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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43화 (143/254)

스프라이트 컬렉션 (sprite collection) (1)

돈 레오넬(Don Leonel).

앞에 붙여진 Don은 존칭이다.

잘 생각하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우리는 다양한 경로로 그 호칭을 접한 적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돈키호테다.

한 마디로 레오넬에 대한 경의이자 그의 가문이 지니고 있는 150년 역사를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의미도 있다.

현재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마케팅 포인트가 역사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레오넬은 흔쾌히 승낙해줬다.

자신과 가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흡족한 표정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역사에 작은 흔적이라도 남기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걸로 나는 멕시코에서 이루고자 했던 대부분을 이뤘기에 귀국을 서둘렀다.

테킬라의 개량은 거의 끝난 상태다.

추가로 숙성하면 더 좋아지면 좋아졌지 나빠질 가능성은 없었다.

당연히 돌아오는 길은 호세도 함께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필 크리스마스 직전이라 귀국하는 비행기표를 구하는 것은 꽤 힘들었고 가격도 비쌌다.

하지만 어떻게든 국내에 들어와서 연말을 보내고 싶었기에 어쩔 수 없이 비싼 돈을 주고 살 수밖에 없었다.

“쓰으읍! 역시 저는 한국이 좋아요.”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

호세는 숨을 크게 쉬며 기뻐했다.

거의 4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터라 감회가 새로운 것 같았다.

하여간 이 녀석도 조금 독특했다.

“오늘 미세 먼지 장난 아니라던데?”

“이 정도면 양호한 거죠. 예전에 멕시코 시티 공기는 이보다 나빴다고 들었어요.”

호세는 거의 40년 전에 멕시코 시티에서 수천 마리의 새가 대기오염으로 죽었던 일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것도 옛말이지. 요즘은 오히려 멕시코 시티가 더 양호한 것 같더라.”

“규제가 장난 아니었거든요.”

“공항버스 타려면 2시간쯤 시간이 남는데 뭐라도 먹고 갈까?”

“좋죠! 제대로 된 한식 먹고 싶어요.”

호세는 벌써 입에 침이 고이는지 꿀꺽 삼킨 뒤에 서둘러 주변을 둘러봤다.

한동안 고민한 끝에 녀석이 선택한 것은 한식이 아닌 중식이었다. 짬뽕에 꽂힌 탓이었는데 나도 그 선택에 동의했다.

“오저당에서 일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 짬뽕이나 짜장 같은 배달 음식을 먹기 어렵다는 거예요.”

“아! 너 없는 사이에 음식 해주시는 분들 고용돼서 이제는 직접 만들어주셔.”

“짜장면도 가능한 거예요?”

“한식부터 중식 그리고 일식도 가능해. 나 출국하기 전에 탕수육도 튀겨주셨지.”

호세는 그 이야기를 듣고 꽤 반겼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오저당의 직원이 열 명 가까이 늘었다니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절반쯤이나 된다며 난감해했다.

“고작 4개월도 안 되는 사이에 직원이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나니 무서워서 오래 못 나가 있겠네요.”

“멕시코 지사도 열 명이나 고용했으니 여기 사람들도 같은 심정일 거야.”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오저당이라 직원인 제가 다 뿌듯합니다.”

“내년도 올해 못지않을 거야.”

내년에 거는 기대는 상당했다.

새로운 제품 출시가 예정된 탓이다.

소담과 벽향주 퍼플 라벨 그리고 테킬라.

이렇게 세 가지만 추가되어도 많은 것이 달라질 거라 여겨졌다. 당연히 매출이나 수출량의 단위도 바뀔 것이다.

“저는 계속 오풍주 담당하면 되죠?”

“물론이지. 아마 예전보다 더 열심히 빚어야 할 거야.”

국내에서는 만찬주로 지정된 벽향주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있으나 해외는 오히려 오풍주가 주도 중이다.

KR 마트를 통해 납품되고 있는 수량은 나날이 늘어 어느덧 매달 4만 병 이상을 가져가고 있었다.

“상당히 많이 늘었네요.”

호세는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벽향주가 부진한 것은 아니다.

벽향주는 KR 마트가 아니라 바크모에서 주로 판매됐다. 거기에 끌루소까지 합치면 벽향주도 성장세가 상당했다.

올해 4/4분기의 경우.

수출로 얻은 매출만 25억 원이다.

미국에 수출하기 시작한 것이 반년도 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꽤 의미있는 성과였다.

이 기세만 계속 유지된다면 내년에는 수출만으로 연 매출 150억은 찍을 거다.

정말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가 그 정도지 빠르게 해외 매출이 올라가는 중이라 잘하면 250억 이상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게 공항에서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태백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몇 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한 그곳에는 황동선 이사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존까지는 수호가 해주던 일이었으나 요즘 워낙 바빠서 그가 나온 것 같았다.

“이쪽은 오저당에 합류한 황동선 이사님이시고 이 친구가 호세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사님.”

“이야기 듣던 대로 한국어를 상당히 잘하시네요.”

“멕시코에 몇 개월 있다보니 그사이에 꽤 많이 까먹었어요.”

“하하! 고생 많으셨습니다. 곧장 오저당으로 들어가실 거죠?”

나는 아니라며 고개 저었다.

그 전에 은행부터 들려야 했다.

시계를 보니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서둘러 움직여서 은행부터 다녀온 나는 황동선 이사가 운전하는 허머를 타고 45일 만에 오저당으로 복귀했다.

그 사이 오저당은 꽤 바뀌었다.

공사 중이던 창고는 이제 뼈대가 세워져 있었고 어두워지기 시작한 오저당 입구 주변에는 수많은 전구가 반짝였다.

심지어 사무실로 쓰는 공간 앞에는 크리스마스트리까지 세워져 있었다.

“다들 벽향주 때문에 바쁘다고 들었는데 이런 거는 또 언제 만든 건가요?”

“저는 주말에 자느라 바쁜데 직원들은 아직 젊어서 그런지 낭만이 살아 있더군요. 그래도 보기 좋지 않습니까?”

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에 눈이 온 탓에 온 세상은 하얗게 변해 있었고 반짝이는 전구들을 보니 연말 분위기가 제대로 나고 있었다.

그런 탓인지 몰라도 도시의 네온사인이 그립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황 이사가 허머를 주차하자.

짐을 챙겨서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라니와 직원들이 긴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호세와 나를 격하게 반겨줬다.

“어머! 호세, 너 그 수염 뭐야?”

“하하. 정말 안 어울려요.”

“이제라도 네가 돌아와서 다행이다.”

라니와 여직원들은 웃음바다가 됐고 수호도 열렬하게 녀석을 반기고 있었다.

지금까지 호세를 대신해 오풍주까지 맡고 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제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수호는 호세가 멕시코에 있는 사이에 새로 입사한 직원들 소개부터 해주었다.

“다들 처음 보는 거는 아니시죠?”

“그럼요. 저번에 삼척에서 시음 행사할 때 이 두 분은 몇 번 뵈었죠.”

“반갑습니다. 멕시코에 계시는 동안 오저당으로 합류한 심태섭 대리입니다.”

“류미진 대리입니다.”

그렇게 잠시 인사를 나누는 동안.

나는 황 이사님을 통해 오저당의 모든 직원을 사무실로 모이라고 지시했다.

이제 곧 퇴근 시간이라 일을 마무리하고 오라고 했기에 모이는 데 시간이 걸렸다.

6시가 다 되어갈 무렵.

마침내 직원들 모두가 모였다.

우선 나는 그간 나 없이 바쁜 시기를 보낸 것에 대한 감사 인사부터 했다.

하지만 그리 길게 할 필요는 없었다.

괜히 말만 길어져봤자 서로 피곤했다.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서 승진 대상자에 대한 발표를 했다.

“오늘부로 유수호 실장은 이사 자리로 올라가고 호세는 실장으로 승진하니 다들 축하 부탁드립니다.”

깜짝 발표였던 탓일까.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수호가 이사가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호세의 파격적인 승진은 본인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제가 실장이요?”

“싫으면 대리 자리로 줄까?”

“아닙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대리로 승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오풍주 생산을 책임지고 있는데 벽향주를 빚는 조택훈 공장장이나 수호에 비해 너무 직책이 낮다는 조언이 있었다.

예전에 수호의 이사 승진을 논의할 무렵에 황동선 이사가 해준 말이었다.

나름 일리가 있는 것이 우리 오저당의 한 축인 오풍주를 빚는 책임자인데 그만큼의 자리를 주는 것이 맞기는 했다.

더구나 이번에 세운 공이 적지 않았다.

호세가 없었다면 멕시코에서 테킬라 사업을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모든 것들을 고려한 결과가 실장의 자리였다.

오저당의 체계도 그로써 바뀌었다.

두 명의 이사가 각각 생산직과 사무직을 관리하게 할 생각이었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조택훈 공장장이 수호 아래로 들어가는 것인데 불만은 없어 보였다.

나이나 경력 모두가 수호보다 많으나 오저당에 기여한 바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이기 때문이었다. 현실을 직시하자면 공장장은 바뀌어도 수호는 바뀔 수 없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유 이사님! 한 턱 크게 쏘셔야겠어요.”

“당연하지. 다들 기대해도 좋아.”

“와아아. 대범한데? 스물다섯 명이 한우를 먹으면 과연 얼마나 나올까?”

“그건 좀 아니지 않냐?”

라니의 한우 사랑을 잘 알고 있기에 수호는 사색이 되었다. 한 번 먹으면 몇 인분 정도는 쉽게 끝내는 라니였다.

그 모습을 보고 다들 웃느라 정신이 없을 사이에 나는 봉투를 꺼냈다.

그러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조용해졌다.

다들 반짝이는 눈빛으로 내 손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꽤 부담될 정도였다.

혹시나 실망하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하지만 막상 나눠준 봉투를 열어본 직원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몇 달 치의 월급과 맞먹는 금액이 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박! 정말 이거 성과급 맞아요?”

*

폭풍 같았던 12월 23일이 지난 뒤.

크리스마스이브가 마침 토요일이라 생각보다 많은 성과급을 받은 직원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휴일을 즐겼다.

일부 직원은 멀리 떨어진 집으로 갔고 다수의 직원들은 쌍둥이와 함께 태백에 있는 보육원에 선물을 주러 갔다.

그 덕분에 오저당은 모처럼 한적했다.

당연히 어디 가지 않고 남은 이들도 있었는데 그중에 라니도 있었다.

원래는 보육원에 함께 가려 했던 그녀가 남은 이유는 마음이 급해졌기 때문이다.

“이걸로 과연 괜찮은 걸까?”

텅 빈 사무실에 앉은 라니는 한숨을 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가 보고 있는 화면에는 소담의 제품 디자인이 있었다.

긴 시간 고민해서 만든 것이나 벽향주 때와 달리 확신이 들지 않았다.

뭔가 애매한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이대로 진행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크게 확 와닿는 것도 없었다.

뭔가 대충해서 넘기는 느낌이라 양심상 내놓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미국에서 일을 했을 때라면,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진 않았겠지.

일단 최선을 다해 결과물을 내밀면 위에서 알아서 판단을 해주었다.

그러나 오저당에서는 그런 안전장치가 없었다.

“제품 하나를 내놓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정성을 뻔히 아는데 이대로 가는 거는 조금 아니지.”

하지만 쉽게 포기하기 어려웠다.

이제는 슬슬 작업을 끝내야 하는 시기다.

벽향주의 리뉴얼을 끝낸 게 벌써 반년 전의 일이다. 소담이라는 이름이 정해진 것도 4개월쯤 되었기에 마음이 급했다.

벌써 다음에 진행할 업무도 생겼다.

돈 레오넬로 이름이 바뀐 아이레스의 개량이 생각보다 일찍 끝났기 때문이다.

물론, 핑계가 아예 없진 않았다.

브루클린 박람회도 다녀왔고 중간에 판촉물 디자인도 그녀가 맡아서 했다.

홍보 부서가 생긴 후로는 디자이너로서 업무 지원도 꽤 많이 해주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디자이너를 한 명 더 쓰라고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따져 보면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애매하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했다. 그때 사장놈 아니··· 주도찬의 전화가 왔다.

[혼자 있으면 안 심심하냐? 지금이라도 와서 같이 저녁 먹어.]

“됐거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크리스마스에도 일 시키는 나쁜 놈 만들지는 말아줘.]

“시끄럽고, 왜 전화한 거야?”

[아! 너 지금 사무실이라고 했지? 내 책상 위에 명함 하나만 찾아줘. 연락해줘야 하는 일이 있는데 내가 저장을 안 해놨더라.]

라니는 알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곧 명함을 찾아서 사진을 찍어 문자로 보내줬다. 그런 뒤에 전화를 끊었는데 라니의 시선을 끄는 게 있었다.

책상 위에 있는 그림이었다.

액자에 넣어진 그 그림은 주도찬이 직접 그린 것 같았다. 실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으나 제법 잘 그렸다.

디자이너인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아서 그런지 재능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에도 둘은 종종 나란히 앉아서 그림을 그렸기에 그 실력은 누구보다 잘 아는 라니였다.

하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그림 속의 피사체의 독특함이었다. 3등신의 형체를 가진 두 명이 있었는데 날개가 달린 것으로 보니 요정을 그린 것 같았다.

거기까지는 특별한 것이 없었는데 복장이 워낙 독특했다.

사극에서 보았던 용포를 입은 요정.

그리고 멕시코 특유의 복장을 한 요정.

그걸 보는 순간에 라니는 뭔가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무한한 영감이 샘솟는 귀한 경험이었다.

“이거 괜찮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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