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92화 (192/254)

신이 주신 기회 (4)

일단 제안은 했지만,

그다지 큰 기대는 없었다.

서경준이 싫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냥 원래 계획대로 우리가 직접 빚어서 판매를 해도 그만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서경준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솔깃한데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을까요?”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국산 감자 소비 촉진이라는 명분도 있고 거기에 지자체 협조까지 예정되어 있다.

술에 대한 퀄리티만 확실하면 판매량도 어느 정도 올릴 자신이 있어 보였다.

‘그건 향이와 요정이 있으니 문제없지.’

서경준은 무엇보다 한국의 술을 해외에 수출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당연히 나도 그와 협업해서 만드는 술을 내수 시장용으로 생각하진 않고 있었다.

예전에 출시됐던 래퍼의 소주처럼 한 달에 수천 병 단위 정도만 팔 거라면 이야기조차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이상을 바랐다.

벽향주 덕분에 새롭게 뚫고 있는 해외 시장이 있기에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음 촬영 준비 끝났으니 이동할게요.”

촬영 준비를 마쳤는지 재촉하는 다이버 관계자의 목소리가 아래에서 들렸다.

그 뒤부터는 예정했던 대로 누룩을 빚는 체험을 하게 됐는데 서경준은 어느 때보다 훨씬 더 그 작업에 몰두했다.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 술을 빚는다는 생각에 완전히 빠져든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은 우리 오저당에게도 나쁜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RJ가 빚어낸 술이라는 이미지였다.

스케줄이 바쁜 그가 직접 술을 빚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술을 개발하는 과정부터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런 점에서 서경준은 열정이 과하다 못해서 넘쳤다.

쨍그랑!

아··· 잊고 있었다.

서경준은 파괴왕이었다.

라니에게 미리 그의 별명에 대해서 들었는데 왜 그런 별명이 붙은 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거 어떻게 하죠?”

서경준은 누룩을 빚는 과정에서 바닥에 패대기친 쟁반만 벌써 두 개째였다.

한번은 발을 잘 못 디뎌서 놓친 거고 이번에는 한 손으로 땀을 닦다가 쟁반의 중심을 잃고 떨어뜨렸다.

그 위에 올려져 운반 중이던 누룩은 바닥에 흩어졌고 그것들은 당연히 사용할 수 없기에 모두 버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소소한 사고로 평정심을 잃진 않았다.

“괜찮습니다. 다시 빚으면 되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탁이니 다치지만 마십쇼.”

괜히 작은 상처라도 나면 세상의 모든 욕이 오저당으로 쏟아질 게 분명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그 이후로 특별한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다.

생각보다 서경준은 누룩을 빚는 일에 빨리 적응했는데 체력 하나는 정말 다른 어떤 직원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았다.

무대에서 뛰어다니던 것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재능이 있으시네요.”

“하하. 그런데 생각보다 술을 빚는 일이 어려운 것 같아요.”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다른 대부분의 술은 설비가 들어와서 쉬운 편인데 경준 씨가 좋아하는 퍼플 라벨은 다르거든요.”

대량 생산으로 노선을 바꾼 화이트 라벨과 달리 퍼플 라벨은 아직도 수작업 생산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누룩은 전체 과정 중에 가장 쉬운 편이라 설명해주자 서경준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어차피 그건 내일 해야 할 일이니 일단은 땀부터 씻어내고 쉬시죠.”

“그래야겠어요. 고작 한 시간 일했는데 땀으로 범벅이 됐네요. 여름에 술을 빚으면 정말 힘드실 것 같아요.”

“오저당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를 해야 할 정도죠.”

나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슬쩍 누룩을 담당하는 최광수 반장을 바라봤다.

그를 비롯해 누룩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자신들의 업무에 대한 자부심을 보였다.

누룩 없이는 오저당 전체가 술을 빚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도 그걸 잘 알고 있기에 그에 따른 보상을 조만간 줄 생각이었다.

아직 공개하진 않았지만,

임원진 회의에서 최광수 반장을 실장으로 승진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다시 오풍리로 돌아와 입사한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으나 기존에 오저당에서 쌓은 경력이 있으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 뒤로는 조금 한가해졌다.

본격적인 술을 빚는 것은 내일부터 내일모레 오전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첫날부터 진을 뺄 수 없기에 누룩을 끝으로 더는 체험이 진행되지 않았다.

대신 어둑해질 무렵부터 한옥 앞에 마련된 평상에 술상이 차려졌다.

당연히 내가 꺼낸 것은 벽향주였는데 아쉽게도 퍼플 라벨은 국내 판매가 안 되는 술이라 화이트 라벨이었다.

“이런··· 엄청 기대했는데요.”

“법이 바뀌지 않으면 어쩔 수 없어요.”

“예전에 퍼플 라벨 역수입해와서 마시던 분들도 있었는데 그런 방법도 없나요?”

“그건 저희 오저당과 별개로 그분들이 알아서 하시는 거라 어떻다고 말하기 어렵네요.”

수출용은 면세로 판매된다.

그걸 다시 가져오면 세금이 꽤 많이 나오는 터라 한국에서 마시려면 상당히 비싼 돈을 주고 마실 수밖에 없다.

당연히 나는 그리 권장하진 않았다.

그럴 열정으로 차라리 법을 바꿔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안타까운 일이네요.”

“저도 퍼플 라벨을 국내 시장에 내놓아서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죠. 하지만 세금 문제가 끼면 해외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팔아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죠.”

“혹시 다음에 나오는 퍼플 라벨은 언제쯤 판매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건 비밀입니다.”

나는 웃으며 그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 자리는 우리 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라니와 호세도 함께했는데 여러 명이 술을 마시는 게 더 보기 좋을 것 같다는 다이버의 제안 덕분이었다.

당연히 라니는 RJ와 직접 대화를 할 수 있는 그 기회를 무척이나 반겼다.

하지만 들떠서 선을 넘진 않았다.

오히려 너무 조신하게 앉아 있어서 낯설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녀석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찐팬답게 묻고 싶은 게 제법 많이 있는 것 같았고 그만큼 팬들 시선에서 궁금했던 것들을 해소해줄 수 있었다.

녀석의 그런 활약 덕분에 나는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두 분 모두 한국어를 엄청 잘하시네요. 신기해요.”

“경준 씨가 영어를 잘하는 거와 비슷한 거라 보시면 됩니다.”

“하하! 그렇기는 하네요.”

그렇게 제법 긴 이야기를 마친 뒤.

관계자들이 인근에 잡은 숙소로 떠날 무렵에 서경준은 나를 따로 불러냈다.

아까 나누던 대화를 마무리하고 싶은 눈치였다.

나도 마침 준비한 것이 있기에 오두막에 우리 둘만 따로 자리를 잡았다.

그 자리에서 내가 꺼낸 것은 화이트 라벨 병이었는데 서경준은 첫 잔을 들어 맛만 보고도 곧장 무슨 술인지 알아챘다.

사실 그 안에는 오늘을 위해 아껴두었던 퍼플 라벨이 담겨 있었다.

“이건···.”

“쉿!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숙성을 마친 술이 잘 빚어진 건지 테이스팅하는 겁니다.”

“하하.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먼 길을 온 보람이 있네요.”

요즘 퍼플 라벨의 시세는 20만 원 정도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최근에 퍼플 라벨이 한동안 유통되지 않고 있으나 일부 인내심이 좋은 이들은 이걸 보관하고 있다가 비싸게 팔았다.

소비자가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언제 다시 술이 시중에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당장 마시고 싶은 이들은 비싼 돈을 주고라도 사는 것 같았다.

“제 이름으로 판매되는 술도 이 정도의 퀄리티였으면 좋겠네요.”

“그건 조금 어렵죠.”

“거기까지 바라는 거는 욕심일까요?”

“할 수는 있는데 벽향주 퍼플 라벨처럼 숙성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렇게 판매하면 저처럼 평생 먹을 욕을 한 번에 몰아서 받으실 수도 있어요.”

무엇보다 직원들이 고생이었다.

요즘도 해외에 있는 주류 상사에서 언제 퍼플 라벨이 나오냐며 문의 전화가 상당히 많이 들어오고 있는 중이다.

서경준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금방 이해했다.

“그러면 화이트 라벨처럼 가야겠네요.”

“아무래도 그게 가장 좋죠. 가야 할 길이 머니 급하게 결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결심했어요. 제가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그것만 계속 생각나서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 술을 마셔볼 수 있을까요?”

나는 그럴 수는 없다며 고개 저었다.

아직 완성된 레시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서경준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술이라고요?”

“오히려 잘 됐죠. 경준 씨는 이름만 빌려주고 술만 팔고 싶은 건가요?”

“그게 무슨 의미죠?”

“경준 씨가 만드는 브랜드의 술이 될 겁니다. 직접 개발 과정에 참여하신다면 원하시는 대로 맞춰드리겠습니다.”

그게 신제품의 묘미 아니겠어.

한마디로 RJ 이름을 붙여서 팔 거면 직접 개발에도 참여해서 완전히 네 것으로 만들라는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아··· 물론 그래야죠. 혹시 신제품 개발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까요?”

“이미 베이스는 깔려 있으나 적어도 몇 개월 정도는 걸릴 거라 보시면 됩니다.”

“제가 그 정도로 오랜 시간 여기서 머물 수는 없는데요.”

당연히 나도 잘 알고 있다.

세상 어떤 사람보다도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아이돌 그룹이잖아.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중간 과정은 모두 오저당에서 처리할 테니 여러 버전의 결과물을 체크해서 최종 결정만 내리셔도 됩니다.”

“그래도 될까요?”

“당연히 그만큼 오저당의 몫이 커질 테니 저희 쪽에서도 손해는 아니죠.”

그걸 공짜로 해줄 생각은 없었다.

우리가 맡는 일이 많아질수록 순수익 중에 가져가는 양이 많아져야 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서경준도 어느 정도 동의했다.

“만약에 제 이름만 빌려드리면 얼마나 주실 건가요?”

“별로 권장하진 않지만, 아무리 넉넉하게 드려도 4%가 안 되겠죠.”

“그건 별로 달갑지 않네요.”

그때부터 서경준과 나는 머리를 맞대고 정산 비율에 대해 조율하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나온 결론은 서경준이 생산에 필요한 건물과 설비에 10억을 투자하고 7%를 가져가기로 했다.

원래는 적극적인 모델 활동을 하면 10% 내외까지도 고려했으나 솔로가 아닌 그룹인 탓에 그게 조금 애매한 상태였다.

개인 사업 때문에 혼자 뭔가를 진행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 쪽에서는 마케팅과 기존에 확보한 수출 라인까지 최대한 동원해서 유통까지 맡는다는 조건이 포함되었다.

수익의 일부를 포기하더라도 오저당에 모두 맡기는 게 바람직하긴 했다.

하지만 변동성이 아예 없진 않았다.

만약에 서경준이 은퇴를 하고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해서 마케팅이나 유통 등을 직접 하면 비율은 약간 변동하기로 했다.

지금은 그가 해야 할 일을 대부분 우리가 해야하기에 서경준은 7%에서 만족했다.

솔직히 말하면 여기서 우리는 수익을 바라는 게 아니라 지자체에서 받는 지원을 더 절실하게 원하고 있었다.

소유하고 있는 땅의 용도 변경.

그것만 이뤄져도 대성공이다.

오저당이 덕월 계곡이란 풍경 좋은 곳에 있는 것은 축복이나 한편으로는 개발을 하기 최악의 여건도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현재 삼척 시장이 가진 포부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그는 민심을 잡을 수 있다면 오풍리를 아예 ‘주류 특화 단지’ 같은 것으로 개발할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현재 오풍리는 삼척에서도 인구가 늘고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고 회사의 규모도 매년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었다.

시장이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게 확정은 아니고 실무자와 변호사 등을 통해서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물론이죠. 대신 아까 약속하신 것은 지키셔야 합니다.”

“당연히 그 부분도 계약서에 넣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서경준은 10억을 투자하며 내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내가 지을 집 옆에 자기 집도 짓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니 집을 지을 수 있을 정도의 땅을 팔아달라는 이야기였다.

당장 그가 이사 올 거는 아니었다.

아마 은퇴하기 전까지는 휴식 기간 때만 이용하는 별장처럼 사용할 것 같았다.

월드 스타를 이웃으로 두는 일이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2박 3일이 지난 뒤.

서경준은 오저당을 떠났고 열흘이란 시간이 흘러 오저당과 다이버에서는 번갈아가며 몇 개의 영상을 오픈했다.

당연히 그 결과는 대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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