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91화 (191/254)

신이 주신 기회 (3)

사흘이란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그 동안 오저당은 상당히 분주했다.

가장 많이 신경 쓴 것은 역시 청결이었다.

그나마 평소에도 깔끔하게 유지하는 편이라 손이 많이 가진 않았다.

애초에 여건이 다르기는 했다.

다른 오래된 양조장과 달리 우리는 처음 지어졌던 오저당 건물을 제외하면 2년 이내에 지어진 곳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오저당이 허름하진 않았다.

세 채의 창고가 완공된 후에 기존의 오저당 건물도 상당히 많이 보수했다.

새롭게 페인트칠을 하고 창틀과 문도 완전히 바꾼 후에 라니가 벽화도 그려줘서 오히려 화사한 느낌이 들었다.

“후우··· 나 지금 떨고 있니?”

라니의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이러다 RJ를 맞이하는 순간에 기절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

이런 반응이 낯설지는 않았다.

미국에서 출발하기 전에도 똑같은 모습을 어머니를 통해 봤기 때문이다.

그때도 장난이 아니었다.

무심코 오저당에 RJ가 온다고 하니 휴가를 내고 나를 따라서 한국으로 갈까 심각하게 고민하셨을 정도였다.

아버지가 말려줘서 다행이지 안 그랬다면 이 자리에 어머니도 계셨겠지.

“정신을 바짝 차려. 이번 방문이 RJ에게 도움이 돼야지 방해가 되면 안 되잖아.”

“물론이지! 참된 팬이라면 그래야지.”

“이모님이랑 같이 다른 여직원들도 잘 관리해줘. 한눈팔다가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니까.”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게 그 부분이다.

월드 스타가 온다고 정신을 딴 데 팔고 일하다가 다치면 본인만 손해다.

특히 술을 병입하는 이들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포장 과정에 쓰이는 기계는 자칫 크게 다칠 수 있고 스팀 조절 장치를 잘못 조절하면 화상을 입을 가능성도 있다.

그걸 수호가 아닌 라니에게 말하는 이유는 이모와 함께 오저당의 여직원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여직원들이 내놓는 건의 사항은 두 사람을 통해서 전달되었다.

“여직원 단톡방에서 다시 주의 줄 테니 걱정하지 마.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만든 유니폼 다들 꽤 만족하더라.”

“여름용보다 반응이 좋아?”

“응. 소재도 더 고급스럽고 땀도 잘 마른다고 다들 좋아했어.”

오저당은 예전부터 유니폼을 입었다.

일종의 작업복이라 할 수 있는데 땀을 많이 흘리는 생산직을 위해 만들었다.

위생에 관련된 거라 여벌도 많이 줘서 매일 빨아서 입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디자인은 그다지 특별하진 않았다.

하얀색 옷감으로 만든 옷에 오저당 이름과 CI이 가슴 왼쪽에 박혀져 있었다.

라니가 만든 오저당의 CI는 당연히 모든 해외 법인에서도 동일하게 쓰고 있다.

딩딩···띠리딩.

그때 황 이사의 전화가 왔다.

15분 뒤에 오풍리에 RJ가 도착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를 마중하기 위해서 마을 입구로 나갈 필요는 없었다.

마을 입구부터 오저당까지.

RJ는 직접 걸어서 올 예정이었다.

우리는 오저당에서 기다렸다가 그가 오면 인사를 나누고 안내하면 되었다.

당연히 그가 혼자 오진 않을 것이다.

이미 황 이사와 마케팅 팀원 그리고 쌍둥이가 카메라를 들고 나가 있다.

그곳에서 걸어오는 모습부터 촬영의 시작이었다.

얼마쯤이나 기다렸을까.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중에 멀리서 사람들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RJ의 앞에는 카메라를 쥔 쌍둥이가 뒷걸음질을 치며 찍고 있었다.

나머지는 멀리 떨어져서 화면에 잡히지 않을 만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도착한 RJ는 트레이드 마크 같은 보조개를 보이며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서경준라고 합니다.”

RJ는 자신의 본명으로 인사를 나눴는데 대충 그 의도가 뭔지 감이 잡혔다.

아이돌이 아닌 그냥 보통 사람 서경준이라 봐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환영합니다. 저는 오저당을 이끌고 있는 주도찬입니다. ”

“제가 벽향주에 완전히 꽂혔는데 사장님이 이렇게 젊으신 줄 몰랐어요.”

“작은할아버지가 빚으시던 벽향주와 이곳을 물려받은 덕분이죠.”

나는 일단 그를 주막으로 안내했다.

한옥 앞에 놓인 평상에 앉자 이모가 직접 내린 따뜻한 꽃차를 가지고 나오셨다.

다행히 서경준의 입맛에 잘 맞았는지 그는 천천히 음미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데뷔 10년 이상 된 연예인은 다른 것 같았다. 구지노 배우도 가끔씩은 카메라를 의식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다섯 대의 카메라가 따라 다니는 정도는 그의 일상에서 상당히 흔한 일 같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어색한 것은 나였던 것 같았다. 서경준은 그런 조금 얼어있는 나에게 한 가지 요령을 알려주었다.

“카메라가 신경 쓰이면 저만 보시면 됩니다. 그게 훨씬 더 자연스러워요.”

“그게 마음처럼 돼야 말이죠.”

“하긴 저도 적응하는 데 꽤 오래 걸렸어요. 아! 그리고 봄에 열렸던 파리 공연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서경준은 차분하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설마 그런 것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다.

내 질문에 서경준은 너튜브 덕분이라고 했다.

“오저당 너튜브 저도 자주 보는데 거기에 콘서트에서 찍은 영상이 나오더라고요.”

“그걸 보실 줄은 몰랐어요.”

“은근히 이동하는 중간에 남는 시간이 많거든요. 그리고 오저당의 영상은 자연 풍경이 나와서 마음의 안정도 되고요.”

한동안 우리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서경준은 말을 차분하게 잘하는 편이라 잠시 카메라를 잊을 정도였다.

하지만 계속 그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꽤 먼 길을 온 손님이다.

더구나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

일단 식사부터 하고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어느 정도 도착 시간을 알고 있었기에 음식도 준비되어 있었다. 당연히 솜씨를 발휘한 것은 이모님이었다.

직원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아주머니도 계시나 대용량에 특화되어 있는 분들이라 오히려 이모의 솜씨가 더 좋았다.

잠시 후에 상다리가 부러질 수준으로 상을 차려온 것을 본 서경준은 꽤 놀란 얼굴로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와··· 진수성찬이네요. 안 그래도 꽤 오래 해외 공연을 다녀서 한식이 그리웠는데 잘 먹겠습니다.”

“나중에 가시기 전에 사인 한 장만 부탁해도 될까요? 제 딸이 팬이거든요.”

“물론이죠.”

서경준은 이모에게 흔쾌히 약속했다.

온갖 제철 음식이 가득한 상을 두고 마주 앉은 우리는 천천히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 중에 대화는 별로 없었다.

해봤자 소소한 수준에 불과했다.

아이돌로서의 RJ가 아닌 서경준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다. 그건 어느 정도 의도적인 대화 주제의 분배였다.

2박 3일의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저녁에 술을 마시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자리는 따로 마련될 예정이다.

간단한 식사 이후에는 오두막에서 쉬었는데 서경준은 그곳을 꽤 좋아했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네요.”

“저도 오저당의 다른 어떤 곳보다 이 장소를 가장 좋아합니다.”

“언젠가 이런 곳에 집을 짓고 조용하게 살고 싶네요.”

“내년에 저 너머 한적한 곳에 집을 지을 생각인데 옆으로 이사 오시죠.”

“진심으로 그러고 싶네요.”

웃으며 말하는 서경준은 진지했기에 어디까지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서경준은 이제 무엇부터 하면 되냐고 물었다.

“이제 뭐부터 해야 하죠?”

“누룩 빚는 것부터 해보려고요.”

“술의 시작은 역시 누룩이죠.”

“잘 아시네요. 평소에 술을 빚는 쪽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그럼요. 요즘 시중에 나오는 막걸리 키트로 직접 빚는 게 제 취미입니다. 멤버들도 상당히 좋아하거든요.”

서경준은 그 이야기를 꺼내며 오저당에서 빚는 오풍주도 키트로 나왔으면 정말 좋겠다는 말을 꺼냈다.

“해외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싶을 때가 있는데 술을 빚는데 24시간 정도밖에 안 걸려서 종종 그렇게 마십니다.”

“재미있네요.”

“그러니 오저당에서 빚는 오풍주도 그런 키트를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종종 그 맛이 그리울 때가 있거든요.”

“글쎄요. 검토를 해본 적이 있기는 한데 아직 그럴만한 시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혹시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있을까요?”

막걸리 키트는 우리도 염두에 두고 있는 제품 중에 하나다. 오풍주는 요정의 효과를 받더라도 유통기한이 너무 짧다.

지금껏 유럽에 판매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그래서 아예 직접 만들 수 있는 키트를 만드는 게 어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하지만 그게 현실화되진 않았다.

애초에 살균 막걸리를 만들지 않는 이유가 맛의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술이 나오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현재 빚는 오풍주는 다른 일반 막걸리와 다른 스타일로 꾸준하게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이유는 요정이 숙성 과정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만약 키트로 팔면 그 과정이 없으니 맛의 차이가 상당히 크게 생길 수밖에 없다.

고급화를 택한 오풍주인데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도 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현재 만드는 누룩은 오저당에서 쓰는 것만으로 빠듯하거든요. 조만간 미국에서 버번을 만들면 한국산 누룩으로 빚을 예정이기도 하고요.”

“버번을 한국산 누룩으로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닌데 일단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아마 성공하면 꽤 특색있는 버번이 만들어지겠죠.”

서경준은 그 이야기에 꽤 흥미를 가졌다.

그는 누룩을 만들러 가기 전에 잠시 촬영팀이 정비하는 틈을 노려 내게 슬쩍 한 가지의 제안을 했다.

“혹시 오저당은 투자를 안 받으시나요?”

“오저당에 투자하고 싶으신가요?”

“저도 은퇴 후를 고민해야 하니까요. 언제까지 이런 인기가 유지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거든요.”

십여 년 전에 데뷔부터 그가 소속된 그룹은 상당히 많은 굴곡을 겪었다.

그러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하진 않았다.

빌보드에서 1위를 몇 번이나 거듭하던 시기에 군대라는 이슈가 터졌고 그 당시에 많은 이들이 끝이라 단정했다.

그룹 전체가 순차적으로 입대를 한 탓에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팬덤의 규모가 많이 작아진 것은 다들 인정하는 바였다.

물론, 지금은 다시 완전체가 되어 예전 못지않은 전성기를 만들어 냈으나 언제가 되었든 생길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오저당은 어떤 투자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RJ가 오저당에 투자하는 순간.

오저당은 RJ의 술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진다. 그의 이름을 빌리면 당장은 판매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앞으로 뭘 하더라도 그게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오저당이란 브랜드 가치보다 그의 명성이 더 앞설 것이다.

그리고 오저당이 지금처럼 운영되려면 내 손아귀에 온전히 남아 있어야 한다.

언제 다시 요정과 관련된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다.

그때마다 뜬금없는 나의 행동에 대해서 설득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만약, 주식회사였다면 뜬금없이 진행된 미국의 파사데나 증류소 인수를 어떻게 설명했겠어.

“직접 브랜드를 만드는 게 훨씬 더 빠를 것 같은데요. 이미 소주 브랜드 출시를 한 래퍼도 몇 년 전에 있었잖아요.”

“제가 취미 정도로 술을 빚는 거지 직접 뭔가를 만들 정도는 아니라서요.”

“설마 그 래퍼가 직접 술을 빚는 모든 과정을 다 설계했겠습니까? 그건 저희가 돕겠습니다.”

술은 술을 빚는 전문가에게 맡겨야지.

경험조차 거의 없는 이가 직접 만들 생각부터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벽향주부터 소담까지 만든 전문가가 바로 여기 다 모여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당연히 공짜는 아니겠죠?”

당연하지.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내가 바라는 것은 RJ가 오저당과 별개로 브랜드를 만들면 이곳에서 외주 형태로 생산을 해주는 거다.

따로 마케팅을 할 필요도 없고 우리는 그저 술만 빚어서 주면 되는 일이라 약간의 수익을 나누는 것에 불과했다.

마침 좋은 아이템도 있었다.

최근 오저당이 인수하려고 준비 중인 양조장 중에 감자를 베이스로 빚는 술을 만드는 곳이 한 곳 있다.

안타깝게도 그곳은 기존에 양조장을 운영하시던 분의 건강상 이유 때문에 최근에 영업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술맛 하나는 분명히 경쟁력이 있는 곳이다.

‘게다가 한 가지의 이유가 더 있지.’

최근 삼척에서는 멕시코 감자인 얌빈을 비롯한 감자 생산량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소비량이 많지 않아 처분해야 할 곳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래서 지자체에서도 최대한 도움을 주겠다는 협의까지 이미 마친 상태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해주며 서경준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해보실 생각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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