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71화 (171/254)

워커 홀릭 (3)

다행히 약속은 문제없이 잡혔다.

예약해뒀던 항공권도 바꿔야 했는데 그런 것쯤은 그리 큰 문제도 아니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여러 사람을 만나기에 일정 변경 같은 것은 흔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신경 쓸 게 많았다.

나 혼자만 가는 것도 아니고 멕시코에 있는 증류소까지 쌍둥이를 인솔하는 것도 목적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인생 첫 해외 출장인 녀석들이다.

나랑 고작 네 살 차이밖에 나지 않으나 해외 경험이 전혀 없으니 둘만 따로 멕시코로 보내기도 조금 애매했다.

차라리 유럽 출장이었다면 경험을 쌓으라는 의미로 둘만 보냈을 거다.

유럽이 아무리 소매치기가 극성이라고 하더라도 납치 및 강도를 당하거나 총을 맞을 확률은 현저하게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멕시코는 조금 다르다.

난이도 자체가 제법 높은 편이랄까.

전체적으로 보면 남미의 베네수엘라 이런 곳보다는 괜찮으나 테킬라 인근의 지역은 다소 험한 동네다.

결국, 둘의 항공권도 바꿔야 했다.

기왕에 해외에 나가는 거 렉싱턴에 가서 공사 전의 모습도 담아 놓고 멕시코로 가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만 찍으면 안 될까?”

하지만 그건 내 실수였다.

오저당에서 출발하면서부터 쌍둥이는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녀석들이 찍는 것은 나였기에 벌써 후회될 정도였다.

“오저당 너튜브의 주요 출연자 중에 사장님이 유일하게 저희와 동행하고 계시니 어쩔 수 없어요.”

“후우··· 라니라도 데려올 걸 그랬나.”

“어차피 버번 증류소에 도착하면 소개도 해야 하니 적극 협조 부탁드릴게요.”

유성은 넉살 좋게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반면에 우주는 거의 캔디드 샷을 찍는 듯이 슬쩍 카메라 각도를 잡고 있었다.

확실히 촬영하는 데도 각자의 성격이 그대로 보여졌다.

녀석들의 그런 행동은 출국을 하고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막상 미국에 도착하니 나는 안중에도 없고 주변 풍경을 찍느라 상당히 바빴다.

나보다는 처음 보는 세상이 훨씬 더 신기했을 테니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그래도 움츠러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 오는 날의 강아지처럼 촐싹거리는 유성 때문에 정신없었다.

“와··· 무슨 자판기에서 파는 음료수가 사천 원이나 해?”

“날강도들.”

“진짜 물가 장난 아니다.”

“둘 다 잠깐 이리 와 봐.”

나는 그런 둘을 불렀다.

그런 뒤에 지갑에서 달러를 꺼냈다.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적어도 숙소까지 찾아올 수 있는 차비이자 뭔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이었다.

둘 다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재차 권하자 마지못한 듯이 받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편하자고 주는 돈이었다. 뭔가 먹고 마시는 것이 필요하면 알아서 사라는 의미기도 했다.

월급을 받으면 거의 80% 가까이 저축하는 녀석들이다. 그냥 놔두면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애를 쓸 게 뻔했다.

그렇게 많이 저축할 수 있는 이유는 숙식 제공의 영향도 있으나 오풍리에서 딱히 돈을 쓸 곳이 없다는 것도 한몫했다.

오풍리 인근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사 먹을 일도 거의 없고 기껏해야 초가 슈퍼에서 간식을 사 먹는 게 전부였다.

그렇다고 쌍둥이가 온라인에서 쇼핑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유일하게 돈을 크게 쓰는 데가 있다면 보육원에 보내는 돈이 전부인 것 같았다.

오저당에서 일하는 보육원 출신들은 매달 십만 원씩 모아서 보내주고 있었다.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뻔히 알고 있으니 모른 척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람 수가 여덟 명이나 되고 수호를 비롯한 다른 직원도 조금씩 보태니 은근히 돈이 꽤 컸다. 당연히 나도 오저당에서 하는 정식 후원 외에도 매달 개인적으로 후원을 조금씩 했다.

“그런데 여기부터는 어떻게 이동하죠?”

“걱정하지 마. 다 준비해놨으니까.”

한쪽 방향을 바라보며 말하자,

쌍둥이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쪽 방향에서 우리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한 대의 차가 있었다.

제법 커다란 검은색 SUV였는데 그 안에는 페레즈가 타고 있었다.

LA에서 차를 끌고 온 것은 아니고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서 렌트한 차였다.

오늘 이 자리에 슈미트는 오지 못했다.

현재는 심양 소속이라 이슈가 있을 때마다 자리를 비우는 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차에서 내려 인사부터 했다.

처음에 그를 고용했을 당시에 며칠 같이 일했을 때가 마지막이니 거의 4개월 만에 다시 보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뵙네요.”

“페레즈도 먼 길 오느라 수고했어요.”

“이곳에 세워질 증류소도 엄연히 OGD USA의 속하니 제가 와야죠.”

“다들 초면이지? 인사해.”

나는 일단 인사부터 시켰다.

페레즈와 우주의 성격이 그리 활달하진 않아서 꽤나 어색한 느낌이 들었으나 그나마 유성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곧장 렉싱턴으로 가실 건가요?”

“그렇게 하죠. 다들 괜찮지?”

“물론이죠!”

우리는 일단 차에 올라탔다.

공항인 터라 머뭇거릴 틈은 없었다.

여기 주차하면 안 된다고 공항 직원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기에 서둘러서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러는 중에도 쌍둥이 손에는 카메라가 쥐어져 있었는데 페레즈도 우리 너튜브 채널을 알기에 이상하게 보진 않았다.

오히려 꽤 기특하게 바라봤다.

“저번에 구지노 배우와 찍으신 영상이 미국에서도 꽤 호응이 컸습니다.”

“그래요?”

“한국 하면 서울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시골 풍경도 좋다는 반응이 많더군요.”

그런 비슷한 댓글은 나도 많이 봤다.

영상 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곳은 역시 오풍리를 지나쳐야 들어갈 수 있는 덕월 계곡이었다.

심지어 영상을 보고 계곡을 찾아오는 외국인도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오저당을 찾아주는 국내 관광객도 적지 않았는데 미리 주차 공간을 확보해서 다행이지 주말마다 전쟁을 치를 뻔했다.

그런 탓에 최근 체험 프로그램은 미리 몇 주 전에 예약해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오풍리를 찾아주는 이들 덕분에 인근 지역까지 꽤 영향을 받고 있었고 삼척과 태백 관광과에선 꽤 반겼다.

“이번에 미국 법인에서 채용하기로 한 거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입사 지원자와 인터뷰를 몇 차례 했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이가 없어서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이번에 뽑는 인원은 둘이다.

이제 페레즈 혼자 일하는 거는 어려운 수준이 됐다. 기존에는 돈 레오넬만 토스하면 되었으나 이젠 소담도 있다.

KR 마트에 납품하는 것 외에도 다른 여러 주류 전문점을 뚫을 필요가 있었다.

다른 술과 달리 소담은 공급이 아직 원활한 편이라 본사에서도 가장 영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 제품이었다.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길래요?”

“뺀질거리고 일 처리 늦는 거는 제가 가장 혐오하는 겁니다. 한국 본사와 함께 일하려면 어느 정도의 각오는 해야죠.”

“그건 한국에서도 어려운 조건인데요.”

“미국 인구가 3억 명이 넘는데 그중에 몇 명은 있을 겁니다.”

연봉을 많이 주면 가능하겠지.

월 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이들을 보면 한국 못지않게 업무량이 엄청나다.

하지만 쉽진 않을 거다.

팬데믹 상황이 지나간 뒤.

아직도 미국은 구인난에 시달렸다.

임금 상승과 함께 조기 은퇴 등의 이유로 고용 시장에서 이탈한 이들은 쉽게 시장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이번에 구인하는 이들은 OGD USA의 중추가 되어야 했고 페레즈와 같이 일할 이들이니 그가 원하는 대로 뽑아야 한다.

“약속 시간이 꽤 많이 남아 있는데 렉싱턴에서 식사부터 할까요?”

“그러시죠.”

뒤에 앉은 쌍둥이에게도 그 이야기를 해주자 무척이나 반겼다. 아무래도 긴 시간 이동을 한 탓에 허기졌던 것 같았다.

이동을 하는 동안 뭘 먹을까 고민했으나 역시 남자들답게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대충 아무거나.

눈에 보이는 곳에 들어가는 걸로 결정한 우리는 시내의 버거 전문점으로 향했다.

쌍둥이에게 미국스러운 음식을 먹이고 싶었는데 역시 미국 하면 버거잖아.

각자 주문을 마친 뒤.

나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일어났다.

하지만 몇 걸음 떼기도 전에 내 하의는 아이스크림 범벅이 되고 말았다.

누군가와 부딪혔기 때문이었다.

“이런···.”

아이라면 웃으며 넘겼겠지만,

실수를 저지른 이는 성인 남자였다.

문제는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내게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남자 상태가 평범해 보이진 않았다.

행동하는 것만 봐도 자폐 증상이 있다는 것을 곧장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와아! 저엉말··· 예쁩니다.”

내게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향이에게 닿아 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향이가 요리조리 움직였는데 그때마다 시선이 따라갔다.

‘설마 향이가 보이는 건가?’

상당히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보이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향이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그 정도의 몸짓으로 잡힐 향이가 아니다.

향이가 조금 높게 날아오르자,

점프까지 해가며 손을 뻗어 휘저었다.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니 그 덕분에 매장 내부는 시끌벅적해졌다.

“저 사람 뭐 하는 거야?”

“혹시 약쟁이 아니야? 딱 봐도 환각을 보는 것 같잖아.”

“경찰 부를까요?”

충분히 의심할 만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그리 오래가진 않았는데 일행으로 보이는 이가 다급하게 달려와 그를 뒤에서 안았기 때문이다.

손에 물기가 있는 것을 보니 화장실을 가려고 잠시 자리를 비웠던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향이에게 신호를 보내서 시야에서 사라지게 했다.

[알겠어요. 밖에 잠시 나가 있을게요.]

계속 향이가 시선 안에 있으면 멈추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향이가 보이지 않자 다행히 진정했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요정 여기 있다. 내가 봤어. 이번에도 형은 아무것도 못 봤어?”

“아무것도 없잖아. 도니! 정신 차려.”

도니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잠시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봤다.

몇 시간 후에 만나기로 했던 이들 중의 한 명의 이름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이해되는 것이 있었다.

아무리 자료를 뒤져보고 검색해 봐도 도니라는 건축가의 사진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매번 시상식에 참석해 상을 받는 것도 CEO인 오스카가 했다.

“이건 찍지 마.”

나는 일단 쌍둥이 손에 쥐어져 있는 카메라 단속부터 시켰다. 이런 것까지 찍어서 올릴 생각은 없었다. 이건 에피소드가 아니라 사고에 불과했다.

당연히 우주와 유성은 두말없이 곧장 카메라를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그들 역시 도니라는 남자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일단 이걸로 바지부터 닦으시죠.”

페레즈는 내게 손수건을 건넸다.

잠시 의자에 앉아 바지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닦아내고 있자 뒤늦게 보호자로 보이는 남자가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이걸 어쩌면 좋죠.”

“괜찮습니다. 저도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걸요.”

“이걸로 될지 모르겠지만, 세탁비를 제가 드려도 될까요?”

그는 지갑부터 먼저 꺼내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전에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이미 어느 정도의 확신은 있었으나 확실하게 해야겠지.

“아까 저분을 도니라고 부르셨는데 O&D 설계 사무소 분들인가요?”

“어떻게 저희를··· 혹시 OGD에서 오신 분들입니까?”

이미 화상 미팅을 통해서 한국에 있는 오저당과 OGD USA에 대해 어느 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더구나 이 동네에서 아시아 사람은 그리 흔한 편은 아니라 그 역시 쉽게 우리의 정체를 유추해낼 수 있었다.

“맞습니다.”

“이런··· 이렇게 뵙는군요. 제가 O&D의 대표인 오스카입니다. 첫인상이 너무 강렬했을 것 같네요.”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죠.”

나는 그와 악수를 나눈 뒤.

자리를 옮기자는 제안을 했다.

아직도 식당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은 모두 우리 쪽으로 향해 있었다.

오스카와 나는 문제가 안 되었다.

그 정도의 시선 정도는 잠시만 감당하면 되는 일이다. 사람들의 관심은 그리 오래가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니가 뒤늦게 주변 분위기를 느끼고 무척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길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다른 곳으로 옮겨서 이야기하실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