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 스토어 (2)
오저당 주점의 프랜차이즈.
그건 애초에 세워놨던 계획이다.
단순하게 로데오점 하나만 운영할 생각이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곧장 시작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하지만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진 않는다.
적어도 내 생각이 맞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고 로데오점은 그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테스트 용도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로데오점은 오저당의 플래그쉽 스토어 역할도 해주며 우리 술의 홍보 등을 해주는 역할도 가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옥주 지점장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주었다.
처음에 수호가 뭐라고 했더라.
적자만 면하면 좋겠다고 했던가.
하지만 녀석의 우려는 쓸데없었다.
현재까지 로데오점의 매출을 계산하면 적자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로데오점에서 소비자가 그대로 술을 파는 것은 제대로 먹혔고 그 대신에 처음부터 계획했던 대로 안주와 칵테일 쪽에서 많은 금액을 남기고 있었다.
“드디어 시작하시는 건가요?”
이옥주 지점장은 환하게 웃었다.
그녀에게도 이 일을 시작할 무렵에 프랜차이즈를 언급했었기에 놀랍다는 표정은 전혀 엿보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 같았다.
“오히려 조금 늦었죠.”
“맞아요. 본사에도 연락이 많이 갔는지 모르겠는데 가맹점 안 받냐고 문의하는 분들이 제법 많이 있었어요.”
“안타깝게도 당분간은 본사 직영으로만 운영할 생각입니다.”
가맹점을 받아야 돈이 되는 것은 나도 알고 있지만, 적어도 사람이 많이 오가는 요충지는 직영점으로 넣고 싶었다.
그렇게 몇 곳 정도는 직접 운영해봐야 뭔가 기틀도 잡힐 것 같았다.
그 부분을 설명하자 이옥주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금방 알아들었다.
그녀 역시 대형 프랜차이즈 회사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초창기에는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체인 스토어로 가시려는 거군요.”
“맞아요. 최소 다섯 곳에서 열 곳 정도는 직영으로 해보고 그걸 바탕으로 가맹점을 늘리는 것으로 생각 중이에요.”
“투자금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갈 수 있어요.”
나도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
당장은 투자하는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가도 남의 돈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보다 마음은 편할 것 같았다.
그리고 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현재 오저당이 버는 돈이면 매달 직영점을 몇 개씩 오픈해도 될 정도다.
이미 오저당은 중소기업의 기준이 되는 평균매출액과 연간매출액을 넘어섰다.
이 상태로 계속 성장할 경우.
몇 년 내에 중소기업의 한계선인 800억의 매출을 넘어서는 게 아닐까 여겨질 정도다. 그만큼 오저당의 성장세는 무척 가파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적어도 직영점 몇 곳 정도를 통해 가능성을 입증해야 가맹점을 늘릴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죠.”
그 부분은 이옥주도 인정했다.
아무런 데이터도 없이 작지 않은 돈을 투자하라고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새롭게 창업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의 인생까지 거는 일이니 상당히 신중할 수밖에 없다.
“직영점을 몇 개나 더 늘리실 생각이시면 관리해줄 직원부터 뽑아야 할 겁니다.”
이옥주는 내게 관련 부서를 만드는 것부터 진행되어야 한다고 권유했다.
아무래도 기존의 오저당 체계로는 관리하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프랜차이즈와 체인 스토어.
어떤 방식이든지 통일성이 중요하다.
가게마다 다른 기조를 가지고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같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사 차원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관리하고 지원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로데오점만 있었기에 그 정도까지는 필요 없었으나 숫자가 늘면 생각보다 일이 많아질 것이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적절한 분을 찾아서 통째로 맡기려고요.”
“혹시 염두에 두신 분이라도 있나요?”
“마침 저기 오시네요.”
이옥주 지점장이 고개를 돌리자 삼촌이 투덜거리며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머리를 터는 것을 보니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그걸 본 이옥주 지점장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며 웃으며 삼촌을 반겼다.
“밖에 비와요?”
“소나기인 것 같아. 오늘 입국했으면 가서 잠이나 자지 왜 여기 있냐.”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가게에 와보겠어요.”
일단 삼촌에게 자리부터 권했다.
뭐부터 마실 거냐고 묻자 삼촌은 곧장 벽향주부터 가져오라고 손짓했다.
“있을 때 마셔야지. 언제 또 공급이 부족해질지 모르잖아.”
“그럴 일은 당분간 없을 거예요.”
“하긴 요즘 생산량이 백만 병이나 된다고 했지? 퍼플 라벨은 아직 멀었어?”
“4개월 이상은 기다려야 해요.”
퍼플 라벨은 완전히 품절 상태다.
이제는 추가로 소량씩 나오던 것도 다 떨어졌고 올 초에 빚은 것이 나올 때까지 무조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거 꼭 해외에서만 팔아야 해? 세금이 문제면 국내에서는 가격을 올려 받아도 되잖아.”
왜 안 되는지 몇 번이나 말했지만,
삼촌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수출용이라 못 박은 탓에 국내에서는 전혀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양조장이라고 마음대로 빚은 술을 마실 수는 없다. 모든 생산 내역은 정리해서 투명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나중에 세무 조사가 나오면 그로 인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
생산에 들어가는 재료와 판매된 술.
그 비율에서 많은 차이가 나면 세금을 내지 않고 술을 유통했다는 오해도 받을 수 있다. 오저당은 요정의 효과 때문에 오히려 그 반대로 같은 양의 재료를 써도 훨씬 많은 술이 나온다.
그래서 오히려 재료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사들이는 탓에 다 나눠줘야 했다.
요즘 오풍리에 사시는 분들은 쌀이며 밀가루를 사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막상 그렇게 차별해서 가격을 매기면 저희만 욕먹어요.”
내수 시장 차별이란 말부터.
온갖 음해가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이 은근히 그런 차별을 참지 못하기에 고려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어차피 빚어지는 수량도 한정적이기에 그냥 다른 나라에 가져가서 파는 것이 훨씬 속 편했다.
일단 내 손을 떠나는 순간부터는 판매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때부터 이슈는 나의 태국 출장이었다.
삼촌과 이옥주 지점장은 그곳의 술집은 어떤지 물었는데 다른 나라는 어떤지 궁금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대화는 길게 가지 못했다.
손님이 거의 다 나가고 한적해지자 나는 슬슬 이옥주 지점장과 나눴던 대화를 그대로 삼촌에게 전달해주었다.
한동안 듣고만 있던 삼촌은 의아한 표정으로 왜 그런 이야기를 자신한테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며 따졌다.
“그건 오저당이랑 두 사람이 알아서 할 문제잖아.”
“저는 삼촌이 도와주셨으면 해요.”
“뭘 도와? 또 어떤 걸 시키려고.”
“삼촌이 맡아서 진행해주시면 안 돼요?”
“나는 싫다.”
삼촌은 여지조차 두지 않고 거절했다.
어반 스카이 운영만으로도 바쁘고 그런 쪽으로 아는 것도 없다며 고개 저었다.
나는 도와달라는 의미가 뭔지 정확하게 정정해주었다.
“이 일이 진행되면 로데오점과 체인 사업은 오저당에서 아예 분리해서 따로 자회사를 만들 생각이에요.”
“그 회사를 내게 맡긴다고?”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된 탓에 삼촌은 물론이고 이옥주 지점장도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예전부터 그쪽에 관심 많으셨잖아요.”
“그거 맡으면 삼척으로 가야 하냐?”
“아니요.”
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고개 저었다.
어차피 수도권에만 체인을 만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사업을 분리하는 터라 오저당과는 별개였다.
서울에 사무실을 얻어도 문제없다는 의미다.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드네.”
하지만 쉽게 승낙은 하지 않으셨다.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자신이 맡아서 해도 되는 건지 고민하시는 것 같았다.
더구나 어반 스카이도 직접 운영 중인데 그건 어떻게 하냐며 물었다.
“겸업하세요. 1호점도 2호점처럼 지점장 붙이고 퇴근 이후에 오셔도 되잖아요.”
“그러다 과로사하면 누가 책임지냐?”
“어렵게 생각 마세요.”
실무는 프랜차이즈 경력직 몇 명 정도 뽑아서 붙이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만 거의 7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오저당처럼 외진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서울에서 쓸만한 인재를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예상되었다.
“이걸 굳이 나한테 맡기는 이유가 뭐야?”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생판 모르는 남보다는 삼촌이 믿을만하죠.”
“그러다 뒤통수 맞으면 더 아프다.”
“사외 이사에 재무를 담당하는 서준석 부장을 감사 역할로 넣어둘 생각이라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이미 서준석 부장은 물론이고 오저당 임원 회의에서 이야기가 끝난 상황이다.
오저당의 투자금도 내년 연말까지 50억 이상으로 잡아 뒀다.
“50억이라··· 그걸로 몇 곳이나 더 확보할 수 있을까?”
“저희 예상으로는 정말 핫한 장소만 아니라면 권리금이 없다는 전제하에 최대 10곳 정도로 보고 있어요.”
“하긴 50억을 다 보증금이나 인테리어 비용으로 쓸 수 있는 거는 아니지.”
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는 전체적인 운영비와 인건비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본사 사무실도 얻으려면 돈 들어갈 곳이 많다.
“옥주 너는 어떻게 생각해?”
“뭘 고민해요. 감사하다며 덥석 물어도 모자랄 제안이잖아요. 누군 조카 덕도 보고 좋겠네.”
“나 낙하산 소리 듣기 싫은데 오저당 직원들은 나한테 맡긴다니 반응이 어때?”
“여기 로데오점 시작할 때도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별다른 말은 없던데요. 그리고 삼촌이 이쪽 바닥에서 발이 넓잖아요.”
솔직히 누가 불만이겠어.
오저당의 모든 지분은 내게 있다.
버는 돈을 어떻게 투자하든지 전적으로 내 마음이다. 그렇다고 안면 몰수하고 성과급을 안 주는 것도 아니잖아.
올해도 직원들에게 성과급이 나갈 예정인데 현재 직원들에게 주기 위해 서준석 부장이 확보한 금액만 5억이다.
그걸 나눠서 육십여 명에 달하는 직원에게 최소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3천만 원까지 분배될 예정이었다.
“좋아. 그거 내가 맡아서 하지 뭐.”
“잘 생각하셨어요.”
“자회사 설립은 언제 하면 되는 거야?”
“조만간 황 이사랑 서 부장 보내드릴 테니 법인 설립하고 진행하시면 돼요.”
“혹시 염두에 둔 지역은 있어?”
내가 그런 거는 없다며 고개를 젓자, 삼촌은 이옥주 지점장과 열심히 후보지를 정하기 시작했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지 이야기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저기요. 마감 끝낸 것 같으니 일단 직원부터 퇴근시키고 이야기하시죠.”
*
체인 스토어는 급물살을 탔다.
예고했던대로 오저당에서 나온 황 이사와 함께 법인을 세우고 자본금을 채워주는 일은 순식간에 끝났다.
<오저당 F&B>
새로운 법인의 이름도 정해졌다.
앞으로 그곳을 통해 세워질 오저당의 체인 스토어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해외 법인의 술도 판매하는 곳이 될 거다.
하지만 그걸로 끝은 아니었다.
현재 오저당에서 나오는 엄청난 양의 술지게미를 활용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그걸 가지고 비누나 쿠키 같은 여러 파생 상품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나마 조금 살 것 같네.’
이제 로데오점에서 손을 놓을 수 있다.
그것만 빼내도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이 줄었는데 지금까지는 매주 매출과 운영에 신경을 써야 했다.
삼촌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기에 나는 분기별로 진행 상황에 대해 보고만 받으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두 삼촌의 책임이었다.
그리고 며칠도 지나지 않아 삼촌은 후보지를 보러 다니고 있었다.
새로운 매장을 맡길 사람도 구했는데 워낙 발이 넓어서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았다.
“여기 계셨군요.”
정원에 놓인 그네에 앉아있자,
황동선 이사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결재판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것을 보면 뭔가 보고할 게 있어 보였다.
“수파싯이 며칠 뒤에 출국한다고 태국에서 연락 왔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진행됐네요.”
“그리고 다음 주에 미국으로 출국하는 것은 숙소까지 예약을 마쳤습니다.”
잠시 그가 하는 말을 듣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요즘 황 이사는 종종 비서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당연히 숙소 예약 같은 것은 다른 직원이 했겠지만, 그래도 그가 이런데 시간을 쏟아서는 안 된다.
“이사님이 제 비서 역할까지 하느라 고생이 많으시네요.”
“그러니까 비서를 뽑아주세요.”
“그렇게 하죠.”
별 생각 없이 말했던 걸까.
정작 내가 그러자고 말하자 잠시 황 이사는 할 말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제안했으나 그때마다 거절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더는 미룰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내게도 조건이 몇 가지 있었다.
적어도 영어와 스페인어 정도는 능숙해야 하고 출장을 자주 가도 문제가 없어야 했다. 조건이 쉬운 것은 아니나 황 이사는 환하게 웃으며 각오를 다졌다.
“최대한 빨리 찾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