 주문량도 대폭 상승한 상태다.
그와 더불어 수출되는 술은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로 구분되는 것도 한몫했다.
다른 주세법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제법 많았으나 이것 하나만큼은 우리에게 커다란 혜택을 주고 있었다.
“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반면에 수호는 다른 면을 보고 있었다.
일단 돈부터 계산하는 나와 달리 녀석은 작업량부터 가장 먼저 계산하고 있었다.
주차장과 오저당 인근에 옹기가 쌓이는 것을 본 수호는 거의 절규하고 있었다.
옹기 숫자만 300여 개가 넘어갔다.
오저당이 옹기 무리에게 포위당했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걸 씻은 뒤에 말려서 3층까지 올려야 하니 막막한 기분일 것이다.
“이걸 언제 다 세척해서 올리냐.”
“굳이 오늘 중에 안 끝내도 되잖아. 하나씩 천천히 해.”
“그렇기는 하지.”
장독대가 괜히 외부에 있는 게 아니다.
옹기는 애초에 밖에 두고 고추장 같은 것을 숙성시키는 거잖아. 밖에 옹기를 쌓아 놓는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서두르면 옹기도 몇 개 깨 먹을 거고 무엇보다 소중한 허리가 나갈 거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해주자 수호는 슬쩍 허리를 돌리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그보다는 저걸 언제 채우냐가 문제지.”
“옹기 하나당 200리터니까. 벽향주 6만 리터 정도만 만들면 되겠다.”
“네가 안 한다고 쉽게 말한다? 그리고 이틀 뒤에 200개 더 들어온다는 거는 왜 빼놓냐?”
“설마 내가 안 도와주겠냐.”
내가 아예 손을 뗀 것은 아니다.
아직은 수호 다음으로 내가 벽향주를 가장 잘 빚는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호세도 그사이에 많이 발전했으나 녀석은 오풍주 쪽에 집중하고 있기에 수호와 비벼볼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반대로 놓고 보면 호세의 오풍주에 대한 이해도는 우리보다 뛰어났다. 그 이야기가 나오자 수호는 아쉬워했다.
호세의 비자 때문이다.
이제 남은 기한은 2년 정도다.
얼마 전에 3년의 기간이 지났으나 그나마 한 차례 연장을 한 덕분이다.
“이러다가 2년 후에 호세가 비자 문제 때문에 떠나면 어쩌냐? 가끔 그런 생각이 들면 갑갑하다.”
호세가 떠나면 어떻게 될까.
최악의 경우가 생기더라도 OGD 멕시코에서 일하면 되니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한동안 오풍주 생산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니 가능하면 잡아야지.
“글쎄··· 일단은 호세가 귀화 시험을 보기로 결정했으니 기다려줘야지.”
“귀화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들었어. 차라리 결혼을 시켜서 한국에 말뚝을 박게 만들까?”
“그게 우리 마음대로 되냐.”
모든 것은 호세가 결정할 일이었다.
그리고 연애라는 게 옆에서 아무리 떠들어 봐야 소용없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작되는 것이 연애의 감정이다.
“안 될 게 뭐 있어. 우리 양조장에 비슷한 또래 여직원만 네 명이나 있잖아.”
“너나 잘하세요.”
“나는 알아서 잘하고 있지. 이 형님은 이번 주말에 소개팅 일정도 잡혀있단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성나희 사원의 동창 중의 한 명을 소개 받기로 한 것 같았다.
올해 우리 나이가 스물다섯이니 네 살 정도 차이가 나는 건가.
“내가 조언 하나 해줘도 될까?”
“무슨 조언?”
“숨긴다고 숨겨질지는 모르겠지만, 조폭으로 오해받기 싫으면 그 근육은 최대한 숨겨라.”
“얼마나 피땀 흘려 만든 건데 왜 숨겨? 내 꿈이 여친이랑 같이 운동하는 거라 이런 모습이 싫으면 만날 생각 없다.”
에휴···.
안 봐도 결과가 뻔해 보였다.
그런 취향을 가진 이가 얼마나 되겠어.
하지만 그 이상의 조언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거는 몰라도 연애 뭐 이딴 거는 내가 해줄 말이 없었다.
그 뒤로는 줄곧 일만 계속했다.
옹기가 모두 내려지자 오저당의 직원 모두가 세척하는 일에 달라붙었다.
당연히 그 많은 일을 생산직에게만 맡길 수는 없었다.
라니를 비롯한 사무직 모두가 두 팔을 걷고 같이 일해주고 있었다. 거기에 대한 불만을 가진 직원들은 없었다. 옹기가 준비되어야 술을 빚을 수 있는 탓이다.
옹기의 숫자는 매출과 비례한다.
매출이 올라가면 성과금도 많아진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다. 연말에 큰 성과금을 받아봤기에 올해도 꽤 기대중이었다.
“그런데 쟤네 뭐하는 거야?”
수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호세가 모는 지게차 옆을 따라다니는 신입 사원 하나가 보였다. 하지만 정작 호세는 그쪽으로 시선조차 안 뒀다.
“강진희 씨 말하는 거야?”
“응. 아까부터 호세 옆에 달라붙어서 따라다니고 있는데 위험해 보여서.”
“아··· 아까 얼핏 들어보니 지게차 모는 거 알려달라고 조르는 것 같더라.”
신입 사원 강진희.
그녀는 올해 채용되었다.
보육원 출신인 그녀는 오저당에서 누룩을 만드는 일을 맡았다. 요즘 누룩이 계속 부족해서 전담할 인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누룩보단 지게차에 관심이 더 많아 보였다.
“안 그래도 지게차 하나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 재능이 있는 것 같으면 시켜봐.”
지게차를 운전할 줄 아는 직원이 호세 외에는 없는 것도 문제 중의 하나였다.
나랑 수호도 지게차를 운전할 줄은 알지만, 능숙하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전까지는 숙성 창고 파레트렉에 옹기를 올리는 일만 하면 되었다.
거기까지는 문제될 것이 없었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게차를 끌고 3층까지 옹기를 올려 놔야 하기에 만약에 호세가 저번처럼 자리를 비우면 그걸 해줄 사람이 없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준비해야 했다.
“남자 직원이 낫지 않을까?”
“지게차 모는데 힘이 필요한 것도 아니잖아. 가르쳐보고 안 될 것 같으면 본인도 인정하겠지.”
더구나 누룩을 만드는 일을 온종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수호는 알겠다며 곧장 호세에게 다가가서 그 내용을 전달해주었다.
처음에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가 시킨 거라 수호가 말한 건지 눈치를 슬쩍 한 번 보더니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강진희 사원은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다.
[저걸 운전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나요?]
“사람마다 가진 취향이 제각각이잖아.”
[하긴 요정들도 그렇기는 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최근에 알게 된 것인데 요정들도 취향이란 게 있었다.
당연히 오래 숙성 중인 벽향주를 가장 좋아했으나 일부 하급 요정들은 선호하는 술 외에는 기웃거리지도 않았다.
“소담 소주랑 벽향주를 추가로 더 빚으면 이번에도 요정들이 늘어나겠지?”
[저 정도 규모에서 술을 숙성하면 중급 요정도 추가로 생길 거예요.]
평소답지 않게 향이는 확실하다고 대답해주었다. 그만큼 숙성할 수 있는 술의 규모가 크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멕시코에 있는 판초도 향이 너처럼 성장했을지 모르겠네.”
내가 있을 때와는 생산량의 규모가 확실히 달라졌다. 최근에 OGD 멕시코는 카를로스에게 받은 아가베를 가지고 돈 레오넬을 빚느라 정신이 없었다.
최대 생산치인 10만 병 단위에 거의 근접했을 정도였다. 아마도 그걸 모두 소화하려면 6월까지는 정신없을 거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죠.]
판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호세와 대화를 마친 수호가 되돌아왔다.
녀석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 건지 미소가 가득했다.
“왜 그러는데?”
“내 생각에는 저 두 사람 느낌이 묘해.”
“뜬금없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호세랑 내가 같은 방을 쓴 시간이 제법 길어서 잘 아는데 저 녀석 여자 앞에서는 은근히 숙맥 기질이 다분하거든.”
“그건 나도 알지.”
멕시코 특유의 흥은 있지만,
아무때나 터져나오는 게 아니다.
모르는 여자가 있으면 호세는 오히려 차분해지는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나 강진희 사원과 호세를 엮는 것은 조금 과한 거 아닌가?
내 의문에 수호는 결정적인 증거라며 둘을 가리켰다.
“자세히 봐. 호세가 전혀 시선을 못 마주치는 거 보이지?”
“어! 정말 그렇네.”
“저 녀석이 언제 저러는 거 봤어?”
내 기억으로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호세는 그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먼저 다가서는 편이었다.
오죽하면 동네 할머니들도 다른 직원은 몰라도 호세랑은 무척 친한 편이었다.
하지만 내 관심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은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사귀든지 말든지 그건 두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다. 업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사내 연애를 막을 생각은 없었다.
“다음 주에 라니랑 쌍둥이 데리고 서울에 가야 하는데 사다 줄 거는 없지?”
“주점 오픈 전에 촬영가는 거지?”
“응. 인테리어 끝날 무렵에 라니가 벽화 작업 시작한다고 하는데 유성이는 거기 남겨서 촬영하게 할 거야.”
주점을 소개하는 영상은 이미 두어 개 정도 올라갔으나 벽화를 그리는 과정과 완성된 인테리어 공개가 가장 중요했다.
지금까지 결과물만 본다면 원래 의도대로 잘 구현되고 있었다.
“호세랑 의논해서 업무 분배해 놓을게. 그런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라니는 적어도 3일 정도 걸릴 거라고 예상하고 있더라.”
“하긴 거기 벽면 꽤 넓던데 그걸 다 채우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하겠다.”
수호는 무엇보다 자신이 직접 가보지 못한다는 것에 아쉬워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야. 그래도 오저당에서 세운 직영 주점이잖아. 다른 직원들도 조금 아쉬워하는 것 같더라.”
“그럼 다 같이 서울 나들이 가볼까?”
“정말?”
나는 그러자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주점에서도 손님을 받기 전에 문제가 없는지 체크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하나 있었다.
“주말에 가는 사람들은 모든 비용을 회사 경비로 처리해줄게. 그 대신 창립 기념일은 건너뛰는 걸로 하자. 그때가 가장 바쁠 시기잖아.”
앞으로 한 달 뒤.
창립 기념일이 다가온다.
작년에는 휴일을 줬는데 하필 올해는 그 시기가 가장 바쁠 것으로 예상되었다.
“버스라도 대절해야 하나?”
“미니버스 정도가 좋겠네. 숙성 중인 술을 관리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니 절반씩 나눠서 가야지.”
“당연하지. 그건 나랑 호세가 나눌게.”
“호세랑 강진희 씨는 같이 움직일 수 있게 해줘. 만약에 수호 네 촉이 맞다면 형들이 자연스럽게 계기를 만들어줘야지.”
나는 슬쩍 호세 쪽을 바라봤다.
호세는 지게차에 올라가 있는 강진희 씨에게 이것저것 알려주고 있었다.
수호는 곧장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아하. 그런 방법도 있었구나. 이런 음흉한 녀석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