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88화 (88/254)

직영 주점 (6)

열흘의 시간이 지난 뒤.

주점의 인테리어는 마무리됐다.

완성된 모습을 보면 라니가 그려주었던 일러스트와 비교해 봐도 싱크로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그 과정이 호락호락한 편은 아니었다.

“어휴··· 여기가 제 15년 인테리어 경력을 통틀어봐도 가장 어려웠습니다.”

솔인테리어의 사장 김우종.

그는 마지막 검수를 끝내고 내게 앓는 소리를 했다. 약간의 생색이 포함된 말이었으나 나도 어느 정도 인정했다.

이번에 설치한 조명의 설계는 상당히 독특하고 복잡했다.

오저당 주점의 테마는 요정.

당연히 몽환적인 분위기가 필요했다.

김우종 사장은 그런 우리의 요청을 이뤄내기 위해 다양한 조명과 음악을 사용해 어떻게든 구현하려 애썼다.

그렇게 만들어진 분위기는 은은했다.

조명을 제한적으로 쓴 탓인데 은근히 바(Bar) 분위기도 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고의적으로 어둡게 만든 측면에 반짝이는 희미한 빛이 불규칙적으로 날아다니는 느낌으로 조명을 설치해놨다.

이게 은근히 애매하긴 했다.

너무 빠르게 빛이 움직이면 정신 사납고 느리면 상당히 촌스러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그런 느낌이 나지 않았다.

확실히 감각이 좋은 사람 같았다.

[이렇게 보니 요정이 날아다니는 느낌이 들기는 하네요.]

향이도 인정했을 정도였다.

당연히 그런 장치는 시중에서 구할 수 없었고 김우종 사장이 조명을 개조까지 해가며 만든 결과물이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제가 원하던 것을 그대로 구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2호점 내시게 되면 그때도 저희 솔인테리어에게 맡겨 주십쇼.”

“아직 계획은 없어요. 일단은 여기 로데오점 장사가 잘 되어야겠죠.”

적자를 켜켜이 쌓을 생각은 없다.

적어도 마이너스가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 고민해볼 문제였다.

주점 하나를 낼 때마다 몇억씩 깨지니 미국의 증류소 계약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쉽게 결정하긴 어려웠다.

“그러면 앞으로 저희 직원들이랑 이곳에서 자주 회식을 해야겠군요.”

“지점장님께 서비스 많이 드리라고 말씀드려 놓을 테니 종종 오세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하자가 보이면 언제든 연락해 주십쇼.”

최종적으로 검수까지 끝났으니 이제 그들이 여기서 할 일은 없었다.

김우종 사장은 직원들과 함께 인테리어 공사에 사용한 장비를 하나둘 챙겼다.

그들이 가게를 떠난 뒤에 나는 다시 한번 내부를 살펴보았다. 입구에는 아치형 조형물이 있었고 벽면을 따라 닥종이로 만든 요정 인형이 진열되어 있었다.

주모 복장을 하고 있는 요정.

곰방대를 피우며 여유를 즐기는 요정.

오저당에 있는 요정들을 스케치해서 만든 거라 꽤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오저당에서 사용했던 술병도 전시해놨다.

당연히 벽향주와 오풍주 그리고 오저당에 대한 역사도 설명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홍보였기에 라니와 함께 가장 많이 신경 쓴 부분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너무 과한 수준은 아니었다.

텍스트가 긴 것은 나도 다 읽지 않기에 최대한 짧게 정리해야 했다. 하지만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따로 있었다.

[저는 여기서 이곳이 가장 좋아요.]

향이가 바라보는 곳에는 벽면 가득 라니가 직접 그린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반짝이는 별과 싱그러운 느낌의 초원을 배경으로 다수의 요정들이 환하게 웃으며 뛰어놀고 있었다.

일부 요정들은 술잔을 들어 건배를 하고 누군가는 벌컥이며 시원하게 마시는 모습이었다. 단순한 벽화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라니는 예술혼을 불태워놨다.

어린 시절부터 라니의 작품 활동을 봐왔고 오저당에서도 이것보다 작은 크기의 벽화를 그리는 것도 보았다.

하지만 이건 그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처음에 페인트며 벽화에 쓸 재료 값이 많이 나왔을 때는 이해가 안 되었으나 이런 작품이라면 돈이 아깝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걸 그리는데 고작 나흘밖에 안걸렸다는 것이다.

“마음에 들어?”

그때 라니가 페인트 자국이 가득한 앞치마를 풀면서 내 옆으로 다가왔다.

얼굴과 손에도 페인트가 몇 방울씩 튀어 있었으나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정도는 익숙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큰 벽화를 어떻게 나흘 만에 그린 건지 신기해서.”

“나 혼자 한 거는 아니잖아. 지효 씨가 많이 도와준 덕분이야.”

올해 채용된 고지효 사원.

그녀는 라니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

예고에서 미술 전공을 하다가 대학교는 디자인 쪽으로 빠진 케이스였다.

그래서인지 두 여인은 짧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친해졌다.

“실력이 좋나 봐?”

“왜 미술을 그만둔 건지 궁금할 정도야.”

“네가 할 말은 아니다. 시간 날 때 다시 그림 그려보는 거는 어때?”

라니는 나를 보며 눈을 흘겼다.

오저당에 입사한 것이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사이에 녀석이 맡아서 진행한 프로젝트만 몇 가지나 된다.

그리고 증류 설비가 다 들어왔으니 이제 곧 소담 소주를 빚기 시작할 것이다.

라니는 출시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지적했다.

“과연 그럴 시간이 있을까?”

“보틀이랑 라벨은 준비 다 마쳤잖아.”

“이모티콘을 출시 일정과 맞춘다며 아직 작업할 게 산더미 같아.”

“그럼 벽화는 나중에 그리지 그랬어.”

“영업하는 곳에서 페인트 냄새나면 누가 들어와서 술을 마셔?”

그 부분은 나도 인정해야 했다.

요즘 나오는 페인트가 예전만큼 독한 냄새는 없다지만, 그래도 아예 냄새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그래서 벽화를 그리는 며칠 동안 매장 창문을 계속 열어두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도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페인트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아침에 출발했다는 직원들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이 주변에서 차가 조금 막히나 봐. 수호한테 서울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으니 금방 올 거야.”

“이모는 잘 도착하셨을까? 그냥 하루 더 머물고 같이 내려가면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지. 우리도 여기에 와있으니 이장님 혼자 계시잖아.”

이모는 이틀 정도 이곳 로데오점에 나오셔서 지금까지 만든 레시피를 전수해주시고 다시 오풍리로 가셨다.

이곳에서 파는 메뉴가 이모님이 고안하신 것들이 대부분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꽤 재미있어하셨다.

이미 주막에서도 판매를 하고 있었으나 자신의 메뉴가 이런 매장에서 실제로 판매된다니 조금 들뜬 표정이셨다.

잠시나마 요리 연구가가 된 느낌이 들었다고 하실 정도였다.

“우와! 여기가 우리 오저당 주점이구나!”

“사장님! 저희 왔어요.”

“어멋··· 이거 뭐야. 너무 귀엽잖아.”

주점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호의 목소리도 들렸기에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직원들은 나와 라니 그리고 이옥주 지점장에게 인사를 한 뒤에 인테리어 구경을 하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먼지가 뭉실뭉실 떠다니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수호야. 방금 인테리어 업체가 빠져서 아직 여기 청소가 덜 됐어. 조금 있다가 들어오는 거는 어때?”

“우리가 남이냐. 같이 치우면 되지.”

“아니에요. 저랑 직원들이 할 테니 앉아 계세요.”

이옥주 지점장은 만류했지만,

그보다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십여 명이나 되는 이들이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하자 주점 내부를 치우는 일 정도는 금방 끝났다.

오저당 직원에게 청소는 일상이었다.

아침마다 공장을 쓸고 닦다 보니 30평 정도 되는 공간은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러더니 테이블에 앉아 술부터 시켰다.

당연히 수호와 직원들은 매일 접하는 벽향주나 오풍주보다는 돈 레오넬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다. 호르헤가 보낸 돈 레오넬은 소량이나마 한국에 들어왔다.

“혹시 돈 레오넬로 만든 칵테일 마실 수 있을까요?”

“죄송해요. 바텐더를 봐줄 친구는 월요일부터 출근이라 안 될 것 같아요.”

“그런 문제라면 우리 유능하신 사장님이 해결 가능하죠.”

수호는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어서 술을 말아서 내오지 않고 뭐하냐는 눈빛이었다.

“아직 정식 수입하기 전이라 돈 레오넬 얼마 없는 거 너도 알잖아.”

“그냥 가장 유명한 걸로 한 잔씩만 마시면 안 될까? 내가 아무리 말해줘도 말로 설명이 안 되니 갑갑해서 그런다.”

미국에서 수호는 돈 레오넬로 만든 칵테일을 다양하게 마셔본 경험이 있다.

그걸 직원들한테 자랑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수호의 말처럼 테킬라를 접해보지 못한 이들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맛이기는 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맛을 보는 게 확실히 좋기는 하죠.”

“지점장님까지 그러실 겁니까?”

“저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있어야죠. 유수호 이사님 덕분에 저도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겠네요.”

나는 어쩔 수 없이 앞치마부터 찾아서 둘렀다. 오늘 이 자리는 직원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그 정도의 희생은 충분히 해줄 수 있었다.

“손님, 어떤 칵테일로 드릴까요?”

다소 과장되게 주문을 받자,

다들 그런 내 모습에 환호해줬다.

생각해 보니 내가 바텐더로 일하는 모습을 본 직원은 수호밖에 없기는 했다.

그리고는 여러 종류의 칵테일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저는 마타도르로 부탁해욧!]

향이도 덩달아 한 잔을 주문했다.

그 덕분에 거의 열다섯 잔이 넘는 칵테일을 만들어야 했다. 한참을 그렇게 팔이 떨어져라 코블러 셰이커를 흔들고 있자 누군가 주점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와! 여기 예쁘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한산하지? 이번 주에 오픈하는 거 아니었어?”

“글쎄··· 나는 그렇게 봤는데.”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었다.

느낌상으로는 대학생 같았는데 아무리 나이가 많아 봐야 20대 중반쯤이었다.

예정되어 있지 않은 손님이 들어온 탓에 직원들의 시선은 모두 그쪽으로 쏠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문이 열렸는데 입구 앞에 서 있던 여학생들은 돌고래에 빙의된 것처럼 하이톤의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들리는 괴음에 화장실에 갔다가 들어오던 라니는 깜짝 놀라서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어머! 라니 실장님이다.”

“언니, 저 완전 팬이에요.”

“너튜브 잘 보고 있어요. 혹시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을 수 있을까요?”

라니는 그제야 상황 판단이 된 건지 차분하게 그녀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런 일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구독자가 늘어날수록 길을 가다가 알아보는 사람의 숫자도 늘고 있었다.

그나마 나는 출연이 잦은 편은 아니라 괜찮았는데 라니와 호세 같은 경우에는 외모 때문에 쉽게 알아보는 편이었다.

내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호는 어떻게 해야 하냐며 물었다.

“오픈 날을 착각했나 보네. 어떻게 하지?”

“뭘 어떻게 해. 죄송하다고 사과드리고 양해를 구해야지.”

“그냥 자리 하나 줘도 되지 않아?”

“여기는 지점장님이 책임자니 내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야.”

나는 그 결정에서 한 발 뺐다.

이곳의 운영에 대한 결정은 지점장에게 모두 주기로 이야기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니 손님을 받고 말고의 결정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자 수호는 이옥주 지점장을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렸고 마침 안주를 들고나오던 그녀를 찾아냈다.

수호는 곧장 이옥주에게 상황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옥주 지점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왜 수호가 이렇게 열심히 설득하는 건지 알아챈 것 같았다.

“술은 보시다시피 냉장고 가득 채워져 있고 주방 이모도 계시니 안주 몇 개 더 만드는 것 정도는 문제없어요.”

오픈은 내일모레였지만,

미리 사놓은 식재료가 많았다.

안주 연습도 하고 우리가 온다고 장을 넉넉하게 봐놓은 덕분이었다.

“그러면 지점장님은 괜찮으신 거죠?”

“사장님은 뭐라고 하셨어요?”

“여기 책임자는 지점장님이시니 자신이 결정할 바는 아니라고 하던데요.”

“호호, 그럼 첫 손님 받아볼까요?”

“예쓰! 저한테 맡겨주세요. 제가 이래 봬도 서빙 알바 많이 해봤거든요.”

수호는 입구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러더니 누가 봐도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로데오점의 첫 손님을 맞이했다.

대충 느낌을 보니 금사빠 기질이 작동한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들 중의 한 명이 평소 수호가 이상형이라 말하던 유나 누나와 꽤 닮아 있었다.

“어서 오십쇼! 편하신 곳에 앉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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