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빼고 다 재능충 (2)
쌍둥이의 영상 실력.
그건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한마디로 녀석들은 재능충에 속했다.
쌍둥이는 기존에 쓰던 오래된 카메라와 노트북만 줬는데도 꽤 만족했다.
그 외에 지원은 거의 필요 없었다.
영상 제작에 필요하다며 중간에 탬플릿 몇 가지와 쓸만한 삼각대 하나를 사달라고 요청해서 주문해준 게 전부다.
그래 봐야 십만 원 정도에 불과했는데 결과물만 놓고 보면 놀라울 정도였다.
역할 분담도 잘되어 있었다.
촬영은 형인 유성이 전적으로 맡았고, 편집과 연출은 동생 우주가 담당했다.
간혹 그 나이대에 어울리는 똘기 가득한 장면이 나오기는 했으나 나름 공부를 많이 한 것인지 우주의 연출은 고급졌다.
[오풍주 그냥 마시지 마세요 : 안주편 (1)]
영상의 길이는 5분 남짓.
거기에 출연하는 것은 이모였다.
아이들이 어렵게 섭외해서 찍은 영상 속에서 이모는 전문 요리사처럼 보였다.
하지만 얼굴은 나오지 않았다.
이모의 요청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상해 보이진 않았다.
요즘 너튜브에 얼굴은 공개하지 않고 촬영하는 영상이 적지 않게 있었다.
쌍둥이가 3일 정도 고생한 끝에 완성한 영상은 곧장 너튜브에 올라갔다.
“어머, 이렇게 보니 정말 내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내 손이 이렇게 고와 보이는 거야?”
“쌍둥이들이 신경 좀 썼대요.”
“호호, 보답으로 오늘 저녁에는 쌍둥이가 좋아하는 고기반찬 좀 만들어서 가져와야겠네.”
이모는 꽤 만족스러워하셨다.
그건 나와 수호도 마찬가지였다.
반응도 생각했던 것보다 좋게 나왔다.
하지만 그게 찐 반응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제 막 채널을 만든 상태다.
구독자 대부분이 아직은 나와 수호의 동창과 친구 같은 주변 인맥들이었다.
그래도 오풍주와 벽향주를 검색하다가 들어오는 것인지 꽤 많은 이들이 영상을 보았고 조회수는 가파르게 올라갔다.
하지만 좋은 말만 있지는 않았다.
일부 구독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구할 수 없는 오저당의 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인지 험한 말도 종종 보였다.
### : 이런 거 찍을 시간에 술이나 좀 빚어라. 어떻게 오풍주도 그렇고 벽향주 한 병조차 구할 수 없어?
### : ㅇㅈ! 제발 일 좀 해주세요.
### : 올해 안에는 마실 수 있는 거 맞죠?
### : 나 얼마 전에 운 좋게 오풍주 마셔봤는데 개꿀맛이었음.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마셔보고 싶을 정도.
### : 벽향주는 꼭 사서 마셔요. 이거슨 위스키 못지않은 술입니다.
ㄴ ### : 에이, 그건 좀 아니지 않나?
ㄴ ### : 20년 넘어가는 고가의 술 말고 10년 안쪽의 술이랑은 비벼볼 만 해.
### : 나도 위에 있는 댓글에 동의해. JD도 연도 표기 없는 NAS잖아. 모든 술이 오랜 기간 숙성해서 나오는 게 아니야.
ㄴ ### : 그거 7년 숙성한 거 아녔나?
ㄴ ### : 푸흡! 여기도 위알못 추가요. No.7이 그 의미가 아님.
그런 댓글을 볼 때마다.
조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온라인을 통해서 공격을 받는 것은 처음이라 내상도 적지 않게 생겼다.
수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받고 사는 연예인은 도대체 어떻게 버티는 거지?
하지만 아무리 조른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숙성 기간을 줄이는 꼼수를 써서 술을 내놓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벽향주가 추가 생산 완료되는 1월 말까지 버텨야만 했다.
그래도 아예 생산이 멈춘 것은 아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양조장의 숙성 창고 안에도 이미 숙성 중인 술이 있다.
양은 그리 많지 않으나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도움이 되었다.
쌍둥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요즘 녀석들은 틈이 날 때마다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안주 페어링 시리즈 외에도 오저당의 일상을 올리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런 게 과연 재미있을까?”
“맞아. 우리가 연예인도 아닌 데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얼마나 있겠어.”
“분명히 반응이 있을 거예요.”
“맞아요. 자극적인 것도 조회수가 많이 나오지만, 더 안정적인 조회수가 나오는 게 힐링 영상이라 보시면 돼요.”
쌍둥이는 자신 있어 했다.
녀석들은 그 증거라며 채소집 청년들이 나오는 채널 등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일상에서 맛보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며 열심히 설득하려 애를 쓰는 모습을 보니 더는 말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일하는 데 지장만 없다면 상관없어.”
“틈틈이 찍을게요.”
“그리고 영상 올리기 전에는 무조건 나한테 보여줘야 해. 혹시라도 논란이 될 만한 말이 들어가진 않았는지 몇 번이고 확인해도 부족하진 않거든.”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SNS 세상이다. 요즘은 불편러들이 하도 많아서 작은 말실수도 꼬투리 잡힌다.
오죽하면 한때 너튜버들 사이에서 ‘죄송합니다’라는 영상이 유행했을까.
어그로 끄는 것도 참 다양했다.
실제로 며칠 후에 쌍둥이가 올린 영상의 반응은 썩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새벽에 오풍주를 저어주러 나가는 숏컷인 게 문제였다.
영하 10도를 오가는 한겨울에 그것도 새벽녘 눈보라를 헤치며 걷는 모습은 내가 봐도 조금 짠한 느낌이 들었다.
마침 그날 폭설이 내릴 게 뭐람.
심지어 눈도 무릎까지 쌓여 있었다.
그런 것은 연출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것인데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심지어 극한 직업이란 TV 프로그램에 나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웃자고 쓴 댓글인 것 같았다.
하지만 당사자인 우리는 웃을 수 없었다.
수호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의 얼굴을 가련하게 바라봤다.
여기서 눈물을 흘리면 지는 거야.
그러니 울진 말자.
“도찬아, 이 댓글은 킹정이다. 우리끼리 극한 직업 찍고 있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잖아. 그것마저 안 하면 가격을 더 내리고 숙성도 짧아졌을 거야. 그러면 대상은 받지 못했겠지.”
“그게 그런 식으로 연결되냐?”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우리 둘 다 남 탓은 할 수 없다.
서로 합의해서 결정한 문제였다.
불쌍한 호세만 중간에 껴서 고생할 뿐이지. 쌍둥이가 어느 정도 자리 잡기 전까지는 녀석이 조금 더 고생해야 한다.
오저당의 정직원이 된 시기는 차이가 별로 안 나지만, 그래도 9월부터 거의 4개월 가까이 경험한 것이 적지 않았다.
그러니 쌍둥이보다 호세가 월급도 더 많이 받는 거잖아.
그 외에도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오저당에서 너튜브 채널을 만든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10만 구독자를 보유한 주류 협회의 채널에서 와줬다.
공식 채널 마크가 달린 댓글은 처음이라 은근히 폼나 보였다.
[대한주류협회 : 오저당도 드디어 너튜브 채널을 여셨군요. 언젠가 시간 되시면 저희와 조인해서 같이 촬영해요.]
나태영 대리라고 했던가.
전에 수상하러 갔을 때 그가 너튜브 담당자라고 들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우리 입장에서는 협회 구독자를 쪽쪽 빨아먹을 기회라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더구나 홍보의 기회이기도 했다.
거기서 오풍주의 개발 과정과 여러 이야기를 해주면 무슨 막걸리가 이렇게 비싸냐고 하는 말은 조금 사라지겠지.
우리도 이렇게 비싸게 팔고 싶진 않았다고!
그 외에도 아이디어가 꽤 많았다.
우리 대부분이 시간이 날 때마다 너튜브를 보는 편이고 나도 마케팅 관련 이론을 꾸준히 배우고 있는 중이다.
오저당 덕분에 그 이론을 실제로 접목 시켜보는 경험도 해볼 수 있었다.
“오풍주로 제2의 글래시어 칵테일을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냐?”
문득 든 생각에 수호에게 물었다.
벽향주처럼 오풍주도 그 나름의 시그니처 칵테일을 만들면 그것 역시 마케팅 포인트가 될 것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은 수호의 반응은 별로였다.
“막걸리로 칵테일을?”
알아,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내가 말하면서도 조금 어색했어.
하지만 굳이 한계를 정할 필요는 없잖아.
와인도 과일과 계피를 넣고 끓이면 뱅쇼(vin chaud)라 불리는 음료가 된다.
막걸리라고 다를 게 없다고 여겼다.
요즘 사람들은 재미있는 것을 갈구한다.
괜히 소주에 아이스크림을 타서 마시는 일이 생기는 게 아니다.
반드시 성공할 거란 장담은 못 한다.
하지만 그런 시도 끝에 조금이라도 재미있는 조합이 나온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게 남는 것이 제법 많았다.
콘텐츠가 별거 있나.
재미만 있으면 되는 거지.
그래서인지 몰라도 쌍둥이 형제는 내 의견에 꽤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저는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수호야, 잘 생각해봐. 옛 어르신들이 막걸리에 사이다를 타서 마시던 것도 따지고 보면 칵테일이지 않냐?”
술과 어울리는 재료를 섞는다.
그게 칵테일의 핵심이자 기본이다.
잭콕과 같은 아주 쉬운 칵테일도 있으나 이 세상에는 정말 별의별 칵테일도 많다.
몇 년 전에는 관광공사에서 김치 블러디 메리라는 김치 칵테일이 소개됐었다.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한 혼종이었다.
차라리 매콤한 동치미를 추천하고 말지···.
“뭐, 네가 그렇게 말하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확 댕기진 않아..”
“일단 시도해 보는 거지.”
“그런데 그거 유나 누나한테 부탁할 생각인 거는 아니지?”
수호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요즘 누나의 멘탈이 썩 좋지 않았다.
지난가을에 암스테르담 바텐더 대회에서 거둔 저조한 성적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누나는 본선에도 못 올라가고 다시 귀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생애 첫 우승을 이루기 위해서 1년 가까이 준비해서 나간 대회였다.
준비하는 과정도 예전에 비해 길었고 그만큼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래서 더 타격이 컸던 것 같았다.
요즘 지철이 형도 그 때문에 누나를 케어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사람 인생이란 게 참 신기했다.
올 초까지만 하더라도 누나에 비해 형이 이뤄낸 것은 정말이지 미미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가을에 열었던 전시회를 기점으로 사진작가로서 형의 주가는 상당해졌다.
최근에는 어반 스카이도 그만뒀다.
형의 사진을 좋게 보았던 어느 중소기업 사장님의 개인 후원 덕분에 작게나마 사진 프로젝트를 시작한 덕분이었다.
어쨌든 나는 수호의 말에 대답을 해줘야만 했다.
“누나 말고 이걸 누구한테 부탁해.”
“지금 그럴 여유가 있겠냐.”
“오히려 그러니까 엉뚱한 생각하지 못하도록 바쁘게 만들어줘야지. 누나도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기회야.”
글래시어 칵테일을 만들 때.
누구도 성공할 거라 여기지 못했다.
심지어 본인도 호기심에 만든 것이지 그걸로 상을 받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니 다시 한번 심기일전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나보다 네가 누나에 대해서 잘 알 테니 알아서 해.”
수호도 그쯤에서 한 발 물러났다.
예전만큼 누나한테 정신을 팔고 있지는 않았다. 확실히 자주 보지 못하니 마음도 멀어지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형이랑 누나가 사귀는 것을 알게 되면 상처 받을까 봐 걱정됐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요즘 수호의 관심은 다시 영어 공부 쪽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었다.
실제로 녀석의 영어 실력은 기대 이상으로 급성장했다. 테넌트가 잠시 머물며 대화할 기회가 많았다.
아마 그게 계기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1월 한 달 내내.
숙성을 하기 위해 중간에 떠버린 시간을 우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활용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기에 노력에 따른 보상은 아직 대단하진 않았으나 그 시간 동안 술은 완전히 숙성을 끝마쳤다.
그리고 2월 첫째 주가 되던 날.
새로운 숙성 창고의 70개의 옹기에서 무려 2만 8천 병의 벽향주가 완성됐다.
아직 병입을 모두 마친 것은 아니었으나 200리터 크기의 옹기를 사용하니 옹기 하나당 병입되는 양이 훨씬 더 많아졌다.
우리는 오랜 기다림을 끝내고 서둘러 벽향주의 병입과 출고를 준비했다.
눈 빠지게 이날만 기다리고 있던 주류 상사들은 벌써부터 성화였다.
그리고 그 무렵에 오저당과 나는 아주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창고의 문을 열고 불을 켠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섰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뭐야? 왜 이렇게 갑자기 요정들이 많아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