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49화 (149/254)

테킬라 웨이브 (4)

할리우드의 여배우 구지노.

그녀는 요즘 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할리우드의 신성과 같은 존재였다.

세계적인 인기까지는 아니었으나 작년에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덕분에 각종 독립 영화제에서 수상했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처음으로 할리우드의 대세라 할 수 있는 안토니오가 주최하는 파티에 초대되었다. 긴 시간 무명 배우에 불과하던 그녀가 그토록 꿈꾸던 순간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의미 없어 보였다.

너무 큰 것을 기대했던 걸까.

엄청난 스타들이 참석한 파티였으나 오로지 하룻밤 잠자리를 위해 농밀한 시선을 보내는 남자들만 가득했다.

하지만 아직 실망하긴 일렀다.

그녀가 오매불망 기다리는 이가 있었다.

무명 시절에 구지노가 가장 존경하던 감독님이 곧 이곳으로 온다고 들었다.

파티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 그녀가 여길 온 것도 그를 만나 눈도장을 찍기 위한 것이었다. 당연히 차기작에 캐스팅이 되기 위한 노력이었다.

구지노는 그의 작품에 출연할 수 있다면 단역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돈과 인기 모두 어느 정도 얻었으니 꼭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아··· 목이 타네.”

알게 모르게 긴장했던 것일까.

구지노는 목이 칼칼해져서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부스 형태로 만들어 놓은 바였다.

파티에 바텐더와 술이 있다는 게 이상한 것은 아니나 부스 위에 파스텔 톤으로 반짝이는 글자가 눈길을 끌었다.

[OGD Cocktail, Korea]

한국은 그녀가 기다리는 감독님의 국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스타가 되기 전에 두 차례나 한국을 여행했다.

그때 쌓은 기억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뭐에 홀린 듯이 그녀는 그쪽으로 향했다.

부스 안에는 배우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동양의 여인과 야수처럼 튼튼한 근육을 가진 남성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 주변은 한가했다.

한국의 술로 만드는 칵테일이라 조금 낯설어서 그런 건가. 구지노는 오히려 그런 한적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부스 앞으로 다가간 그녀는 혹시 주문이 되나 먼저 확인했다.

“한 잔 부탁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어떤 걸로 드릴까요?”

유나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아름다운 바텐더는 상냥하게 그녀를 맞아줬다.

어떤 칵테일이 가능한지 몰라 구지노는 그녀에게 추천을 부탁했다.

“가볍게 마실 수 있는 걸로 부탁해요.”

“저라면 일단 가벼운 글래시어 칵테일을 권하고 싶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칵테일이네요.”

그러자 그녀는 한국 전통주인 벽향주라 불리는 술을 베이스로 만든 거라 설명해줬다. 구지노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잠시 후에 청량한 블루 색상의 칵테일이 나왔다.

“오옷! 이거 정말 맛있네요.”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이거 다 마시고 다른 칵테일로 하나 더 부탁해도 되나요?”

“물론이죠.”

그녀는 마음이 포근해지는 미소를 지어준 뒤에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적절하게 말을 걸어주었다.

능숙하게 일하는 모습은 프로다웠고 또 은근히 두 사람은 말이 잘 통했다.

한동안 열심히 칵테일을 만들던 그녀는 몇 개의 잔을 채운 뒤에 서버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남자 직원이 다가와 칵테일이 올라가 있는 트레이를 들었다.

본격적으로 술이 나가기 시작하자 부스 내부는 꽤 숨 바쁘게 돌아갔다. 그때 턱시도를 입은 한 남자가 다가왔다.

처음에는 작업을 걸려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 남자는 자신의 외모보다는 칵테일에 더 관심이 많았다.

“칵테일은 입맛에 맞으시나요?”

*

파티 장소에 마련된 부스.

그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불과 며칠도 안 되는 사이에 그런 것까지 마련해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기존에 들어오기로 했던 업체의 부스에 네온사인만 얹은 거라고 해도 갑자기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시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게 한 번에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처음 한 시간은 멍하니 기다려야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조금씩 바뀌었다.

음악 소리는 조금 더 커졌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그때쯤이 되자 서버들의 이동 속도도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기에 유나 누나와 수호도 본격적으로 칵테일을 만들었다.

그리고 부스에도 손님이 찾아왔다.

“이제 우리도 슬슬 움직여야지.”

카를로스는 내 등을 떠밀었다.

어서 가서 말을 붙여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는 나와 같이 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저 혼자 가라고요?”

“나는 안쪽으로 한 차례 돌아야지. 거기가 진짜들이 있는 장소라 중요하거든. 여자를 보면 낯 가리는 너드 같은 성격은 아니지?”

“그럴 리가요.”

“그럼 어서 가봐. 한 가지 팁을 주자면 저 친구 요즘 감독들이 꽤 눈여겨보고 있는 신인 배우야.”

그는 한 차례 짓궂게 웃은 뒤.

돈 레오넬과 잔을 든 서버와 함께 저택의 안쪽으로 향했다.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자 언제 또 그걸 들었는지 유나 누나가 눈짓을 했다.

어서 와서 말을 걸라는 의미였다.

오늘 이 자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카를로스는 셀럽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내게 몇 번이나 강조했다.

할리우드에서 파티가 열릴 때마다.

카를로스는 자신의 테킬라 브랜드를 공짜로 엄청나게 뿌리며 그들을 통해 가치를 상승시키는 방식을 선호했다.

확실히 그만큼 효과가 있었다.

정식으로 광고를 하기에는 부담되니 이쪽이 훨씬 가성비가 좋은 편이다.

스타들이 파티를 즐기는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릴 때 배경에 술병만 나와도 매출이 유의미하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저으며 나는 부스 앞에 기대어 술을 마시고 있는 여배우에게 다가섰다. 옆에서 유나 누나와 수호가 힘내라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모습은 애써 모른 척해야만 했다.

“칵테일은 입맛에 맞으시나요?”

“바텐더분이 실력이 좋은 건지 아니면 술이 원래 맛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제 생각에는 둘 다 맞을 겁니다.”

“혹시 여기 직원이신가요?”

“하하. 눈치채셨나요. 직원은 아니고 오너입니다.”

나는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건냈다.

거기에는 영문으로 주도찬이란 이름과 함께 CEO라 적혀 있었다.

“오너치고는 너무 젊어 보이시네요.”

“작년에 돌아가신 친척에게 물려받은 거라 그렇게 됐습니다.”

“어머, 죄송해요.”

“천만에요. 지금 마시고 계신 칵테일은 여기 바텐더가 개발한 거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안 되는 술입니다.”

“제가 운이 좋은 거네요?”

나는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해줬다.

그때부터는 가벼운 가쉽 수준의 대화를 했는데 생각보다 구지노는 한국의 영화 산업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어반 스카이에 매일 출근하던 서인국 감독님도 알고 있을 정도였다.

“어! 서 감독님은 저희 삼촌 가게의 단골이신데 그분은 어떻게 아세요?”

“데뷔작을 너무 재미있게 봐서 기억하고 있는 감독님인데 얼마 전에 넷플러스에서 영화 개봉 예고편 떴잖아요.”

“그게 벌써 개봉해요?”

아니지, 벌써라 하긴 어렵다.

그게 어느덧 거의 2년 전의 일이다.

한 편의 영화를 찍고도 남을 시간이다.

거기에 출연하는 배수인 배우 덕분에 우리가 초반에 큰 도움을 받은 터라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저랑 같이 사진 한 장 찍으실래요?”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네요.”

“혹시 SNS에 올려도 되나요?”

“저희 오저당의 술도 잘 보이게 찍어주시면 흔쾌히 승낙하겠습니다.”

반쯤 농담을 섞어서 말하자,

그녀는 알겠다며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우리 부스를 배경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그녀는 곧장 자신의 별스타그램에 그걸 올려줬다.

하지만 그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갑자기 돈 레오넬과 칵테일을 마시고 싶다고 오는 이들의 숫자가 대폭 늘었다.

안에서 카를로스가 무슨 일을 벌인 건지 알 수 없으나 좋은 신호였다.

“저도 들어가서 일을 해야 할 것 같네요.”

“칵테일도 만들 줄 알아요?”

“그럼요. 그런 의미에서 새롭게 런칭한 테킬라로 칵테일 만들어드릴까요?”

“호호, 그거 좋죠.”

나는 구지노에게 양해를 구한 뒤.

겉옷을 벗고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봐도 수호와 누나 둘이서 해결할 수 있는 인파가 아니었다. 그러자 누나는 능숙하게 각자 해야 할 일을 정해줬다.

“수호는 스트레이트랑 온더록스 담당하고 내가 테킬라 칵테일 만들 테니 도찬이 너는 옆에서 글래시어 만들어줘.”

“저기 구지노 씨한테 마타도르 한 잔 만들어드리고 시작할게요.”

“저분 번호 따냈어?”

수호의 질문에 고개를 젓자,

둘은 묘한 눈빛을 보내며 혀를 찼다.

왜 기회를 줘도 못 잡냐고 타박하자 그제야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었다.

“너는 다른 일은 똑 부러지게 잘 하면서 이런 거는 숙맥처럼 구냐. 누가 봐도 너한테 관심이 있어 보이잖아.”

“아무래도 오저당에서 계속 일하면 저놈 때문에 노총각으로 죽을 것 같아요.”

“응, 내 생각도 그래.”

“여기 놀러 왔나요. 다들 일합시다.”

웃고 떠드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자 조금 뒤늦게 카를로스가 나타났다. 그는 나까지 부스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이거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반응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저는 괜찮은데 술이 부족할 것 같아요.”

“돈 레오넬은 더 구할 수도 없잖아.”

“일단 벽향주라도 확보해 주실 수 있나요?”

카를로스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LA에 있는 바크모 매장만 네 곳이기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걸로도 부족하면 직원을 시켜서 KR 마트에서 쓸어오면 된다.

“안쪽 반응은 어땠어요?”

“다들 만족했으니 이런 반응이 나온 거지. 그리고 돈 레오넬에 투자할 수 없냐고 묻는 사람들도 꽤 많이 있었어.”

“아무래도 몇 년 전에 조 단위로 팔린 테킬라 브랜드 때문이겠죠?”

내 질문에 카를로스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꼭 그것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요즘 할리우드 트렌드가 와이너리를 수집하는 것이라나.

마돈나의 와이너리.

디카프리오의 샴페인 사업.

그 외에도 브래드 피트와 제시카 파커도 이쪽 시장에 들어와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괜찮은 증류소만 보이면 일단 돈뭉치부터 들이미는 것이 요즘 할리우드의 트렌드처럼 되어 버렸다.

당연히 나는 수백억을 준다고 하더라도 절대 팔 생각이 없었다.

황금 거위의 배를 갈라봤자,

똥 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요정의 효과 덕분에 다른 증류소보다 순수익 비율이 훨씬 높은 편인데 그걸 남에게 줄 생각은 없었다.

“얼마를 준다고 하더라도 팔지 않을 거니 그런 사람이 있으면 꿈 깨라고 해주세요.”

“당연하지. 지금 팔면 무조건 손해야.”

“나중이라고 달라질 거는 없어요.”

레오넬 할아버지에게 약속한 것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으나 내 개인적인 성향과도 맞지 않았다.

나는 내 물건을 중고로 누군가에게 파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성격이다.

일종의 소유욕이라고 봐도 된다.

그건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는 것 같았다.

일단 나와 함께 일한 이들은 가능하면 오랫동안 같이 하기를 바랐다.

당연히 그중에는 수호와 유나 누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음 달에 바크모에서 런칭하는 테킬라 돈 레오넬입니다. 오직 바크모에서만 구할 수 있습니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카를로스는 칵테일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적극적인 테킬라 홍보를 시작했다.

열정을 다해서 움직이는 것을 보면 왜 그가 성공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모두들 노력한 덕분에 그날 우리는 수많은 스타에게 우리 술을 선보일 수 있었고 많은 이들과 인증샷을 남겼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다음 날 오전부터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파급력은 상당했다.

그날 밤 파티에 참석한 이들 중의 일부는 카를로스의 부탁을 받아 돈 레오넬을 홍보하는 내용을 짧게나마 올려주었다.

그중에는 나와 함께 사진 찍은 구지노의 것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애타게 기다리던 공 감독님과 찍은 사진도 보였다.

당연히 나도 감독님과 인증샷을 찍고 사인까지 받았는데 다른 할리우드 스타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 결과, 수많은 전화가 쏟아졌다.

다른 파티에 돈 레오넬과 벽향주를 제공해줄 수 있냐는 문의 외에도 DM을 통해 구매 문의가 계속 들어왔다.

하지만 그건 돈 레오넬의 돌풍을 예고하는 시작점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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