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69화 (169/254)

워커 홀릭 (1)

이모티콘을 만들기는 했지만,

큰 기대를 걸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홍보 수단 중의 하나로 여겼다.

하지만 이모티콘을 작업한 라니는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낸 작품 중에 하나기에 소중하게 여겼다. 그건 같이 작업한 고지효 사원도 다르지 않았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그녀는 라니와 함께 방방 뛰며 기뻐했다.

“와아아! 우리가 해냈어요.”

“내가 될 거라고 했잖아!.”

“이 기세를 몰아서 다음 시리즈도 만들어 볼까요?”

확실히 대단한 일이기는 했다.

이모티콘 시장은 생각보다 크다.

1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누적된 매출만 7천억이 넘어갔고 지금까지 스토어에 올라온 것만 30만 개가 넘는다.

하지만 그중에서 성공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참고로 1억 이상 매출을 달성한 것은 겨우 천삼백 개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백억 단위를 넘긴 것은 고작 몇 개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순위권에 오른 것이다.

한두 명이 우리 이모티콘을 보고 구매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너튜브 구독자의 지원 사격도 한 몫을 했겠지.

실제로 이모티콘을 소개한 영상의 댓글만 봐도 대부분 마음에 들어 했다.

“순위권에 들었으니 적어도 억 단위 매출은 넘어서겠죠?”

“물론이지. 그 정도는 가뿐할 거야.”

“그러면 예전에 약속하셨던 성과금은···?”

고지효 사원이 성과금을 언급하자,

둘은 동시에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시간이 다소 촉박하여 잠자는 시간도 쪼개가며 둘이 만든 결과물이었다.

억 단위의 매출이 나오면 성과금을 듬뿍 주겠다고 했던 약속은 당연히 지켜야지.

“이모티콘 매출 금액 확인해서 연말 성과급에 반영할 테니 걱정하지 마.”

그 이야기를 듣자 둘은 동시에 환호성을 질렀고 그 덕분에 이모티콘 소식은 모든 직원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당연히 향이도 그 소식을 듣고 무척 반겼다. 자신의 모습을 본떠서 만든 이모티콘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요정의 존재를 믿어줬으면 좋겠어요.]

아니, 꼭 그래야만 한다.

이 세상에 요정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요정의 존재는 점차 희미해져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인류는 지식을 후세에 전하며 발전하고 있으나 그만큼 망각도 많이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잊혀가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렉싱턴에서 보았던 폐허가 된 수많은 증류소도 그런 것들 중의 하나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이제 슬슬 그곳을 재건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 당장 시작해도 막상 공사에 들어가는 거는 한참 후겠지만···.’

공사비는 지금부터 모으면 된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것들이 제법 많았다. 일단 설계부터 시작하고 폐건물 철거도 미리 선행되어야 한다.

매입한 부지에서 그나마 보수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던 두 채는 최대한 되살려볼 생각이었다. 당연히 그전에 확실한 안전 진단이 필요했다.

문제는 그걸 누구한테 맡기냐는 거다.

내가 아는 이는 연화 건설의 신정배 사장이 유일하다. 그분에게 미국에 가서 증류소를 세워달라고 할 수는 없지.

잠시 기억을 더듬어 내가 아는 사람들을 떠올려 봤으나 마땅한 사람은 없었다.

혹시 몰라서 라니에게도 물어보았다.

“아는 사람 중에 건축 사무소 쪽에서 일하는 사람 있어?”

“연화 건설 있는데 뭘 멀리서 찾아?”

“여기 말고 미국에 있는 증류소 다시 지어야 하잖아.”

“글쎄. 당장 생각나는 사람은 없는데.”

라니는 물론이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연락을 해봤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상당히 폭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두 분인데도 이상하게 건축 쪽과는 인연이 전혀 없으셨다.

[평소에 전화 한 통 없던 녀석이 이 밤 중에 그거 물어보려고 전화한 거야?]

“여기는 대낮인데요. 그리고 벌써 주무실 분들이 아니잖아요.”

[저번에 돈 레오넬 보내줬으니 이번은 그냥 넘겨주마. 벽향주 퍼플 라벨은 언제 보내줄 거니?]

아버지와의 대화는 언제나 이렇게 술로 귀결되는 일이 잦았다. 이런 분이 알코올 중독자가 안 되신 게 신기하단 말이지.

하긴 애주가랑 중독자랑 동급에 놓는 거는 조금 무리이긴 했다.

술을 마시려고 운동하시는 분이다.

더 오래 그리고 더 많은 술을 마시려면 체력이 받쳐줘야 한다는 신념 때문인지 오히려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조만간 미국에 들어갈 거예요. 따로 몇 병 빼서 보내라고 했으니 기다려보세요.”

미국에 보낸 소담이 실린 컨테이너에 벽향주 퍼플 라벨도 같이 실려 있었다.

늦어도 열흘 후에는 화물선이 미국에 도착하니 곧 바크모에 입점될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되물었다.

[응? KR 마트에서는 못 사는 거야?]

“거기는 소담만 들어가요. 아버지도 그 정도 금액대의 소주는 KR 마트에서는 잘 안 사시잖아요.”

[바크모는 뭐가 다른가?]

“소비층이 완전히 다르잖아요.”

마트에서 술을 사는 이들과 전문 주류 체인에 들리는 이들의 성향은 다르다.

한정적인 물량이기에 당연히 바크모에서 파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이렇게 아쉬워하는 이유는 집에서 KR마트가 훨씬 가깝기 때문이다.

바크모까지 가려면 시내에 들어가야 하는데 차도 엄청나게 막힌다.

[다음에 퍼플 라벨 나오는 거는 언제야?]

“적어도 3개월은 더 기다리셔야 해요. 하지만 양도 얼마 안 되고 끌루소가 선점해놔서 미국에 보낼 수는 없어요.”

[그럼 언제쯤 미국에 다시 풀리는데?]

“반년 이상은 걸릴걸요.”

그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만약에 추가 생산량마저 끌루소에서 선점하면 미국에 보낼 퍼플 라벨은 1년 후를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신축 창고가 완공된 후에 3층을 통째로 퍼플 라벨을 숙성 중이라 그때는 지금보다 몇 배나 많은 양이 나올 거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허! 1년이나 기다리라고? 리미티드 에디션이란 말이잖아. 그나마 있을 때 잔뜩 사놔야겠다.]

“저도 없어서 못 마시는 거니 그러시는 게 좋으실 거예요. 더 보내달라고 하셔도 방법이 없어요.”

그걸로 대화는 끝났다.

그런데 내가 왜 전화를 했더라···.

아! 버번 증류소 때문이었지.

잠시 고민한 끝에 이번 일은 페레즈에게 맡기기로 했다. 어차피 OGD USA의 일이니 그게 바람직했다.

시간이 늦었기에 나는 전화가 아닌 메일로 업무 지시를 적어서 보냈다.

거기에는 내가 원하는 조건도 몇 가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에 계약을 마무리한 버번 증류소 설계와 건축을 맡길 업체 리스트를 부탁드립니다.]

*

띠이! 띠! 띠띠띠!

알람 소리가 울리자,

페레즈는 곧장 눈을 떴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몇 시인지 뻔했다.

오전 6시의 세상은 아직 컴컴했으나 그는 침대에서 1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알람은 그저 비상용일 뿐이었다.

이미 깨어나 눈만 감고 있었던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하루를 준비했다.

강박 수준까지는 아니었으나 어릴 때부터 지금껏 이어져 오는 습관이었다.

그가 사용하는 아파트만 봐도 그의 성격이 어떤지 금방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집안에 불필요한 것은 전혀 없었다.

가구조차 꼭 필요한 것만 있어서 횅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전형적인 미니멀리스트의 삶이었다.

욕실에서 가볍게 씻고 나온 그는 가장 먼저 메일을 확인했다. OGD USA에서 일하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습관이다.

아니나 다를까 메일함에 접속하자 새로 온 메일이 두 개나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뉴욕에 있는 슈미트가 보낸 것이었다. 일주일 뒤에 LA에 도착하는 소담 소주에 대한 내용이었다.

소담은 심양 머천트와 관계가 전혀 없으나 실질적인 OGD USA의 지사장 역할은 슈미트가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간단하게 보고 내용을 작성한 뒤.

그는 다음 메일을 열지 않고 노트북을 들고 주방에 있는 식탁으로 향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은 필수였다.

드드득···.

직접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린 뒤.

꽤 높은 의자에 걸터앉은 그는 노트북을 열어 한국에서 온 메일을 클릭했다.

거기에는 얼마 전에 잔여 계약금을 정리하며 OGD USA 자산으로 확보한 증류소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네.”

솔직히 이 정도일 거라 예상 못했다.

처음에 그는 아무리 슈미트의 권유가 있더라도 신생 법인에 올 생각이 없었다.

그만큼 할 일이 많았고 더구나 직원은 당분간 혼자라고 했다.

그런데도 그가 오저당을 택한 것은 철저하게 계산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 동안 오저당이란 곳이 얼마나 성장할 건지 예측을 해봤다.

그 결과는 꽤 놀라웠다.

돈 레오넬과 바크모의 카를로스만 따져봐도 실패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당시의 예측 중에 들어맞은 게 거의 없다는 것이다.

버번 증류소만 해도 그랬다.

처음에 이야기 듣기로는 올해 연말쯤 계약을 마무리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불과 4개월 만에 잔금을 치르고 버번 증류소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거기에 돈 레오넬도 변수였다.

어느 정도 미국에서 인기를 끌 거라 생각은 했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집 근처에 있는 바크모를 가면 언제부턴가 입구에 이런 팻말이 보였다.

[SOLD OUT, DON LEONEL]

워낙 찾는 이들이 많은 탓이다.

돈 레오넬은 요즘 미국 내에서 가장 핫하고 성장세가 가파른 테킬라가 됐다.

이번 달부터 멕시코에서 10만 병씩 미국으로 보내고 있는데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할 정도였다.

현재 계산으로는 25만 병은 되어야 얼추 판매되는 속도를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도 예측에 불과했고 시간이 지나면 훨씬 더 많은 양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런 여러 상황 때문에 요즘 그는 본사의 승인을 받아 미국 내에서 같이 일할 직원을 뽑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먼저 처리할 일이 있었다.

“일단 이것부터 해결해야겠지.”

페레즈는 한국에 있는 오너가 보낸 메일에 적힌 내용부터 해결해야만 했다.

한국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일 처리 속도를 가지고 있기로 유명했다.

그건 한국에 있는 오너는 물론이고 오저당 본사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다.

보통 일주일 정도 걸릴 거라 생각했던 것들도 대부분 하루 이틀 안에 처리되어 다시 이쪽으로 되돌아올 정도였다.

페레즈는 오히려 그게 좋았다.

불필요하게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진행하는 일이 쭉쭉 치고 나가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희열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준비는 미리 끝내놨다.

침실 옆에 마련된 서재에 들어간 그는 책장에서 서류철 하나를 꺼내왔다.

그곳에는 한국에서 요청한 내용에 대한 것들을 이미 수집해서 정리되어 있었다.

최근 10년 사이에 증류소 건축을 진행했던 시공사와 최근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설계 사무소까지 켄터키 지역 위주로 조사해서 마련한 리스트였다.

“여기는 공사비를 너무 과하게 받는 것 같으니 빼고··· 여기는 얼마 전에 인명 사고가 났다고 하니 빼야겠지.”

다시 한 차례 정리를 마친 뒤.

페레즈는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불필요한 정보까지 넘기면 결정권자가 검토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에 사회 초년생 때부터 생긴 습관이었다.

문제는 시공사가 아니다.

리스트에 있는 회사들은 설계도에 따라 건축물을 실제로 구현할 능력이 있다.

페레즈는 리스트 중에 설계 사무소를 놓고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최소 천만 달러 이상의 건물만 설계하는 사무실부터 시작해서 어떤 설계 사무소는 증류소 설계가 처음인 곳도 있었다.

그런 곳까지 리스트 업을 한 이유는 건축에 문외한인 그가 봐도 디자인을 정말 잘 뽑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자인이란 주관적이다.

이걸 놓고 어디가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문제였다.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오너의 결정에 따르자는 것이었다.

“이런 중요한 결정은 내 몫이 아니지.”

서둘러 보고서 작성을 마친 그는 오전 9시가 되기도 전에 오너와 슈미트에게 리스트와 보고서를 첨부하여 보내줬다.

사진만 수백 장이고 업체에 대한 소개까지 합치면 무려 오십 페이지가 넘어가는 상당한 분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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