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35화 (135/254)

< 이삭 줍는 남자 (1) >

광고의 종류는 다양하다.

흔히 볼 수 있는 TV 광고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광고 방법이 존재한다.

당연히 내가 생각하는 광고는 기존의 전통적인 광고 매체인 ATL 쪽은 아니었다.

TV에 광고를 싣는 비용은 엄청나다.

채널과 시간대마다 차이가 상당한데 좋은 자리를 잡고 광고 촬영비까지 합치면 몇억 정도는 쉽게 깨진다고 들었다.

아직 오저당의 규모가 그 정도를 논할 정도는 아니었다. 종합 주류 회사가 되기 전에는 현실적으로 엄두 내기 어려웠다.

지금 우리 입장에서는 최대한 가성비를 따져서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더구나 주류 광고는 제약이 많다.

시간대도 마음대로 잡을 수 없을뿐더러 얼마 전에는 맥주 광고에서 연예인이 ‘캬~’하는 감탄사를 규제하기도 했다.

음주 욕구를 자극한다는 이유 때문인데 이제는 연예인의 얼굴이 들어간 소주병도 규제 대상이 될 정도다.

그렇다면 뭐가 좋을까.

샌프란시스코의 집으로 온 뒤부터.

다양한 광고를 살피며 고민을 해봤다.

하루가 지난 뒤에 내가 내린 결론은 홍보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뭣도 모르고 아무 광고나 찔러보며 돈을 쓸 바에는 차라리 그편이 더 저렴했다.

그쯤에서 나는 외주 업체에게 일을 맡길 건지 아니면 오저당에 홍보 부서를 만들 것인지 선택해야만 했다.

‘둘 다 장단점이 있긴 한데···.’

외부에 맡기면 장기적인 홍보 계획을 잡기 어려웠고 부서를 만들자니 사람을 구인하는 게 힘들었다. 당연히 나는 후자를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멀리 본다면 인력 보충이 필요했다.

라니도 초반에는 일거리가 한정적이라 생각되었으나 막상 시간이 지나니 오히려 일이 너무 많아서 부담될 정도였다.

홍보 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순하게 광고를 준비하고 집행하는 게 끝이 아니다. 지난여름에 했던 것처럼 시음 행사를 진행할 수도 있는 일이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쌍둥이가 관리하는 너튜브 쪽의 기획도 가능하다.

거기에 아이레스도 있다.

그걸 미국에서만 팔 생각은 없다.

당연히 국내 런칭도 염두에 둬야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외주를 맡기는 것보다 홍보 부서 쪽으로 기울어졌다.

마침 적당한 사람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고민은 잠시 접어뒀다.

여기서 아무리 고민해도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나는 그쯤에서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옆집의 수영장이 시야에 들어왔는데 예상대로 라니가 있었다.

이 시기가 되면 낮에는 항상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녀석이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고 그 패턴이 사라지진 않았다.

“고라니! 잠시 회의 좀 하자.”

그리 크게 소리 낼 필요는 없었다.

은근히 라니의 집이 옆에 바짝 붙어있는 편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자 라니가 고개를 들어 내가 있는 2층을 바라봤다.

비키니를 입고 햇살 아래 놓인 선베드에 누워 있던 녀석은 인상부터 썼다.

“뭐라는 거야. 오늘 하루는 그냥 쉬자며.”

“지금 안 오면 후회할 거야.”

“그냥 네가 내려와. 사람이라면 볕도 좀 쐬고 움직여야지. 온종일 방안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경고하는데 옷은 입고 와라!”

그렇게 말하며 창문을 닫은 뒤.

아래층에 내려가 소파에 앉아 있자 큰 타월을 두른 라니가 들어왔다. 금방 온 걸 보면 어지간히 심심했던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라니의 성격상 아마 한참 지난 뒤에 왔거나 씹었을 거다.

“입은 것도 아니고 벗은 것도 아닌 애매한 그 상태는 또 뭐냐?”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꺼. 모처럼 쉬는 사람을 왜 부른 건데?”

“나랑 일 하나만 하자.”

“또 뭘 시키려고?”

나는 설명하기보다 뭔가를 보여줬다.

노트북을 열어서 띄운 사진을 본 라니는 내 예상대로 곧장 흥미를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거기에 있는 것들은 녀석이 내게 먼저 해보자고 예전에 제안했던 것이었다.

그건 오저당 이름이 들어간 술잔이었다.

정확하게는 ‘오졌다! 오저당’ 문구가 적힌 술잔이었는데 오저당의 술을 파는 소매점에 보낼 판촉물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용도가 하나뿐이진 않았다.

선물 세트를 사면 잔을 증정한다던가.

아니면 전용 잔을 만들어서 개별 판매를 하는 방법도 있었다. 이미 다른 몇 곳의 양조장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작년에 꽤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시작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라니는 회식을 할 때 종종 가는 고깃집에 있는 소주잔을 보고 꽤 관심을 보였다.

잔이 신기해서 그런 게 아니라 거기에 넣어진 여러 소주 브랜드 때문이었다.

아마 그때 필을 제대로 받은 것 같았다.

시간이 남을 때마다 뭔가 스케치를 하더니 이내 오저당의 전용 잔을 만들자며 몇 가지의 디자인을 제안했었다.

상품 디자인이 특기인 녀석이라 확실히 남다르긴 했다.

전용 잔이란 게 낯설지는 않았다.

해외의 맥주 같은 경우에는 가장 맛있게 마실 수 있다며 제각각 다른 잔을 쓴다.

하지만 그때는 상황이 여의찮아서 접어뒀는데 어느덧 3개월 전의 일이었다.

“오! 드디어 이거 만들려고?”

“이제는 때가 된 것 같아. 그런데 이거 말고 또 만들어 놓은 거 있어?”

“잔 받침대 같은 것도 있지. 하지만 시간 날 때 끄적였던 거라 더 손봐야 해.”

“시간은 충분히 줄 테니 해보자.”

“소담의 리뉴얼이랑 이거랑 어느 게 더 우선순위야?”

당연히 소담의 리뉴얼이 우선이다.

하지만 설비가 들어갈 건물이 착공도 되지 않았기에 실제로 제품이 나올 때까지 몇 개월쯤은 여유가 있었다.

“그사이에 비는 틈이 있으니 이것부터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오케이. 어차피 크게 바뀌진 않을 테니 금방 끝날 거야. 하지만 재질을 뭐로 할 건지 먼저 정해줘야 해.”

“흠··· 그건 오저당에 돌아가서 직원들 의견도 조금 들어보자.”

잔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도자기와 유리 그리고 양은까지.

각각의 특징이 있었고 단점도 명확했다.

소매점에 보낼 판촉용은 도자기가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다.

무게감이 많이 나가는 것은 직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에 유리는 잘 깨지고 양은은 고급스러운 우리 술의 이미지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반면에 일반 고객용은 유리가 좋았다.

왜 그렇게 확신하냐면 다른 양조장에서 같은 마케팅을 했을 때 투명한 유리잔의 반응이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건 왜 만들려고?”

“요즘 국내 시장에서 오저당 제품들의 성장세가 주춤하잖아. ”

“하긴 그렇기는 했지.”

수출은 나날이 늘고 있지만,

정작 국내 쪽은 거의 답보하는 중이다.

다행히 매출의 하락은 거의 없었으나 성장을 멈춘 상태라고 보면 되었다.

올 초에 받았던 품평회 효과도 완전히 끝났고 리뉴얼을 하며 폭발적으로 늘었던 판매량도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당연히 국내 시장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기에 이 상황을 돌파할 작은 계기라도 필요한 게 현실이었다.

이 순간이 무척 중요했다.

한때 잘나갔던 양조장으로 머물거나 아니면 성장을 계속 이어가며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냐의 갈림길이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홍보를 강화해야 했다.

“내가 열심히 해야겠네.”

“다 같이 노력해야지. 한두 명만 고생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야.”

“이거 저번에 이야기한 대로 온라인을 통해서 별도로 판매도 할 거지?”

“반응이 좋으면 그럴 생각도 있어.”

라니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그 부분에서 라니는 열정을 불태웠다. 상품 디자인을 해서 대중에게 선보이는 것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벌써 뭔가 떠오른 게 있는 건지 녀석은 곧장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런 라니의 등 뒤에 대고 외쳤다. 그냥 놔뒀다가는 밤을 꼬박 새울 기세였다.

“내일 귀국인 거 잊지 마!”

*

보름 동안의 출장을 마친 뒤.

다시 돌아오니 가을로 접어들었다.

어느덧 아침나절은 쌀쌀해졌는데 공항에 내리니 비까지 와서 상당히 서늘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아침을 먹을 틈도 없이 곧장 태백행 공항버스를 타야 했다.

9시 버스를 놓치면 답이 없었다.

그다음 차가 오후 1시 50분에 있기에 5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 지방에 산다는 것이 이럴 때는 꽤 불편하긴 했다.

하지만 나의 스윗한 홈이 조금 그리웠다.

[드디어 다시 돌아왔네요. 개똥밭을 굴러도 역시 고향이 좋은 것 같아요.]

“이번 여행은 별로였어?”

[아니요. 오저당의 식구들을 걱정하셨던 것처럼 저도 요정들이 신경 쓰였어요. 판초 요정처럼 되긴 싫거든요.]

“다들 잘 있을 거야.”

버스의 가장 뒷자리.

그곳에서 향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라니와 동행하는 것은 그다지 불편하진 않았으나 향이와 대화하긴 어려웠다.

나름 눈치도 빠른 녀석이라 통화하는 척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참고로 라니는 기절한 상태다.

비행기에서도 태블릿으로 뭔가를 엄청 열심히 그리더니 결국에는 뻗었다.

아마 태백에 도착할 때까지 깨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멕시코는 언제쯤 다시 가실 건가요?]

“글쎄··· 급한 일부터 정리하고 호세가 입국하기 전에 한 번쯤 다녀와야지.”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어느 정도 기틀을 마련해야 아이레스의 품질 개선을 한다거나 설비를 추가로 들여놓을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적어도 한두 달은 걸릴 거라 여겼다.

지금은 내가 가서 할 일이 없었다.

오히려 국내에서 해외직접투자를 위한 외환 송금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현지에서 계약금을 주었고 호세도 있으나 가능한 빨리 마무리 지어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태백에 도착하자,

수호가 터미널까지 차를 끌고 나와서 마중해줬다. 그 덕분에 쉽게 오저당까지 갈 수 있었는데 수호는 운전을 하며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내게 전해주었다.

고작 보름에 불과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오저당에 생긴 변화는 꽤 많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선물 세트의 판매량이 급격하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추석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생각보다 주문하는 사람이 꽤 많네.”

“2병짜리 세트로 사도 배송비 포함한 금액이 3만원이 넘지 않으니까. 그리고 라니가 열심히 만들어준 덕분이지.”

“역시 수호 너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선물은 사 왔겠지? 호세도 멕시코에 버려두고 왔는데 맨손으로 왔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호세가 멕시코에 있는 시간 동안.

모든 일은 수호가 감당해야만 했다.

당연히 나도 옆에서 도와주겠지만, 그렇다고 일이 많이 줄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두어 달은 고생할 것이 뻔하기에 나는 면세점의 주류 코너를 털어왔다.

“우리 사장님께서 엄청나게 많은 양의 술을 사 왔지. 너 저거 가지고 오느라 세금 낸 거 보면 아마 깜짝 놀랄 거다.”

“더 사고 싶었는데 캐리어 바퀴가 부러질까봐 무서워서 못 사겠더라. 다음에는 더 튼튼한 걸로 준비해야겠어.”

“흐흐.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서 좋아. 그건 그렇고 그저께 연화 건설 사장님이 너 언제 들어오냐고 묻더라.”

연화 건설이 나를 찾은 이유는 뻔했다.

땅이 얼기 전에 기초 공사를 시작해놔야 공사에 차질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겨울이 되면 고립될 정도로 눈이 많이 오기에 스케줄이 밀리는 일이 많아지는 오풍리다. 연화 건설도 그걸 알기에 서둘러서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말은 없었어?”

“오늘 입국한다고 했더니 내일 다시 연락주고 찾아오겠다고 하시더라.”

“내가 내일 직접 찾아뵙겠다고 연락할게. 안 그래도 삼척에 볼일이 있거든. 태백에 잠시 들렸다가 가면 되겠네.”

“삼척은 왜? 급한 거 아니면 하루쯤 쉬고 움직여도 되잖아.”

수호는 뭐 그리 급하냐며 물었다.

그쯤에서 나는 그간 구상한 걸 말해줬다.

추가로 인력을 뽑아서 홍보를 전담할 부서를 만들겠다는 말을 하자 둘 다 필요성을 느꼈는지 쉽게 수긍했다.

“안 그래도 필요하긴 했어.”

“몇 명이나 뽑으려고?”

“글쎄··· 그건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있지.”

“그게 누군데?”

“둘 다 이삭 기획 기억하지?”

“당연히 알지. 거기 대표 제외하면 직원이 세 명이잖아. 그중에 누굴 데려오려고?”

수호는 직원 중의 한 명을 스카우트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내 계획은 그보다 조금 더 컸다. 거기 직원들도 다들 일을 잘했으나 핵심은 황동선 대표다.

그가 빠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더구나 요즘 회사 사정이 그리 좋지 않다고 들었으니 지금이 기회였다.

“아니, 그 회사 통째로 데려오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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