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주신 기회 (1)
파사데나 착공과 디스틸러 계약.
이번 출장 목적은 두 가지가 전부였다.
하지만 일정이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기왕에 미국에 왔으니 잠시 부모님 댁에 들리기로 했다.
미국 출장을 종종 오고 있지만,
정작 집에 갔던 날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올 초에 다녀왔는데 그 뒤로 거의 반년 이상 들리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라니보다는 양호했다.
그 녀석은 휴가 대부분을 파리 공연으로 태웠기에 내년까지는 집에 돌아가는 것이 조금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리 걱정되진 않았다.
LA와 샌프란시스코는 멀지 않다.
OGD USA가 있는 덕분에 은근히 출장 기회가 종종 있어서 그걸 핑계 삼아 보내주면 된다.
“여기 세워 드리면 되나요?”
잠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다미안이 운전하는 차는 우리 집 앞에 도착했다.
나는 차에서 내리기 전에 다시 한번 다미안의 의사를 물어봤다.
“정말 혼자 지내도 되나요?”
“잠시 관광객 모드로 금문교도 다녀오고 실리콘 밸리도 구경하면 되니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쉬세요.”
“그럼 이거 받아요.”
나는 지갑에서 법인 카드와 제법 많은 현금을 꺼내서 다미안에게 건넸다.
어차피 숙소는 한국에서 대신 예약을 해주었기에 식비를 제외하면 크게 돈이 들어갈 곳은 없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 막 입사한 탓에 돈도 없을 텐데 굶고 다니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개인 일정 때문에 잠시 들린 곳인데 다미안의 돈을 쓰게 할 수는 없었다.
“법인 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은 기억하고 있죠?”
“네, 숙지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현금으로 쓰고 부족하면 나중에 청구하세요.”
법인으로 바꾼 뒤부터.
카드 사용이 조금 귀찮아졌다.
해외 같은 경우에는 드물게 법인 재직 증명서를 요구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준 뒤.
다미안은 렌트한 차를 끌고 떠났다.
그를 끝까지 잡지 않은 이유는 아무래도 나랑 같이 있는 게 편할 것 같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교성이 강하더라도 사장과 비서라는 불편한 관계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아무리 편하게 해주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다.
더구나 아직 입사한 지 일주일도 안 되었기에 그 이상의 단계까지 접어들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았다.
철컥.
출국 전부터 집에 들를 생각이라 챙겨서 가져온 열쇠로 집안에 들어선 나는 곧장 경보 시스템부터 꺼야 했다.
이게 은근히 번거로운 일이었다.
까먹고 그냥 지나쳐서 경보가 잘못 울려 출동이라도 하게 되면 벌금을 내야 한다.
“낮잠이나 자볼까?”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루이빌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에 해야 할 일은 대부분 처리해놓은 덕분이다.
케이티의 계약서 원본도 우편으로 페레즈에게 보냈고 온라인으로 올라온 전자 결재 서류도 사인해서 저장해놨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뜨니 어느덧 해가 저물어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인기척이 들려 고개를 돌리니 어머니가 보였다.
“어머! 너 언제 왔니?”
“아까 낮에요. 제가 며칠 전에 들릴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아··· 그랬었나? 그게 오늘인지 몰랐어. 어쩐지 네 아버지가 언제 퇴근하냐고 물어보더라.”
역시 어머니다운 반응이었다.
이제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나도 일을 해보니 세심하게 챙길 여유가 없을 정도로 정신없었다.
정글과 같은 사회에서 생존하며 육아까지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평균 연령이 낮은 오저당에 몇 안 되는 워킹맘을 보면 거의 초인 수준이었다.
“저녁 아직이지?”
“당연하죠.”
“내려와서 식사 준비하자.”
“오늘은 나가서 안 먹어요?”
“레스토랑에서 포장해서 방금 출발했다고 연락왔으니 금방 올 거야.”
애초에 집밥은 기대도 안 했다.
오히려 직접 요리하겠다고 하시면 내가 먼저 나서서 말렸을 것이다.
모든 재능을 디자인에 몰빵하신 건지 요리는 정말 재능이 없으셨다.
그나마 아버지가 요리는 더 잘했다.
어렸을 때도 집에서 먹는 식사는 대부분 아버지가 해주셨을 정도였다. 그때는 당연히 다른 집도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30분 정도가 지난 뒤.
모처럼 우리 가족은 식탁 앞에 앉았다.
외식을 자주 하기에 평소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하던 식탁 위에는 한식당에서 사 온 음식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저 며칠 전까지 한국에 있었는데 굳이 또 한식을 먹이시는 건가요?”
“너만 입이니? 우리는 정말 모처럼 한식을 먹는 거야.”
“그래도 뭔가 집밥 같잖아.”
아버지는 웃으며 수저를 들었다.
그래도 오늘 사오신 음식은 꽤 맛이 좋았다. 예전에 여기서 살던 당시에 자주 가던 한식당의 맛은 결코 아니었다.
“이상하네요. 여기 김치찌개가 원래 이렇게 맛있었나요?”
“거기 주인이 바뀌었거든. 요즘 한식당이 제법 많아졌잖아. 이제는 엉터리로 한식을 만들어서 팔면 버틸 수 없어.”
“몇 곳이나 늘었는데요?”
“코리아 BBQ랑 치킨 체인까지 더하면 거의 수십 곳은 넘어가지.”
상당히 공감이 가는 것이 여기 오는 길에도 몇 곳이나 한식당을 발견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는데 정말 많이 바뀐 것 같았다.
한참 식사를 하던 중에 어머니는 내 근황을 물어봤다.
“그나저나 너는 연애 안 하니?”
“아직이요. 뜬금없이 그건 왜 물어요?”
“다른 집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여자친구 소개해주겠다고 데리고 오는데 너는 아무런 소식이 없어서.”
“때가 되면 알아서 해요.”
그게 언제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지금처럼 일만 하다가는 나의 20대는 정말 순삭 당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연애보다 경영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
뭔가 경영 시뮬을 하는 기분이랄까.
나날이 커지는 오저당만 봐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아직은 직원들로 인한 스트레스도 그리 크지 않았다.
30개월 동안 이직률 0%.
매달 기록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오저당에서 일한 이들 중에 퇴직을 한 이들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대부분 현재 오저당에서 받는 대우에 만족하고 있다는 의미다.
“나는 라니랑 프랑스에 같이 갔다길래 조금 기대했는데 아무 일도 없었어?”
“전혀요.”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계시네.
애초에 라니를 오저당에 취직시키려 애쓰시며 뭘 기대했는지 대충 알겠는데 아쉽게도 우리는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
“라니는 물론이고 나도 서로에게 어떤 감정도 없으니 기대는 접어두세요.”
“아쉽네. 나는 라니가 며느리로 들어오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엄마한테 솔직하게 말해줄래?”
“뭘요?”
“혹시 성적 취향이 남다르거나 그런 거는 아니지? 물론, 그래도 우리는 상관없어.”
연애를 못 하는 것도 서러운데 이런 오해까지 받아야 하나. 내가 그 말을 하자 어머니는 말은 바로 하라며 정색했다.
“네가 연애를 안 하는 거지 못하는 거니? 네 나이에 오저당 정도 되는 회사를 운영하면 여자들이 줄을 설 거 같은데.”
“어머니도 가보셔서 아시겠지만, 그런 외진 곳에 살면 만날 기회도 없어요.”
“다른 여직원도 있을 거 아니야.”
오늘따라 꽤 끈질기셨다.
왜 그러나 했더니 아버지가 웃으시면서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줬다.
“너랑 하이스쿨 같이 다녔던 마이크를 우연히 만났는데 벌써 두 살짜리 딸이 있더라. 그걸 보더니 더 심해졌어.”
“벌써 할머니가 되고 싶으신 거예요?”
“그것도 나쁘지 않지. 내 또래 중에 이미 손주를 본 사람들 꽤 많아.”
임원이 되시더니 여유 생기신 건가.
몇 년 정도 떨어져 사는 사이에 많이 바뀌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 그 이야기는 아버지가 다른 화제로 돌려준 덕분에 그쯤에서 끝났다.
“요즘 오저당 경영하는 거는 어때?”
“두 달 전에 화이트 라벨이 대량으로 풀리면서 많이 좋아졌죠. 게다가 ASAP가 동남아에서 꽤 인기가 좋아요.”
“잘됐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에 네가 오저당을 인수할 당시에 빌려준 돈을 지분으로 받을 걸 그랬어.”
아버지는 항상 그때를 후회했다.
만약에 그 당시에 지분으로 받으셨다면 수백억 이상이 되어 돌아왔을 것이다.
이것도 낮게 잡아 그 정도지 오저당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엄청난 편이다.
현재 생산량만 유지되어도 내년 OGD 멕시코의 한 해 매출은 최소 천억 단위를 넘어갈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돈 레오넬을 노리고 많은 이들이 접근했다.
그들이 제시하고 있는 금액은 최소 2천억 이상이었고 어느 글로벌 주류에서는 4천억 이상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렇게 크게 부르는 이유가 있었다.
OGD 멕시코의 지분 때문이다.
돈 레오넬 지분은 100% 오저당의 출자로 이뤄졌기에 지분 관리를 손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만약에 살수만 있다면 경영권을 유지할 정도의 수준만 남기고 40% 정도는 주식으로 발행하면 본전을 뽑고도 남지.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식 발행은 하지 않을 거야?”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투자할 곳이 제법 많지만, 매달 벌어들이는 돈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거든요.”
“조금 더 빠르게 성장할 기회를 놓치는 걸 수도 있어.”
“저 아직 스물여섯이에요. 서두를 이유가 없잖아요.”
다급하게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괜히 욕심내다가 모든 것을 망가뜨릴 가능성이 있다. 경영에서 가장 최악의 순간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거다.
한쪽에서 최악의 순간이 오더라도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아··· 혹시 제자분들이나 아시는 분 중에 M&A 전문 변호사 있으신가요?”
“몇 명 있지. 소개시켜줘?”
“네, 부탁드릴게요.”
“혹시 어느 정도 규모인지 알 수 있을까?”
아버지는 대형 로펌이 필요한 일인지 아니면 작은 법률 사무소로 가능할지 알아야 적절한 이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당연히 아직 오저당이 중견 규모의 회사를 삼킬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영세한 규모의 양조장 몇 곳을 인수하는 것이었다.
대부분 자금 사정이 안 좋거나 후계자를 키우지 못해 폐업 위기에 처한 곳이었다.
이제 곧 연말인데 내년부터는 원래의 계획대로 그런 곳을 엄선하여 하나씩 인수할 생각이었다.
“제품 라인업을 확장하려고?”
“당장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고 향후 몇 년 뒤를 생각해서 준비하려고요.”
“신제품을 만드는 것보다는 검증된 술을 통째로 사들이는 게 더 저렴하고 안정적이긴 하지.”
아버지도 내 생각에 동의해줬다.
하지만 로펌 정도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다며 개인 사무실을 추천해주셨다.
적대적인 인수 합병 같은 기업 간의 거래보다는 개인 소유주와 협상하는 것이 대부분이 될 거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마침 서울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솜씨 좋은 후배가 있다며 아버지는 그분을 소개해주시기로 하셨다.
“대신 내가 소개해주는 거니 섭섭하지 않게 수임료를 내야 할 거야.”
“물론이죠.”
“참고로 그 친구도 술을 좋아하니 돈 레오넬이나 벽향주 퍼플 라벨 몇 병만 쥐여줘도 엄청 성실하게 일할 거야.”
눼눼. 아버지 지인이 다 그렇죠.
아마 지금까지 쌓으신 인맥 대부분이 술로 엮인 분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인맥 덕분에 여러 도움을 받고 있으니 썩 나쁜 일은 아니었다.
한동안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갑자기 스마트폰이 발광하듯이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메시지가 동시에 쏟아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마 임원진 단톡방인 것 같았다.
그곳에서는 불필요한 일은 메시지로 올라오지 않기에 여러 단톡방 중에 그곳만 알림을 유지해 놨다.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어머니는 어서 확인해보라며 손짓했다.
걱정이 가득하신 표정이었는데 정작 나는 태연했다. 가끔은 중요하지 않은 일로 단톡방이 폭주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며칠 전에는 덕월 계곡에 수달 한 쌍이 나타나서 단톡방이 터졌다.
심지어 이장님조차 처음 봤다고 하니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혹시 그 수달이 다시 나타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스마트폰을 든 나는 잠깐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정말 오랫동안 기다리던 일이 드디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RJ의 오저당 방문 일정이 잡혔습니다. 그런데 이게 며칠 후라 최대한 빨리 귀국하셔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