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37화 (137/254)

이삭 줍는 남자 (3)

이삭 기획의 합류가 결정됐지만,

곧장 오저당으로 출근하지는 않았다.

워낙 갑작스럽게 정해진 일이기도 했고 이삭 기획에서 이미 받아 놓은 의뢰가 있는 탓에 어느 정도의 시간은 필요했다.

오저당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출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우선은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

사무실로 사용하는 컨테이너에 책상 세 개를 더 넣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간이었다.

그러니 모듈러 주택부터 지어야 했다.

다행히 연화 건설은 차질 없이 허가를 받아냈고 창고는 물론이고 모듈러의 기초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난 뒤.

마침내 모듈러 주택이 들어섰다.

공사가 끝난 바로 다음 날에 이삭 기획이 우리 오저당의 식구로 합류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는 솜털도 끼어있었다.

솜털이의 인기는 엄청났다.

오저당 식구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여직원들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는데 쉬는 시간이 될 때마다 그 주변에 모였다.

그건 오저당을 찾아오는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찌나 성격이 깨발랄한지 찾아오는 손님마다 찾아가 재롱을 피우는 덕분에 녀석은 오저당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그 모습이 너튜브 등을 통해 알려지자 녀석을 보러 오는 손님도 생길 정도였다.

“정말 하루 만에 뚝딱 세우네. 이거 눈 많이 오면 무너지는 거 아니야?”

완공된 지 며칠이나 지난 모듈러지만, 수호는 아직도 못 미더워 했다.

지난해 겨울에 폭설을 겪어봤기 때문에 더 걱정하는 것 같았다. 나도 완벽하게 믿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2층 구조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사무실은 1층에 있고 2층은 휴게실이라 폭설이 내리면 비워두면 되는 일이다.

생각보다 조금 큰 크기였으나 나중에 직원이 더 많아지면 2층도 사무실로 변경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나중에 추가로 건물을 세우면 이걸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다잖아.”

“250평 창고도 부족해서 더 지으려고?”

“처음에 숙성 창고 100평도 다 채울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오히려 부족했잖아.”

“저거 3층짜리야. 거기에 파렛트렉까지 설치할 거라고 했잖아. 우리가 죽었다가 깨어나도 다 못 채워.”

과연 그럴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사람을 더 고용하면 될 일이다.

실제로 오저당은 이삭 기획 외에도 인근 고등학교에서 현장 실습을 나온 다섯 명의 남학생이 추가로 고용되었다.

그들까지 합치면 오저당에 소속된 직원은 어느덧 스물두 명까지 늘어났다.

그 정도가 되니 식사하는 것도 이모님과 아주머니가 커버할 수준은 넘어섰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사를 지어주실 분들을 두 분 더 고용해야만 했다.

그분들까지 합치면 스물네 명이 됐는데 이제 작은 규모라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다행인 것은 직원이 하나둘 늘어나는 만큼이나 수출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KR 마트와 바크모 그리고 끌루소까지.

추가 주문이 크고 작게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는 중인데 저마다 주문하는 스타일이 다른 것도 꽤 흥미로웠다.

바크모는 크게 한 번에 주문하는 것을 선호했고 KR 마트는 보내는 컨테이너가 자주 있는 편이라 나눠서 주문했다.

유일하게 오풍주를 다루고 있는 곳이라 충분히 이해는 되었다.

“그런데 쟤네는 또 뭘 하는 거야?”

수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이삭 기획에서 새롭게 합류한 류미진 대리와 함께 뭔가를 촬영하고 있는 쌍둥이 형제의 모습이 보였다.

류미진 대리는 온라인 마케팅에 특화된 인재였는데 너튜브 영상 기획과 채널의 댓글 관리를 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녀가 곁에서 도와주는 덕분에 쌍둥이의 일거리는 많이 줄어들었다.

“가을이잖아. 오늘은 인근 산책로 촬영한다고 하더라. 거기 이 무렵쯤되면 알록달록하니 걷기 좋잖아.”

“내년에는 그 길에 꽃도 좀 심어야겠네.”

“시간이 되려나 모르겠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왜 우리 채널 구독자가 12만 명이나 되는 건지 이해가 안 가. 특별한 거 올리지도 않잖아.”

“저마다 취향이 다르잖아.”

수호는 힐링보단 액션을 좋아한다.

아마 그래서 오저당 채널이 주는 소소한 감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난달에는 멕시코와 미국 출장에서 찍은 영상과 관련된 이야기도 올렸는데 해외 유입이 꽤 많이 늘었다.

아마 유럽과 미국 등에서 우리 술을 접한 이들이 찾아오는 것 같았다. 그들은 우리 술에 대해 궁금해했고 그러다가 다양한 방법으로 술을 마시는 것을 배워갔다.

그중에는 유나 누나가 만들어준 칵테일 레시피와 이모의 음식 영상도 있었는데 따라 해서 성공했다는 댓글도 보였다.

하지만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직원들끼리 술 게임을 하는 영상이었다.

다들 그걸 꽤 신기하게 보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미국에 있을 당시에 또래의 친구들이 하는 게임은 그다지 흥미로웠던 것이 거의 없었다.

비어 퐁이라고 맥주잔에 탁구공을 던지는 것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을 정도였다.

“이제 곧 연말이 다가오는데 판촉물 제작은 어디까지 진행됐어?”

“디자인은 끝냈고 요즘 심태섭 대리가 생산 단가 알아보고 있는 중이야.”

“서둘러야겠네.”

“그전에는 끝낼 테니 걱정하지 마.”

연말은 술 판매량이 급증하는 시기다.

온갖 모임과 회식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산하는 술 중에 맥주는 없기에 여름보다 연말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리고 조금 전에 언급한 심태섭 대리는 류미진 대리의 남편이자 이삭 기획에서 같이 넘어온 직원이었다. 그는 현재 라니와 함께 판촉물 제작을 맡고 있었다.

여러 주류 상사와 연계하여 진행하는 오프라인 이벤트도 그의 몫이었다.

맡은 일의 특성상 영업의 성격도 짙었는데 의외로 그쪽 일도 잘하는 편인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황동선 대표는 오저당의 임원으로 입사하여 이사 자리에 앉았다.

그는 오저당의 마케팅과 브랜드 작업을 이끌었는데 인력 구조상 지시를 내리는 것보다 직접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에는 이삭에서 며칠 빨리 퇴사한 그 분은 받지 않기로 한 거야?”

“지금 상황에서 마케팅 부서에 네 명이나 두는 것은 너무 과하잖아.”

“하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저당의 다른 업무를 볼 생각은 없냐고 물어보긴 했어.”

“뭘 시키려고?”

당연히 술을 빚는 일이었다.

열 명이 넘는 인력이 보충된 것은 맞으나 정작 술을 빚는 쪽에 충원은 없었다.

더구나 아직 호세도 복귀하기 전이다.

“마케팅 쪽이면 사무직이었을 텐데 온다고 하더라도 적응할 수 있을까.”

“누군 뭐 처음부터 술을 빚었나.”

“하긴 나도 흙이랑 꽃을 만지고 살 줄 알았는데 동기 하나 잘못 만나서 이런 산골짜기에서 술을 빚을 줄은 몰랐지.”

응, 그건 나도 몰랐어.

역시 사람 인생은 한 치도 알 수 없어.

지난해 이 무렵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성장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도망갈 생각은 마. 그러다 잡히면 가둬두고 10년쯤 군만두만 넣어줄 테니.”

“어이쿠! 무서워라. 그간 쌓인 정이 있으니 기왕이면 비싼 양장피나 탕수육으로 부탁해.”

수호와 잠시 농담을 나누고 있자,

멀리서 솜털이와 뛰어놀고 있는 향이가 보였다. 어느새 두 녀석은 거의 영혼의 단짝이 되어가고 있었···다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향이가 질척거렸다.

“쟤는 오늘도 에너지가 남아도나 봐.”

“아직 어리잖아.”

“그나저나 이번에 황 이사님이랑 가는 멕시코 출장 준비는 다 했어?”

“준비할 게 있나. 그냥 다녀오면 되지.”

“들어올 때 호세도 같이 오는 거 맞지?”

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OGD 멕시코의 설립은 생각보다 빨리 끝냈다. 호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안 봐도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우리에게 증류소를 판 리오넬은 무사히 인공 판막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술도 계속해서 빚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리뉴얼 단계 전이나 요정의 숫자를 늘릴 필요가 있기에 준비 과정이라고 봐도 되었다. 실제로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얼마 전에 받은 테킬라의 맛이 달라졌다.

아주 큰 차이는 아직 아니었지만,

분명히 기존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황동선 이사가 동행하는 이유도 브랜드 런칭을 준비하기 위한 밑 작업이었다. 바크모의 카를로스와 맺은 내기가 있기에 서둘러야 했다.

“드디어 오기는 오는구나.”

“한국 음식이 그립다고 하도 난리였잖아. 더 놔두면 안 될 것 같아. 이번에 호세가 오더라도 다른 직원들 역량도 키워줘. 언제 또 누가 빠질지 모르는 일이잖아.”

“당연히 그래야지.”

잠시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거칠게 울렸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열어보니 라니의 전화였다.

[어디 있어?]

“공사하는 곳에 나와 있지.”

[수호도 같이 있는 거야?]

“응. 옆에 있어. 무슨 일 있어?”

[주문해놨던 판촉물 샘플 나왔어. 와서 최종 컨펌해줘.]

나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곧장 수호와 함께 사무실로 향했다. 모듈러 주택 내부 공간은 크게 뚫려 있어서 생각보다 넓어 보였다.

그곳에는 모두 합쳐서 책상 10개가 놓여 있었는데 따로 사장실이나 임원실이 있는 그런 구조는 아니었다. 그래도 사생활 보호용으로 파티션 정도는 놓여 있었다.

유일하게 분리되어 있는 공간은 회의실이었는데 대형 원목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열 명쯤은 앉을 수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 테이블 위에 놓인 판촉물 샘플이 보였다.

“짜잔! 마음에 들어?”

라니는 자신이 디자인한 것이라 그런지 애정이 어린 눈빛으로 판촉물을 바라봤다.

그리고 녀석의 옆에는 프로젝트 진행을 함께 진행하고 있는 심태섭 대리도 있었다. 심 대리도 어느 정도 영어를 할 줄 알기에 같이 일하는 데 무리는 없었다.

라니가 일도 잘하고 한국어 실력도 많이 늘었으나 업무 처리에 있어서 서포트가 필요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돈이 오가는 계약에 관련된 것은 아무래도 미묘한 차이까지 알아챌 수 없기에 그런 부분은 심태섭이 맡았다.

“일단 좀 보고 말하면 안 될까?”

“그건 아니지. 뭐든지 첫인상에서 판가름 나는 거야. 택배 포장을 뜯고 3초 이내에 고객의 마음은 정해진다고.”

“내가 무슨 스캐너냐. 이 많은 걸 어떻게 3초 만에 다 확인해.”

라니를 뒤로 물리친 이후에.

나는 천천히 샘플을 살펴봤다.

거기에는 원래 예정했었던 일반 술잔과 하이볼 용도의 큰 잔도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잔 받침 용도의 패드도 보였는데 솜털이를 닮은 캐릭터가 들어가 있었다.

“이건 도대체 뭐야?”

“너튜브 구독자가 하도 요청해서 만들어봤어. 촬영 용도로 쓸 거라는데 여기 사장님이 서비스로 만들어주셨지.”

“생각보다 괜찮은데? 일단 너튜브 반응부터 보자.”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우선 술잔부터 자세히 살폈다.

하이볼 용도의 잔을 제외하면 두 가지 형태의 술잔이었는데 하나는 유리였고 또 다른 하나는 전통적인 도기 재질이었다.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면 옆면에 ‘오졌다! 오저당’이 박혀 있는 것이다.

오졌다라는 글씨는 붉은색이라 눈에 확 띄었는데 촌스럽다는 느낌은 없었다.

이대로 나오면 소매점에서도 사용하기에 무리가 없었고 개인적으로 소장하려는 이들도 꽤 있을 것 같았다. 원래 술 좋아하는 사람이 술잔도 애지중지한다.

어떤 잔에 마시냐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거 한두 번 사용했는데 벗겨지고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지?”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야. 참고로 네 앞에 있는 이거 내가 오늘 아침부터 몇 시간 동안 계속 닦아봤는데 문제없었어.”

“어제 저희집에 있는 식기 세척기로 계속 돌려봤는 데도 괜찮았습니다.”

심태섭 대리도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그쯤 되면 문제는 없을 것 같았는데 한동안 말없이 살펴보고 있자 심태섭 대리는 꽤 긴장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오죽하면 옆에 있던 수호와 라니가 팁이라며 내 습관에 대해 알려주었다.

“심 대리, 원래 뜸 들이는 거 좋아하는 편이니 긴장 풀어요.”

“우리 사장님이 생각이 많아지면 말도 없어지는데 그냥 기다리면 돼요.”

“조언 감사합니다.”

이봐··· 나 옆에 있거든. 다 들려!

어쨌든 내 기준은 충분히 통과됐다.

처음 보여준 디자인 시안과 차이도 거의 없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이대로 진행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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