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62화 (162/254)

꿩 대신 닭 (2)

새로 지은 3층 창고의 1층.

그곳은 벌써 여름처럼 느껴졌다.

증류기가 설치된 탓에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생각보다 뜨거웠다.

증류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무턱대고 온도를 올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증류를 시작하면서 나오는 알코올은 세 개의 분류로 나뉜다.

처음 나오는 초류(Head).

제품으로 사용되는 본류 (Body)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는 후류(Tail).

증류소에 따라 초류는 Foreshot 같은 단어로도 부르는데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초류부터 후류까지의 커팅.

증류에서는 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얼마만큼의 초류를 빼고 후류를 남기냐에 따라 술맛은 큰 변화를 보인다.

위스키를 생산하는 증류소에서는 보통 약 5퍼센트 정도의 초류는 잘라낸다.

아깝다고 여기면 안 되는 이유가 초류 안에 들어있는 유해 성분 때문이다.

메탄올과 아세톤.

대표적인 것이 이 두 가지다.

금주법 시대에 상당수의 사람들이 눈이 멀고 사망했던 이유가 메탄올이 가득한 초류를 판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 숨은 아세톤과 같은 성분을 제거해야 다음 날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숙취가 그나마 줄어들 게 된다.

윤가람 과장은 테스트 과정에서 초류를 평균적인 수준으로 잡았다.

“적어도 1차 증류에서 5%의 초류는 잘라내야 할 것 같아요.”

무난한 수준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고민 없이 정한 수치는 아니었다. 당연히 우리는 제품 출시에 앞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고 있었다.

한 번 테스트를 할 때마다 많은 양의 재료를 소비하고 있으나 아깝진 않았다.

테스트로 만들어진 술은 어차피 우리 직원끼리 나눠서 마시면 된다.

“예전에 소담 소주를 테스트 했을 때는 7%에서 8% 정도가 좋았잖아요.”

“초류를 많이 뺄수록 기존에 정해 놓은 제품 가격보다 높아지니 적절하게 타협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어차피 그 기준은 임의에 불과한 거라 상관없습니다.”

현재 예상 가격은 임원진 회의에서 나온 수치에 불과해서 언제든 바꿀 수 있다.

생산 단가가 높아지면 판매가 역시 변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예정된 가격은 2만 원.

400mL 용량인 것을 고려하면 절대 저렴하다고 말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거기서 천 원 정도 더 올린다고 크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가능한 저렴한 금액으로 파는 것이 오저당의 원칙에 가까웠지만, 전통주가 아닌 탓에 세금 문제도 끼어 있었다.

그러니 퍼플 라벨처럼 완전한 수출용이 아니면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초류를 어느 정도까지 생각하고 계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8%에서 커팅하죠. 그게 다른 것들보다 다음날 숙취도 적은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윤가람 과장은 순순히 내 의견을 받아 들였다. 그 역시 가격 때문에 고민한 것이지 8%가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행히 이제 소담 소주의 테스트도 거의 막바지였다. 아주 미세한 수준의 디테일만 잡아내면 될 뿐이었다.

“이번에 만드는 걸로 최종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할 테니 마지막까지 힘내주십쇼.”

한 차례 격려해준 뒤.

나는 3층으로 곧장 올라갔다.

그곳에는 옹기가 가득 깔려 있었다.

250평이나 되는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수호는 파레트렉을 설치하고 그 위에는 오크통을 올려놨다.

오저당에서 빚는 다른 술은 당장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이곳에 있는 것은 미래를 대비한 먹거리다.

최소 1년에서 길게는 5년 이상.

벽향주를 숙성할 용도의 공간이었다.

당연히 가장 짧은 기간인 1년 숙성은 퍼플 라벨로 팔 용도였고 그 이상은 나중을 위한 저축이라고 보면 된다.

“뭘 그렇게 보고 있냐?”

잠시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자,

수호가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저 오크통은 언제 다 채우나 싶어서.”

“아직 멀었지. 새 오크통이잖아.”

“적어도 반년 정도는 묵혀놔야겠지?”

“그것도 그때 가봐야 알지. 서두르다가 아까운 시간만 허비할 수도 있어.”

수호의 말에 나도 동의했다.

어설프게 벽향주를 담아놨다가 나중에 그 술만 완전히 다른 맛이 나올 수 있다.

그러니 오크통에서 성분이 확실하게 다 빠져나올 때까지는 지켜봐야 했다.

적당한 오크통을 못 구한 탓이다.

과거에 백련 와인에서 오래된 오크통을 구해왔던 것처럼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다시 그런 행운이 찾아오진 않았다.

“OGD 멕시코에서 사용 기한이 거의 끝난 오크통을 보내준다니 다행이지.”

“수량이 얼마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도 없는 것보단 좋잖아.”

오크통은 그대로 옮겨지지 않는다.

분해해서 널빤지 형태로 컨테이너에 싣고 오면 다시 조립을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당연히 우리가 직접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전문 업체에 맡겨야 한다.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과 운송비도 적지 않게 들어가지만, 새 오크통을 쓰는 것보다 그게 훨씬 더 이득인 점이 많았다.

그리고 반드시 확인해봐야 할 것이 있었다.

버번과 테킬라 그리고 벽향주.

이렇게 세 가지의 술은 주종이 다르다.

하지만 하나의 오크통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동일한 술만 담으라는 법은 없다.

그래서 오저당에 소속된 증류소끼리 오크통을 주고 받을 계획이었다.

세상에 없던 개념은 아니다.

버번은 오크통의 재활용을 금지하기 때문에 상당수가 스코틀랜드로 팔려 간다.

‘여기에 스카치 위스키 증류소 하나만 더하면 딱 좋을 텐데···.’

스카치 증류소가 없는 우리는 그걸 테킬라 증류소에서 사용하다가 다시 한국으로 보내는 루트를 고민 중이었다.

하지만 당장 이뤄질 일은 아니다.

아직 버번 증류소 철거도 이뤄지지 않았기에 거기서 사용한 오크통이 한국에 오려면 최소 10년 이상은 걸릴 것이다.

그래도 개념은 잡아 놔야지.

언제 또 어떤 증류소와 양조장이 추가로 오저당의 품으로 들어올지 모른다.

한동안 수호와 함께 3층을 둘러보던 나는 뒤돌아보며 물었다.

“퍼플 라벨은 문제없지?”

“당연하지. 내가 그거 전수 검사하느라 일주일 가까이 정신없었잖아.”

하긴 수호가 다른 것은 몰라도 퍼플 라벨에 대한 애정은 상당한 편이었다.

나중에 아이를 낳아도 그 정도로 살뜰하게 보살필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자존심 문제이기도 했다.

수호는 오저당의 이사이기 이전에 퍼플 라벨의 생산 책임자다. 다른 술을 생산하는 이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만약 실수라도 해서 퍼플 라벨에 문제가 생기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때 뒷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왔다. 액정을 보니 라니의 번호가 찍혀 있었다.

[뫼리스 씨 도착했어. 어디야?]

창밖을 내다보니 택시 한 대가 오저당 앞에 들어와 있었다. 금방 가겠다고 대답하고 수호와 함께 서둘러 내려갔다.

오늘은 거의 1년 만에 뫼리스가 오저당을 다시 방문하는 날이었다.

“이거 직접 얼굴 뵙는 거는 무척 오랜만이군요.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주막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던 뫼리스는 우리를 보고 반가운 얼굴로 악수를 청했다.

“뫼리스 씨 덕분이죠.”

“하하!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저당은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엄청나게 바뀌었군요.”

뫼리스는 신기한 듯 주변을 살폈다.

기존에 그가 왔을 때 숙성 창고가 있기는 했으나 신축된 창고와 정원은 없었다.

“마을 입구에 벽향주 화이트 라벨 공장이 있는데 보셨습니까?”

“아니요. 모르고 그냥 지나쳤네요. 나중에 나가면서 들려야겠군요.”

“그러면 되겠네요.”

우리는 잠시 테이블에 앉아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부터 물었다.

참고로 뫼리스는 지난해 세운 실적을 토대로 그렇게 바라던 승진에 성공했다.

“모두 오저당 덕분입니다.”

“아니요. 뫼리스 씨의 열정이 만든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그동안 오저당 술을 유통하느라 고생하신 거 다 압니다.”

유럽에서 팔리는 벽향주.

그 모든 것은 뫼리스 덕분이다.

그가 열심히 뛰어다녀주었기에 요즘 끌루소에 납품하고 있는 벽향주의 양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늘어났다.

유럽에서 팔리는 양과 미국까지 합치면 국내 시장의 판매량과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을 수준까지 올라왔다.

거기까지 도달하는데 뫼리스의 역할이 작다고 할 수는 없었다.

“요즘 끌루소에 한국 전통주가 종종 보이던데 그것도 뫼리스 씨의 작품이죠?”

“오저당 덕분에 유럽으로 오는 컨테이너 숫자가 많아져서 중소 규모 양조장의 술을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거든요.”

“앞으로 저희도 많이 노력해야겠군요.”

우리나라의 술이 해외에서 판매량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었다.

언젠가 우리가 와인과 위스키를 마시듯 다른 나라 사람들이 소주와 막걸리를 친숙하게 접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내 제안에 뫼리스는 동의했다.

우리가 향한 곳은 숙성 창고였다.

오늘 이 자리까지 그가 직접 온 것은 끌루소에서 작년에 선주문을 한 퍼플 라벨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끌루소는 주문한 이후에 어떤 터치도 없었다. 그저 안부를 묻듯 가끔 상황만 체크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어차피 주문한 술에 문제가 생기면 국제 소송으로 본전 이상을 뽑아갈 테니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뫼리스는 조금 달랐다.

그는 마침 한국에 출장오는 스케줄을 살짝 조절해서 오저당까지 직접 왔다.

이번 거래가 그만큼 그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몇 개만 확인해봐도 될까요?”

나는 흔쾌히 그 부탁을 들어줬다.

품질 확인을 위한 옹기의 선택은 우리가 아닌 뫼리스에게 맡겼다. 그는 랜덤으로 몇 개의 옹기를 지목해서 샘플을 떠왔다.

“오··· 예전에 샘플로 주셨던 것보다 지금 상태가 훨씬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느껴지신다니 다행이네요.”

“지금 이 정도면 충분히 유럽에서도 먹히고도 남을 겁니다.”

뫼리스는 자신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당장 병입해도 문제 될 것이 없겠다며 웃었다. 하지만 정해진 일정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정확하게 1년은 채워야죠.”

“하하! 알겠습니다. 혹시 오풍주 생산 라인에 멸균 설비를 들여놓을 계획은 아직 없나요?”

아마도 KR 마트를 통해 미국에서 나날이 판매량이 성장하고 있는 오풍주를 보니 아쉬웠던 것 같았다. 멸균 설비 정도는 당장이라도 들여놓을 수 있다.

유통기한만 늘려도 오풍주의 판매량은 확실하게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일단 설비부터 준비하고 맛을 개선하는 방법도 있으나 지금의 맛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구나 막걸리에서 유산균 등이 없다면 그게 진짜 막걸리라 하기도 애매했다.

그나마 중급 요정의 효과를 받아 미국에 수출하는 것으로 만족할 생각이었다.

“전혀요. 저번에 말씀드렸듯이 오풍주는 생막걸리가 아니면 의미가 없습니다.”

“안타깝네요. 유럽에서도 미국 못지않은 매출을 올릴 자신이 있는데요. 혹시 돈 레오넬을 유럽에 파실 계획은 있나요?”

진짜 본론은 이거였구나.

돈 레오넬이 목적인 것 같았다.

하긴 작년에 그가 한국에 온 것도 쿠바로 가는 길에 잠시 들린 거라고 했다.

평소에 이야기를 들어봐도 중미 지역에 대한 술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대답은 해주기 어려웠다.

카를로스가 자신의 증류소에서 확보한 아가베를 내주며 생산량을 끌어올렸는데 그걸 유럽 쪽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아직 생산량이 많지 않아서 당분간은 공급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요즘 미국에서도 없어서 못 판다고 하더군요.”

“그 대신 다른 술을 추천드려도 될까요?”

“혹시 저번에 말씀하신 소주인가요?”

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뫼리스에게 몇 차례 신상품에 대해 말을 해준 적이 있기에 기억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는 나도 살짝 포지션을 영업 사원 쪽으로 변경했다.

50만 병이나 만들 수 있는 설비를 최대한 활용하려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어느 정도 팔려야 한다.

이미 바크모에 납품하기로 카를로스와 협상까지 마무리했으나 끌루소까지 추가할 수 있으면 든든할 것 같았다.

거기까지 들은 수호는 눈치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가져올게.”

잠시 후에 돌아온 수호의 손에는 소담 소주의 정식 보틀이 쥐어져 있었다.

첫인상이 중요하기에 일부러 보틀을 꺼내서 담아 온 것 같았다.

나는 고맙다는 눈빛을 보내며 현재 오저당에서 빚은 소담 소주 중에 가장 최종 버전에 가까운 그 술을 따라주었다.

그리고는 뫼리스와 첫 만남에서 했던 말을 다시 한번 해줬다.

“일단 드셔보고 이야기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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