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41화 (141/254)

돈 레오넬(Don Leonel) (3)

어둠이 내려앉은 늦은 밤.

증류소 앞에 트럭 한 대가 멈췄다.

그 안에는 두 명의 남자가 타고 있었다.

그들은 뭔가를 살피는 건지 내리지는 않고 있었는데 한동안 주변을 지켜보던 둘은 뭐가 그리 즐거운 건지 히죽거렸다.

“며칠 동안 밤마다 와서 지키고 있더니 오늘은 불도 다 꺼졌네.”

“그 새끼들도 이제 지친 거겠지.”

“혹시 모르니 조금만 기다려보자. 괜히 마주치면 골치 아파져.”

“뭐가 걱정이야? 우리한테는 이게 있잖아.”

양쪽 팔부터 목까지 문신을 한 세타스가 왼쪽 손을 들어서 권총을 보여줬다.

손잡이에는 해골 문양의 장식이 들어가 있었는데 실용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화려함이었다.

그걸 본 풍성한 수염이 인상적인 니에토는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저었다.

가능하면 사용할 일이 없어야 하는 물건이었다.

“그거 집어넣어. 괜히 소란을 피우면 골치 아파진다고 말했잖아.”

“우리가 언제부터 그런 거 따졌어?”

“테킬라 지역의 증류소를 습격해서 사람까지 다치면 카르텔에서 가만두지 않을 게 뻔하니 그렇지.”

“흐음··· 그건 곤란하지.”

도둑질과 강도는 이야기가 다르다.

여기는 카르텔에서 관리하는 곳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증류소를 습격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쩌면 보스가 숨겨 놓은 저금통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를 이야기하자 세타스도 동의했다.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었지만, 카르텔만큼은 피해야만 한다.

도저히 넘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아주 약간이라도 눈 밖에 나거나 재수가 없는 이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게 된다.

실제로 그들이 사는 동네에서도 고가 다리에 목이 매여 걸리거나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이들이 꽤 있었다.

“그러니 조용하게 물건만 챙겨서 가자.”

“오늘따라 뭔가 이상하지 않아?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야.”

“글쎄··· 잘 모르겠어. 찜찜한 기분이 들면 이번에 최대한 많이 가져가고 당분간 잠수타자.”

갑자기 불안한 느낌이 들었던 걸까.

세타스는 차에 걸려 있는 낫을 들고 있는 해골 인형을 바라보며 성호를 그었다.

그 인형의 정체는 산타 무에르테(Santa Muerte)인데 원래는 밤의 숙녀라 불리던 죽음의 성녀였다.

산타 무에르테는 멕시코의 범죄자들이 많이 믿는다. 보통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성공을 기원하거나 죽지 않게 해달라고 비는 일이 많았다. 은근히 멕시코 사람들은 미신을 많이 믿는 편이다.

예를 들어 검은색 나방이 집에 들어오면 누군가 죽는다고 하여 곧장 내쫓았다.

지역 사회에 잘 뿌리내리라는 의미로 자녀들의 탯줄을 나무 아래 묻을 정도다.

그 모든 행동에는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두 사람이었다.

“그럼 슬슬 가볼까?”

하지만 먹고 사는 게 우선이다.

뭔가 불안했으나 증류소에서 테킬라를 훔쳐서 파는 것은 생각보다 꽤 돈이 된다.

이렇게 하루만 고생하면 적어도 남들이 몇 달쯤 일해서 버는 정도의 금액을 벌기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자물쇠 바꿨겠지?”

“네가 조져놨는데 당연하지. 그러니 절단기랑 장비부터 챙겨.”

“오케이!”

둘은 차에서 내려 증류소로 향했다.

입구에 채워진 자물쇠는 상당히 튼튼해 보였지만, 그걸 잘라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다.

총을 손에 쥐고 있었지만,

상대방도 총이 있을 확률이 높다.

혹시 숨어서 자신들을 겨누고 있을 가능성도 있기에 조심해서 움직였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과 달리 증류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 봐. 주차된 차가 없는데 여기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누군가 내려주고 몰고 나갔을 수도 있잖아. 그러니 방심하지 마.”

“알았으니 잔소리 좀 그만해.”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아직 증류소를 다 살핀 것은 아니다.

술을 가져가려면 저장고가 있는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 이 증류소는 술을 병에 담아 놓지 않기에 손이 조금 많이 갔다.

하지만 술맛 하나는 기막히다고 요즘 꽤 유명해지고 있었다.

작업은 그리 어려울 게 없었다.

저장고에서 술을 빼내서 통에 담아 차에 싣고 떠나면 된다. 그걸 거래하는 술집에 가져가면 정상가의 절반쯤 쳐준다.

빈 병에 담아주는 작업까지 하면 더 비싸게 받을 수 있으나 꽤 번거로웠다.

“후레쉬 좀 잘 비춰봐.”

“아무도 없는데 그냥 불 켜고 가져가면 안 될까? 이렇게 언제 작업할 거야?”

“그거 보고 누구라도 오면 어쩌려고? 며칠 내내 여길 지키고 있던 놈들이 근처에 있을 수도 있잖아.”

니에토는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투덜거리면서도 세타스는 그의 말을 따랐다. 지금까지 니에토의 말을 따라서 손해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니에토 덕분에 죽을뻔한 고비도 넘겼었다. 그날 이후부터 세타스는 니에토가 하는 말을 가능하면 따랐다.

죽음 따위가 두렵지는 않으나 개죽음은 사양이었다.

안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커다란 통을 트럭에서 꺼내서 들어왔다.

이제는 가장 숙성이 잘 된 저장고만 찾으면 되었다. 그때 등 뒤에서 뭔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전에 뭔가 움직인 거 같지 않았어?”

“고양이인가 보지.”

“예전에 왔을 때는 그런 거 없었잖아.”

“증류소에서 길고양이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잖아. 어서 저장고나 찾아.”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별거 아니라 여겼으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어디선가 쇠를 긁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그걸 들은 두 남자는 솜털이 바짝 서는 느낌이었다.

“너도 조금 전에 소리 들었지? 이게 고양이가 내는 소리라고?”

“쉿! 조용히 해. 혹시 누가 숨어 있는 건지도 모르니 한 번 더 살펴보자.”

두 사람은 나뉘어서 증류소 내부를 다시 한번 돌아보기로 했다. 니에토 역시 제법 큰 정글도인 마체테를 꺼내서 쥐었다.

이런 짓을 하면서 무기 하나쯤 들고 오는 것은 기본이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뒤져봐도 쥐새끼조차 없었다.

두 사람이 잘못 들은 거라 여기고 돌아서려고 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쿵···쿵··· 쿵.쿵. 쿵쿵쿵!

심장 박동 같은 소리가 났다.

뭔가를 두드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소리의 간격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더구나 한 곳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곧 전등이 켜졌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다시 꺼졌다가 켜지는 것이 반복됐는데 정작 스위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엇보다 소름 돋는 것은 어디선가 아련하게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였다.

“씨벌! 이거 도대체 뭐야? 어떤 새끼인지 몰라도 잡히면 곱게 죽진 못할 거다! 그러니 장난 그만치고 당장 나와!”

세타스가 흥분하며 권총을 이리저리 겨눴고 니에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마체테를 눈높이까지 들고 여차하면 그대로 휘두를 기세였다.

둘은 이 상황이 너무 싫었다.

차라리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는 상황이 닥쳤다면 무서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아무도 없는 곳에 있는 스위치가 혼자 눌러지고 있었다.

달칵거리는 소리마저 공포스러웠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머리 위로 하얀 면사포가 푸른 빛을 내며 불규칙적인 동선으로 날아다녔다.

실내라 바람 따위는 불지 않았고 푸른 빛까지 감돌고 있기에 너무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저거··· 나만 보이는 거 아니지?”

세타스는 고개를 돌리며 물어봤다.

하지만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평소 침착하기로 유명한 니에토마저 넋이 나간 듯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누군가 등 뒤에서 바늘로 콕콕 찌르는 통증마저 느껴졌는데 정작 뒤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지금 이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악마밖에 없었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던 둘은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나갔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는 반응이었다.

이미 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으아아악! 여기 도대체 뭐야?”

*

멕시코에 도착한 뒤부터.

아이레스 개량은 시작되었다.

가능하면 기존에 레오넬이 빚던 테킬라 레시피를 유지할 생각이나 필요하다면 수정하는 것도 염두에 뒀다.

하지만 내 실력으로는 불가능했다.

적어도 모든 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레오넬 할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했다.

더구나 앞으로 이곳을 맡게 될 호르헤도 당분간은 술 빚는 방법에 대해 배워야 하는 입장이었다.

잠시 술을 빚는 걸 도왔다고 술을 빚는 모든 과정을 잘 알고 있지는 않았다.

다행히 레오넬은 수술을 무사히 마친 뒤에 퇴원했고 하루에 두어 시간씩 증류소에 나와서 모든 지식을 알려줬다.

앞으로 가문의 오랜 역사가 담긴 술을 잘 부탁한다는 의미가 담긴 배려였다.

증류소를 팔기는 했으나 호르헤와 호세가 먼 친척이라는 것도 한 몫을 했다.

“여기서 아가베 피냐의 컷팅을 하는 오르네로가 제대로 일했냐에 따라 열을 전달 받는 효율이 바뀔 수 있어.”

호세와 호르헤 그리고 나까지.

우리는 테킬라를 빚는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저번에 멕시코에 왔을 때도 며칠 정도 배우기는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아직 배워야 할 게 산더미 같았다.

피냐를 자르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몇 도의 열을 가해서 몇 시간을 찌어야 아구아미엘이라 불리는 단단한 섬유질이 제대로 나올 수 있는지 알아야 했다.

그걸 으깨서 액을 추출한 후에 효모를 넣고 몇 도의 온도에서 몇 시간을 발효해야 하는 건지도 중요한 요소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저장고의 내부를 얼마나 토스트 하냐는 것이다.

위스키와 마찬가지로 숙성하는 통의 상태에 따라 맛의 차이가 생긴다.

거기서 테킬라의 맛과 향 같은 특성 대부분이 결정된다고 봐도 되었다.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살펴야겠네요.”

“아무래도 테킬라의 풍미는 재료에서 생기는 차이도 있지만, 저장고의 상태와 세팅에서 많이 바뀌게 되지.”

“사장님, 이제 세뇨르도 쉬실 시간이 되었으니 잠시 쉬었다가 하시죠.”

“엇!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시계를 보니 꽤 오래 지났다.

레오넬 할아버지는 괜찮다고 했지만,

우리는 정해진 시간만 조언을 받았다.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고 퇴원한 지 얼마 안 되셨기에 아직 무리하면 안 되었다.

“제가 댁에 모셔다드리고 올게요.”

호르헤가 증류소 근처에 있는 할아버지 집으로 모셔다드리기 위해서 나가자 호세에게 두 명의 직원이 다가왔다.

지금까지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그들은 호세에게 뭔가를 설명했다.

하지만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스페인어가 능숙하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그들은 거의 랩을 하는 것처럼 말하는 속도가 엄청났다.

엄청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몰라도 직원들이 말하는 내용이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호세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상당히 난감해하고 있었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뭔가를 설득하는 것 같았는데 쉽지 않아 보였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호세는 고개를 저으며 직원들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는 손짓을 하고 내게 왔다.

“무슨 일이길래 그래?”

“하아···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일단 가장 중요한 거는 저 두 사람은 여길 그만두고 싶다고 합니다.”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다른 증류소보다 우리가 주는 돈이 아주 많지는 않으나 작다고 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기술자의 경우에는 우리 증류소의 대우가 훨씬 좋았다.

다른 소규모 증류소에서 일하는 것보다 1.5배 정도는 받고 있으니 이곳의 근무 여건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갑자기 왜?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게 뭔데?”

어서 말해보라며 다시 한번 묻자,

호세는 체념을 한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 자체가 부끄럽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녀석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직원들이 한 말을 내게 전달해줬다.

“우리 증류소에 악마가 있다는 소문이 마을에 돌고 있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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