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78화 (178/254)

이 대신에 잇몸 (4)

오다르의 제안은 꽤 통이 컸다.

그날 끌루소와 오저당이 맺은 계약은 350만 유로에 달했다. 한화로 계산하면 47억 원이 넘어가는 수준의 계약이었다.

지금껏 오저당 본사에서 진행했던 단일 계약 중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350만 유로 모두가 퍼플 라벨을 주문하기 위한 금액은 아니고 추가 숙성하는 소담을 10만 병이나 주문했다.

처음부터 그 정도는 아니었다.

원래 제시받은 주문은 5만 병이었다.

하지만 라니가 출국할 때 가지고 온 샘플을 맛본 뒤에 오다르는 곧장 10만 병으로 주문을 수정했다.

우리에게만 좋은 계약은 아니었다.

끌루소도 오다르의 딜 덕분에 퍼플 라벨 3만 병을 추가로 확보해서 모두 합치면 12만 병을 내년에 받아 가기로 했다.

전체 생산량의 절반이 넘는 양이었다.

끌루소와 계약을 마친 뒤.

우리는 곧장 한국으로 돌아왔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더 머물고 싶었다.

오다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와이너리 몇 곳을 내게 소개해주려 했다.

그리고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또 오다르와 약속을 잡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돌아가서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았다.

십여 일 만에 오저당에 돌아온 나는 여독을 풀기도 전에 회의부터 소집했다.

다들 어느 정도 예상했는지 임원진은 물론이고 실장급까지 다소 늦은 시간까지 퇴근하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은 시간에 회의를 하자고해서 죄송합니다.”

먼저 양해를 구한 뒤에 나는 출장에서 결정된 몇 가지 사항을 알려줬다.

가장 먼저 말해줘야 하는 내용은 끌루소에서 받은 주문이었다.

“내년 3월에 숙성이 끝나는 퍼플 라벨 중에 12만 병은 끌루소에서 선주문을 받아서 그쪽으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나머지 11만 병은 어쩌실 생각입니까?”

“이제부터 분배해야죠.”

“혹시 술이 변질되거나 기타 여러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나머지 선주문은 8만 병까지만 받는 거는 어떤가요?”

퍼플 라벨을 담당하는 수호는 어느 정도 여유를 두길 바랐는데 일리가 있었다.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선주문은 신중하게 받아야 했다.

3만 병 정도를 예비로 놓으면 일부 옹기에 문제가 생겨도 대처가 가능했다.

“그건 유수호 이사의 의견대로 가시죠.”

“거기서 OGD USA와 멕시코에 배정할 양을 제외하면 생각보다 다른 곳에 보낼 수 있는 양은 많지 않겠네요.”

재무를 책임지는 서준석 부장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옹기를 채울 때는 과한 것 같았지만, 막상 지금 보니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하지만 급할 이유는 없었다.

제품으로 나오려면 적어도 10개월 정도는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천천히 정리해도 문제없었다.

그보다 더 시급한 일은 따로 있었다.

나는 추가 숙성하는 소담과 일반 소담 소주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 물었다.

아직 구체적으로 그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 논의된 것은 없었다.

“벽향주처럼 라벨로 구분하죠.”

라니는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녀석의 말대로 하게 되면 오저당에서 빚는 기본 베이스가 되는 술은 화이트로 일 년 숙성은 퍼플 라벨로 통일할 수 있다.

다들 그 의견에 동의했다.

따로 라벨을 만들기도 애매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소담에 대한 안건은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문제는 소담을 빚을 공간이죠.”

소담을 담당하는 윤가람 과장은 술을 빚더라도 그걸 숙성할 공간이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현재 오크통 하나 들어갈 수 있는 여유 공간조차 없었다.

미국에서 유나 누나를 만나서 레시피를 픽스했기에 RTD도 진행이 시작됐다.

설비도 이미 주문에 들어갔으니 아직 2층이 비어 있더라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기회에 오저당을 대폭 확장하는 거는 어떻습니까?”

수호를 향해 손짓하자 녀석은 도면 하나를 꺼내서 회의실 테이블에 펼쳤다.

거기에는 현재 오저당의 건물은 물론이고 앞으로 지을 몇 채의 건물도 지적도 위에 그려 넣어져 있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

이렇게 빠르게 쓸 거란 생각은 못 했으나 몇 개월 전에 3층 창고를 지을 때 연화 건설에 단지 설계를 요청해놨었다.

나는 도면 위에 점선으로 그려진 두 채의 건물을 짚으며 말했다.

“250평 규모의 3층 창고 두 채를 더 지을 생각입니다.”

버번 증류소를 완전히 인수할 때.

수호에게 오저당 본사에 대한 투자를 약속했는데 그걸 지킬 때가 되었다.

원래는 내년쯤에 진행할 생각이었으나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나는 우선 서준석 부장부터 바라봤다.

우리 오저당의 현재 역량으로 가능할 것 같냐는 질문에 가까운 시선이었다.

서 부장이 안 된다고 하면 조금 뒤로 미룰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한 가지 있었다.

조만간 끌루소에서 돈이 입금되기에 그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대답했다.

작년에 선주문했던 퍼플 라벨이 끌루소에 도착했기에 잔금 25만 유로가 며칠 이내에 들어올 예정이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이번에 선주문 맺은 것도 있었다.

전체 주문 금액의 절반인 175만 유로도 같이 입금되면 200만 유로이니 한화로 27억쯤 되는 돈이다.

땅을 사고 공사를 마무리할 정도는 아니나 시작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부족한 나머지 돈은 완공되기 전까지 버는 돈으로 커버하면 된다.

“문제는 이렇게 지으려면 땅부터 사들여야 합니다.”

“그거는 이장님이 어느 정도 협의를 끝내놨으니 크게 문제없을 겁니다. 이 문제는 서 부장님이 맡아주세요.”

돈과 관련된 일은 그의 몫이다.

당연히 그럴 거라 여겼던 서준석은 알겠다며 대답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창고를 두 채 더 지으면 그중의 하나는 벽향주만 생산할 생각인데 공장장님 의견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벽향주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당장은 퍼플 라벨이 훨씬 인기를 끌고 있으나 화이트 라벨이 우리 입장에서는 더 중요하다.

생산량의 차이가 매우 컸다.

일 년 동안 숙성한 퍼플 라벨의 생산량과 화이트 라벨의 한 달 생산량이 같다.

아무리 퍼플 라벨이 더 비싸도 매출에서 나타나는 격차도 상당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3층 창고 정도 넓이면 벽향주의 월간 생산량을 백만 병까지 끌어 올릴 수도 있습니다.”

백만 병이라···.

꿈에 그리던 생산량이었다.

지금 생산량에 비해 거의 4배에 달하는 수치라 그런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새로 건물을 짓고 숙성하는 기간까지 대충 계산해보면 가을쯤에는 그 물량이 시장에 풀린다는 의미기도 했다.

“좋네요. 그렇게 진행하죠.”

“나머지 한 채는 어떤 용도로 쓰실 생각입니까?”

“그쪽에서 퍼플 라벨을 숙성할 겁니다.”

전체적인 재배치가 필요했다.

벽향주만 하더라도 숙성하는 장소가 두 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하나를 더 늘릴 생각은 없었다.

이번에 추가로 창고를 지으면 그쪽에 퍼플 라벨을 몰아넣고 현재 사용 중인 곳은 소담을 숙성할 생각이었다.

1층에서 소담을 빚은 뒤.

2층으로 올려서 RTD를 생산하고,

나머지는 3층에서 숙성하는 시스템을 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들 찬성했다.

아무래도 직원들이 작업하는 동선을 고려하면 그게 최선이기 때문이다.

여러 창고를 오가며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수호는 무척 반겼다.

“이번 기회에 벽향주를 장기 숙성하는 것도 염두에 두시는 것이 어떤가요?”

황동선 이사의 제안이었다.

그는 더 고품질의 술을 원했다.

우리가 빚는 술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숙성 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맛으로는 어딜 내놔도 부족함이 없으나 일 년 동안 숙성하는 것만으로는 아직 12년산 이상은 비벼볼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것이 17년쯤 숙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오저당에서 일하면서 여러 반응을 살펴봤는데 제 예상으로는 5년 정도만 숙성해도 분명히 먹힐 겁니다.”

그 정도 숙성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NAS로 팔아야겠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고가의 위스키와도 비벼볼 만했다.

요정의 효과가 있기에 5년만 숙성해도 50년쯤 숙성해서 7천만 원에 파는 술과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3년만 숙성해도 어지간한 술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걸요.]

향이의 자부심도 상당했다.

하지만 황 이사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나는 그 부분을 짚어줘야 했다.

“주정 강화를 했으나 벽향주의 유통 기한이 그렇게 오래가진 못할 겁니다.”

“맞아요. 2년 이상은 조금 애매합니다.”

수호도 내 의견에 동의했다.

직접 퍼플 라벨을 관리하면서 살펴보니 2년이 지난 벽향주 중의 일부에서 살짝 신맛이 올라왔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녀석은 차라리 소담을 추천했다.

“소담을 그렇게 오래 숙성하려면 창고 한 층만으로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지금껏 잠자코 듣고만 있던 호세는 잠시 계산해보더니 동시에 많은 양을 숙성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놨다.

끌루소에 보낼 양도 고려해야 했다.

“그러면 같은 규모로 창고를 한 채를 더 짓는 거는 어떤가요? 지을 공간만 나온다면 최대한 연화 건설과 비용을 조율해보겠습니다.”

서준석 부장은 동시에 세 채나 되는 창고를 지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가격을 맞출 수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매년마다 오저당은 창고를 한 채씩 짓고 있는데 2~3년 후를 대비해 미리 만드는 게 더 이득이라고 봤다.

그리고 그런 그의 장담은 들어맞았다.

연화 건설의 신정배 사장은 기존에 비해 일정 부분 비용 절감을 해줬고 곧장 공사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 시작은 역시 부동산부터였다.

다행히 거의 1년 동안 이장님이 공을 들인 덕분에 오저당과 접해있는 땅을 사들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비용은 처음 예상보다 조금 더 높아졌으나 그 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그래도 서준석 부장은 꽤 유능했고 큰 문제 없이 거래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부동산 거래를 마무리한 날.

나는 그동안 수고해주신 이장님을 위해 작은 선물 하나를 준비했다.

원래는 약소하게나마 돈으로 드리려고 했는데 그건 절대 싫다고 하셨기에 다른 것을 준비해야만 했다.

“이것마저도 거절하시면 안 돼요. 이미 계약금도 줬으니 무를 수도 없어요.”

“그래, 고맙게 받으마.”

“그런데 정말 이걸로 되는 건가요?”

“충분하고도 남아.”

내가 준비한 선물은 마을에 있는 마을 회관을 싹 다 뜯어고치는 것이다.

여름에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 수 있고 겨울에는 난방이 잘 되게 하는 데 그리 많은 돈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당연히 거기에 들어가는 전기료 같은 것도 오저당이 책임지기로 했다.

오풍리에서는 일종의 사랑방 같은 곳이라 사계절 내내 많은 분들이 모인다.

그러니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더구나 이제 곧 공사가 시작된다.

다시 몇 개월 정도는 덤프트럭과 중장비가 수없이 오갈 것이 분명했다.

우리가 들어온 이후부터 매년 공사를 하고 있으니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저번에 부탁한 거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다시 귀촌하러 오시는 분들은 최대한 많이 뽑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오풍리의 인구는 꽤 늘어났다.

오저당에 입사한 이들을 제외하더라도 여러 이유 때문에 떠났던 주민들이 되돌아오는 케이스도 제법 생겨났다.

그리고 그들 중에 상당수는 오저당에 취직하는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

정든 고향에서 다시 일하며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바라진 않았다.

“저도 부탁이 하나 있어요.”

“뭔데?”

“지금 확보한 땅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요. 오풍리 인근에 있는 땅을 조금 더 알아봐 주실 수 있으신가요?”

“얼마나 더 지으려고?”

“당장 뭘 하려는 거는 아니고 일단 확보해놔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요.”

이번에는 굳이 오저당과 인접한 곳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오풍리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으면 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공인 중개사 자격증을 땄을 텐데 아깝네.”

이번 거래를 하면서 공인중개사에서 받은 돈만 천오백만 원 이상이었다.

거래 금액이 크니 어쩔 수 없었다.

“하하. 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최근에 이 부근 땅값이 전체적으로 올라가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빨리 사는 게 더 저렴하긴 할 것 같다.”

“이번에 공사 들어가면 더 올라갈 것 같아요.”

오풍리가 개발되면 될수록,

기대 심리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능하면 올해 하반기에 버는 수익 대부분을 땅 사는 데 쓸 생각이었다.

이장님은 알겠다는 대답을 해주었고 곧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어 순식간에 4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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