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51화 (151/254)

버번의 흔적 (1)

구지노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요즘 세대답게 SNS로 자신을 홍보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어 보였다.

더구나 한국 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이는 것에 대해 꽤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곧장 답을 주진 못했다.

그녀에게도 에이전시가 있기 때문에 그들과 상의해야만 한다고 했다.

더구나 출연료가 없는 형태라 크게 기대하진 말라고 내게 양해를 구했다.

“저 혼자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에요.”

아무래도 에이전시는 돈이 될만한 스케줄을 더 우선시할 수밖에 없겠지.

나도 이걸 반드시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라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갑자기 생각난 아이디어를 말한 것에 불과하니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저는 해보고 싶어요. 그러니 적극적으로 한 번 밀어볼게요. 어차피 차기작 들어가기 전에 시간 많거든요.”

대신 그녀는 조건을 하나 내걸었다.

자신이 만약 오저당의 채널에 출연하면 안내하는 역할로 나도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유나 누나와 수호가 먼저 대답을 했다.

“당연하죠.”

“그 정도 조건은 문제없어요.”

“내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는 거야?”

“응, 싫어도 해야지.”

거절은 거절한다는 듯한 말투였다.

어쩔 수 없이 나도 구지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컸다.

그래서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구지노가 우리 채널에 출연하겠다고 연락을 했다.

에이전시를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했는데 빨라도 너무 빨랐다.

[오저당의 구독자 숫자가 20만 명이 넘어간다니 쉽게 설득이 되던데요. 그리고 몰랐는데 제가 출연한 영화가 가을에 한국에서 개봉 예정이랍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가 됐다.

독립 영화인 탓에 흥행에 그리 큰 기대는 할 수 없으나 그래도 홍보할 기회라 여긴 것 같았다. 참고로 현재 오저당의 구독자 수는 어느덧 23만 명이 되었다.

구독자의 숫자는 눈덩이와 흡사했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선 이후부터 늘어나는 속도가 점차 더 빨라졌다.

하지만 그게 운 때문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쌍둥이를 비롯해 출연하는 오저당의 직원 모두가 노력해준 덕분이었다.

일단 구독자가 그 정도 되니 삼척과 태백 등에서 우리 직원들을 알아보는 이들이 제법 많이 있을 정도였다.

더구나 힐링과 술이라는 주제로 시작을 한 덕분에 딱히 자극적인 뭔가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어쨌든, 일을 저지른 것은 나인데 그 수습은 황동선 이사가 하게 생겼다.

[허허! 이제는 할리우드 배우와 협업까지 한다니 믿기지 않네요. 제가 일했던 광고대행사도 작은 곳이 아닌데 경험해보지 못한 스케일이에요.]

“이게 설마 성사될 거라 생각하지 못해서 미리 말씀을 못 드렸어요.”

[괜찮습니다. 구지노 배우님의 방한 일정은 언제쯤인가요?]

“4월 중순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우리랑 보내는 시간은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될 거라 보시면 됩니다.”

남은 시간은 3개월 정도다.

그사이에 어떤 촬영을 할 건지 정리해서 구지노의 매니저에게 보내주기로 했다.

적어도 그 정도의 성의는 보여야 했다.

“매니저 메일을 공유할 테니 협의할 게 있으면 그쪽과 대화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가봐야 할 곳과 한식 그리고 우리 술을 어느 때 넣어야 하는 건지 고민을 해봐야겠네요.]

역시 황 이사는 핵심을 잘 짚었다.

내가 그 부분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는데 쉽게 의도를 알아챘다. 그리고 카메라의 추가 구매까지 언급했다.

[아무래도 앵글이 많을 수록 편집이 잘 되니 마이크랑 장비 예산 뽑아서 전달을 해드리겠습니다.]

“그 부분은 쌍둥이가 잘 아니 의논해 보시길 바랍니다.”

[네, 그런데 이번에 유수호 이사랑 같이 귀국하는 겁니까?]

“오저당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더니 황 이사는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며 다독였다.

이번에 새롭게 뽑고 있는 채용 최종 면접도 있고 스프라이트 컬렉션으로 만드는 판촉물도 픽스해야 했다.

“디자인 픽스는 메일로 보내주시면 검토해서 바로 답변드리겠습니다.”

[그 말은 이번에 같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씀이시죠?]

“글쎄요··· 아마 그럴 것 같아요.”

나도 귀국하고 싶었지만,

현재 테킬라의 런칭이 시급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갑자기 할리우드 파티의 버프를 받아서 하루라도 빨리 시중에 돈 레오넬을 풀어놔야 한다.

일정이 완전히 틀어진 탓에 은근히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았다. 더구나 미국에 우리 직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심양의 지사장인 슈미트와 바크모를 운영하는 카를로스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도 조금 애매했다.

적어도 누군가 일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며 대응을 해줄 필요가 있었다.

현재 오저당에서 이런 업무를 나 대신에 해줄 수 있는 인물은 딱히 없었다.

그래서 슈미트가 탐나는 것이다.

[일단은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런칭하는 과정을 대폭 축소했으니 여기서 보름 정도 더 지켜보고 적어도 설날 전에는 들어가겠습니다.”

[유수호 이사 일정은 그대로인 것 맞죠?]

“네, 수호는 사흘 뒤에 귀국할 예정입니다.”

황 이사는 알겠다며 대답을 한 뒤에 전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생산직 관리도 함께하려니 버거웠던 것 같았다.

호세가 있다고 하더라도 수호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제법 컸을 것이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은 뒤.

뒤를 돌아보자 유나 누나도 통화를 끝냈는지 커피를 양손에 들고 다가왔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커피를 하나 받으면서 어떻게 됐는지 물어봤다.

“삼촌이랑 이야기는 잘 됐어요?”

“이번에 돌아가서 인수인계하고 퇴직하는 걸로 정리됐어.”

“사람이 금방 구해질까요?”

“3호점으로 보내려고 교육받던 바텐더가 메인으로 올라올 것 같아.”

이번에 누나는 퇴직을 결심했다.

예정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작년부터 그만두겠다는 말을 삼촌에게 자주 했기 때문이다.

거의 4년 정도 어반 스카이에서 쉬지 않고 일했으니 지칠 만도 했다.

“그러면 미국으로 넘어오실 건가요?”

“응, 카를로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려고.”

“1년짜리 단기 계약인데 그 이후에는 뭘 하시려고요?”

“어차피 대회에 나가려면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어. 그 이후는 그때 생각하려고.”

앞으로 1년 동안 누나는 할리우드에서 열리는 파티에서 바텐더로 일하며 연말에 있을 바텐더 대회를 준비한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돈 레오넬 등의 테킬라 위주로 칵테일을 만드는 조건으로 주 4회 이상의 일자리를 누나에게 보장했다.

“지철이 형이 알면 놀라겠네요.”

“아니, 어제 말했는데 해외에서 사진 작업을 할 기회라고 오히려 좋아하던데.”

“형도 여기로 오는 거예요?”

내 질문에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랜서가 좋은 점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거라며 웃었다.

요즘 지철이 형은 1년 가까이 진행하던 장기 프로젝트를 끝내고 여행을 다니며 잠시 쉬고 있기는 했다.

“시간 여유가 있다니 형한테 스프라이트 컬렉션 제품 사진 좀 부탁해야겠네요.”

“한국에 있을 때 맘껏 부려 먹어.”

“이제 예술 사진을 찍는 작가님인데 얼마를 드려야 할까요?”

“과연 돈을 받을까?”

“그럼 집을 구할 때 방 하나 더 있는 걸로 구해주세요. 저도 미국에 머무는 시간이 제법 잦아질 것 같거든요.”

누나는 금방 내 말을 알아들었다.

사진 촬영을 해주는 대신에 집을 렌트할 돈의 일부를 부담하겠다는 의미였다.

외주를 맡기면 훨씬 저렴하게 촬영할 수 있을 테지만, 나의 칵테일 스승님이자 친형과 같은 둘에게 주는 선물이다.

“차라리 뉴욕에 구하는 게 좋지 않겠어? LA보다 그쪽에 자주 가잖아.”

“아직 확실한 게 없어서요.”

“나야 뭐 보태준다면 고맙지.”

“대신 RTD 준비하는 거 신경 좀 써주세요.”

누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쯤 되자 화장실을 다녀온 수호가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는 시계를 슬쩍 본 이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서 잤냐? 뭐 이렇게 오래 걸려? 이제 슬슬 들어가야 할 시간이야.”

“비행기 안에서 볼일을 보는 거는 아직 무리야. 뭔가 불안하잖아.”

“늦기 전에 어서 가봐.”

유나 누나는 들어가 보라며 재촉했다.

공항에 여유 있게 도착했으나 아직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진 않은 상태였다.

누나와는 여기서 작별 인사를 해야 했다.

우리는 원래 예정된 일정 그대로 소화하기 위해 켄터키로 갈 예정이었다.

그제야 이별이 실감된 건지 수호의 얼굴에 아쉬운 마음이 그대로 나타났다.

“이렇게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보려나요.”

“심심하면 LA로 놀러 와.”

“이 자식이 절 놔주지 않네요.”

“대신 도찬이가 월급 많이 주잖아. 그러니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해.”

“뉍! 알겠습니다.”

둘은 농담을 주고받은 뒤.

가볍게 악수를 하고 돌아섰다.

나도 누나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에 곧장 출국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 뒤에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4시간 반이나 날아서 켄터키에 도착했다.

이번이 두 번째 비행이라 그런지 수호는 구경보단 잠을 택했는데 왜 누나가 녀석 옆에 앉지 않겠다고 했는지 이해가 됐다.

드넓은 녀석의 어깨는 좌석 너머까지 침범했는데 짓눌린 내 어깨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나마 5시간을 넘기지 않아서 다행이지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였다면 꽤 곤욕을 치를 뻔했다.

“너 다음부터는 내 옆에 앉지 마.”

“뭐래. 나도 불편하거든.”

“일단 숙소로 가자.”

그리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밤에 싸돌아다니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생각이기에 우리는 곧장 우버를 타고 루이빌 시내로 향했다.

[우와아아아! 여기 대박이에요.]

향이는 상기된 표정으로 차창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주변을 둘러봤다. 녀석의 그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수호도 향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녀석도 밖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루이빌은 술의 천국이다.

켄터키 하면 버번이고, 버번은 곧 켄터키라 말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루이빌은 그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버번 스트리트에는 버번을 파는 스토어가 곳곳에 있었고 도심 내에 대형 증류소가 있는 것도 조금 이색적이었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

이 도시는 한때 증류소만 여든아홉 곳이 있었으나 지금은 고작 네 곳만 남았다.

한참 호황을 누리던 시기에 13년 동안 금주법이 시행된 탓이다. 내 이야기를 들은 수호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네.”

“그 당시 증류소 중에 이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은 한 곳에 불과해.”

“우리도 그곳처럼 백 년 이상 이름을 남겼으면 좋겠다.”

“선생님이랑 작은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시절까지 합치면 우리도 짧진 않아.”

“그런데 저기 바닥에 왜 야구 방망이가 꽂혀있는 거냐?”

수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보도블록에 꽂힌 배트 동상이 보였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서 수호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루이빌은 예전에 아버지와 로드 트립을 하며 들린 적이 있었다. 그때 가이드를 통해 들은 이야기였다.

“루이빌에서 유명한 게 버번만은 아니거든. 프로 야구에서 쓰는 유명한 방망이 브랜드도 여기에 있고 무하마드 알리의 고향이기도 하지.”

“나는 야구 안 봐서 잘 모르겠는데 무하마드 알리는 들어봤어.”

그쯤에서 차가 호텔 앞에 멈췄다.

이번에 머무는 호텔은 제법 좋은 곳인데 체크인을 한 뒤에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는 향이 때문이라도 방을 수호와 함께 쓸 수 없었다.

온종일 수호와 함께 있으니 향이 혼자 떠들고 대화라는 걸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향이의 투정이 장난 아니었다.

그나마 수호가 영어에 자신감이 붙은 상태라 혼자 있어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일단 따듯한 물로 샤워부터 한 뒤.

저녁을 먹기 위해 나갈 준비를 하자.

스마트폰에서 요란하게 벨 소리가 났다.

수호가 어서 나오라고 전화한 건 줄 알았는데 액정에 찍힌 번호는 호르헤의 것이었다.

미국에 있으니 시차가 거의 없다는 것 하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전화를 받자 그는 돈 레오넬에 대한 보고를 했다.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던 소식이었다.

[방금 돈 레오넬을 실은 마지막 화물차가 만사니오 항구로 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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